동원은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우와! 방송국 아저씨다! 아저씨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달려와 동원의 몸에 매달렸다.
“얼마나 컸나 보자.”
동원은 아이들을 매달고 어기적어기적 운동장 모래판으로 걸어갔다.
아이들은 곧 벌어질 일이 기대되는 듯 킥킥대며 웃었다.
“으아악, 크크크크.”
동원은 한 명, 한 명 몸에서 떼어 모래판에 메다꽂았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모래판에 굴러다니면서 모두들 비명을 지르며 깔깔댔다.
손을 탈탈 턴 동원은 아이들에게 눈을 찡긋하며 인사했다.
“다음엔 더 세게 던질 테다!”
“안돼요! 깔깔”
“으아악! 큰일이다! 하하하하”
계속 웃고 있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동원은 건물로 들어갔다.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동원은 교무실로 들어가서 교무부장과 악수를 하며 인사했다.
해랑도초는 섬이라는 특성상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군이 없어서 진로교육에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동원의 존재를 알고 동원에게 연락을 해 왔다.
올해는 아이들 앞에 ‘작가’로 서는 두 번째 해였다.
“올해는 강당에서 유도 체험을 한 번 해 보고 느낀 점을 글로 써 볼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습니다. 지난 해도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놀아주셨죠? 작가님은 유도도 잘 하십니까?”
“청소년기에 잠깐 했었습니다. 유도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합니다.”
“아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정샘이, 이번에 새로 오신 선생님이세요. 강당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먼저 올라가십시오.”
동원은 시인을 생각하자 설렜다.
일단 좀 쉬려고 왔다는 말에 시인은 방해하지 않겠다며 특별히 연락을 하지 않았다.
동원은 뭐라도 글을 써서 시인에게 한 번 보여줄까 고민도 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학교에서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오랜만이라 기대가 되었다.
교실 두 개를 합쳐서 만든 강당에는 벌써 매트가 깔려 있었다.
안쪽 코너에는 작은 창고가 있었는데 동원은 거기서 유도복을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유도복을 입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동원은 중학교 3년 동안 유도부 활동을 했다.
재능이 있고 체격이 좋아 학교측에서는 운동을 계속 하기를 권했다.
하지만 동원에게는 강압적이고 규율 강한 운동부 생활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또 때마침 국어 선생님이 동원의 글을 보시고 놀라워하셨다.
동원은 그 때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창고 문을 연 동원의 눈앞에 시인이 있었다.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위에는 비키니.. 잠깐, 여기에 비키니가 뜬금없이 나올 리가..
그럼 저건.. 브래지어? 오.. 옷을 벗고.. 지금 내가 뭘 보고..?
시인이 옆에 있던 공을 던져서 동원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속옷 모델이 되어도 손색없을 만한 그런 가슴이었다.
자수가 놓아진 자주빛 브래지어 뒤로 아기 엉덩이처럼 탄력있을 것 같은 시인의 가슴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지, 지금 내가 그런 감상평을 할 때가 아니구나.
동원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죄..죄송합니다. 저도 옷 입으려고, 시인씨 있는 줄 모르고.”
“일단 나가욧! 말 하지 말고 빨리 일단 나가라구요!”
동원은 급하게 나와서 문을 닫았다.
심장이 뛰었다.
그야말로 벌렁벌렁.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당탕탕!
“괜찮습니까?”
“아..진짜! 오늘 뭔 일이래. 괜찮아요. 문 열지 말아요.”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문이 열렸다.
시인이 무릎을 어루만지며 밖으로 나왔다.
동원이랑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계속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밖을 나가더니 곧 복도를 내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헤이! 정선생, 아도 아니고.. 어딜 저래 뛰어 가노?”
“어? 아직 옷 안 갈아입으셨네요? 그 뒤에 창고에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동원은 멍하게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시인은 없었지만 방금까지 그 안에서 옷 갈아입은 시인의 체취가 느껴졌다.
향수인지, 섬유유연제인지,
향기로운 꽃향기가 동원의 코 끝은 간지럽혔다.
이 여자는 도대체..
어떻게 한 번을 평범하게 마주치지 않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예쁜 몸매를..
처음엔 물에 젖고..
오늘은 속옷만 입고..
혹시..설마.. 다음엔..?
아.. 이건 아니구나..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동원은 얼른 유도복을 갈아입었다.
종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원이 밖으로 나오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의 시인이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자, 오늘 작가 선생님이 또 오셨어요. 인사합시다.”
시인이 모른 척 하니 동원이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동원은 아이들에게 유도 동작 몇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아이들과 엎치락뒤치락 놀이 같은 경기를 하다가 한 아이가 말했다.
“작가 선생님, 우리 선생님도 완전 씨름 잘 해요. 둘이서 한 번 해보세요.”
시인이 사색이 되었다.
“우와, 재밌겠다. 선생님, 이기세요!”
시인은 아이들과 몸으로 노는 놀이를 좋아했다.
얼만 전 체육시간에 선생님 대 아이들로 편을 나누어 씨름을 했다.
그랬는데 뜬금없이 여기서 동원과 씨름이라니..
“얘들아, 쓸데없는 소리 말..”
동원이 시인의 손을 잡고 매트 위로 끌었다.
“저..저기 작가님? 지금 뭐하시는..”
“아이들이 원합니다. 한 번 겨뤄봅시다.”
동원은 에라, 모르겠다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시인은 아이들 앞이라 완전히 거절도 못했다.
이윽고 서로의 허리를 잡고 어깨를 마주한 시인과 동원이 있었다.
“저를 미시면.. 제가 뒤로 넘어지겠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제가 욕할 지도 몰라요. 저 피해 다니세요.”
“......”
“아이들은 가짜로 하는 거 바로 알아요. 진짜로 해야 해요.”
시인은 그러더니 다리를 이리 저리 걸며 동원을 넘어뜨리려고 했다.
동원은 어쩔까 고민을 하다가 시인을 잡아서 밀며 넘어뜨렸다.
“우와! 작가 아저씨 짱 세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호리호리한 시인이 체격 좋은 동원에게 깔리니 그야말로 숨이 턱 막혔다.
동원도 이렇게 세게 넘어갈지 몰라서 너무 놀랐다.
“죄..죄송합니다.”
“빠...빨리! 일어나요!”
동원은 자신에게 깔려 있는 시인을 보았다.
아까 보았던 문제의 가슴이 자신의 가슴 아래서 푹신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 동원이 시인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시인은 등을 돌려 쌩하며 아이들 뒤로 가서 섰다.
동원은 시인에게 뭔가 사과나 해명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처참하게(?) 넘어졌던 시인이 너무 재밌어보였나 보다.
아이들은 자기도 해 보겠다며 동원을 마주보고 얼른 줄을 섰다.
뜬금없는 씨름 대결이 벌어졌다.
그 날, 동원은 씨름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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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화요일 날씨 – 맑음
제목 : 씨름
오늘 방송국 아저씨, 아.. 작가 선생님이랑 유도를 했다.
나는 글 쓰는 것보다 체육 한다고 해서 너무 신이 났다.
체육실에서 체육하는 데 아저씨가 내를 집어 던지니 절로 떨어졌다.
유도는 먼지 잘 모르겠지만 그 아저씨는 힘이 엄청 셌다.
계속 넘어 졌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선생님이랑 체육 한 것이 생각이 났다.
우리 선생님이랑 그 작가 아저씨랑 씨름을 했다.
우리 선생님도 완전 힘센데 아저씨랑 하니까 완전히 납작해졌다.
아저씨가 깔아뭉겠는데 한 순간 우리 선생님이 업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빨리 1등으로 줄을 섰다.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 선생님은 먼가 엄청 화가 난 것 같았다.
아까 져서 너무 분한 모양이다.
선생님이랑 같이 씨름 연습을 해서 다음에 그 방속국, 아 작가 선생님아저씨에게 꼭 이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