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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도전! 에스퍼 리그
작가 : 은백
작품등록일 : 2016.10.28

수십 억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초능력 배틀 스포츠!
그 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은 소년소녀의 작고 거창한 이야기

 
1부 - 유니온 프릭스(3)
작성일 : 16-10-28 20:45     조회 : 397     추천 : 0     분량 : 5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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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소식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제38회 에스퍼 리그 결승전에서 발생한 ‘데스페라도’ 복용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갈수록 에스퍼 리그 운영의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가는 가운데, 차기 에스퍼 리그 개막에 있어 헤일로 엔터테인먼트가 큰 난관에 부딪힐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지난 반세기동안 대세 스포츠로 자리를 잡고 연이어 흥행 돌풍을 일으킨 증강현실 초능력 배틀 게임 헤일로 비전이 검은 돈에 발이 묶여 휘청거리기 때문인데요. 검찰은 도핑 약물 데스페라도를 비롯해 무수한 불법 의약품 및 기기를 유통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베일 속의 범죄 조직을 ‘안티 룰’로 명명하고 수사 작업에 전면적으로 나섰습니다. 현 사태에 대해 노아 회장은 헤일로 엔터테인먼트의 운영 미숙에서 비롯된 사태는 결코 아니며, 신속한 수사를 통해 하루빨리 헤일로 비전이 국민 스포츠의 명성을 되찾길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음?”

 

  아직도 미련을 못 끊었는지 메뉴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소년이 처음으로 시선을 돌렸다. 깔끔한 인상의 중년의 남성 앵커가 덤덤한 목소리로 비관적인 소식을 읊고 있었으며, 화면 한구석에는 실루엣으로 처리된 사람 여럿이 돈과 약품을 등 뒤로 주고받는 장면이 명확하게 처리돼있었다. 린다도 테이블 뒷정리를 마무리하다가 이를 흘겨봤지만 금방 시선을 돌렸다. 잠시나마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화사한 미소로 치장한 얼굴에 의미 불명의 씁쓸한 표정이 배어나왔다.

 

  “큭큭, 세상이 어째 돌아가려고 흉흉한 일뿐이구먼.”

  “기헤헤헤헷! 이거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먼유, 형님!”

 

  그때 겨우 두 자리 건너편, 테이블 B의 4번 테이블에서 린다를 뒷걸음질 치게 만든 거구와 멸치 일행이 낄낄대는 소리가 크게 퍼졌다. 아무래도 형님 소리를 듣는 털보 거구 쪽이 윗사람인 모양이다.

 

  “큭큭큭! 하여간 에스퍼 리그는 안 된다니까. 언젠가 저 모양 저 꼴 날 줄 알았지. 암! 노아 녀석도 안티 룰 때려잡는데 혈안이 된 모양이지만 어쩌겠어. 저게 다 천벌인걸. 큭큭큭.”

  “조만간 저 3류 리그에 기웃거리던 놈들은 죄다 자기 비운을 통탄할 겁니다유, 형님. 밑에서 관리가 안 되면 하다못해 결승전이라도 그 격을 유지해야 할 텐데, 웬 말 뼈다귀 같은 패배자 녀석이 되도 않는 변명이나 늘어놓으면서 튀었잖어유. 고놈 이름이 뭐더라? 파라오, 파라도트, 파라미스……?”

 

  그때였다.

 

  “패러독스를 모욕하지 마!”

 

  인간의 오감을 일시에 들썩이게 할 만한 호통이 소프트 오페라의 넓은 실내 가득 울려 퍼졌다. 목소리 자체가 워낙 중성적이라 우람하다는 인상은 주지 못했지만 그 주인의 노기를 훤히 드러내기엔 충분했다. 당연히 린다와 유나를 비롯한 종업원들은 그 자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거구와 멸치 또한 썩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불꽃머리 소년을 쏘아보았다. 만연한 불쾌감이 그들의 눈빛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소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대신 검은색 반소매 셔츠 위에 덧입고 있던 노란색 라이더 재킷을 풀어헤치더니 목에 걸린 은색 메달 하나를 꺼내보였다. 가까이서 그 메달의 모습을 똑똑히 뇌리에 박아 넣은 린다는 그만 하체에 힘이 풀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잠깐만, 저거…… 진짜야?’

 

  말로만 숱하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아르카디아 통합 정부에서 공인한 세상에서 둘째가는 보물이자 에스퍼 리그 본선에서 준우승의 성적을 거둔 팀원들에게만 돌아간다는 영예의 상징. 비록 파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굳이 시가로 치자면 80억 베르크를 가볍게 호가한다고 한다. 에스퍼 리그의 수십 년 역사를 통틀어도 총 100여개밖에 생산되지 않아 실물로 보기는 가히 하늘의 별따기다.

 

  “큭큭큭! 그거 진품이야, 형씨?”

  “너희가 패러독스에 대해서 뭘 알아! 우리가 살고 있는 제13지구의 고금을 통틀어 최강, 최고의 에스퍼 리거이자 영웅이라고! 비록 결승전에서 우승팀 ‘노아즈 아크(Noah's Ark)’의 비열한 술수 때문에 이렇게 유토피아에서 그쳤지만, 원래는 우승 메달 엘리시온(Elysion)을 당당히 목에 걸고 금의환향했어야 했단 말이야! 패러독스는 자기 힘만으로 진실을 밝힐 수 없다고 좌절한 나머지 에스퍼 리그랑 인연을 아예 끊은 거고, 이 유토피아는 은퇴를 만류하러 갔던 나한테 마지막 유지를 이으라면서 물려준 거라고!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지껄이지 마!”

  “큭큭, 혼자 소설 쓰고 있네. 이봐, 형씨.”

 

  털북숭이 거구는 소년의 성난 주장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직원들은 일순 험악해져가는 분위기에 어쩔 줄을 몰랐다.

  거구의 막대처럼 굵은 손가락이 소년의 얼굴을 향했다.

 

  “믿고 말고는 자유야. 하. 지. 만, 형씨처럼 노아즈 아크가 헤일로 엔터테인먼트의 회장과 손을 잡고 뒷거래를 했다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실제로 검찰이 3번에 걸쳐 조사했지만 무혐의로 판명이 났잖아. 하긴 그 음모론, 다시 들어보니까 완전히 픽션이던데. 큭큭큭!”

  “아니야! 아니라고!”

 

  소년은 생떼 부리는 어린이 같은 어조로 악을 썼다. 목에 걸린 유토피아가 바스러질 듯이 꼭 움켜쥐고는 눈에서 노기를 불태웠다. 어지간히도 분했는지 눈가에 그렁그렁한 맺힌 눈물까지 비쳤다.

 

  “언젠가는 반드시 내가 패러독스를 대신해서 진실을 밝혀내겠어! 어디 두고 봐!”

  “큭큭큭! 맘대로 해봐. 형씨. 그 한창 좋을 시기를 함부로 낭비하려 들다니, 인생의 선배로서 그저 안타깝기만 하구먼. 뭐, 그 유토피아가 진품이라면 마냥 낭비만은 아닌가? 그것만은 솔직히 부럽네. 적어도 한두 푼 하는 물건은 아닐 텐데, 큭큭.”

 

  거구는 소년을 호쾌하게 비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더니 뒤끝 없이 등을 돌렸다. 카페 관계자들에게는 다행히도 걷잡을 수 없는 사태까지 치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소년 역시 질주를 마친 마라톤 선수처럼 얼굴을 붉히며 씩씩댔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질 요량은 없는지 다시 호흡을 고르고 착석했다. 그 무거운 공기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반면에 소년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폭식을 완전히 마칠 때까지, 린다는 소년의 목에 걸려 찬란한 빛을 발하는 유토피아에게서 도무지 눈을 떼질 못했다. 동경과 물욕이 한데 어우러진 시선으로 그 탐스러운 보물을 뚫어지듯 바라보다가,

 

  ‘저거.’

 

  음흉한 미소와 함께 입술을 쓱 핥았다.

 

  ‘노려볼 가치가 있는데?’

 

 

 

 

  “81만 6520베르크 되겠습니다.”

  “오잉?”

 

  소년은 좀 전의 용감무쌍한 패기는 어느새 고물상에 팔아치웠는지, 카운터 앞에서 멀뚱히 선 채 눈을 끔벅이며 멍청한 감탄사만 내고 있었다. 카운터의 종업원은 의심쩍은 눈초리로 새삼 그 소년의 남루한 행색을 짚어보았다.

 

  곳곳에 검댕이 묻고 재질도 너덜너덜해진 스키니 진, 없는 세련미를 억지로 지어내려고 급히 맞춘 듯한 싸구려 라이더 재킷. 일단 양반집 자제분이 아니라는 것쯤은 지레짐작으로도 짚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급격히 난처해져가는 저 표정이 의미하는 바는…….

 

  “손님. 81만 6520베르크입니다.”

  “……그거, 몰라. 뭐야. 무서워.”

  “81만 6520베르크라고요.”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81만 6520베르크다.”

  “……무서워. 그거, 뭐야. 몰라.”

  “잘 들어, 꼬마야.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왔겠지만 나갈 땐 안 된단다.”

  “아니, 잠깐만요. 타임, 타임. 기다려주세요.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네요. 아이고, 배야! 과식했더니 설사가!”

  “과식한 건 알고 있니?”

 

  눈에 띄게 태도가 서늘해진 카운터의 종업원을 등지고 소년은 부리나케 화장실로 전력질주했다. 배변욕이 아니라 생존욕에 기인한 행동이라 그런지 월등히 빠른 속도를 자랑했지만 결국 시간벌기밖에 안 된다. 하릴없이 좁디좁은 양변기 칸에 틀어박혀 문을 잠그고 살아나갈 방도를 모색해봤지만 묘안이 떠오르질 않았다. 1초 1초가 영겁과도 같이 느껴졌다.

 

  ‘안 돼! 81만 베르크? 아무리 홧김이라곤 해도 그만큼 먹어댔단 말이야? 지갑엔 끽해야 5만 베르크 밖에 없는데!’

 

  그때 다소 거친 노크 소리와 함께 뜻밖의 불청객이 도래했다.

 

  “거기 누구에요? 도대체 혼자 얼마나 있는 거예요? 다른 칸 수리중이라서 여기밖에 없단 말이에요. 무슨 전세 냈어요? 빨리 나와요!”

 

  정말 급한지 노기 함유량 99%의 새된 여자 목소리가 소년을 닦달했다. 이에 소년은 미안함 반, 난처함 반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문득 중대한 진실을 깨달았다.

 

  ‘응, 여자?’

 

  깔끔하게 망했다. 하다못해 화장실의 남녀 구분 표기라도 똑바로 보고 왔어야하는데, 설상가상이란 사자성어는 아마도 비극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여긴 공용 시설이란 말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30분은 너무하잖아요! 다섯 셀 테니까 나오세요! 하나, 둘, 다섯, 백, 천, 억, 경, 구골 플렉스!”

  ‘에라, 모르겠다!’

 

  소년은 자기 인생을 내다버릴 각오로 눈을 딱 감고 잠금장치를 열었다. 그리고 지옥의 문이 열리고, 그 너머에는 허니 블론드 투 사이드 업의 미소녀 메이드 형상을 한 염라대왕이…….

 

  “너, 거기서 뭐하니?”

  “아하하, 왠지 호칭의 격이 많이 떨어졌네.”

  “너한텐 볼일 끝났으니까 그러지, 인마. 정 주인님 소리 또 듣고 싶으면 VIP 등록하던가.”

  “이거 참 냉정하군. 하긴 이것도 상술인가? 너, 고정 손님 하나는 잘 만들겠다. 하하하. 분해서라도 다시 찾아오겠는데.”

 

  청색 기조의 메이드복 차림을 한 린다가 허리를 숙인 채 다리를 배배 꼬고 있었다. 다급한 기색이 다분한 와중에도 따질 건 따져야겠다는 듯이,

 

  “어쨌든 여자화장실에서 뭐하는 거냐구, 지금?”

  “그게……. 그래, 사실은 나 여자였어! 몰랐지? 비록 머리 짧고 키 크고 가슴도 작지만, 실은 학계에 밝혀지지 않은 변종이거든! ‘호모 고자라니(Homo Gojarani)’!”

  “이 멍청아. 자꾸 누구처럼 남녀도 구분 못하는 바보로 몰고 갈래, 자꾸? 그리고 가슴 얘기는 그만…… 으, 으아아악! 안 되겠어! 일단 나와! 빨리!”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사람 두 명으로 연출해낼 수 있는 최대의 난장판 끝에 린다는 간신히 일생일대의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그 위기의 바통은 소년이 이어받았다.

 

 

  “그래서, 생각도 없이 막 먹어댔는데 땡전 한 푼 없으시다?”

  “땡전 한 푼은 아니고, 5만 베르크 정도밖에…….”

 

  소년이 자신 없게 말꼬리를 흐렸다.

  얄궂게도 소년과 린다는 좀 전의 테이블에 똑같이 마주앉아, 주종이 반전된 상황에 놓인 처지가 됐다. 소년은 계속해서 살기를 뿜어내는 카운터 종업원의 매서운 눈초리를 애써 무시하며 딱한 사정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그러자 린다는 허리에 손을 얹고 혀를 찼다.

 

  “애당초 무식하게 막 들이마신 네 잘못이네, 뭐. 애초에 좀 걱정된다 했어. 린다도 여기에 매인 몸이라 마냥 봐줄 수만은 없어. 말했잖아. 린다는 고객의 명함을 뗀 사람한테는 볼일 없다구. 그렇다고 죽을상은 짓지 마. 한 달만 묶여서 일하면 81만 베르크 정도는 청산될 거야.”

  “그게, 한 달은커녕 단 1주라도 지체돼선 곤란한 사정이 있어서 그래.”

 

  소년의 그늘진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더욱 두드러졌다. 린다가 물었다.

 

  “사정? 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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