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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도전! 에스퍼 리그
작가 : 은백
작품등록일 : 2016.10.28

수십 억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초능력 배틀 스포츠!
그 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은 소년소녀의 작고 거창한 이야기

 
2부 - 도주자(4)
작성일 : 16-10-28 21:35     조회 : 380     추천 : 0     분량 : 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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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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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그마도 잠깐 조용. 나 혼자서 그 여자랑 담판을 짓고 싶어. 금방 돌아올게, 린다!”

 

  빨간 눈에 비장한 결의 불태우며 계단을 발을 내딛는 아더. 동년배들에 비해서는 왜소한 체구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뒷모습이 산처럼 크고 들판처럼 넓게만 보였다. 그때, 어디서 난데없는 기시감이 솟아나 송곳처럼 머리 한 구석을 쿡쿡 찔러댔다.

 

  ‘멋진 열정인걸! 법을 저촉해가면서까지 꿈을 이루겠다니.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대단해. 내가 키우는 애들이 그 열정, 본받았으면 좋겠다. 하하하하하! 만약 남은 스코어까지 따내서 우리 팀을 이긴다면 최소한 결승 정도는 가라고! 그래야 내 체면이 서지. 안 그래?’

  “…….”

 

  수면의 그림자처럼 떠오른 한 남자의 실루엣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더의 발소리는 이미 멀어진지 오래였다. 린다는 잡념을 떨치고 현실로 돌아와, 자신의 손에 꼭 쥐인 시가 80억 마르크짜리 보물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팽배하게 감도는 긴장감에 목 너머로 침이 넘어갔다. 전신에 묘한 경련까지 일어난다.

 

  이제 방해꾼도, 보는 눈도 없다. 린다를 제재할 대상은 그 누구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 조용히 유토피아를 들고 도망치면 그만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같잖은 위선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으니까.

 

  “미안해, 아더. 그리고 엘피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유토피아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씁쓸한 미소와 함께, 더할 나위 없이 씁쓸한 작별을 고한다.

 

  “언젠가 죗값을 치러야한다면 치를게. 딱하게 됐지만, 린다한테도 린다 나름의 사정이 있거든. 짧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어. 용서해줘.”

 

  린다의 청옥 같은 벽안 밑으로 투명한 액체 한 줄기가 또르르 흘러내렸다. 죄책감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은 생전 처음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마리오네트는 시끌벅적한 인파 사이로 패러독스의 모습만을 찾았다. 궁궐에서 이 잡듯이 촉을 곤두세우면서 정작 목전의 팬들은 등한시하는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볼멘소리 섞인 클레임이 들어왔다.

 

  “헤이, 레이디. 패러독스 가이는 이미 스태프를 몰래 풀어놔서 샅샅이 찾고 있으니까 팬 미팅에 주력하라고, ANG? 이랬다간 팀의 이미지가 다운하잖아.”

  “아, 네…….”

 

  마리오네트는 그렇게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태도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래비트는 땅이 꺼져라 푹푹 한숨만 쉬었다. 결국 그 빌어먹을 흑백 머리 사내가 예고대로 나타나주길 바랄 수밖에. 평소에는 잘 먹고 잘 놀다가 갑자기 신경 쓸 일이 생겨서 그런지 속이 불편해졌다.

 

  “아임 소리. 잠깐 토일렛. 팬들은 레이디가 좀 맡아줘.”

  “그러세요.”

 

  마리오네트는 겉으로는 꿍하니 대답했지만 내심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래저래 귀찮은 소리만 줄줄 늘어놓는 양반이 자리를 뜬 셈이니. 하지만 상황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부담스런 인파는 도무지 끝이 없이 이어지고, 마음에도 없는 악수와 사인만 몇 시간째 하느라 오른손이 저릿저릿해졌다.

 

  잔뜩 부푼 가슴으로 찾아왔는데 수확은 제로. 패러독스의 얼굴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가.

 

  ‘그이에게 아직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만큼 각오가 돼있진 않지만, 적어도 모종의 사유가 있다는 메시지라도 남기고 싶었는데…….’

  “흥! 네가 마리오네트지?”

  “네, 맞는데……요?!”

 

  간신히 공상에서 빠져나와 별 생각 없이 눈앞의 사내를 쳐다본 마리오네트는 기겁했다. 하느님 맙소사. 점차 스러져가던 눈빛이 태양광처럼 번쩍이고 정신이 돌아왔다.

 

  “이제와서 뻔뻔하게 13지구에는 웬 볼일이지? 마스터즈 플랜을 물 먹인 것만으로는 놀림감이 모자라나 봐?”

  “패, 패러독스! 당신……!”

  “음?”

  “으아아아아아아앙!”

 

  면전의 사내가 뭐라고 하는지는 귀에 일체 들어오지 않았다. 환희와 감격이 온천수처럼 솟아올라 그녀의 가슴을 핑크색으로 물들여갔다. 잠시 말라있던 눈물샘이 재차 작동을 시작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주변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마리오네트는 면전의 남자의 품에 와락 달려들었다. 왠지 그때보다 덩치가 조금 작아지고 머리색과 스타일이 변한 것 같지만 상관없다. 이 훤칠하고 정감 가는 얼굴의 느낌은 그대로다. 항상 포근하게 감싸주고, 차갑게 식은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던 그때 그 느낌.

  패러독스가 돌아왔다.

 

 

 

  글로리 에스퍼즈의 구내 카페. 직원들은 투명한 외곽 창 너머로 수백 개의 시선이 일시에 쏠리는 기현상을 체험하고 전신에서 식은땀을 흘려야했다. 그 많은 사람들의 폭풍 같은 관심을 받는 손님은 2명. 아닌 게 아니라 연예 매체에도 얼굴을 심심찮게 내비치던 유명인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패러독스가 아니라니― 우으으으읍!”

  “옛날에는 케이크를 참 좋아하셨는데, 입맛이 안 당기시는 건가요? 이 파르페는?”

  “으앙 머겅(안 먹어)!”

 

  느닷없는 돌발 사태에 팬 미팅은 일시 중단됐지만 곧 자리에 복귀한 그래비트의 중재 덕분에 순탄하게 재개됐다. 문제는 마리오네트의 공석. 인기가 그래비트만은 못해도 팀의 유일한 여성 멤버이자 아이돌과도 같은 그녀가 빠지면 진행에 장기적으로 차질이 생긴다.

  무엇보다 그래비트 입장에서 큰 문제는,

 

  ‘암만 봐도 그 보이, 꽤 닮긴 했어도 패러독스 가이는 아닌 거 같단 말이지. 사칭인가? ANG? 아무래도 레이디는 눈치 못 챈 모양이고. 어떻게 돼 가는지 아이 돈 언더스탠.’

  “우훗, 변함없이 멋진 미소!”

  “너, 내 목소리는 안 들리는 거냐?”

 

  아더는 목과 눈에 핏대를 세우고 큰소리를 꽥꽥 질렀지만, 상대 쪽은 작정하고 귀를 꽉 닫은 모양이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돌아오신 거예요? 다시 마음을 연 계기를 가르쳐주세요.”

  “이 빌어먹을 여자가― 우우우우웁―!!!”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마리오네트의 가녀린 손에 목이 감긴 아더는 앗 하는 사이에 그녀의 품에 당겨져, 뭉클한 감촉과 달짝지근한 향기를 마음껏 만끽(?)해야 했다. 밖에선 감탄과 비명이 반반씩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카메라 플래시는 터지지 않았다.

 

  “왜 말씀 안 해주세요? 혹시 예전의 그 뜨거운 추억이 다시 떠올라서?”

  “이거 누와아아앗! 수믈 모씨게써!(이거 놔! 숨을 못 쉬겠어!)”

  “아으으으아앙♡ 가슴이 간지러워요! 그렇게 격렬하게 핥으시면 저는 더 이상……♡”

  “푸흐아아아아!”

 

  간신히 완력으로 떨어지는데 성공했다. 코끝이 찡한 건 여전하고 여파가 제법 갈 듯하다.

 

  “너, 날 약 올리려는 거야? 아까부터 웬 헛소리 남발이야!”

  “네?”

 

  제대로 뿔난 아더는 이제 이마에서 새하얀 김까지 올랐다. 일갈할 게 있어서 왔는데 도리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컷 농락당하고 있으니 그 부처님 같은 낙천 멘탈도 슬슬 밑천이 드러난 것이다. 보육원 시절 이후로 이만큼 화를 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반쯤 이성을 잃고 폭주를 개시했다.

 

  “내가 마음을 열었다고? 열기는 빌어먹을! 패러독스가 불쌍하지도 않냐? 패러독스는 말이야, 운영, 훈련 여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오직 열정과 실력만 믿고 밑바닥에서 출발! 에스퍼 리그 본선에 당당히 진출한 것도 모자라 우승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팀 창단부터 같이 한 동료가 불법 약물 복용으로 실격! 그리고 자기 연인이랑 헤일로 엔터테인먼트 간에 이루어진 부당한 거래 때문에 완패! 그리고 은퇴! 바닥도 보이지 않는 절벽 인생을 살아온 남자라고! 이제 와서 용서를 빌어봐야 용서해줄 것 같아? 제3자 입장에서 멀찍이 바라보기만 한 나도 열이 뻗쳐 죽을 마당인데, 패러독스는 네 목을 딸 칼날만 갈고 있을 거야, 인마!”

  “……아아.”

  “오잉?”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얼레레? 잠깐만!”

  “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저 언성을 좀 높여서 속내를 여과 없이 털어놓은 것뿐인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것 같다. 어지간한 아더도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야, 잠깐잠깐! 조용조용! 착하지, 착하지? 쉿!”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제발, 부탁이니까!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잖아!”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알겠어, 알겠어! 용서해줄게! 용서해줄 테니까 그대로 뚝!”

  “뚝!”

  “…….”

 

  이럴 속셈이었냐. 역시 무서운 여자로세.

 

  “정말이에요? 진심? 짜장? 레알?”

  “응? 어, 어……. 그래.”

 

  아더는 무언의 압박에 떠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팜탄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사태를 핵폭발로 확산시키지 말자.

 

  “진짜 용서해주시는 거죠? 이거, 꿈은 아니겠죠?”

  “…….”

 

  제기랄. 말려들었다.

 

  “오오,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 공자님! 부처님! 마호메트님! 스파게티 괴물님! 감사합니다! 새벽 5시마다 냉수 떠놓고 기도한 보람이 있었군요! 으, 으흐으으윽…….”

 

  마리오네트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도 안 나오는지 고개 숙여 흐느끼기만 했다. 이쯤 되자 이제까지 앞뒤 생각 않고 열만 올리던 아더도 슬슬 위화감을 느꼈다. 잠시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마리오네트의 반응을 또렷이 살펴봤다. 탱탱 부어오른 눈두덩, 빨갛게 상기된 볼, 닦지도 않은 눈물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더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이 여자, 패러독스가 밝힌 것 외에 무언가 숨긴 게 있나? 암만 봐도 단순히 돈이나 우승에 눈이 멀어서 애인을 팔아먹은 여자의 태도는 아닌데.’

 

  맘 같아선 시그마의 전원을 되돌려서 조언을 듣고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내 개인적인 감정으로 시작한 일이다. 스스로 책임지고 끝을 내야지.

 

  “그럼, 마리오네트. 묻고픈 게 있어.”

  “뭐든지요.”

  “너희 노아즈 아크와 헤일로 엔터테인먼트 간에 어떤 거래가 있었던 거지? 그리고 이런 짓을 한 이유는?”

 

  아더는 열을 가라앉히고 턱을 괸 채, 1급 현상수배자를 취조하는 형사처럼 진지하고 위협적인 어조로 마리오네트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좀 전처럼 대놓고 기피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마리오네트도 긴장을 풀고 안정을 되찾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힘겹게 띈 그녀가 내뱉은 첫 마디는,

 

 

 

 

  ‘젠장맞을! 이 촌동네는 하여튼 교통사정이 영 불편해서 질색이라니까!’

 

  육상 선수도 놀라 나자빠질 속력으로 질주하면서도 용케 배부른 불만을 토로할 기운이 남아도는 이 금발 소녀의 이름은 린다. 이런 추잡한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머리도 몸도 빨라야한다는 일념으로 몸을 단련한 보람이 피부에 와 닿았다. 대중교통 시설도 마땅찮은 이 촌구석에 자리 잡은 것이 새삼 후회되기도 한다.

 

  글로리 에스퍼즈를 뜬지 어연 2시간째. 예보에도 없이 내리퍼붓기 시작한 빗방울에 전신이 흠뻑 젖었지만 린다는 개의치 않았다. 우산 하나를 할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다. 만에 하나 그 불꽃머리 소년에게 뒷덜미가 잡히면 할 말이 없고, 그게 트레트와 게인이라면 상상도 하기 싫은 전개다. 물론 그 외에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대는 여럿 있지만 그걸 일일이 세려면 양손의 열 손가락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헉, 헉! 이건 너무하잖아!”

 

  한낮임에도 차로를 배회하는 택시 한 대도 없다니, 린다는 기가 찼다. 바로 옆 구획인 4지구에 진입하기 위해선 차를 타고 톨게이트를 지나거나, 제13지구역에서 구간 운용 열차에 탑승해 건너갈 수밖에 없다. 헐레벌떡 달리면서도 속에 소중히 품고 있는 이 금속덩이 하나만 경매장에 올려놔도 고급 승용차 수십 대쯤은 가볍게 얻을 수 있을 텐데. 하여간 이놈의 시간이 원수다.

 

  그때, 린다의 염원이 마침내 하늘에 닿았는지 빗소리를 뚫고 경적소리가 울렸다. 반가운 기색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허름한 개인택시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깜박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용케 이런 곳에 택시가 있네.

 

  “아싸!”

 

  린다는 길 가다 수표 주운 기분으로 팔짝팔짝 뛰며 택시의 뒷좌석에 엉덩이를 걸쳤다. 안도감과 아늑함이 일시에 몰려와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훔치고 하얀 김이 서린 한숨을 내쉬고 있자, 파란 선글라스를 낀 거구의 기사가 입을 뗐다.

 

  “어디로 가시죠?”

  “제13지구역이요. 되도록 빨리 부탁드릴게요!”

  “옙!”

 

  택시의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숨 막히는 도주는 슬슬 종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린다는 갓 낳은 아기를 바라보는 산모처럼 자애로운 눈으로 품속의 보물에 시선을 향했다. 빗물에 젖어 끈적끈적해진 옷 사이로, 혼자 은백색의 빛을 내뿜으며 자기 존재를 어필하는 메달 하나. 모든 아르카디아인들이 꿈꾸는 두 번째 우상이자 국보 이상의 존재. 어서 이 동네에서 멀찍이 도망치고 수집가들한테 비싸게 팔아먹기면 하면, 그동안 자신을 닦달하던 사채업자들의 빚을 몽땅 갚고도 최소 5억 베르크 이상은 남길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일체의 노력 없이 여생을 유흥으로 보낼 여건이 된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물론 양지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냐면 그건 절대 아니지만.

 

  “으응? 잠깐만. 아저씨!”

 

  린다는 속으로 신나게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가 문득 이상한 낌새를 감지했다. 택시의 주행 방향이 제13지구역의 정반대, 즉 아더가 사는 동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황홀한 망상에 사로잡힌 나머지 눈치 채는 것이 늦었다.

 

  “린다는 분명 역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는데요?”

  “아아, 그래요?”

 

  중대한 실수였지만 기사는 눈곱만큼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제 이름은 아저씨가 아닌데요. 당신의 본명도 린다는 아닐 테고.”

  “에엑?”

  “시력 교정을 한번 받아보셔야겠습니다. 타자마자 알아채실 줄 알았는데. 뭐, 그렇다 한들 소용은 없었겠지만 말이죠.”

 

  갑자기 앞뒤 할 것 없이 차문이 일시에 잠겼다. 희한하게도 운전석이 아니면 안에서 열 수 없는 구조로 디자인된 모양인지 아무리 용을 써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빠른 속도로 주행 중인 차 안이라 마땅한 대비도 없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가는 중상이나 죽음뿐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피해야할 사태가 코앞에 닥쳤음을 린다는 직감했다.

 

  잠깐 피가 쏠렸던 얼굴에 혈기가 싹 가셨다. 동전마냥 눈이 동그래진 금발 소녀의 눈앞에서, 퉁퉁 부은 얼굴의 털보 남자가 푸른색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렇지 않나, 마야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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