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수진이 왔어. 끊어. 휴대폰 반대쪽에서 들리는 소리가 서늘하다.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던 호진이 거실에 있는 쇼파 위로 폰을 던져버리고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어 ON 버튼을 누른다. 스마트폰이라서 그런가 너무 스마트해서 차갑다 못해 얼음이 얼겠네. 호진의 푸념소리가 화면 위로 올라온 프로야구 중계 소리에 묻혀버린다.
하얀색 바탕 위에 빨간색으로 칠해진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침을 뱉고 흙바닥을 긁어대는 모습이 잡힌다. 투수가 공 던지는 모습 좀 보여주지. 온통 타자한테만 카메라를 들이대잖아. 카메라가 비추는 대로 야구경기를 보던 호진은 몸을 일으켜 냉장고 앞으로 다가간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머리 위로 기울여 컵도 없이 물을 들이켠 후 다시 쇼파 위로 돌아가려다 잠시 발을 멈춘다.
점점 시끄러워지는 텔레비전 속 응원소리를 뒤로 한 채 호진이 다가간 곳은 문고본, 잡지, 각종 서적 등이 잔뜩 비치된 책장 앞이다. 위에서부터 손으로 훑어가던 중 찾아낸 자리에는 얇은 두께를 가진 사진첩이 놓여있다. 시중에서 흔히 파는 게 아니라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사진첩은 매끄럽게 꾸며져 조잡해 보이지 않는다.
호진은 마지막 장을 덮고 있는 커버를 들어올린다. 그 아래 자리한 작고 오래된 흑백사진을 찾아 꺼낸다. 부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가운데 어린 아기를 놓고 찍은 사진이다. 잠시 그 사진을 들여다보던 호진은 다시 앞쪽으로 사진첩을 넘겨 세 번째 장에 끼워진 사진들을 응시한다. 맨 아래에 끼워진 두 장의 사진이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데, 왼쪽에 끼워진 사진은 남자와 여자가 밝은 표정으로 가깝게 붙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에는 아기를 안은 사람의 모습이 찍혀있다. 얼굴이 있었던 부분은 알아보기 힘들다. 호준이 사진을 끼워진 곳에서 빼낸다. 얼굴 주변 부위에 뚫어놓은 구멍이 선명히 드러난다.
사진을 움켜쥔 채 바라보는 호준의 눈이 굳어져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눈과 사진 사이의 공기가 팽팽해져 구멍을 더 크게 만들 듯하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아나운서가 오늘 관객수 기록을 깰 것 같다고 중계하는 소리가 집 안을 맴돌고 있지만 그 어떤 말도 호진에게는 닿지 않아 보인다. 마치 그 순간에는 호진과 손에 든 사진만이 존재하는 전부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