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김은지에요. 외국에서 한국분 만나면 무척 반갑더라구요.”
은지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손을 내민다. 민호는 은지가 갑작스럽게 악수를 청하자 예상치 못한 행동에 가만히 내려다 보기만 한다. 어중간하게 올라온 손이 더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려가지도 못한 채 멈췄고, 은지 스스로도 어색했는지 난감해한다. 1초가 10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는데 그 손을 앞으로 쑥, 내밀어 민호의 손을 당겨 잡고 이상한 리듬으로 흔든다. 북한방송에 나오는 군인처럼 딱, 딱, 끊어 맞추듯이.
민호는 그 손을 빼낼 처지가 아닌 것 같아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닌 양 힘을 뺀 체 있었다. 은지는 민호의 손 무게를 힘을 줘서 지탱한다. 상황이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은지가 손을 놓으려는데 이번엔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놓아버린 손이 밑으로 쑥 떨어지자 민호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은지가 그를 잡아주기 위해 앞으로 움직였고 반사적으로 민호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온다.
“악, 악수는요.”
“네?”
“한국사람은 악수를 외국인처럼 흔하게 하지 않잖아요. 어색해서요.”
민호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낀다. 그런 그에게 은지가 미소를 보인다.
“아뇨, 제가 죄송하네요.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맘대로 손 내밀고 함부로 잡아버리고. 저를 이상하게 보시겠다.”
은지가 입고 있는 검은색 치마 밑단이 그녀가 몸을 돌리자 나풀거리며 따라 움직인다.
“잠시만요. 어디 넣어둔 간식거리가 있지 싶은데.”
돌아서는 은지의 뒷모습에 대고 민호가 자신을 소개한다.
“홍민호입니다. 제 이름.”
은지가 민호의 이름을 듣고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춘다. 민호는 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간다.
“로마에서 누군가와 이렇게 인사를 나누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천천히 말을 떼는 민호의 얘기에 은지는 간간히 답을 하며 간식거리를 준비한다. 한국에서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 지내는 곳, 로마에 대한 감상, 실망하고 기뻐하며 지냈던 일상을 민호가 풀어내는 동안 은지는 다과를 챙기고 컵에 음료수를 따라 쟁반에 담는다.
“다행이에요. 나아지신 듯해서. 심하게 체했었나봐요.”
아무런 장식이 없는 투박한 모양의 직사각형 탁자 위에 음식을 놓으며 은지는 민호와 마주앉는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그렇게 아파본 적 없는데 숨도 제대로 못 쉬겠더라구요.”
민호가 답하며 들어올린 쌀과자가 반으로 툭하고 부러져 밑으로 떨어지자 민호는 급하게 손을 뻗다 다른 접시를 연달아 건드린다. 서너 종류의 견과류가 담긴 접시가 옆으로 쏠려버린다. 난감하게 어질러진 탁자를 바라보는 민호에게 은지가 신경 쓰지 말라며 보기 좋게 정리한다.
“혹시 교회 다니세요?”
그제야 민호는 자신이 교회 안에 있는 게 떠올라 주위를 둘러본다.
“그게, 어릴 때는 어머니 따라 성당에 다녔어요. 세례명도 있는데, 요다라고.”
은지가 웃으며 답한다.
“요나겠죠.”
“아, 요나.”
민호는 다시 붉어지려는 얼굴을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들어 눈으로 사방을 훑는다.
“밖에서 볼 때는 작고 낡아보였는데 안은 나름 아늑하게 잘 꾸며놓으셨네요.”
나무로 지어진 벽이 오래된 외양을 드러내고 있지만, 검은색과 보라색 빌로드 천으로 그 위를 덮고 십자가, 예수, 성자가 그려진 장식품과 그림으로 조밀하게 공간을 채워 나름 정갈하고 아담한 인상을 준다.
“여기 사모님이 굉장히 깔끔하세요. 목사님이랑 6살 된 아들이 부지런히 어질러도 어찌나 잘 치우시는지 제가 여기 온지 7개월 넘어가는데 한결 같다니까요. 처음 왔을 때랑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모두가 치움의 은사라고 한다니까요.”
자신이 내뱉은 말이 우스워 소리 내어 웃는 은지의 모습을 민호가 말없이 바라본다. 당황했을 때와 다른 색감을 가진 붉은색을 띄는데, 그 색이 농도가 연하고 얼굴 전체가 아니라 유독 양볼 근처로 모였다. 창밖의 하늘도 시간에 밀려 해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조금씩 붉은 색을 띄어간다. 하루 중 두 번씩 하늘에서 보게 되는 그 붉음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이 해의 위치는 조금씩 아래로 향한다. 이제 때가 되어 자리를 피해줘야 하듯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