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뭐지? 또라이인가.’
마스크를 쓴 탓에 눈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소은이 아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윤호는 더더욱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 꼬리를 살랑이며 서있는 강아지를 보았지만, 소은이 아는 사람 중 리트리버를 키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소은을 보고 눈물을 흘린 건지 소은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하.. 대박... 대박..! 나 지금 울었어..? 대박!! 저기요! 저 방금 눈물 흘린 거 맞죠?
봤죠? 어땠어요? 슬퍼보였어요?”
곧이어 남자는 소은에게 속사포로 말을 걸어대며 눈물과 어울리지 않게 신난 모습을 보였다.
소은은 그제야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이 새끼, 미친놈이네.’
동물 키우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했지만,
요즘 세상에 또라이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걸 잊으면 안됐었다.
아직도 순한 얼굴로 옆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리트리버 때문에
낯선 이가 말을 걸어도 너무 긴장을 안했나보다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소은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놀라거나 무서울 때 뛰는 그런 심박 수였다.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한 소은은 두 발자국 정도 뒷걸음질 치다가 집 가는 방향으로 냅다 뛰었다.
“어? 저기요!!! 액정!!!! 돈 받아가요!!!!!!”
‘왈왈!’
뛰어가는 소은을 멈추게 하려 한 건지 진짜 배상해주려 한 건지 모르겠지만,
소은은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부디 쫓아오지만 않길 바라며.
다행히 미친 남자는 쫓아오지 않았다.
집 근처에 다다르자 소은은 혹시나 집까지 쫓아온 건 아닌 지 주변을 살핀 뒤에야 집으로 들어갔다.
유난히 밤길을 무서워하는 소은이기에 밤에 혼자 길을 걸을 땐 늘 윤호와 통화를 하며 걸었었다.
하지만 이제 윤호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핸드폰 액정은 완벽히 깨져버렸다.
하마터면 미친 사람과 엮일 뻔 도 했다.
소은에게 오늘은 정말 모든 것이 다 뭐 같은 하루였다.
-
“와 대박. 캡틴, 형 봤어?
눈물 한 방울 흘리는 거 봤어? 봤지??”
“왈-”
지호는 자신의 반려견인 캡틴의 볼을 잡고 흔들며 방금 눈물을 흘린 자신에게 놀랐다.
“이건 진짜 대박 사건이야”
그리고는 자신의 매니저인 민석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엉. 지호.
“형, 대박. 대박사건이야.
형 나 방금 뭐한 줄 알아?”
-뭐야.
캡틴 산책 시키러 간다하지 않았어?
“아 맞지, 아니 오랜만에 산책이라 캡틴이 너무 신나가지고 계속 걸었는데, 걷다보니 옆 동네까지 왔거든?”
-그것이 왜 대박사건이라는 거지?
야 너 설마, 여자랑 같이 나간 건 아니지? 여자랑 있다가 기자들한테 걸렸다는 말 할 거면 끊자.
못 들은 걸로 하고 싶어.
“아 쫌, 말 좀 끊지 말고 쫌!
여자를 잠깐 만나긴 했는ㄷ...”
-야이 미친!!! 진짜야?!?!?!?
“암튼 중요한 건 그 여자가 우는 모습을 봤는데,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니까?
형, 내가 울었다고 내가!”
-눈물 즙..?
“아 그런 거 아니라고!!
그냥 눈에서 나도 모르게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니까!”
-...네가?
“하..물론 못 믿겠지만 진짜야.”
-너 뭐 눈물연기 배우러 간 거야? 선생님이 여자 분이시니?
“아니 그것도 아니야.
형 자세한 건 내일 말해줄게.
나 이번에 느낌이 좋아.
그 작품 무조건 내가 할 거야.”
-음. 형이 너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일단 내일 만나서 직접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
“... 못 믿네.
아무튼 그럼 내일 직접 봐봐.
오디션 몇일 남았지?”
- 4일 정도 남았다. 지호야. 우리 슈퍼스타 지호야.
너는 그냥 즙만 안 짜면 돼.
형이 바라는 건 그 것 밖에 없어.
“즙 이야기 그만해라...
아무튼 내일 봐 형. 쉬어!”
-오냐. 내일보자.
‘뚝-’
이지호.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에서도 핫한 슈퍼스타.
큰 키와 넓은 어깨를 가진 남성미 넘치는 피지컬.
그와 대조적으로 청순한 남신 같은 외모.
타고난 머리와 서글서글한 성격까지.
한마디로 그는 흠 잡을 곳 없는 ‘완벽남’ 이었다.
아이돌로 시작해 배우로 자리 잡아가는 그는 요즘 대세였다.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그가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실패의 좌절을 느끼게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앨범만 내면 음원차트 1위는 당연한 것이었고, 그의 영상들은 늘 조회 수 top에 들어갔다.
인기를 증명하듯 광고와 화보촬영이 일상이었고, 넉살좋은 성격 탓인지 미담은 많았지만,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었다.
늘 철저한 자기 관리 덕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빛났고, 심지어 아직까지 열애설 한 번 터진 적도 없었다.
이렇게 완벽한 그가 연기를 시작한다 했을 때, 사람들은 걱정보다 기대를 많이 했다.
[아이돌 이지호,
‘이제 배우로 찾아가겠습니다.’]
└ 이미 얼굴이 재밌다.
└ 헐ㅠㅠ 우리 지호 연기하면 그냥 살아있는 화보집 아님?
└ 개나 소나 연기한다고 깝치네. 딱 보니까 이미 응. 발 연기~
└ 지호야 고소해^^
└ 응. 너는 발 얼굴~
└ 근데 얘는 천상 연예인 같음ㅋㅋ 배우도 잘 할 듯?
└ 신인 배우들 설 자리 아이돌이 다 뺐어가네. 양심 없어 ㅉㅉ
“와- 생각보다 나한테 다들 관심 많이 갖네. 나 진짜 잘해야겠다.”
“당연하지. 너 괜히 애매하게 했다가는 남들보다 욕 몇 배로 먹는다. 알지?”
“형. 나 이지호야.
나 일할 때는 제대로 해. 알잖아?”
자신의 기사 댓글을 찾아본 지호는 약간의 부담감을 느꼈다.
좋은 댓글이든 안 좋은 댓글이든 일단 자신에게 보내는 관심이었기에 지호는 첫 드라마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좋았다.
시청률도 잘 나왔고,
국내는 물론 해외 팬들의 반응도 좋았다.
이번에도 지호는 실패라는 걸 느껴보지 못했다.
처음 연기한 작품이 화제가 되자 ‘보증된 스타 + 안정된 연기력’ 이라는 점은 다른 작품들로부터
러브콜을 계속 받게 해주었다.
점점 연기에 대해 빠져들었고,
자신의 연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가끔은 ‘처음부터 배우를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지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가 그동안 연기력 논란이 없었던 건 맡았던 역할들이 하나같이 다 지호의 이미지에 맞는
밝고 멋있는 역할들 뿐 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승승장구로 배우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시나리오들을 확인하던 지호는 모두 비슷한 캐릭터라 싫증이 나려했다.
순간, 약간의 감정연기를 필요로 하는 시나리오가 눈에 띄었다.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진지하거나 약간의 무거운 느낌의 역할은 맡아본 적이 없었다.
지호는 점점 연기에 욕심이 났다.
‘이번엔 이 거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호가 자신의 배우생활에 있어서 단 한 가지.
아주 딱 한 가지 부족한 점을 알게 해주었다. 눈물이었다.
다른 장면들은 호평이 나올 정도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그가 유난히 슬픈 감정을 드러내야 할 때는
아역 배우들보다도 어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연기를 제법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마다 논란이 일어났다.
“지호야. 슬픈 감정을 잡는다는 게 쉽지 않지? 알지. 나도 알아. 그런데 좀 어떻게 더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려줄 수 없을까?
막 인생에서 힘들었던 순간이나 눈물 흘리지 않고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생각한다거나. 그런..”
“형- 나 이지호야. 이지호.
아니 인생에 굴곡 하나 없이 살았는데 슬픈 감정 잡기가 쉽겠어?”
“와 지호야.
너무 맞는 말이라 너~무 재수 없었어. 방금.”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사실이니까.”
“지호야. 우리 돈 받고 일하는 노동자야. 돈 주고 일시키는 사람들 입장도 생각하자.”
“아씨, 눈물이 안 나오는 걸 어떡해! 나도 잘하고 싶다고!! 하.. 꼭 눈물을 흘려야만 슬픈 건 아니잖아?
작가님한테 시나리오 좀 수정해달라고 하면 안될까?”
“이야- 우리 지호. 이제 시나리오 수정도 말하고. 많이 컸어!
아주 잘 컸어! 근데 지호야. 사랑하는 연인이, 그것도 사고로 천국 간!
그 연인을 생각하면 눈물 한 방울 안 나오는 사람은 없어. 그렇지 않겠니? 정말 네 연애의 마지막을 생각해봐.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던 그 순간을!”
“응? 나는 헤어지고 운 적 없는데?”
“하.. 인생의 굴곡이 없다는 게 이렇게 도움이 안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단점 하나 없을 것 같은 그에게 ‘눈물 발 연기’는 물어뜯기 좋은 먹잇감이 되었고,
새로운 시나리오가 올 때마다 제일 먼저 확인하는 장면은 눈물 신이 ‘있나, 없나’였다.
[ 배우라기엔 어색한 그의 눈물연기 ]
└ 아 나 이지호 팬인데, 눈물 연기는 좀 그랬어... 항마력 갑...ㅠ
└ 눈물을 흘리는게 아니라 즙 짜는데요?
└ ㅋㅋㅋㅋㅋㅋㅇㅈ
└ ㅋㅋㅋㅋ즙이래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즙지호~ㅋㅋㅋㅋ
└ 이건 쉴드 못 치겠다. 지호야...
눈물 연기는 연습 더 하자ㅠ
└ 우리 오빠 어제 컨디션 안 좋아서
그런 거겠지.
그동안 연기한 짬이 있는데.
“하... 미치겠네...”
연예계 생활을 하며 단 한 번도 악플에 신경 쓴 적이 없던 지호는 이번만큼은 댓글 하나하나가 신경 쓰여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동안 자신이 해온 연기는 결국 캐릭터를 잘 만났을 뿐 자신이 잘 해서 잘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애가 넘쳐나던 지호에게 이런 감정은 생소했다.
‘쾅-’
“즙이라니.. 즙이라니!!!!!”
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을 내려쳤다.
주먹이 안 아플 정도로만 살짝.
살다 살다 ‘눈물즙’ 이라는 댓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결국 지호는 연예계 생활을 통틀어 처음으로 슬럼프라는 것을 겪게 되었다.
시청률은 여전히 잘 나왔으나, 눈물 신이 나오면 연기력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눈물만큼은 지호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자연스럽게 나오지가 않았다.
결국, 작가는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했고, 지호의 눈물 신들은 최대한 빼 주었다.
민석은 감독과 작가에게 최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했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던
지호는 조용히 연기에만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지호의 커리어에는 아주 큰 스크래치가 나게 되었다.
그 날 이후, 지호는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다음 작품을 고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밝고 유쾌한 역할로 돌아가자니 자존심이 상했고, 그렇다고 감정 연기가 중점이 된 작품을 고르자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반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