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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녀의 황궁입성기
작가 : 청휘아
작품등록일 : 2020.8.8

황궁 안에서 황자님들과 어울리면서 놀았던
나의 철없던 시절이 지나가고 그 기나긴 시간 속에서
나는 혼기만 꽉 차버린 열여덟의 처녀가 되어 있었다.

막연하게 황자님들 중 한 명과 혼인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게 하필 생각도 없는 팔황자라니. 아, 내 인생. 정말.

"우리 백아, 나랑 둘만 있고 싶었구나. 알았어. 같이 있자."

이건 뭐라는 거야 또?
아무래도 인생설계를 다시해야하나 싶다.


#황궁 #정치싸움 #정략결혼 #궁정로맨스 #첫사랑
#새침하고 밝은 여주 #장난기 많은 남주

문의: rtw0796@naver.com
표지: 졔리님 커미션

 
15. 설마 나 심장병인가?
작성일 : 20-09-20 14:12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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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강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여러 가지 전을 부쳐 파는 곳이었다. 오색빛깔의 다양한 전이 하나씩 부쳐져 나오고 있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다. 길거리에 파는 것이 좋을 리가 있겠어.”

 

 아우, 정말. 이상한데서 트집 잡고 있네. 하긴 궁에서만 먹고 자랐으니 이런 분위기조차 몰랐을 것이다.

 

 “너도 양갓집 규수면 그에 맞게 해야지. 이런 걸 어떻게 먹어?”

 

 “어머, 이게 어때서? 너 편견 가지지 마. 한 번 맛이나 보고 말하라고. 이 음식은 이것만의 맛이 있거든. 웃겨, 진짜.”

 

 “하하, 아씨 말이 맞소. 우리 가게의 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부 때부터의 비법으로 한 번 맛보면 그 맛을 잊지 못한다오. 한 입 드셔나 보시오.”

 

 여기서 주인장이 거창한 말솜씨를 발휘해주자 강이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순진한 녀석, 가게 어디서나 하는 말이 조부 때부터의 비법이었다. 모든 점포에서 자기만의 비법이 있다고 자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점포도 있었지만 그런 곳은 십분의 일의 확률이었고 대부분은 그냥 허영심으로 꾸며낸 말이다.

 

 강이 저 녀석도 분명 속마음은 먹고 싶지만 황자로서의 자존심이 약하게나마 남아있어 거부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여기서 조금의 말솜씨만 발휘해주고 쿡- 찔러주면 무너진다. 확실하게.

 

 “먹는다고 아~무도 뭐라고 안 해. 나 안 본 걸로 칠게. 저기 부추전을 봐. 기름에 지지직- 튀겨지면서 모양을 갖추어 가는 게 아름답지 않아?”

 

 “……하, 한 입만 먹을게. 딱, 한 입만.”

 

 “그럼, 그럼. 그래야지.”

 

 마치 인고의 세월을 견딘 아이처럼 눈을 꾹 감고 부추전을 한 입 깨문 그의 눈이 반짝였다.

 

 “맛, 맛있어…….”

 

 “거봐, 맛있다고 했잖아. 이 누이 말을 들으면 나쁜 일이 생길 일이 없어.”

 

 “예예. 누님. 시정하겠습니다.”

 

 강이의 부탁으로 결국 부추전을 몇 개 사서 걸어 다니면서 야금야금 먹었다. 그는 맛 들렸는지 부추전을 시작으로 해서 꼬지 종류나 기름에 튀긴 과자 등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늦게 들인 버릇이 무섭다더니. 궁에 들어가서도 나중에 여기로 나오자는 거 아니겠지? 끝으로 걸어갈수록 한쪽 편에서 상인이 풍등을 팔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꽉 메워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좁디좁은 길이라 풍등을 파는 곳으로 갈수록 걸음이 버거워 지고 있었다.

 

 “저기서 무엇을 하길래 저리 모여 있는 거야?”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답해주었다.

 

 “풍등 팔잖아. 오늘 축제의 주인공 풍등 말이야.”

 

 “아, 그 둥그렇게 생긴 거?”

 

 “그래. 그 둥그렇게 생긴 거 저기서 날리고 계시네요.”

 

 점포 쪽을 벗어난 위쪽 방면에 사람들이 줄줄이 모여 풍등을 날리고 있었다. 멀리서도 붉은 빛은 수그러들지 않고 영롱하게 빛났다.

 

 “우리도 사러 가자.”

 

 맞잡은 손을 재촉했다. 아까 이곳에 올 적부터 잡은 손은 여태까지 빼지 못하고 잡고 있었다.

 

 이 녀석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모양이지만 나는 점점 손에 땀이 차고 있는 느낌이었다. 서로 맞잡은 손의 온기가 가슴 속까지 스며들어 기분까지 이상하게 만들었다.

 

 “야야, 뭐하냐. 저러다 남은 것도 없겠어.”

 

 서둘러 이런 기분을 벗어버리고 싶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 백아?”

 

 응? 이제는 황자의 부인이 된 내 이름을 마구 불러대자 의아하여 고개를 돌려 왼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어? 김여원!”

 

 반가움에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웬일로 평복을 하고서 나온 그의 곁에는 달랑 시종 한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강이와 잡았던 손을 놓으며 그를 향해 걸어갔다.

 

 “팔황자전하를 뵈옵니다.”

 

 “되었다. 일어나라. 헌데 남의 부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야야, 너 왜 그래? 여원이 내 친구야. 너네 둘이 안 친해?”

 

 내 물음에 두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똑같이 미간을 찡그렸다. 살짝 당황해 뒷걸음질을 쳤다.

 

 “전하와는 몇 번 보지도 않았거든.”

 

 “아, 그랬던가? 하하, 뭐 어때. 이참에 친해지면 좋은 거지. 잘 지냈냐?”

 

 “응. 네 혼인은 황궁에서 열려 참석도 못했다. 사실 좀 바빴거든.”

 

 “어유, 괜찮아. 이렇게 보니 되었지.”

 

 한가운데에 서서 친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꽉 막혔던 답답함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와, 김여원이랑 만났다고 이리 반가울 줄이야.

 

 “난 안 보이냐. 옆에 있다.”

 

 강이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그래. 너도 이리 와서 이야기 좀 나눠보라니까. 아니면 주막 같은데 갈래?”

 

 “뭔 소리야. 풍등 날릴 거라며? 얼른 가자.”

 

 기껏 놓았던 손을 더욱 강하게 부여잡으며 강이는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아까와는 달리 웃는 미소마저 사라진 그의 표정이 이상하여 어디가 아픈가 하고 이마를 집어보았다. 음, 열은 없는데?

 

 “뭐하는 거야?”

 

 “강아, 어디 아파? 표정이 이상해.”

 

 “전하께서 이리 혼잡한 곳에 나와 있어 어지러운 것일지 몰라. 모셔다 드리는 게 어때?”

 

 언제 따라왔는지 바로 뒤에 여원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서늘한 표정에 느린 걸음하며 가능성은 있었다.

 

 “아니야. 괜찮아. 풍등이나 날리러 가자.”

 

 “진정으로 괜찮은 거지?”

 

 불안한 마음에 다시 한 번 물어보자 그는 어세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오늘은 나랑 약속하였으니 친우는 나중에 만나.”

 

 “알았어.”

 

 더 이상 주막으로 가자고 고집 부렸다간 심통이 나 혼자 가버릴 것만 같았다. 아, 그거였나? 자신은 뒷전이고 여원이만 챙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리 가자고 하는 건가 싶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지만 어쩔 수 없지.

 

 “다음에 보자. 아니면 나 삼 일간 집에 있으니 내일이라도 놀러오면 좋고.”

 

 “그래. 황자님이 질투가 심하셔서 힘들겠는걸.”

 

 풋. 이게 무슨 소리라니. 혼인하고 들은 말 중 가장 웃기는 말이었다. 질투라니. 저 예강이, 질투는 무슨.

 

 “질투라니. 그냥 심술이지.”

 

 그때 어디선가 어둡고 침침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살짝 고개를 틀어보니 강이가 나를 힘주어 노려보고 있었다.

 

 손을 허리에 짚고 보는 그에게 위압감이 들어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무슨 틀린 말을 했나?

 

 “백아야, 나, 간다. 다음에 봐.”

 

 “아아, 응. 잘 가.”

 

 여원이가 떠나자 나는 강이에게로 가 그를 내 쪽으로 바라보게 했다.

 

 “왜 노려봐?”

 

 “안 그랬어. 누가 노려봤다고 그래. 빨리 풍등이나 사.”

 

 분명 노려본 것이 맞음에도 한사코 거짓을 말하는 그의 입을 확- 잡아버리고 싶었다.

 우물쭈물 있다가 풍등만 못 살까 싶어 가던 길을 재촉하였으나 이미 모든 점포에서 풍등은 사라지고 없었다. 힘이 쭉- 빠지고 길바닥에 앉아버릴 것 같이 막연했다.

 

 “아아, 다 팔렸어. 어떡해.”

 

 “그러게 누가 그놈이랑 그렇게 이야기하래.”

 

 안 그래도 머릿속에 어떻게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저렇게 부채질까지 해주니 속이 다 타 버릴 것 같았다.

 

 “그래. 다~ 나 때문이야. 흐잉. 내 풍등.”

 

 내 손으로 꼭 날려보고 싶었는데. 강이도 나도 소원을 담아 하늘에 훨훨 날려 보내고 싶었는데 이제는 한낱 꿈이 되어버렸다. 눈물만 머금고 있던 사이, 어깨 너머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풍등 필요하세요?”

 풍등이라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여 말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예예. 필요해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의사를 표현하자 말을 걸어온 소녀가 작게 웃었다. 얼굴의 형태와 이목구비로 보아 나보다 어려보이는 제법 귀여운 아이였다.

 

 “제가 어쩌다보니 많이 사버렸는데 필요가 없어져서요. 드릴까 싶은데 어떠세요?”

 

 “저야 감사하죠. 두 개만 주실 수 있나요?”

 

 뒤에 있는 시종에게서 풍등을 헤집은 소녀가 풍등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웬 구세주야. 당장이라도 팔을 뻗어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지만 규수가 하기엔 민망한 행동이니 참으며 감사인사만 연신 내뱉었다.

 

 “정말 고마워요. 아, 값은 얼마나?”

 

 “아니에요. 그냥 드리는 거니 넣어두세요.”

 

 “힝, 정말 감사합니다.”

 

 강이에게도 인사하라는 뜻으로 팔꿈치로 그를 살짝 쳤지만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이내 퍽- 하고 치니 음성을 높였다.

 

 “아야! 사람을 막 치네. 너 황자…… 읍!”

 

 인사만 하라고 했더니 갑작스레 신분을 내세우려는 바람에 그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앞에 있던 소녀가 무슨 일인가 하고 걱정스레 쳐다보자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이 사람도 감사한다고 하네요.”

 

 “아, 그렇군요. 그럼 두 분 풍등 무사히 날리세요. 전 이만.”

 

 조금 황당했다. 이렇게 입을 막고 있는데 자연스레 납득이 가니? 귀찮은 일엔 얽히고 싶지 않다는 의사가 분명했다. 나야 굳이 물어보지 않아서 편한 거지만.

 고개를 숙인 소녀가 시종들과 함께 사라져가자 틀어막던 손을 내리며 나도 걸음을 반대편으로 옮겼다.

 

 “야, 뭐하는 짓이야?”

 

 “뭐가? 나 너랑 이러는 거 피곤하거든. 갈 길 가자. 응?”

 

 방금 소녀에게서 받은 풍등을 손에 쥐곤 저벅저벅 걸어갔다. 강이가 옆에서 계속하여 불만을 표시했지만 꾹 참으며 누르고 있었다.

 

 “백아야, 잠시 이리로.”

 

 “야, 뭐야? 왜 이래?”

 

 난데없이 내 손목을 잡으며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그였다. 어찌나 힘이 센지 내빼려 해도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다.

 

 새삼스레 힘의 차이가 느껴졌다. 한 손으로 잡았을 뿐인데 안간힘을 써도 빼낼 수 없다니.

 

 강이는 수다스럽던 거리에서 어둡고 침침한 골목 사이로 들어가서야 내 손을 놔주었다. 그가 잡았던 손목을 만지며 괜찮은지 살펴보았다.

 

 “뭐하는 건데?”

 

 한숨을 한 번 쉬곤,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미안. 방금 우리를 미행하는 자가 있었어.”

 

 “미행이라니? 누가? 설마…….”

 

 “몰라. 아직은. 그러니까 잠시만 여기에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다녀온다니, 어딜 간다는 거야?”

 

 불안해진 마음에 그의 형형한 옷깃을 잡았다. 강이의 말은 지금 나만 여기에 두고 간다는 말이었다.

 

 빛이라고는 저 끝에 자그맣게 보이는, 어둠만 가득한 길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니 황당하여 헛웃음만 나왔다.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혹시나 네 존재까지 들킬까봐 그래. 위험해질 거야.”

 

 “장난해? 그게 어쨌다고. 날 여기 혼자 두는 것 보단 같이 가는 게 더 나아. 언제까지 혼자 싸울 건데. 네가 싫어도 어쨌든 혼인했으니 난 네 부인이야. 내가 약한 모습 보인 적 있어?”

 

 “그런 말이 아니잖아. 제발……!”

 

 강이가 내 어깨를 힘을 주어 잡았다. 빛이라곤 한 점 없는 곳인데 이상하게도 그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걱정하고 있었다, 나를. 이렇게까지 걱정해 준 적이 있었나? 가슴 부근이 춤추듯 요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흔들흔들, 박자에 맞추어 일정한 음색을 내고 있다. 이전부터 계속하여 심장부근이 아팠던 것이 이렇게 또 터졌나보다.

 

 설마 나 심장병인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 하나로 나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 병이 정말 그것이라면 이전까지의 요동쳤던 심장이 이해가 되었다.

 

 어둠 속으로 끝없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내가, 내가 몹쓸 병에 걸렸다니.

 

 스스로 자책만 하며 탓하다 한 가지 떠오른 것이 있었다. 모든 일에는 일이 일어난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심장이 울렸던 것이 결과라면 원인은 심장이 울리기 전 항상 있었던 강이였다.

 

 심장부근이 울리기 전에 그가 어떠한 것을 하면 나의 가슴 또한 울렸다. 의문이 들었다. 병이 정말 맞는 건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어찌하여 강이만 보면 울리는 것인지. 일정하게도 항상 그를 볼 때만 반응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의 아픈 모습, 힘든 표정, 다치는 몸을 생각하면 그러했다.

 

 “백아야?”

 

 -두근.

 

 또 반응한다.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자 가슴 속에서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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