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같은 겨우 C등급 전사가 어떻게 치료를 해요오오오오"
질질.
'아 무거워'
"아니 본씨, 그렇잖아요. A등급 전사도 힘들어하는게 신력 치료 운용인데 제가 어떻게 해내냐고요 네? 아무래도 도원님이 뭘 잘못안게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상식적인 분이 비루한 저에게 맡길리가 없다니까요?!"
북실북실한 녹색 곱슬머리를 가진 앳되 보이는 얼굴. 그가 키가 작은편이라는게 참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본은 생각했다.
"똑똑히 들었고, 차질 없고, 실수없고, 너 맞아"
"아 저 못한다니까요? 아니 그리고 이런게 어딨어요. 삐까 아픈것같다고 해서 달려왔더니 아무렇지도 않고 갑자기 치료를 하라고 하고. 이거 완전 사기아니에요? 무슨 아이어가 전사한테 사기를 쳐!!!"
"그래 삐까 핑계 된건 미안해. 하지만 그 어떤 업무 호출에도 안나오는 전사가 할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 다 왔다"
"아아악! 나 못해! 나 안해! 아아악"
결국 본은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말도안되는 마물같은 놈의 엉덩이를 발로 밀어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풍겨오는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윽- 이 피비린내랑 똥구린내 뭐야"
"...무례한 발언이야 이지"
"아니, 왜요 냄새가 진동하는데- 아,"
이지는 그제서야 방 구석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냄새의 근원지라는 것을 알아냈는지 말을 뚝 멈추었다. 침대 쪽을 보며 그의 얼굴이 조금 굳기 시작했다.
"...하, 뭐야, 아니 어디 노숙자에요? 아니면 3구역에서 왔대요?"
"...치료 부탁해"
"아 정말... 저는 정말 잘못돼도 모릅니다? "
읏챠,
자리에서 일어선 이지는 침대 옆에 가 섰다. 냄새가 심한지 눈을 찌푸렸지만 아까처럼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본은 이상하게 초조한 마음에 팔짱을 끼었다. 멀리서밖에 못봤지만 무척이나 엉망으로 보였었다. 그녀의 상태는. 이지는 그녀의 얼굴을 가린 이불을 걷어내고 있었다.
"와 씨 뭐 이건, 시체도 아니고- 살아있는 거 맞,"
흐아아악!
이지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마치 봐서는 안될 것이라도 본듯한 사람처럼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뒤로 넘어진 채로 팔로 정신없이 뒤로 기었다. 그의 온 몸이 미친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의 입 밖으로 정신없이 비명이 나오고 있었다. 녹색 눈동자 안 가득 혼란과 공포심이 가득했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는 그를 본은 꽉 붙잡았다.
"아악 놔!"
"이지? 이지! 왜 그러는거야!"
"수, 수라님이잖아. 당신 눈에는 저 사람이 안보여?!"
또 그 이름. 본은 더 세게 그의 팔을 잡았다. 이대로 놓쳐서는 안될 것 가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니까, 그 이수라를 말하는거야? 베타 균열을 닫게 했던?"
"하, 하, 아, 그래. 형은 모르겠구나. 늦게, 들어왔으니까. 하"
미친듯이 떨리는 이지의 양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지는 벌벌 떨며 그를 응시했다.
"진정해. 이지. 그래 그 사람이라는 건 무척 놀라운 일이야. 근데 대체 왜 다들 이렇게 겁을 먹는거야?! 베르딕씨도... 너 말이 맞다면 '그 영웅'인거잖아? 그 영웅이 살아돌아왔다고! 대단한 일 아니야?! 당연히 무척 당황스럽긴하겠지만-"
"영웅? 대단한 일?"
이지는 실소를 흘리기 시작했고 본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웃긴 얘기를 들었다는 듯 낄낄대며 웃는 이지의 눈 안에는 기이한 감정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 하긴, 이제 그 일을 아는 사람은 몇명 없지. 다 죽었거나-... 다들 아무것도 몰라..."
늘 권태로운 표정으로 썩은 생선 눈을 하고 있던 이지의 눈에 이렇게까지 감정이 요동치고 있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본은 자신이 알고있는 그 사람이 맞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침대 쪽을 향한 이지의 얼굴 위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있었다. 이지는 달달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돌아...왔다고요. 설마 몇시간전 그 균열에서요"
본의 침묵이 그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는지 이지는 그저 실소를 흘렸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시다니까. 정말....-"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에서 웃음을 지었다. 꾹 아래 입술을 누르며 그녀쪽을 본 이지는 약하게 본을 밀쳐냈다. 그리고는 침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벌벌 떨리는 다리와 팔. 침대 위 누워있는 그녀를 다시 마주한 이지의 얼굴은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그녀의 한 손을 가져와 들었다. 달달 떨리는 입술을 열며 그는 조용히 중얼였다.
죄,죄송해요.
그의 녹빛 눈 아래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수라님.
두 사람의 손이 마주한 곳에서부터 투명한 흰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지는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아주 쥐꼬리만한 신력을 가진 자신은 잘 알 수가 없었지만 공기가 순환하듯 신력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누워있는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 하나 불지 않는 공간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얇은 바람이 한 막을 감싼 것처럼 그녀의 몸이 아주 살짝씩 떠오르고 살랑이고 있었다.
'치료'를 처음 보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본 그 어떤 치료와도 질적으로 달랐다. 비능력계열 전사인 자신마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의 운용이다.
그때, 바람이 감싼 것 같았던 그녀의 몸 전체에 모든 것이 훅 사라진다. 이지는 심장을 부여잡고 이마를 바닥 위로 떨구었다.
"이지!"
"건들지마요"
본에게 내뱉는 냉담한 말투. 그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된 상태로,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 낯선 모습은 본의 온 몸을 굳게 했다. 고개 돌린 이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허탈하게 웃음을 내뱉었다.
"수라,님. 이게, 이게 뭐에요. 이게..."
실핏줄이 터진 눈 아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고 신력이 다시 훅 방출되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려 그의 턱 아래에서 떨어져 바닥에 자국을 남겼다. 집중하듯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은 괴로운 듯 계속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부여잡은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지만 절대 놓지는 않았다. 그의 가슴이 크게 널뛰기하듯 부풀다 가라앉고를 반복했다. 숨을 쉬기가 힘든 것 같았다. 감은 눈꺼풀 위로 근육이 꿈틀댔다. 그녀의 몸을 빙글빙글 도는 바람은 마치 물고기처럼 몸 구석구석을 휘젖고 있었다.
죄송해요죄송해요
이지의 손아귀가 벌벌 떨린다. 그녀의 깡마른 손등에 이마를 대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바람이 천천히 사그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투명하게 빛을 내던 신력이 잦아들고 있다. 미동없는 이지의 뒤로 본은 다가갔다. 천천히 걸어갈수록 선명해지는 여자의 얼굴. 긴 검은 머리칼과 긴 속눈썹. 하지만 푹 파진 볼과 깡마른 목은 정말 시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눈꺼풀이 꿈틀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움찔 움직였다.
"어-"
"헉"
이지는 발작하듯 몸을 뒤로 발라당 무너뜨린다. 쿠당탕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바닥을 손으로 짚은 이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본은 아무 소득 없이 뻗어져 있는 자신의 팔을 접었다. 도망치면서 낸 큰소리에 그녀가 작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본은 입을 벌었다 닫으며 쭈뼛쭈뼛 더 다가갔다. 손안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본은. 그래서 그는 손을 꽉 쥐었다. 어쩐지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떠진 순간 본은 마치 커다란 굉음이 울린 것 같은 환상을 겪었다. 시체같은 몰골의 여자는 찬란한 금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 투명한 눈에 자신의 얼굴이 담긴 순간 본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얼어붙었다. 신전 꼭대기 걸린 종탑이 울린 것 같은 환상.
마치 물 한방울이 잔잔한 수면 위 큰 파동을 일으키듯, 눈을 뜬 것 뿐인 그녀의 행동이,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자신을 향한 것 뿐인 그 행동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이상한 기분이 그를 감쌌다. 처음 보는 낯선 여자의 눈에 이렇게 몸이 굳을 정도인가?
금빛 동공은 아주 천천히, 천천히 선명해지며 본을 응시했다. 마치 금으로 만든 장신구가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여자의 강렬한 눈은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왠지 저것이 그녀의 원래의 존재감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이수라. 세상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했던 전사. 영웅.
"지문은 어디있어요?"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작은, 섬세한 목소리가 울렸다. 청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끝부분이 미세하게 쇳소리처럼 삐그덕댔다. 그녀의 눈이 조금 의아한 빛을 담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본은 자신이 너무 오래 넋을 놓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 저, 아- 그게-"
"....."
그녀는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그 행동 하나하나에 본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지문이라면, 혹시- 그 남자. 함께왔던 그 남자를 말하시는 게 맞나요?"
"...아마..."
"저는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아마 그분도 치료를 받고 있을거에요 다른 곳에서, 아마. 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알았다라는 눈빛으로 본을 조용히 응시할 뿐. 본은 자꾸 꼼지락대는 자신의 손가락을 꾹 눌렀다.
"저, 이수라...맞으세요?"
"....."
"1구역 전설적인, 베타 균열을 모두 닫았던, 그 13대 구현계 전사"
그녀는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본은 흥분을 감출 수 없는 태도로 말을 내뱉었다.
"빨간색 마물을 혼자 해결하고, 베타 균열때 다 무너져가는 그 상황에서 1구역만 한자리 자릿수 사상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인 그 이수라- 전사님이..!"
그녀는 왼쪽으로 눈을 돌렸고 이내 조용히 닫았다. 그녀의 반응에 본은 당황하며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명백한 거부감의 표시. 자신이 아직 환자인 그녀에게 너무 무례했던가? 아니면 혹시 아니라던가? 초조함이 들었다.
"그, 일단, 지금 치료를 마친 상태인데 아직 완전히 회복되려면 오래 걸릴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쉬고 계시고 동료분 소식은 제가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
"아, 혹시 배고프세요? 죽같은 거라도..."
"....."
그녀는 아무말없이 벽을 바라보며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본은 멋쩍게 길다란 손가락으로 턱을 긁었다.
"아하하... 제가 아무래도 환자 분 앞에서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네요. 그럼- 전 이따 다시-"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고개를 돌린 그녀의 뒷통수만이 보였다. 천천히 움직이는 다리를 스스로 타박하며 본은 문 바로 앞에 섰다. 버튼을 누르기 바로 전에 그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침묵.
그는 고개를 조금 떨구며 버튼을 눌렀다. 자동문이 열리고 바깥 복도로 나왔다. 자동문이 다시 닫힐때까지 그 앞에 묵묵히 서있던 본은 그 문이 닫히자마자 크게 숨을 내뱉었다. 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온 몸의 힘이 쫙 빠졌다.
부르르-
그의 바지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울린다.
[연락 요망 -CODE 413 본 리.
대신관전]
글자를 읽은 본은 그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본 리입니다. 깨어나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