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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착한 전사 콤플렉스
작가 : 나와비
작품등록일 : 2020.7.31

"전사님! 전사님 부디 제 아이 좀 봐주세요!"

눈물로 범벅된 여성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억센 힘에 그녀는 얼굴을 찌푸림과 동시에 여자의 품에 안긴 피투성이의 아이를 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확장된 눈에는 금방이라도 흐를 것 같은 눈물로 가득 찬다. 그 눈 안 감출 수 없는 연민과 슬픔.

아이에게 몸을 확 돌리는 여자의 몸이 붕 들린다.

'?'

그리 작지도 않은 키인데도 그에게 들려 대롱대롱 매달린 여자는 물론,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도 벙찐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왼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찬 남자의 입매가 삐죽, 한쪽으로 올라간다. 얇은 눈매 가운데 형형히 빛나는 붉은 눈동자에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 남자는 아무말 없이 압박하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치 할 말이 있지 않냐는 듯.

그녀는 아이 좀 보라는 눈빛으로 그에게 턱으로 아이를 필사적으로 가리켰지만 그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권태로운 목소리가 그들 사이 울렸다.

"더 빨리 죽여달라고?"

화들짝.

깜짝 놀란 그녀는 벌벌 떨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이를 안은 여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앙 다문 입술은 마치 엄청난 고민 끝 내린 결정을 내뱉듯 결연했다.

"저,저는 E등급 전,전투원으로 치료가 불가능 흡, 하므로, 흡 어서 빨리 다른 치료계 전투원에게 흡, 여, 여기 호출하겠습니다"

마치 메뉴얼을 줄줄 읊는 상담원같았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는 핸드폰을 꺼냈다.

"본,본씨 여기 4구역 3다시 2056구역이에요 빨리,빨리 치료 보내주세요"

전화를 끊고 발을 동동 구르는 여자의 머리통을 남자는 큰 손으로 쓸어내렸다. 만족스런 미소가 가득 차있었다.

"옳지"

벌벌 떨리는 여자의 흔들리는 눈빛이 계속 그에게 닿았지만 그는 굳건했다. 그는 아예 그녀의 몸을 감싸고 놓지 않았다. 아이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여자와 다르게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바라보다 허리를 살살 쓸어내리고는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온 집중은 아이에게 닿아 있었다.

"아, 아니-"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그의 매서운 눈빛에 바로 들어갔다. 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꽂힌 붉은 눈동자의 다이아몬드 동공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자신의 품 안 여자의 뒤통수에 입을 맞추는 동시에 치뜬 눈은 경고가 어렸있었다. 이윽고 한 5분 뒤 전사 한명이 날아왔다.

"준!"

"어라? 수라님? 어, 아 지,지문님-"

남자를 보고 얼어붙은 소년을 향해 그는 아이쪽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그제서야 소년은 아 네넵! 하는 소리와 함께 허둥지둥 아이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소년의 손바닥 위로 투명한 흰 빛이 뿜어져나왔다.

"이제 좀 진정이 돼?"

여자의 귀 바로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말캉한 입술의 감촉에 그녀는 고개를 내뺐다.

"너, 너 정말. 만약이라도, 좀만 더 늦었으면..!"

"아니야 잘봐"

여자의 물기어린 목소리. 그는 그녀의 거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이 툭 툭 떨어지고 있는 눈가에 입맞추었다.

"왼 팔에 베인 상처. 피는 좀 났지만 감염의 흔적은 전혀 없어. 상처가 검은색도 아니고 마기가 전혀 남아있지 않잖아. 저 정도는 몇시간도 버틸 수 있어. 그러니까 너가 또 너가 미련하게 힘을 써 줄 필요는 없어. 그렇지?"

아이를 살살 달래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랑 약속했잖아, 너는 내꺼라고.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기로"

"그런 약속한적 없어"

"아, 뭐. 살려줬으면 당연히 따라오는 명제잖아"

"전혀 당연하지 않거든?!?!"

삐죽 선 눈썹과 함께 뒤돈 그녀의 얼굴에 그는 피식 웃으며 뽀뽀를 퍼부었다. 씩씩 대던 그녀는 쏟아지는 뽀뽀세례에 눈을 감으며 소리를 빽 질렀다.


.
.
.
멸망하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강요당한 세계관 최강자 그녀.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지옥에 뛰어들었던 남자는 그녀를 들고 지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착한 전사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그녀와 함께 인류를 모조리 죽여버릴 계획을 세운다. 그에게 의지하는 그녀지만 그의 말도안되는 사상과 행동에 눈물이 난다.





*
#입더러운 남주 #성격 더러운 남주 #여주처돌이 남주 #세계멸망이고뭐고 상관없고 여주에게 희생 강요한 인간들 모두죽여버리는게목표 남주 #집착 남주 #여주 따라지옥으로기어들어온 남주 #여주데리고올라가는남주
#다수 준남주들 후반등장

#멸망하는세상을구하기 위해희생을 강요당한 여주 #역사상 최강의 전사 여주 #세계관최강자여주 #트라우마있는여주 #몸도마음도다망가진 여주 #후에 돌아오는여주 #미인여주 #우리사이 안좋지 않았어...?남주 이해안되는여주 #지옥에 떨어진 여주 #고결 여주

 
18. 지하(17)
작성일 : 20-09-29 17:48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7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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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휘청인다. 시야가 어그러지고 있었다. 입 밖으로 터져나오는 숨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입 안 가득 맴도는 쇠 맛. 질척한 피의 촉감. 무너지는 것만 같은 몸을 누군가가 잡았다. 검은 머리칼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 일그러진 눈매도. 그 안의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절박해보이는 붉은 눈동자도.

 

 수라, 그는 그렇게 부른것만 같았다.

 

 기다릴게. 아니 찾아갈게.

 

 나직한 목소리가 부서지는 세계 속에서 조용히 울린다. 그녀의 몸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의 힘이 점점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건네고 멀어지는 듯 천천히 옅어지는 기척. 그 힘에 불안이 느껴지지만 세상이 무너지듯 자신의 정신도 무너져내렸다.

 

 

 *

 

 

 깜빡.

 

 눈이 떠진다.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푸른-빛. 유유히 떠도는 흰 구름.

 

 푸른 하늘이라니? 4년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 푸른 하늘이라니.

 

 몸 뒤로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몸을 세웠다. 숨쉬기가 편하다. 곧 이유를 깨달았다.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숨쉴때마다 바늘로 찔리는 것만 같은 마기가 없는 공기.

 

 새하얀 꽃들로 가득 찬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청아한 소리가 귀에 와 꽂힌다. 돌바닥이 선명하게 보이는 유리같이 투명한 넓은 호수가 옆에 있었다. 푸른 잔디와 그 위를 빼곡이 채운 흰 꽃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호수 표면 위 은빛이 깔려 있었다.

 

 찰방-

 

 호숫가 밖으로 걸어나오는 뱀의 모습이 보인다. 투명한 은빛 동공이 나를 발견하곤 확장한다. 긴 장발 아래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아래 얇은 막같은 젖은 흰 옷 아래 흰 살결이 비쳤다. 흰 꽃들이 자아내는 빛과 호수의 투명함을 똑 닮은 빛을 가진 존재가 그를 닮은 은빛 호수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양새. 걸어올수록 아주 옅게 비릿한 물냄새가 풍겼다.

 

 “수라”

 

 뱀은 활짝 웃었다. 뱀의 다리에 스쳐 나는 사각거리는 풀소리. 그는 내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가까이에서 보는 그의 얼굴 위 가느다란 눈매가 둥글게 휘어 올라가있다. 뱀이 나의 손을 쥐었다. 축축한 손길에 당장이라도 거부하려했지만 아직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정신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뱀의 눈 안 은빛 눈 안 투명한 다이아몬드 동공이 보였다. 내 손을 쥔 뱀이 마치 고양이처럼 자신의 볼을 부볐다. 축축한 물이 내 손등을 타고 흘러내려 뚝뚝 떨어지고 있다.

 

 나는 작게 입을 벌렸다. 이해할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살랑이는 바람이 낯설었다. 몸 아래 깔린 푹신한 감촉이 이질적이다.

 

 “보고싶었어. 수라-”

 

 미성의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울렸다. 활짝 웃는 모습이 마치 흰 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가느다란 눈매 안 보이는 기묘한 감정이 이상하게 불안했다. 그의 축축한 얼굴을 부비는 감촉이 끈적하게 내려앉는다. 자신을 보고싶었다고 말하는 마물의 목소리에 나는 긴장감으로 심장이 쿵쾅이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깨달았다. 자신은 언젠가 이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다고.

 

 하지만 두려웠기에 필사적으로 피해왔다. 그러나 결국 뱀은 그녀를 찾았고 기어코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잡았다. 뱀의 순해보이는 표정이 이질적이다. 인형이 인간을 따라하며 웃는것같았다. 조각같은 얼굴과 새하얀 피부는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섬세했다. 그리고 이 순진무구해보이는 미소가 두려웠다.

 

 빙긋 웃은 뱀은 옆 하늘을 보더니 짧게 소리를 냈다. 삐이-하고 마치 새가 우는 소리였다. 그리고는 먼곳을 응시하길래 따라 보았지만 계속 파란 하늘과 흰 구름들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않는다.

 

 점점 커지는 푸른 점 하나.

 

 '아'

 

 새다. 날개달린, 새를 닮은 마물이 아닌. 지상에서 늘 보던 새.

 

 팔에 북실거리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깜짝 놀라며 옆을 봤고 나는 그대로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다. 콩고물이 묻은 커다란 빵같은 몸이 보인다. 그 몸 위 축 내려간 길다란 귀. 씰룩거리며 내 팔을 훑는 코.

 

 맙소사.

 

 나는 조심스럽게 그 동그란 몸을 쓸어내려보았다.

 

 토끼...

 

 "아"

 

 토끼가 품안에 풀쩍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더 몸을 둥글게 말았다. 놀란 나는 웃고 있는 뱀과 눈이 마주했다. 뱀은 자연스럽게 손을 들었고 그 긴 손가락 위로 파란 새가 내려앉았다.

 

 파란 새는 푸드덕거리는 날개를 접고는 부리로 날갯죽지를 다듬었다.

 

 냐옹.

 

 "아니..."

 

 무릎에 쿵 이마를 부딪히는 저 작은 회색 고양이는 또 뭐지.

 

 툭. 툭.

 

 뱀이 새가 올라간 손가락을 들이밀어 나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뻗었다. 손가락을 살짝 그러잡는 새 발톱의 감촉이 낯설었다. 갸웃대는 머리가 사랑스러운 것 같았다. 푹실푹실해보이는 털에 작은 부리가 파묻혀있었다.

 

 뱀이 풀 위로 손가락을 뻗자 풀뿐인 공간에서 순식간에 그 위로 흰 꽃 한송이가 피어올랐다. 뱀의 손안에 꺾인다. 뱀은 그녀에게 꽃을 내밀었다. 꽃을 받아들었다. 얇은 꽃줄기는 부드러웠다. 그리고 그 때 손가락 위 파란새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투명한 은빛이 반짝여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다이아몬드 모양 동공이었다. 어떤 본능적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다른 동물들의 눈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동물들을 내 품안에서 내려놓고 일어섰다. 일어서는 내 팔을 잡는 뱀의 표정은 어쩐지 불안해보였다. 나는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않았다.

 

 손에 잡히는 땅 위 돌멩이를 저 멀리 던졌다. 분명 허공임이 분명한 곳에서 돌은 부딪혀 떨어졌다.

 

 퐁.

 

 공기 중에 투명한 막이 있는 것처럼 허공과 부딪힌 돌은 바닥을 구른 후 호수 안으로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뱀의 눈썹은 아래로 내려간 채 시무룩해 보였다.

 

 "왜?"

 

 나는 물었다.

 

 대체 왜. 왜 이런 짓을 하는건데?

 

 뱀은 입을 열렸다 다물었다를 반복하더니 아주 작게 소리를 냈다.

 

 “안,좋아?”

 

 "...말을 할줄 알아?“

 

 ”수, 수라-“

 

 마치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 사람처럼 계속 어물거리던 뱀은 얼굴을 찡그리곤 꽉 다물었다. 그러더니 품 안에서 마석을 꺼냈다. 파챵. 뱀의 손아귀에서 조각으로 부서진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뱀의 손바닥 위에서 검은 구멍이 스멀스멀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 작은 구멍이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수라-"

 

 은빛 다이아몬드 동공을 가진 뱀의 마물. 인간형을 취하고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마물. 저것이 나를 응시하는 눈을 보고있자니 주위 소리가 사라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저 투명한 눈은 나를 너무 잘 비쳐 담는다. 내 표정을 스스로 볼 수 있게 한다.

 

 "같이 가"

 

 같이?

 가?

 

 나는 뱀의 손 위에 돌풍을 몰고있는 균열을 가리켰다.

 

 "...지상을? 같이..? 너랑 같이?"

 

 끄덕.

 

 "...미친거아냐?"

 

 웃음이 나온다.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가장 위험하고 강한 마물이 인간세계로 가는 것을 허락하라고?

 

 뱀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야, 죽음. 안돼"

 

 "...뭐?"

 

 "인간. 죽음. 너. 아니야"

 

 ”...뭐라는지 모르겠어“

 

 갸웃거리는 뱀은 그녀의 말의 의미를 알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뱀은 또 활짝 웃었다.

 

 ”보고싶었어, 수라“

 

 ”.....“

 

 왜 자신에게 호감을 계속해서 보이는 걸까. 왜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보는걸까. 일단 확실한 것은 이 뱀이 지상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것. 하지만 중요한 것은 뱀은 스스로 균열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직접 균열을 열 수 있는 이상-

 

 "...직접 너가 가면 되잖아? 내 허락따윈 필요없잖아"

 

 뱀은 싱긋 웃더니 내 오른팔을 잡아 가져갔다. 자신의 목에 갖다댄다. 왼 팔을 잡아 그의 오른어깨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내 팔로 자신을 살짝 밀더니 뒤로 넘어가는 시늉을 했다. 또 입을 벌리더니 자신의 입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장난스런 몸동작이 뱀은 즐거워보였다. 그는 기묘한 소리로 꿱하며 고개를 꺽고 눈을 감아 죽는 시늉을 한다.

 

 "이게 뭐-"

 

 생각났다.

 

 과거의 잔상이 짧게, 짧게, 장면들이 기억난다. 긴 대치 끝, 겨우겨우 두 손으로 마물의 몸을 잡고 뒤로 밀어붙여 함께 추락하던 그 날. 너덜너덜해진 몸과 신력. 모든 힘을 쥐어짜 마물을 밀어붙이고 그 아가리에 창을 밀어넣었던 그 날의 전투. 하지만 모든 힘을 소진 한 나는 마물의 생명을 관장하는 마석까지 완전히 깨트리지는 못했다. 기절한 나를 대신해 다른 전투원들이 쓰러진 마물을 대신 처치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신전으로 이동 중 산산조각이 나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재가 되어 날라가버렸다고 했다.

 

 그 당시 깨어난 나는 의심스러웠다. 그 사실이. 그리고 역시나 그 날부터 더 강하게 들려오는 이 마물의 목소리가 그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마물이 살아있다는 것을. 균열을 마음대로 열고 닫고 할 줄 알았구나. 그래서 사라질 수 있었던 거구나.

 

 그 시절의 생각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무척이나 옛날 이야기다.

 

 "이젠 나는 너를 이길 수 없어. 너도 알잖아. 내 지금 상태"

 

 뱀은 내 표정을 뚫어져라 보더니 자신의 목을 감쌌던 내 손을 자신의 볼에 갖다 대 부볐다. 마치 고양이가 주인에게 머리를 부비듯.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마물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왔다. 어렴풋이 멀리 존재하는 힘이 느껴졌다. 나와 대등한 힘을 가진 존재. 아무리 길고 날던 전사들도 나에게는 그저 개미 정도로 느껴질 뿐. 보잘것없이 느껴지던 그 힘들과 달리 나에게 범접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

 

 그 날 지상에서 뱀과 싸울 때 나는 느꼈었다.

 

 -그 희열. 그리고 유대감.

 

 늘 나를 억압하며 살아와야 했다.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해야 했다. 전사로서의 예민한 귀와 눈이 자신을 둘러싼 전사들이 숨을 삼키고, 경외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못 알아챌 리가 없다. 자신은 그 모든 것들 모두 못본척, 들리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저 조금 강한 전사로 남기 위해서. 모두가 달려들어 마물을 상대할 때, 그들이 피를 흘리며 고군분투를 할 때, 자신이 할 일은 언제쯤 죽여도 될까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죽이면 알맞게 평범하게- ‘조금 강한’ 수준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 마물이 눈 앞에 등장한 순간 그 모든 것들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모자르다.

 

 내 모든 힘을 방출한 순간 나는 그제서야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금방 두려워졌다.

 

 마물과 유대감이라니, 그것도 전사가.

 

 이 세계와 인간들을 지켜야 할 내가.

 

 그래서 꾹꾹 밀어넣었다.

 

 나는 달라. 나는 너와 다르다. 너는 괴물이고 나는 인간이니까. 이 감정과 느낌은 모두 착각일 뿐이야. 나를 보는 저 눈빛.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저 호의가 뚝 뚝 떨어지는 눈. 아주, 아주 어렸을 때라면 나도 저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너가 궁금하긴 했어 늘. 그리고 가끔 지칠때마다 생각이 나기도 했다. 가끔가다 느껴지는 허무함과 권태로움에. 모두가 목숨을 걸고 임하는 전투가 지루해질때마다-

 

 "인간세계로 가고싶다고... 왜? 여기가 더 너에게 적합한 장소일텐데"

 

 뱀은 웃으며 내 볼을 쓸어내린다. 조심스럽게. 그 매끈하고 유려한 손가락이 나의 볼을 따라 턱까지 내려가고, 떨어진다. 나를 보며 빙긋 웃는다. 이해할 수가 없다.

 

 "....."

 

 어차피 이제 모든 것이 망가진 나는 그때처럼 뱀을 이기지 못한다. 뱀은 나의 허락을 구한다고 하지만 과연 내 허락이 의미가 있는걸까.

 

 "...그리고 아까는 내가 흥분해서 제대로 말을 못했는데 정말 너가 베타균열을 만들었어? 설마 나를 끌어내리려고 그런건 아니지? 맞아? 아니 애초에 인간세계에 계속되는 균열들 모두 너가 계속 만드는것들이야?"

 

 갸웃.

 

 뱀의 멍한 표정. 그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미소를 자아냈다. 그는 헤실헤실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을 보고있자니 이제는 실소가 나왔다.

 

 "...그래, 알아낸게 없네"

 

 지문이 지상으로 가자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이제 유일한 희망은 그럼 이 존재의 힘일것이다. 균열을 만들 수 있는 뱀의 능력이 지문을 위로 올려보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 뱀이 지상으로 보내주겠다고 하고 있다. 대체 왜? 알 수가 없다.

 

 뱀의 투명한 눈이 어쩐지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절대 만나지 않겠다, 대면하지 않겠다 발악하던 존재와 결국 만나게 되고 나니 신기하게도 드는 감정은 평온함이었다. 지상에서 이 뱀과 싸웠던 전투의 감촉이 생생했다.

 

 과거 이 뱀의 존재에 대해 말했던 단 한 사람이 떠오른다.

 

 [무시하렴 수라. 그리고 앞을 봐. 그리고 사람들을 보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라 그리고 감정을 나누렴. 너의 세계는 이곳이란다. 환상같은 목소리에 현혹되서는 안돼]

 

 그는 죽기 전까지 나에게 말했었다.

 

 [수라, 이들을 불쌍하게 여겨주렴]

 

 당신은 늘 나를 위험한 짐승처럼 대했다. 위험한 짐승에 족쇄를 걸 듯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이 말을 외우게 했다. 그들을 지켜주렴. 인간을 불쌍하게 여겨주렴.

 

 "...너 마음대로 해"

 

 내 인생 처음으로 당신을 거역하고 싶어진다. 나는 당신의 말을 끝까지 들었어. 그래서 이곳까지 왔어. 그리고 죽으려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능력 밖의 일이야, 인간을 지키는 건. 나는 더 이상 인간들을 지키는 건 지긋지긋해, 또 아무런 힘도 남아있지 않은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야.

 

 뱀은 눈을 크게 떴다.

 

 ”가?“

 

 ”그래“

 

 화악 밝아지는 밝은 표정. 상기된 표정으로 뱀이 와락 내 몸을 안았다.

 

 ”잠깐-!“

 

 그의 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뱀은 볼이 내 목을 부비는 감촉이 느껴졌다. 소름이 타고 올랐다. 당장이라도 떼어 내고 싶지만 마치 밧줄에 묶인 것만 같았다.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었다.

 

 ”놔!“

 

 그 때 무언가 뾰족한 것에 찔리듯 목에 따끔한 통증이 가해졌다. 서늘한 감촉에 몸이 떨렸다. 마치 벌레에 물린 듯 따가웠다.

 

 고통에 몸이 굳어있는 나를 바라보며 뱀은 천천히 팔을 풀렀다. 그의 살짝 벌어진 입 사이 뾰족한 송곳니에 피가 묻어있었다. 뱀은 싱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길게 접힌 눈웃음 사이 은빛 다이아몬드 동공이 만족스러움에 반짝였다.

 

 ”너- 뭐-“

 

 훅, 고개가 꺾였다. 뱀이 나의 몸을 받아내는 것이 느껴졌다. 비릿한 물풀같은 향이 났다. 점점 시야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온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

 

 

 

 

 

 

 몽롱한 정신 속 누군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의 몸을 감싸는 단단한 팔이 느껴졌다. 얇은 선같은 시야가 점점 커진다.

 

 날카로운 눈매. 붉은 동공.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지문?"

 

 그가 미소지었다. 하지만 어쩐지 불안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한숨 자“

 

 -일어나면 모든게 달라져 있을거야.

 

 그의 목소리가 나를 더 잠의 수마에 들게했다. 내 몸을 단단하게 감싸는 그의 체온에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감기 직전, 눈 앞에 뱀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품에 안긴 왕왕이도 보였다.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뭐하는 거야..?-"

 

 뱀은 내가 뻗은 손에 살짝 미소짓는 것 같았다.

 

 지문이 내 눈 위에 손을 올렸다. 어둠이 찾아온다. 점점 녹아드는 것 처럼 몸이 무거워진다.

 

 왕!

 

 왕왕이 소리.

 

 그리고

 

 ㅡ기다려줘,

 

 미성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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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지하(13) 2020 / 9 / 20 335 0 4184   
13 13. 지하(12) 2020 / 9 / 20 329 0 3513   
12 12. 지하(11) 2020 / 9 / 20 289 0 4298   
11 11. 지하(10) 2020 / 9 / 15 314 0 3493   
10 10. 지하(9) 2020 / 9 / 11 308 0 4634   
9 9. 지하(8) 2020 / 9 / 11 321 0 4100   
8 8. 지하(7) 2020 / 9 / 6 291 0 4820   
7 7. 지하(6) 2020 / 9 / 6 286 0 5908   
6 6. 지하(5) 2020 / 9 / 3 310 0 5234   
5 5. 지하(4) 2020 / 8 / 31 299 0 5065   
4 4. 지하(3) 2020 / 8 / 30 288 0 3641   
3 3. 지하(2) 2020 / 8 / 30 286 0 3170   
2 2. 지하(1) 2020 / 7 / 31 294 0 6884   
1 1. 어느 날 그녀가 돌아왔다 2020 / 7 / 31 546 0 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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