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실들같은 것들이 공중에 수 놓아져있었다. 절벽과 나무들을 연결하고 늘어뜨려져있는 실들. 그물망같이 어지럽게 짜여져있는 실들 위엔 온갖 것들이 걸려있었다. 흰 백골같은 것들이 실들에 꽁꽁 묶인 채 달려있었다. 바람에 휘날려 왔을 잔해들은 그물에 걸려 옴쌀달짝도 하지 못한다.
날개를 가진 작은 마물들이 그 위에서 발버둥치며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비명소리와 함께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것이 날개를 더 세차게 흔들면 흔들수록 흰 실들은 깃털 하나하나에 더 꼼꼼하게 달라붙는다. 이내 온 몸이 꽁꽁 묶인 짐승의 헐떡임들이 여기저기 들려왔다.
실들과 묶인 잔해들이 하늘을 막아 어두웠다.
습하고 축축한 공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실들을 밟자 끈적한 감촉이 딸려왔다.
마치 커다란 서커스 공연의 천막을 연상시켰다.
단 알록달록 예쁜 서커스 천막과 달리 이것은 기분나쁘게 끈적이는 요새지만.
빈 거죽같은 것이 바닥 위 여기저기 떨어져있었다. 체액을 빨리고 쪼그라든 몸뚱아리.
씨발. 끔찍한 광경에 하지문은 얼굴을 찌푸렸다.
"...거미형?"
그녀의 중얼거림에 그는 대답했다.
"그래보이네. 규모로 봐서 위험등급은 노란색에서 빨간색 정도. 높은 확률로 집단 사냥"
"오랜만에 아이어같네. 옛날 생각 나"
"그때처럼 무전 끊길 일은 없어 좋네"
"...언제까지 그 얘기 할거야. 그런데 나 거미형의 요새를 보는 건 처음이야. 지상에서도 나타난 적 있어?"
"몇몇 객체는 있었지만 이런 환경은 당연히 볼 수 없었지. 집짓기는 무슨 거미줄 하나 분출하기도 전에 잡아 족치니까"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고 거미줄들이 빼곡해진다. 처음과 달리 여기저기 걸려있는 거미줄들 때문에 쉽게 걸을 수가 없어졌다.
그녀의 얼굴에 들러붙기 시작한 거미줄을 지문이 걷어냈다. 걸치고 있는 옷들과 몸에 어느새 흰 실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다각.
스산한 소리가 여러 짐승들의 소리사이에서 흘러 들어왔다.
둘은 걸음을 멈추었다. 위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미세하게 진동하는 거미줄.
다각.
다각.
다각.
다가각.
다가가가가가각.
사람 팔 길이 정도의 거미 몇십마리.
붉은색과 노란색의 줄무늬 무늬가 그려져 있고 잔털들이 올라와 있는 모양새.
커다란, 홀로그램같은 두 눈들이 일제히 둘에게 쏟아진다. 다가각. 긴, 여러개의 다리들이 움직였다.
몸의 털들이 쭈볏 선다.
"흐으- 나 지금 너무, 소름이, "
"....동감이야"
다가가가각.
그 중 반정도가 흰 실을 타고 주르륵 내려오기 시작했다.
긴 다리들이 땅 위에 안착한다.
"아직 새끼들인거같은데"
지문은 그녀를 뒤로 밀어넣었다. 단도를 꺼내들었다.
그 순간 마치 물총처럼 마물의 아가리 안에서 흰 거미줄들이 뿜어져나왔다.
"뭐,"
두꺼운 흰 거미줄 뭉텅이를 막아 낸 하지문의 팔이 앞으로 끌려 들어간다. 끈끈하게 달라붙은 거미줄이 옷을 잡아 끌고 엄청난 힘에 거미들쪽으로 훅 날아갔다.
벽에 부딪혀 떨어지는 하지문의 몸 위로 먼지가 날린다.
다가가가가각.
"지문!"
바닥에 나뒹구는 그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한마리.
가까워진 마물을 향해 날린 팔은 또 분출된 실에 붙잡힌다.
"어"
당황한 얼굴. 두 팔이 등 뒤로 휙 묶인다. 두꺼운 거미줄이 그의 팔을 둘둘 봉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수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도와줘?"
"씹, 아, 아냐 넌 가만히 있어"
"조금 정도는 도울 수-"
쾅!
하지문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가까이 다가오려는 그녀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던 무리의 거미들.
마치 투명한 벽에 부딪힌 것처럼 바로 앞에서 납작해져 바닥에 떨어지는 코 앞의 거미들을 보며 수라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깜짝아...?"
"이수라! 힘 쓰지말라고!"
"....아니 이번건 나도 무의식적으로"
'분명 마물들이 이수라는 공격하지 않는것 아니었나?'
하지문의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동공이 쌜쭉 수축한다. 뿌득, 이를 갈며 뿜어져 나오는 살기.
본격적으로 그의 몸에 실을 둘둘 말고있던 거미가 움찔, 몸을 떨었다.
잠깐 그의 몸에서 떨어졌을 때.
하지문의 이빨이 팔에 둘둘 말린 거미줄을 잡아물었다.
부욱.
날카로운 송곳니에 마치 가죽처럼 찢어지는 새하얀 실들.
자유로워진 한 팔이 바닥에 떨어진 단도를 쥔다. 손아귀에 솟아오르는 푸른 힘줄.
푹.
그의 손을 떠난 단도는 정확히 거미의 눈 사이에 깊숙하게 꽂힌다. 초록색 체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대로 뒤로 넘어가 바닥에 푹 쓰러진다. 쓰러지는 마물을 바라보는 형형한 붉은 눈동자 아래 날카로운 이빨은 몸에 붙은 나머지 실들을 뜯어냈다.
하나가 쓰러지자 그녀를 향했던 나머지들이 모두 그에게 달려들었다.
쏟아지는 흰 거미줄들은 그러나 그의 몸에 닿지 못하고 바닥으로 하강한다.
거미줄들을 이리저리 피한 하지문의 손아귀 안에서 으스러지는 거미의 머리들.
"....."
손목으로 흘러내리는 초록색 체액을 만지작거리던 하지문의 바로 옆에서 또 거미줄이 날아온다.
"지문!"
하지문은 날라오는 거미줄 뭉치를 한 손으로 잡아챘다.
끈끈하게 피부에 달라붙는 거미줄.
하지문은 체액이 묻어있는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그 줄을 쓱 쓸어내렸다.
미끌미끌하게 미끄러지는 감촉.
그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간다.
체액이 묻어있는 손으로 자신의 몸에 붙은 무더기를 잡고 다른 거미를 향해 내던진다. 쓰러지는 무더기의 거미들을 향해 걸어간 하지문은 위협의 표시로 아가리를 벌려 알수없는 소리를 내뱉는 것들을 밟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초록 체액을 움켜 쥐고 자신의 피부에 붙은 거미줄에 문질렀다.
하지만 이미 피부와 엉켜붙은 실은 생각보다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문의 눈썹이 올라간다.
퍽.
돌이 맞는 소리에 고개를 홱 돌린 하지문의 형형한 눈에 움찔 동작을 멈춘 마물.
마물의 머리를 강타했던 돌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찰나 훅 뻗어 온 그의 손아귀에 머리가 터지고 초록 체액이 분수처럼 쏟아진다.
체액을 닦아내는 그의 시야에 그녀의 얼굴이 드리워졌다.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을 툭 툭 털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금안이 반짝 빛났다.
"전투중에는 절대 한 눈 팔지 말것. 전투원 3조항"
피식, 하지문의 입꼬리 하나가 슬며시 올라갔다.
"비전투원 출신이라서요"
"감각은 나쁘지 않은데 자세는 엉망이야. 네 발 짐승이 하는 것처럼 싸우더라 너"
"하"
웃던 그는 그녀가 건넨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러나 그가 채 일어나기도 전에 휘청하고 무너지는 그녀의 몸은 그의 가슴팍에 툭 떨어졌다.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체액을 닦은 손으로 그는 그녀의 머리칼 끝을 조심스럽게 메만졌다.
"제대로 배운 적 없거든요. 앞으로 선생님이 알려주시려나...?"
"그래 그래야겠네. 자세 교정이랑 호흡 정리부터 하나하나 시작하자"
그녀의 엄격하고 딱딱한 말투에 하지문은 웃음을 터뜨렸다.
늘 생글생글 웃고 다니며 성녀라고 불리는 그녀지만 그런 그녀가 단 하나 누구보다 엄격한 면을 보이는 때가 있었다.
바로 전투.
그녀의 가르침은 분명 엄청난 고효율 수업이지만 마음 가짐을 무조건 단단히 하고 임해야 한다. 그 해 들어오는 갓 새내기 전투원들에게 꼭 알려줘야 하는 사항들 베스트 파이브안에 들어있었을 정도이다.
[절대 함부로 이수라님에게 전투를 요청하지 말 것]
그녀와 연습 전투에 임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필사적으로 피하던 그녀의 조원들.
그녀를 존경해 연습을 청했던 많은 이들이 모두 한번을 끝으로 다시는 그녀에게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찾아다니던 건 그녀다.
부족한 점이 많다며 그들을 찾아다니는 이수라와 그런 그녀를 기겁하며 피해다니던 전투원들.
웃긴 것은 둘다 필사적이라는 사실이다.
꼭 가르쳐야 한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도망간 학생들을 찾아다니는 이수라와 또 필사적으로 도망다니는 전투원들. 하지만 결국 끝은 그녀의 표정에 숨을 들이키고는 마치 죄를 인정한 사형수가 사형장으로 걸어가듯, 연무장으로 걸어가는 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녀와 한번 합을 맞춘 이들은 그 후 몇날며칠은 앓아 누워 일어나지를 못했다.
어떤 한 전투원은 일어난 후에도 이수라만 보면 발작을 일으켜 어쩔 수 없이 다른 조로 그가 이동시킨 적도 있었다. 마치 마물을 본 듯 새파랗게 질려 기겁하던 그의 표정은 매우 인상깊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자신은 비전투원이었기에 먼 이야기였지만.
가끔 전투원들에게 대체 왜 그렇게 무서워하는거냐는 말에 제대로 답해 준 이들이 하나 없었다.
다들 얼굴이 금방 새파랗게 질리고는 자신들도 끝까지 본 적 없다고 공통적으로 말들 했다.
자신의 물음에 갑자기 벌벌 떨며 '제발 넘어가주세요 수라님' 이라고 손을 물어 뜯으며 반복해서 중얼거리던 이도 있었다.
그 때, 품에 있던 그녀의 몸이 뒤로 훅 튕겨나간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문의 뻗은 손은 그녀의 머리칼을 스쳤다.
당황한 그녀의 얼굴. 멀어지는 몸.
그녀를 거미줄로 낚아 채 몸을 묶은 거미는 순식간에 실을 타고 공중에 수놓아진 거미줄 진영으로 올라간다.
하지문은 늘어뜨려져 있는 실을 잡았지만 한가닥으로 이루어진 실은 맥없이 툭 끊어졌다.
"젠장"
*
다가가가각.
엄청난 속도로 앞을 질주하는 거미를 쳐다보며 따라갔다.
한편, 거미의 몸 위에서 몸이 둘둘 말려 마치 들쳐매듯 옮겨지고 있는 수라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밑에서 들려오는 하지문의 외침은 들리지도 않았다.
자신의 맨 살에 느껴지는 까슬까슬한 잔털.
시야에 보이는 길고 긴 다가각 거리는 다리들.
"욱... 토할 거같아...."
최대한 제정신을 붙들려 하며 아래를 엿보자 잔뜩 흥분한 하지문이 엄청난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멀리서도 흥분한 피처럼 새빨간 동공이 선명했다.
"....."
수라는 동공을 굴려 자신을 옮기고 있는 거미의 몸뚱아리를 힐긋 보았다. 아까 그 새끼들에 비해 자신을 들쳐맬 정도로 큰 객체다.
...할까
말까.
이 며칠간 결국 남아있던 성석을 모두 소비했다.
전사에게 신력은 곧 생명력.
기껏 어느정도 살 수 있을 만큼 돌아온 이 신력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쭉쭉 빨릴 이 공간 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런데 마물을 때려잡는 곳까지 사용한다면?
'...하지만 상관있을까'
이런식으로 귀찮은 일들을 방치하며,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을 고이고이 보존해가며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그 때 또 무의식적으로 하지문을 보았다. 필사적인 표정이 자신의 결정을 자꾸 늦춘다.
'?!'
훅 기울어진 시야.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줄 알았다.
좁은 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거미가 어떤 구멍에 뛰어든 것 같았다.
[수라--!!!!]
멀리서 지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후우욱.
창공이 보이는 원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진다. 떨어지는 힘에 바람이 거세게 맞부딪혔다. 눈을 가늘게 떴다.
깊숙한 구멍의 벽들이 위로 쉴새없이 위로 올라간다.
'아....'
끝없는 바닥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
지하로 뛰어드는 기분.
ㅡ구멍 안으로 몸을 내던지는 기분.
입이 작게 열린다.
잊고 있었던 기분이.
'기분이 정말-'
바닥에 가볍게 폭 안착하는 거미.
그리고
촤아악, 초록색 체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깔끔하게 반쪽으로 썰어진 마물의 몸뚱아리를 발로 살짝 밀었다.
기울어진 몸뚱아리는 옆으로 맥없이 툭 떨어진다.
"...더러워"
그리고 이제 제대로 일어나려했으나 마물의 몸에 둘둘 말린 흰 거미줄들이 쉽게 끊어지지가 않았다.
"으음"
몸에 흠벅 젖은 미끌미끌한 감촉에 몸서리치며 고개를 들었다.
몸이 딱 굳었다.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깜빡깜빡.
그쪽도 놀란 것 같다.
당황한 기색의 그 마물이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매끄러운 은빛 머리칼과 눈을 가진 뱀이.
그리고 뱀 앞엔 수십마리의 거대한 거미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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