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원 조항 3조.

　같은 전투원들끼리의 수련을 제외한 싸움을 강력히 금지한다. 특히 전투원이 비전투원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 가중처벌을 가한다]

　으드드득.

　비전투원을 때린 전투원 김민홍.

　그는 어금니가 매끈해질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사람처럼 아득바득 이를 갈았다. 호수와 칫솔을 잡은 두 팔에 붉은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것처럼 튀어나온다.

　이른 바 ‘외출금지’라고 불리는 대신전 감금령과 함께 봉사활동 100시간을 처벌받았다. 또한 2주동안 긴급소지를 제외한 모든 시간 능력 사용 금지 명령. 그래서 시작된 2층 집무관 화장실 청소.

　“비나목 이 여우새끼...!”

　후훗하고 입을 가리며 웃는 그 미소가 눈에 선하다. 상해라니, 자신이 한것이라곤 그저 그 여우새끼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린 것 밖에 없다. 맹세코 때린다거나 몸에 상처를 입힌 것은 절대 없다. 그런데 그 여우새끼는 마치 그가 올 것을 알고있기라도 했다는 듯 자신에게 멱살을 잡히자마자 엄청난 비명을 질렀고 놀란 자신이 내려놓자마자 어깨를 붙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댔다. 당황한 그는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비나목이 질러대는 비명에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키가 190에 육박하는 건장한 현역 전투원 김민홍과 그 아래 단추는 떨어지고 구겨진 앞섬을 붙잡고 가련하게 흑흑 우는 비전투원 비나목이 있었다.

　‘미, 미안해요 민홍씨. 저는 그저 한사코 거절해도 수라님이 계속해서 도와주시겠다고 하셔서, 그래서, 저도 너무 업무에 지쳐서, 조금 맡긴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민홍씨의 심경을 건드릴줄은-’

　싸한 눈빛이 자신에게 쏟아졌다.

　‘야 김민홍, 그래도 때리는 건 좀 그렇잖냐-’

　‘비나목이 좀 쓰레기새끼기는 하지만 얘가 업무가 많은건 사실이잖아’

　‘어 나목, 너 거기 멍은 뭐야 방금 맞은거야?’

　멍? 쏟아지는 지탄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김민홍은 고개를 돌렸다. 비나목이 부여잪은 앞섬 사이 가슴팍에 시퍼런 멍이 보였다.

　‘아니야....!’

　‘아, 아뇨 이건...’

　마치 눈물 한방울이 톡, 떨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비나목은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자신은 도저히 말할 수 없다는 듯.

　‘내가..! 내가 안때렸어..!!! 야 비나목!!!’

　‘어어 그만해 그만해’

　‘이번건 너가 너무했다 김민홍’

　‘누가 도원씨 좀 불러와!’

　그리고 그렇게 끌려간 김민홍은 도원씨의 차갑디 차가운 질책과 함께 위 많은 벌들을 부여 받았다. 그는 잊을 수 없다. 동료들의 힘에 두 팔이 잡혀 질질 끌려갈 때 올라간 입꼬리를 손바닥으로 가린 채 부들부들 떨어대던 비나목을.

　빡.

　그가 잡고 있던 플라스틱 칫솔은 두동강 나 날라갔다. 이로써 그는 날려먹은 비품은 벌써 3개가 되었다.

　타박 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김민홍씨”

　“아이어님?”

　피곤한 눈 아래 미약하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청소는 잘 하고 있어?”

　부드러운 그의 음성에 김민홍은 깊은 속 아래로부터 무언가 왈칵 올라왔다. 그는 부서진 칫솔의 반을 바닥에 내던지고 다정한 이의 다리에 매달렸다. 자신이 봉사를 시작한 이후 이렇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준 이는 지문이 유일했다.

　“아이어니이이임 으허어어엉 저 진짜 억울해요 흐어엉”

　“...알아- 그래. 나목이가 좀 장난이 심했지?”

　자신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이해해준다. 아 이사람은 천사가 아닌가? 김민홍은 줄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등을 두드리는 손길은 조금 경직되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나목이는 맞았다고 하던데... 아니지?”

　“헉! 네! 아니에요! 전 정말 주먹도 안쥐었다고요! 저도 때릴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과연 자신의 말을 비전투원인 아이어님이 이해하시려나 싶어 멈추었다. 하지만 수라님과 이 신전에서 가장 친한 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해해주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저는 그저 비나목 그 새끼가 자꾸 수라님한테 자기 잡일들을 맡기니까..! 경고하려던 것 뿐인데! 그, 비전투원 녀석들이 자꾸 수라님을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있어서...저희에게는, 그, 엄청나게 존경하는 분인데 그런식으로 자꾸 대하니까-”

　“.....”

　김민홍은 시무룩해진 태도로 얼굴을 거의 바닥에 쳐박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다리에 붙은 우람한 청년을 조심스럽게 떼내었다.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예상 가네. 나목이한테 경고 좀 줘야겠다 그치?”

　번쩍, 김민홍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끄덕였다.

　“네! 네! 제 말이 그말입니다 아이어님!”

　“나목이한테 내가 말해볼게. 그리고 김민홍씨의 처벌 경감도 상부에 문의해볼게”

　아아 천사...! 누가 착한 상사는 없다 했는가, 그는 이 직장의 빛이요 소금이다. 부드럽게 미소짓는 아이어의 표정을 따라 김민홍도 활짝 웃었다. 그럼 이만-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던 아이어는 아 잠깐, 하고 발을 멈추었다.

　“음 민홍아 앞으로 당분간은 수라에게 말을 거는 건 삼가야할 것 같아”

　“...네? 네? 왜요?”

　수라님한테 말 걸지 말라고? 내 여신님에게?? 이제야 좀 내 이름을 말씀드릴 수 있었다 싶었는데??

　“너가 수라 때문에 나목이를 때렸다, 이런식으로 소문이 퍼지고 있어서. 아무래도...음...”

　“헉”

　곤란스럽다는 듯 말을 아끼는 다정한 상사이자 형. 민홍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는 미친 듯이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쁜 놈, 이 생각 짧은 놈..!

　“네, 넵 알겠습니다! 흐어엉, 저, 저 때문에 수라님이 흐어엉 절대 절대 피해가 가지않게 주의할게요 당분간 허어엉”

　“응 고마워 그럼 수고해. 최대한 빨리 경감될 수 있게 노력 해볼게”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복도를 나선 하지문 뒤로 민홍은 감격한 어조로 격한 인사말을 보냈다. 그리고 코너를 돈 하지문의 얼굴은, 고개를 돌리자마자 깔끔하게 지워졌다. 미소를 올렸던 입꼬리는 순식간에 가라앉고 시린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마치 지겹다는 듯, 권태와 함께 옅은 짜증이 섞인 표정을 한 남자의 두 눈 가운데 닫힌 굳은 입술에서는 방금의 미소를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또르륵, 무언가 생각하는 듯 그의 동공이 옆으로 굴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멍하니 허공으로 돌아온 동공은 고요히 빛났다. 빛나는 동공 안 질척하게 가라앉은 알 수 없는 숨겨진 감정들. 그의 걸음걸이가작게 빨라진다.

　 *

　너무 오랜만에 감정의 거센 파도를 겪은 탓인지 그와 언쟁을 하던 나는 결국 쓰러졌고 그대로 꼬박 삼일을 앓았다. 열이 펄펄 끓고 정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앓던 날들은 나에게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내 몸은 자주 쓰러졌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며칠이 지난후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눈을 뜨고는 했다.

　눈을 뜬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빌어먹게도 끈질긴 내 몸뚱아리를 저주하는 것.

　밤새 앓다 어쩌다 눈을 떴을때 내 옆을 지키고 있는 이가 있는 것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온 몸이 뜨거워 숨을 쉬지 못할것같을때 나를 내려다보는 고요한 눈이 심신을 안정시켰다. 또는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 깨질것같은데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몽롱한 시야 가운데 머릿속에서 밤새 나에게 말을 걸던 낮은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린다.

　'이거 삼키자 수라'

　'수라 진정해. 제발 진정해'

　'괜찮아. 괜찮을거야 나 옆에 계속 있을거야 안심해'

　'뭐...? 아니, 그게,'

　기억은 중간중간 끊겨서 제대로된 대화는 남아있지않았지만 여러가지 말들과 남자의 여러가지 표정이 찢어진 책페이지들 처럼 지나간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몇개 끼어있다.

　현재 눈을 뜬 건 밤인것같았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 피어오른 등불같은 것들이 발춤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대체 언제 또 이런걸 준비한건지. 고개를 들자 이젠 미지근해진, 물에 적신 천이 이마에서 흘러 떨어진다.

　남자의 검은 곱슬머리에 등불의 빛이 아른거린다. 팔짱낀 채 옆에서 졸고있는 그를 나는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은 닫혀있었고 그 아래 속눈썹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불꽃을 따라 이리저리 일렁였다. 높고 곧은 콧대. 작게 열린 입.

　내 기억 속 하지문은 늘 깔끔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늘 실수투성이고 소심한 나와 완전히 반대였다.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당당한 태도로 지시를 내린다. 그는 상관의 자리가 아주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힘들때마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언을 해주곤 했다. 그는 모든면에서 뛰어났다. 모두가 그를 존경했고 그에게 조언을 얻었다.

　그와는 꼬맹이 시절에 만났고 성전에서도 오래 함께 일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능력이 발현해 바로 성전에 일찍 들어왔고 그는 성인이 되어서야 관찰자로서 들어와 일했기 때문에 소꿉친구라고 하기엔 가운데 공백이 긴 것은 사실이다. 또한 고아원에서는 그렇게 친했던 사이가 아니였기에 그가 성전에 들어온 후 자신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것을 당황하면서 받았었다. 하지만 그래도 유년시절을 같은 곳에서 보낸 것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지 그와는 급속도로 친해졌고 곧 고된 전사 시절을 지탱해주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었다.

　딱 떨어지는 바지와 셔츠. 깔끔하게 쓸어넘긴 짧은 머리칼.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매를 더욱 더 두드러지게 하는 은테 안경. 180이 넘는 큰 키와 넓은 어깨. 이 모든것들은 안그래도 사나워 보이는 그의 인상을 더욱 심화시켰었다. 무표정으로 일할때는 정말이지 찌르면 푸른피가 나올것같은 남자였다. 하지문은. 하지만 그러다가도 사람을 발견할때마다 작게 웃는 미소는 사람들을 다가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마치 차갑지만 나에게만 잘해주는 것같은 사람. 하지만 알고보면 모두에게 친절한 남자. 자신은 그것을 꽤 빨리 눈치 챈 편이라 자부하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넘어가는 다른 수많은 여자들을 보며 안타까워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저 남자는 누구지?

　짐승의 갈기마냥 길고 부시시한 검은색의 곱슬거리는 머리칼. 오른쪽 눈을 둘둘 말아 가리고 있는 넝마같은 검은 천.

　"...일어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