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문?"
작은, 한숨같은 음성에 한손으로 마물 개의 목을 잡고 흔들어대던 남성과 그런 그의 손가락을 미친듯이 씹어대던 마물 개의 동작이 뚝 멈추었다.
남자는 손에 든 마물은 던져버리고 그녀에게 구르듯 다가갔다. 저 멀리 깽- 하고 작은 마물의 울음소리가 떨어졌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않는것같았다.
"....."
그러나 급했던 동작과 달리 눈이 마주치자 그는 열린 입밖으로 아무 말도 내뱉지 않고 있었다. 나의 말이 먼저 튀어 나왔다.
"환각...?"
"아니야"
다급하게 대답하는 남자.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그 사람이었다. 아니 '그 사람같았다'. 내 유년시절부터 이곳에 떨어지기 직전까지 거의 매일을 함께했던 나의 소꿉친구. 소중한 친우.
늘 깔끔하게 쓸어 넘겨 고정하던 짧은 머리가 아닌 어깨춤까지 내려오는 긴 곱슬머리였고, 오른쪽눈은 검은 안대같은것으로 가려져있었고, 또 그나마 남아있는 눈동자는 왜인지 모르게 붉게 변했지만-
그의 볼 위로 손을 뻗었다. 그의 몸이 순간 움찔하며 뒤로 내빼는듯했지만 자신의 손가락들은 그의 볼 위에 내려앉았다. 따뜻했다. 생생한 감촉이 신경을 타고 올랐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피부. 온기.
환각들은 그녀를 매일 괴롭혔다. 초반에는 그러한 환각들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절망을 토하며 오열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4년이 지났다. 그 모든 것에 무덤덤해졌으며 해결방법또한 터득했다.
간단했다. 그저 깨달았을 뿐이다.
자신이 보고싶어하는 모든 것. 그리운 모든 것. 사랑했던 모든것.
ㅡ모두 허상이다.
고요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붉은 외눈이 형형했다. 마치 어두운 밤에 홀로 빛나는 짐승의 안광같다.
이것도 허상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온 몸이 가볍고 시야가 선명했다. 머릿속이 너무나도 시원하다.
"너를 데리러왔어. 이수라"
"...데리러...왔다고?"
"그래"
갑자기 훅 뜨거운 열기가 손을 감쌌다. 그의 볼 위 올라가있던 손을 그의 커다란 손이 덮고 있었다.
"너를 찾아헤맸어. 계속. 너가 균열에 떨어진 후 바로."
그의 손가락이 뱀처럼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미끄러지고, 단단히 끌어쥐었다. 낯선 심장소리가 쿵쿵. 하고 손에서부터 머리까지 울려퍼졌다.
"왜?"
"너를 사랑하니까"
나는 잠깐 숨을 멈추고 눈을 깜빡였다. 그가 말하는 모든것들은 이해가 되지 않은 채 마치 거품처럼 내 머릿속을 둥둥 부유한다.
"사랑? 나를?"
"그래. 우리가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처음 만났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내 한평생을 너를 사랑했고, 사랑해"
".......이해가...잘..너가 무슨 나를 사랑-"
뒤늦게 그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전혀 동요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매우 담담해보였고 별로 개의치도 않는 것 같아보였다.
"......"
그런데 어쩐지 뚱해 보이기도 했다. 낯선 표정. 낯선 모습.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것과 완전 다른 모습.
기묘한 소름이 순식간에 등을 타고 올라간다. 나는 화들짝 손을 떼어냈다. 긴장감에 억지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야 그럴리 없다.
그는 떨쳐진 자신의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보고있었다.
"아,아니야"
허상이다. 모든 것은 허상이다. 아마 나는 또 눈을 뜰 것이고 그러면 호숫가의 까칠한 모래들이 날 맞이할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내 목숨을 갈아먹는 이 공간 속에서 나는 홀로 또 천천히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나의 허상들은 나의 기억속 존재하던 그들의 모습 그대로 나오곤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의 기억 속 모습과 너무 다르다.
"너가 떨어지고 하루 뒤 바로 균열로 뛰어들었고 지금까지 찾아다녔어 너를"
"....균열? 잠깐만 균열이라니. 나, 나는 분명 뛰어들때 구멍들이 닫히는것은 분명 봤어. 그리고 모든 균열들이 닫히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는데 설마 닫히지않-"
"아니. 모두 닫혔어. 베타 균열은. 알파 균열은 여전해"
그는 마치 지겹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역시 마물들의 출현은 계속 되고 있는거구나. 아니 잠깐만. 그 균열들에 뛰어들었다고? 스스로? 나를 데려오기 위해서?
손가락이 달달 떨려 두 손을 꾹 마주잡아 바닥에 눌렀다.
"아니 말이, 진짜라고 쳐도, 그럼"
"응 4년이 지났지"
"......"
"4년동안...자그마치 4년동안-"
갑자기 떨쳐낸 그의 손이 자신을 뿌리쳤던 나의 손을 낚아챘고 나의 얼굴 바로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바로 앞 빛나는 그의 핏빛 동공이 끈적끈적한 마물의 붉은 피가 떠오른다.
"너를 구하기 위해서. 수라야"
그 붉은 눈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혀 일그러지지도, 슬퍼보이지도 않는 얼굴이었다. 고요하고 침착해보이는 표정 위 끝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들은 어울려보이지않고 맞지않은것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뚝뚝 떨어져 흘러 그의 턱 아래를 타고 내려가는 굵은 눈물방울에 숨이 멎었다.
아. 아.
"....진짜야? 너 진짜 살아있는 인간이야? 내 허상이 아니라고?"
"어떻게 하면 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거같아?"
심장이 쿵쾅거렸다. 마치 거미가 타고 올라가는 듯한 소름끼치는 느낌이 온 몸을 휘감았다. 설마 설마 정말.
"....미,미쳤어"
"구원자 컨셉에 미쳐 돌아버린 여자한테 듣고싶은 말은 아니야"
그의 입가가 삐뚜름하게 올라가 조소까지 담아낸다. 기가찼다. 그리고 점점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사람의 속을 긁을 줄 아는 저 재수없는 멘트들을 상상할 수 있을정도로 내 머리는 창의적이지 못하다.
"왜, 왜 왔어 아니, 아니 애초에 불가능한데-"
"넌 나한테 뭐라 할 자격 없어"
으득. 하며 이까지 갈며 눈물을 닦는 모습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굵은 눈물 방울 뚝뚝 떨어뜨리면서 자신을 욕하는 저 모습은 대체.
그의 생각도 못한 고백에 그 옛날 기억들이 마치 책장들이 넘어가듯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한다. 미루고 미루고 눌러넣었던 과거 기억들이 팔랑팔랑 넘어간다. 아끼고. 아끼는 소중한 기억들. 사랑했던 이들. 소중한 공간.
미친 놈. 미친 놈. 숨이 가빠왔다.
"너, 너 그리고 그 모습은 뭐야? 마물이랑 똑같은 오른쪽 눈이랑 어금니랑. 그리고 왼쪽 눈은 왜 가리고 있는거고-"
그의 안대에 손을 올리려하자 그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몸을 뒤로 뺐다. 무언가 숨기고 싶어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쿵쾅이는 심장에 말들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분명 평범한 인간이었던 너는 이 곳에서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해.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살아남아있다는 건"
"이수라 많이 바뀌었네"
그의 가라앉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허탈한 미소를 그가 지었다.
"...그 때 이런식으로 말하지 그랬어. 그 때"
금방이라도 꺼질듯 조용하고 낮게,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몸이 얼어붙는것같았다. 그 눈동자 안에 가득 담긴 원망. 그리고 조소섞인 입매로 웃어보이는 얼굴. 뚝뚝 볼을 따라 흘러 내리는 눈물. 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그가 말한 시점의 과거로 나를 돌려보낸다. 어떤 때를 말하는 건지 나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떠오르는 사람들, 고함들.
나를 둘러싼 이들의 비명, 애원, 추궁.
긴 봉을 가진 대신관. 천천히 그 봉이 내려가 판결을 내릴 때 울리던 둔탁한 소리. 그리고 올라가던 나의 미소. 실성한 것처럼, 웃음을 흘리던 나.
그때 훅 그의 팔이 나의 머리를 품 안에 넣었다. 툭 떨어진 내 머리는 그의 가슴팍 위 떨어졌다. 그는 미안해. 하고 중얼였다.
너를 탓하는 것이 아니야. 절대. 너는 잘못없어. 언제나 그랬듯. 너의 잘못이 아니야 이수라. 내가 잘못했어.
익숙한 목소리가 울린다. 늘 어렸을때부터 나를 진정시키곤 했던 목소리가.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마석을 먹었어"
"...뭐?"
경악하며 나는 그의 몸을 밀쳤고 그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냥 어쩌다 보니 먹었고 그 이후로 신체가 변하기 시작했어"
"마물화?"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쳤어"
마물화는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최근의 성전이 비밀리에 연구하던 주제였다. 마물의 힘의 원천인 몸에 박혀있는 원석. 마기의 원천. 그 힘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정화할 수 있을지 시작된 연구였으나 곧 그 힘을 인간들이 사용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에 목적이 변질되었었다. 그러나 마석은 일반전사들에게는 만지는 것만으로도 화상을 입게했기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은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대신관이 자신을 배제하고 연구를 이어나갔다. 뒤늦게 그 소식을 듣고 실험이 진행중이라는 연구소로 찾아갔지만 나를 맞이하고 있던 건
온 몸의 혈관들이 터져 흰 대리석 위 피웅덩이를 이룬 일반인들의 시체였다.
"걱정마. 멀쩡하니까. 아니 오히려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상태야"
일반인은 마기를 운용할 수 없다. 마기를 억지로 집어넣을 경우 온몸의 피가 역류하고 끓어올라 온 몸의 장기가 다 터져버린다. 눈 앞에 피투성이로 널부러져 있는 하얀 시체들이 아른거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시야가 어지러웠다. 손으로 두 눈을 가려도 계속 그 장면이 아른거린다.
"왜, 왜온거야"
"뭐?"
"내가....내가 여기에 왜 왔는데, 내가 왜 이 꼴 , 이 모양으로. 이, 이 따구로 버텨오고 있었는데. 너희를 지키려고 나는 너희 모두를 지키기위해서, 내가"
감정이 쏟아져내리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미칠거같았다. 뇌가 없어질것같다. 현실 속 그 동료가, 그 아이가, 그 남자가 내 눈앞에 있다. 이 지옥 속에서.
"말은 똑바로 해 뭐? 나를 지켜?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네 그 잘난 '동료'라는 너의 등을 떠민 역겨운 괴물들을 말하는거겠지!! 너를 속이고 너를 희생시킨 그 새끼들 말이야!!"
"아니야-!!"
"아 그래 너가 결국 희생하고 난 뒤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말해줄까? 응? 네 그 잘난 전 애인 이야기도 해주면 좋겠어 안그래?"
"아아악! 하지문ㅡ!!"
"정신차려 이수라!! 내 눈앞에 있는 나를 똑바로 보라고!!!"
"보고있잖아! 보고있잖아!!! 어서, 어서 돌아가. 너, 너는 빨리 거기로 돌아가야"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4년이나 이곳을 구른 나에게 아주 빨리도 말하네"
"누가! 누가! 와달라고 했어?! 누가 나랑 같이 죽어달라고 했냐고!!!"
"웃기지마 이수라, 죽긴 누가 죽어!! 나는 너를 데리고 돌아갈거야! 죽긴 누구 맘대로 죽는다는거야!! 내가 시발 같이 뒤지겠다고 이 고생을 한 줄 알아?!"
숨이 할딱였다. 눈물이 흘러 뿌얘진 시야 속에서 똑같이 울고있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 아래 아득 어금니를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너 내가 진짜 그 개소리에 와보지 않았으면 씨발, 내가 4년동안 찾아헤맸는데 씨발 내, 내가 몇분만. 몇분만 더 늦었으면 이...이 나쁜년"
그 눈에 투두둑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너 아까 내가 안왔으면 죽었어. 진짜 죽었다고. 그러니까 거기까지 였던거야. 최강의 마법전사, 구원자, 성녀 그 쓰레기같은 타이틀 달고다니던 여자는 그 호수 옆에서 죽은거야. 알아들어? 그리고 이제 너는 그냥 한 인간 이수라로 살아가는거야. 이제 더는!! 더는 너뒤에서 묵묵히 서 있는 짓따위는 안할꺼야 알아들어?!!"
눈물이 터져나온다.
눈물이, 감정의 소용돌이가 멈춰지지 않는다.
꺽꺽대며 우는 나의 어깨를 굳게 떠받치고 있는 그는 웃기게도 함께 서럽게도 울어대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숨이 막혔다. 이 지옥을 뛰어든 나의 소꿉친구. 나를 구하기 위해 왔다고? 죽으려고 했던 나를 끌어내,-
"자,잠깐 그"
툭툭 눈물방울 흘리며 그가 나를 응시한다. 나는 밀려오는 그때의 감촉을 잊고 최대한 태연하게 말하려고 애쓴다.
일렁이던 수면을 가르던 그의 모습.
그리고 차오르던 숨.
그리고 그- 말캉, 했던-
"나, 나 그 환각인거 같기는 한데, 그, 아까 혹시 나 발견한데가 그 호수,"
그는 환하게 웃었다. 상쾌하게.
"너 키스 정말 못하더라"
이명이 울린다. 삐익- 경고음. 달아오르는 열을 내 몸뚱아리가 견딜수가 없는 것이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아아아니, 난 그때 정신도 없었- 아니 이게 아니라! 무슨!"
"한번 더 하자, 응?"
"뭐,"
열이 화악 오른 머리가 핑 돌고 놀란 그의 눈이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아니- 내 몸뚱아- 좀만 더 버텨봐 제발...! 나 얘기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