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세요.”
“네?”
“힘내시라고요.”
“이순경 뭐해?”
“갑니다.”
구치소에 갇혀 있던 김준과 주진실은 경찰이 놓고 간 검은색 비닐봉지를 열었다. 음료와 과자, 그리고 빵 같은 간식거리가 들어 있었다. 많진 않았지만 종류가 다양한 게 꽤 정성들여 골라 담은 것 같았다.
“하하, 이건 새로운 경험인데요?”
진실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내가 구치소만 세 번짼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김준은 어제 체포당할 때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이상했다. 경찰들이 예고 없이 들이닥친 것까지는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문제는 그 전날이었다.
김준은 경찰들이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다. 이틀 전, 누군가가 김준이 인터넷 방송을 하는 아지트의 문 밑으로 딱지처럼 접은 종이쪽지를 밀어 넣고 사라졌다. 당첨날짜가 지나버린 로또였다. 꽝이였다. 처음에는 쓰레기인줄 알고 그냥 버릴 뻔했다. 쓰레기통으로 향하던 김준은 근래에 로또를 산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다시 로또를 살펴보던 그는 뒷면에 급하게 흘려 쓴 글씨를 발견했다.
‘당신은 내일 체포됩니다.’
쪽지에 적혀 있던 글은 그게 전부였다. 김준은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망가자’였다. 감옥, 정확히 ‘구치소’는 이미 두 번이나 경험했다. 그에게 구치소는 군대만큼이나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김준은 급하게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았다. 일단 이 나라를 뜨는 게 중요했다.
“이런 제길!”
트렁크에 옷가지를 대충 구겨 넣던 김준이 갑자기 트렁크를 발로 차며 일어섰다. 자신이 집행유예 중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생각났다. 해외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주진실!”
머리를 감싼 채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진실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체포된다면 진실도 위험할 게 뻔했다. 아마 진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김준은 급하게 진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제길!”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다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는데 그 종이쪽지가 손가락에 걸렸다. 김준은 다시 종이쪽지를 꺼내 보았다.
“누굴까?”
장난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 이곳에서 방송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진실을 포함해서 열 명도 안 되었다. 그 중에 이런 장난을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근방에는 CCTV도 없었다. 어차피 CCTV가 있다한들 종이쪽지를 두고 간 사람 찾겠다고 보여 달라고 해봤자 보여줄 리도 없었다.
“경찰?”
자신이 내일 체포가 될 거라는 사실은 경찰 내부에서도 비밀일 터였다. 생각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와서 쪽지를 놓아두고 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김준은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걱정해 줄줄은 몰랐다. 김준은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눈가를 문대는 손끝에 물기가 묻어 나왔다. 아까까지 보였던 두려움이 그의 얼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멀쩡하던 형광등이 갑자기 깜박이기 시작했다. 깜박이는 형광등 아래 드러난 김준의 모습은 비장해보이기까지 했다. 무언가 중요한 결심을 한 듯 그의 두 눈이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형님! 접니다. 지금 잠깐 만날 수 있습니까?”
어디론가 전화를 건 그는 급하게 약속을 잡았다. 자신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김준은 그에게 지금껏 자신이 모은 모든 자료를 넘길 생각이었다. 도망 따위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