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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공간지배자
작가 : 박군
작품등록일 : 2017.11.6

특별한 능력을 지닌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의 성장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3부>_2화
작성일 : 17-11-24 10:32     조회 : 52     추천 : 0     분량 : 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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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재! 너 어디야?”

  “가고 있어.”

  “거짓말 하지 마.”

  “정말이야.”

  “그래? 그럼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지금 막 수술실에서 나와서 수술가운을 벗다말고 전화 받고 있는, 너랑 꼭 닮은 사람을 보고 있는데.”

  “어? 아니, 그게.”

  우재는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재는 아직 주선의 진화된 능력이 낯설었다. 그녀가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주선의 능력은 5년 전, 진상과의 전투 도중에 두 번째 진화를 겪었다. 현재 그녀는 천리안과 초인적인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었다.

  “두리번거릴 필요 없어. 난 강원도에 있으니까.”

  주선은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결혼식이 진행될 정선에 어제 도착한 그녀는 밤새 잠을 설쳤다. 그리고 새벽부터 결혼준비를 서둘렀다. 두근대는 심장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주선은 갑자기 우재가 보고 싶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부부가 된다. 설레고 행복했다. 동시에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우재의 마음을 자꾸만 확인하고 싶었다. 주선은 우재의 집을 향해 눈에 힘을 주었다. 우재는 집에 없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병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우재를 발견했다. 주선은 우재가 수술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화났던 마음이 수술에 몰두하고 있는 우재를 지켜보는 동안 저절로 사그라졌다.

 

  “미안. 이제 정말 출발할 거야.”

  “주차장 말고 옥상으로 가. 헬기 보낼 테니까.”

  “무슨 헬기까지…….”

  “우재씨.”

  주선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알겠습니다. 지금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주선의 목소리 변화를 감지한 우재는 바로 태도를 바꿨다. 그녀는 화가 나면 존댓말을 쓰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우재는 주선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따 봐요.”

  “네.”

  주선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우재는 수술복을 마저 벗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와! 좋다.”

  문을 열고 나온 주선은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펜션 앞으로 금빛 반짝이를 뿌려놓은 것 같은 갈대밭이 펼쳐져 있었다. 주선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갈대밭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손바닥을 펼쳐 갈대를 손으로 쓸었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길의 끝에 다다르자 갈대밭을 촉촉하게 적시며 감싸고 도는 물줄기가 주선의 발걸음을 막았다. 시냇물보다는 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주선은 허리를 숙여 손가락 끝으로 물을 건드려 보았다. 물에 닿은 손끝이 찌르르했다. 물은 한 계절을 먼저 건너고 있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 덕분에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역시, 여기로 정하길 잘했어.”

  주선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알록달록하게 단풍 든 나무들로 가득 찬 산이 눈에 들어왔다. 낮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언덕이 더 푸근하게 느껴졌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자연은 더 아름다웠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했다. 결혼식까지는 아직 한참의 여유가 있었다.

 

  주선은 결혼식 준비를 혼자서 했다. 우재는 조정할 수 없는 수술스케줄 때문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예고 없이 들어오는 응급수술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선은 고민도 하지 않고 우재의 수술스케줄이 없는 날을 결혼날짜로 못 박았다. 마침 그 날이 대통령 선거일이기도 했다. 주선은 사전투표까지 마쳤다.

  결혼식은 간소하게 하고 싶었다. 스몰웨딩이 유행하기 전부터 주선은 항상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많은 하객도 싫었고, 기자들도 싫었다. 결혼을 하는 신랑과 신부도, 결혼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도 정신이 없는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 마음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쉽지는 않았다. 우재는 언제나 그녀의 의견을 잘 따라주었지만 문제는 양가 부모님들이었다. 주선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보다 쉽게 설득했다. 사실, 설득보다는 협박에 가까웠다. 우재의 부모님은 조심스러웠다. 잘난 아들을 더 잘난 집안에 장가보낼 생각에 두 분은 이미 하늘을 붕붕 떠다니고 계셨다. 얼마나 자랑하고 싶으셨는지 주선이 방법을 바꿔가며 여러 번 설득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언제나 해결책은 있었다. 주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카드를 썼다. 우재 부모님은 WSBC의 사장인 조경호가 설득해 주었다. 그는 어떻게 우재의 부모님을 설득했는지 주선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에서 결혼식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결혼식 잠깐 보겠다고 10시간을 넘게 비행기를 타야하는 부모님들의 반대로 그 계획은 바로 무산되었다. 그렇게 10년 전 낭만적인 결혼식을 꿈꾸며 주선이 사 놓은 섬은 원시자연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부모님과의 타협점은 제주도였다. 주선도 제주도라면 아쉬운 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서희와 태욱이 난색을 표한 것이다. 그들의 딸 여울이가 원인이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울이가 말을 잘 하게 되면서 태욱이 능력을 쓰지 않는다는 말에 바로 수긍이 갔다. 주선이 보기에도 여울이는 또래에 비해 말을 너무 잘했다. 그리고 눈치도 빨랐다. 그리고 여울이는 비행기를 무서워했다.

  남대천 갈대밭, 주선은 전국을 뒤져서 이곳을 찾아냈다. 강원도 양양에 있는 갈대밭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별장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 곳이었다. 생각보다 땅값도 저렴했다. 주선은 주인이 원하는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결혼식 할 부지를 구입했다. 그리고 바로 별장을 짓기 시작했다. 멀리서 올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서희와 태욱, 여울이가 머물 수 있는 작은 펜션도 함께 지었다. 그렇게 그녀의 간소한 결혼식은 웬만한 사람들이 평생을 벌어도 모자랄 만큼의 돈을 써가며 준비되었다. 그래도 그녀의 기준에서는 여전히 스몰웨딩이었다.

 

  “선생님!”

  예식을 모두 마치고 행진을 하기 위해 돌아선 주선은 부케를 떨어뜨릴 뻔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우재의 팔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도 고정시킨 시선을 움직이지 않았다. 하얀 꽃이 뿌려진 길 끝에 여린이 서 있었다.

  완벽한 결혼식이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온 우재는 늦지 않게 도착했다. 가족들과 친척들도 시간 맞춰 와주었다. 서희네 가족이 가장 늦게 오긴 했지만 그래도 결혼식 시작 전이었다. ‘이모, 축하해요’라고 인사하며 볼에 뽀뽀해주는 여울이 너무 예뻐서 꼭 안아주고 싶은 걸 드레스 때문에 겨우 참았다.

  주례 없이 진행된 예식은 혼인서약서 낭독과 예물교환, 양가 부모님의 편지, 그리고 축가까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모두가 주선이 생각하던 그대로였다. 그런데 예식의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욱아!”

  여린을 먼저 알아본 서희가 태욱을 불렀다. 아무것도 모르고 여울과 놀아주고 있던 태욱은 평소와 다른 서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헉!”

  태욱도 여린을 알아보았다. 온몸의 근육들이 팽팽해졌다. 다음에 만날 땐 사로잡겠다던 그녀의 말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딴 딴따딴, 딴 딴따딴……’

  상황을 전혀 모르는 피아니스트가 결혼행진곡을 연주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향해 축하의 미소를 보냈다. 주선과 우재는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주선은 길의 끝이 여린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결혼 축하해, 주선아.”

  여린은 주선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가식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주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 그냥 축하해주러 온 거니까.”

  여린의 말에도 주선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우재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중력능력자라도 5년 전에 본 그녀의 능력은 우재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했었다.

  “정말이야. 하나밖에 없는 제자 결혼식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주선은 여린에게서 천천히 눈을 뗐다. 그리고 눈에 힘을 주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주변에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다.

  “이제 됐지?”

  여린이 주선의 표정을 읽었다. 주선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재도 주선의 움직임을 읽었다. 그래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녀라면 여기 있는 모두를 제압하는데 굳이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우리 제자, 오늘 정말 예쁘다.”

  여린은 주선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의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는 축하해주러 결혼식에 참석한 평범한 하객 같았다. 사람들이 주선과 여린의 사이를 지나가며 저마다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우재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화답을 했다. 주선도 감사 인사를 건네며 곁눈으로 여린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여울아!”

  딸을 부르는 서희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태욱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여울은 놀란 얼굴로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뒤로 허리를 숙이고 있던 여린이 고개를 들었다.

  서희가 화장실을 간 사이 태욱이 우재와 얘기하며 잠시 여울의 손을 놓았다. 계속 손을 놓으려 하는 여울이를 억지로 잡고 있는 것도 힘들었고, 또 여울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여기라면 여울이를 잃어버릴 것 같지도 않았다. 손이 자유로워진 여울은 아빠의 주변을 맴돌며 돌멩이로 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돌아온 서희가 아빠와 한참 떨어진 억새밭 끝에서 여울을 발견했다. 여울은 여린과 함께 있었다.

  “우리 딸한테서 당장 떨어져!”

  서희는 어느새 여울을 품에 안았다. 태욱도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엄마, 왜요?”

  여울이 엄마의 눈치를 봤다. 얼마 전부터 존댓말을 배우기 시작한 여울은 엄마가 화낼 때마다 존댓말을 썼다.

  “아무 것도 아니야.”

  서희는 여울을 품에 꼭 껴안았다.

  “예뻐서 인사 좀 한 거야.”

  여린이 웃으며 변명을 했다.

  “우리 딸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어!”

  서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 같은 매서운 눈으로 여린을 노려봤다.

  “너무 그러지마.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이었으면 벌써 끝났어.”

  태욱이 서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경직되어 있던 서희의 어깨가 태욱의 손길을 닿자 서서히 풀렸다.

  “무슨 일이야?”

  하객들을 식당으로 안내하던 우재와 주선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들의 곁으로 왔다.

  “아무 일도 아니야.”

  잔뜩 긴장한 주선의 표정을 본 서희가 먼저 그녀의 걱정을 덜어줬다. 인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서희는 주선이 이 결혼식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또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울이 잔다.”

  태욱의 말에 서희는 자신의 한쪽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여울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태욱의 말대로 어느새 여울은 새근대며 잠들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차 안에서 안자고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던 여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아이도 능력이 있어?”

  여울을 눕힐 생각으로 돌아서는 서희를 여린의 목소리가 잡아 세웠다. 그녀의 말이 서희가 애써 묻어두려 했던 악몽을 끄집어 올렸다. 그녀는 종종 정신을 잃은 채 피를 흘리는 여울을 품에 안고 있는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그 곳엔 항상 여린도 함께 있었다.

  “죽여 버릴 거야!”

  예상하지 못한 서희의 독기서린 말투에 여린보다 우재와 주선, 그리고 태욱이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희는 그들의 표정을 무시한 채 여린을 노려보며 말을 더 보탰다. 구름도 멈출 만큼 팽팽해진 공기가 그들을 감쌌다. 적막이 감돌았다.

  “한 번만 더 내 딸 앞에 나타나면, 당신, 내 손으로 죽여 버리겠어.”

  서희는 여린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여울을 품에 안은 채 여린을 노려보던 서희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렸다. 그녀의 곁을 지난 바람은 날이 선 것 같던 갈대밭의 공기를 흩뜨렸다. 긴장이 풀린 갈대들이 머리를 흔들며 속닥거렸다. 멈춰 있던 구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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