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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공간지배자
작가 : 박군
작품등록일 : 2017.11.6

특별한 능력을 지닌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의 성장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2부>_30화
작성일 : 17-11-20 09:44     조회 : 40     추천 : 0     분량 : 5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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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님, 전화 왔습니다.”

  “누군데?”

  “대통령님이십니다.”

  오비서의 말에 진상은 전화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바로 얼굴에 갖다 대지는 않았다. 그는 아직 눈앞에서 태욱을 놓친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흐흠, 여보세요.”

  잠시 숨을 고른 그가 목을 가다듬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TV 봤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잔뜩 겁먹은 대통령의 표정이 그려졌다. 그는 대통령이 이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북한경비정의 서해 NLL침범과 교전, 모두 그가 꾸민 일이었다. 그는 이틀 전 SA그룹 북한지부장인 이기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아랫동네 꽤나 고아대던데,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진상은 비아냥거리는 그의 말투가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려는 입장에서는 이를 악물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좀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진상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화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게 뭡니까?”

  “지난번에 그거, 한 번 더 해줘.”

  “지난번에 그거라면, 설마 서해교전 말입니까?”

  “맞아.”

  “안됩니다.”

  진상은 얼굴을 찌그러뜨렸다. 뭐라도 부시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냈다.

  “설마 비행기 사건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말을 하고 나니 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보면 그 사건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참, 지저분하게 왜 이러십니까?”

  “야, 이 새끼야!”

  결국 진상은 화를 참지 못했다. 스스로 자존심을 구겨가며 비행기 얘기를 꺼낸 그에게는 기철의 비꼬는 말까지 참아낼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이고, 형님! 옛날 모습 나오십네다.”

  기철은 능숙하게 진상의 화를 받아줬다. 그의 목소리도 아까보다 한결 가벼워졌다. 같은 지부장급이라 서로 어색하게 존대하고 있지만 젊었을 때는 한 팀으로 움직이면서 형님, 동생 하던 사이였다.

  “내 하지오. 하면 되지 않갔시오.”

  기철의 말에도 진상은 화가 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거이 위에 보고는 된 겁니까?”

  “잔말 말고 하라면 그냥 해!”

  북한지부장의 보태는 말에 진상은 소리를 빽 질렀다.

  “알갔습니다. 대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저는 모르는 겁네다.”

  “알았으니까. 그냥 하라고!”

 

  “김의원님, 어떡합니까?”

  기철과의 전화통화를 떠올린 진상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루기는 했지만 왠지 놀아난 기분이 들었다.

  “김의원 듣고 있어요?”

  대통령은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그는 불안할 때마다 줄담배를 피워대는 습관이 있었다.

  “흐흠,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통령님.”

  대통령의 재촉에 그는 다시 목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간신히 차분함을 유지하던 대통령의 목소리가 일순간 격해졌다. 탄핵에 대한 불안이 그를 좀먹고 있었다.

  “전부 제가 의도한 일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의도한 거리니?”

  “대통령님은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그게 뭡니까? 제가 뭘 하면 되나요?”

  대통령은 예전처럼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하는 것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처음부터 그의 꼭두각시였다. 그가 발탁하고, 만들고, 세운 인물이었다. 진상은 그에게 모든 걸 가르쳤고, 철저하게 훈련시켰다. 진상에게 대통령은 아끼는 제자이자 소중한 인형 같은 존재였다.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김의원님!”

  대통령은 여전히 진상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계엄령을 선포하세요.”

 

  “막아야 해!”

  우재가 말했다. 비장한 표정이었다.

  “당연히 막아야지.”

  주선이 우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서희와 태욱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막지?”

  “흠.”

  서희의 질문에 다들 말없이 생각에 잠기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계엄령 선포는 대통령이 하잖아!”

  주선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그렇지.”

  우재가 대답했다.

  “그럼 대통령을 막으면 되겠네.”

  주선이 신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가만히 있던 태욱이 주선을 향해 입을 열었다. 태욱의 말이 끝나자 우재와 주선, 그리고 서희는 동시에 태욱을 쳐다보았다.

 

  “서희야, 혹시 아까처럼 뭐 보이는 거 없어?”

  태욱의 말에 서희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미안해.”

  “아니야. 사과할 것까지는 없어.”

  괜찮다는 대답과는 다르게 태욱의 얼굴에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은 청와대가 내려다보이는 빌딩 옥상에 있었다.

  “어때?”

  우재가 청와대를 향해 집중하고 있는 주선에게 물었다. 주선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쉽지는 않겠어.”

  주선은 능력을 사용하여 청와대 안의 상황을 살폈다. 너무 멀어서 모두 정확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지나치게 사람이 많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무장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어디 있어?”

  “관저에 있는 것 같아.”

  우재의 질문에 주선은 관저를 향해 눈에 힘을 주었다. 그곳에서 TV를 보고 있는 인물이 대통령과 인상착의가 가장 비슷했다. 그나마 대통령이 있는 관저의 경비가 가장 허술해 보였다. 그들로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저 뒤편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우재는 주선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손은 청와대를 품고 있는 북악산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서희는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눈에 닿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은 흙냄새를 머금은 바람에 금방 식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피부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서희은 자신보다 한 발 앞서가는 태욱의 등을 보며 걸었다. 태욱의 등이 아까보다 더 젖어 있었다. 오랜만에 오래 걸어서 그런지 발바닥이 아팠다. 그래도 기분만은 상쾌했다. 태욱보다 한참 앞서가는 우재도 가끔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게 기분 좋아 보였다.

  “이쪽이야!”

  가장 앞서 가던 주선이 일행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들은 지금 북악하늘길을 걷고 있었다. 주선은 커다란 바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일행을 재촉했다. 바위에는 총알 자국이 여러 개 나 있었다.

  “이거 뭐야?”

  일행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우재의 질문에 주선이 바위 앞에 있는 표지판을 읽었다.

  “1968년 1월 21일 사태 격전지.”

  “아, 김신조 사건!”

  주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았어?”

  주선의 잘난 척 하던 표정이 곧 놀라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우재 앞에서 한 번도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던 주선은 처음으로 우재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기쁨에 한 껏 들 떠 있던 참이었다.

  “기본이지. 그럼 이 바위가 호경암인가?”

  “어, 맞아.”

  주선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이 바위 왜 이래?”

  한 발 늦게 도착한 태욱과 서희는 가장 먼저 도착한 주선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주선은 시무룩한 얼굴로 말없이 표지판을 가리켰다.

 

  “여긴 어떻게 넘어가지?”

  주선의 말에 서희와 태욱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우재는 눈짐작으로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의 높이를 가늠하고 있었다.

  호경암을 지난 그들은 그 뒤로도 한참을 더 걸어서 숙정문에 도착했다. 서희는 산책로라고 적혀 있던 북악하늘길의 안내판이 원망스러웠다. 이건 산책로가 아니라 등산로였다. 상쾌한 기분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머리는 땀으로 다 젖어 있었고, 옷도 축축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신기하게도 그들 중 주선이 가장 멀쩡해 보였다. 숙정문에서 잠시 쉰 그들은 다시 성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난관에 부딪혔다. 그들은 성곽 밖에 이중으로 세워진 철조망을 넘어가야 했다.

  “둘은 어떨지 모르겠네.”

  철조망을 쳐다보던 우재가 혼잣말을 했다.

  “응? 뭐가?”

  우재는 주선의 물음에 대답대신 그녀를 두 팔로 안아 들었다.

  “꺅!”

  갑작스런 우재의 행동에 주선은 비명을 질렀다. 서희는 주선의 비명소리가 행복하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혼자만 연습하던 거라서 잘 될지 모르겠어. 잘 잡아.”

  우재가 주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주선에게는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혼자만 들리는 황홀한 음악에 취해 있었다.

  “어?”

  우재를 보고 있던 서희와 태욱은 동시에 입을 벌렸다. 주선을 안고 있는 우재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는 그대로 철조망을 넘어 반대편에 천천히 내려섰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됐어.”

  우재가 주선을 향해 방긋 웃어보이고는 천천히 그녀의 발부터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떻게 한 거야?”

  “중력하고 염력하고 그런 거지 뭐.”

  우재는 쑥스러운 듯 웃어보이고는 뒤돌아섰다. 그는 아까보다 더 쉽게 철조망을 넘어왔다. 주선은 6년 전 우재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우재는 주선과 같은 방법으로 서희를 철조망 반대편으로 옮겼다.

  “자.”

  다시 철조망을 넘어온 우재는 태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정말 이 방법밖에는 없냐?”

  “나도 싫거든.”

  태욱은 우재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우재도 벌레 씹은 표정으로 태욱을 안았다.

  “간다.”

  우재에게 안겨있던 태욱은 우재의 목을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꼭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내려!”

  우재의 차가운 말에 우재의 품에 다소곳이 안겨있던 태욱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흐흠!”

  태욱이 빠른 동작으로 우재에게서 떨어졌다.

  “가자!”

  주선의 말에 어색하게 서 있던 우재와 태욱은 동시에 움직였다. 서희는 그런 그들이 귀여워 보였다.

 

  “당신 누구야?”

  대통령이 아니었다. 태욱과 우재는 관저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호원 두 명을 손쉽게 제압했다. 그게 다였다. 관저 안에는 다른 경호인원이 없었다. 너무 허술한 게 수상했지만 그들에게는 망설일 여유 따위는 없었다. 태욱과 우재, 그리고 주선과 서희는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대통령이 있는 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대통령과 닮은 사람일뿐이었다. TV를 보고 있던 그는 태욱 일행을 보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버튼을 눌렀다. 비상벨이 관저 전체에 울렸다. 10초도 안되어 열 명의 경호원들이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모두 계획된 일이었다.

  “잡았습니다.”

  경호원 중 하나가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우재는 능력을 사용하려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너무 위험했다. 한 명이라도 놓치면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총을 상대로 염력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열 명이었다. 태욱도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작은 공간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못한 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주선의 눈에 진짜 대통령의 모습이 들어왔다.

  “얘들아!”

  주선의 목소리에 태욱과 우재, 그리고 서희는 주선의 시선을 따라 TV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TV화면은 대통령의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화면 밑으로 ‘긴급속보’라고 적힌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현 시간부로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다른 말은 없었다.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을 외면한 채 굳은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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