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WSBC뉴스를 시작하겠습니다.”
서중은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향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스튜디오를 감싸고 있는 공기도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오늘 오전 주민당에서 국회에 대통령 탄핵안을 제출했습니다. 어제 촛불집회에 참가한 국민이 사상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서중을 비추던 화면이 주연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한편, 청와대에서는 탄핵안 제출에 대한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해경해체를 선언한 이후 일주일 동안 공식적인 일정을 모두 취소한 채 집무실과 관저에서만 지내고 있습니다.”
화면이 다시 서중을 비췄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왜 이렇게 난리들이냐? 네, 오늘 하루 종일 이슈가 된 말이었죠? 바로 촛불민심에 대한 대통령의 평가였습니다. 한 청와대 근무자가 직접 들었다며 SNS에 올린 이 말은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주연이 서중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았다.
“이러한 대통령의 태도에 민심은 더욱 분노하고 있습니다. 한편, 국회에서는 그동안 국민여론을 주시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미래당이 주민당과 뜻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면서 탄핵안 가결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입니다.
“다음 뉴스 전해드리겠습니다. 바로 어제 검찰은 우신그룹 전체에 대한 수색영장을 청구했는데요, 오늘 오전에 법원이 수색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그에 따라…….”
스튜디오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모두가 ‘검찰’이라는 마크가 찍힌 파란색 이삿짐박스 같은 것들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정우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그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마지막 뉴스였다. 이것만큼은 절대로 망칠 수 없었다. 정우는 뜨거워지는 눈두덩이를 손으로 거칠게 문질렀다.
“왜 이렇게 안 오지?”
“안되겠어. 일단 움직이자.”
주선과 우재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나왔다. 그들의 앞에 있는 대형 전광판은 광고 대신 WSBC뉴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주선의 말에 우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지금 사람들이 몰려 있는 광화문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서울의 다른 곳에 비해 한산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오갔다. 그들은 서희와 태욱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서희와 태욱이 먼저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서희와 태욱은 없었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벌써 30분이 지나 있었다.
“주선아, 그만 가자.”
주위를 둘러보던 우재가 다시 주선을 재촉했다. 주선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그들을 보며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나름 모자도 쓰고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했지만 풍기는 분위기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주선과 우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상수배 명단에 이름이 올려진 상태였다.
“이쪽으로 가자.”
우재가 방향을 정하고 주선을 끌었다. 주선은 우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을 피해 작은 도로나 골목으로만 다녔다.
“잠깐만!”
한참 동안 말없이 우재를 따라 걷기만 하던 주선이 갑자기 멈춰 섰다.
“왜 그래?”
우재가 주선을 돌아봤다. 주선은 눈에 힘을 준 채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경찰이야.”
“어디?”
주선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쪽인데?”
우재는 사방을 둘러보며 도망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우재야.”
주선이 우재를 불렀다. 그녀는 자신에게 시선을 돌린 우재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 사방에서 무장한 경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욱아, 어떡해?”
서희는 태욱의 팔에 매달린 채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거둬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재와 주선이 경찰에 체포당하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우재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휴.”
답답한 태욱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간발의 차이였다. 가전삼형제 덕분에 약속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한 그들은 다행히 작은 길로 들어가는 우재와 주선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거리가 많이 떨어진 터라 그들을 따라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점점 더 많아지는 사람들 때문에 그들을 놓칠 뻔 하기도 했다. 우재와 주선은 그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좁혀졌을 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냥 그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어야 했다. 태욱이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그들은 더 멀어졌고, 별안간 사방에서 경찰들이 나타났다.
태욱은 서희와 함께 공간 안으로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 우재와 주선이 경찰과 함께 그곳을 떠나는 것을 숨을 죽인 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