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언제쯤 깨어나?”
“지금쯤 일어나야 되는데.”
“수술은 잘 됐고?”
“당연하지.”
주선과 서희, 그리고 우재는 장훈을 가운데 두고 고민에 빠졌다. 깨어나도 벌써 깨어나야 할 장훈이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재도 원인을 모르는 것 같았다. 바이탈사인도 그가 정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신그룹에서 운영하는 우신종합병원으로 장훈을 옮겼다. 그리고 주선의 말 한마디로 예약을 해도 기본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VIP실이 공실이 되는 기적도 경험했다. 우신종합병원의 VIP실은 경비가 삼엄하기로 유명했다.
“이 사람, 위가 너무 쪼그라들어 있어.”
주선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눈에 힘을 줬다. 그리고 자신의 의심을 사실로 확인했다. 주선은 노숙자 같던 그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영양실조’라는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누구세요?”
장훈은 영양제를 맞자마자 의식을 회복했다. 우재는 침착하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장훈은 우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을 죽이려던 사람들은 누굽니까?”
우재의 질문에 장훈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그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정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들을 믿어도 되는 걸까하는 의문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이것도 함정이면 어쩌지?’
그 생각에 미치자 그는 굳은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우재의 뒤로 주선과 서희의 얼굴이 보였다. 이상하게 둘의 얼굴이 모두 눈에 익었다.
“그 아들?”
장훈과 눈이 마주친 서희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장훈도 서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편의점?”
“네. 저에요, 편의점. 아저씨 어떻게 된 거에요?”
장훈은 서희가 알바하는 편의점 단골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엄마도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편의점에 오시곤 해서 둘 다 알고 있었다. 서희는 그들에게 ‘그 엄마’와 ‘그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그 엄마의 그 아들’을 따로 떼어낸 말로 그것이 처음 같이 온 두 모자를 보고 서희가 처음 떠올린 말이었다. 그만큼 그 둘은 서로 닮아있었다.
“어, 그게…….”
다시 말을 하려던 장훈이 다시 우재와 주선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주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설마…….”
장훈이 주선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우주선?”
장훈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다시 봐도 우주선이 분명했다. 그는 배우를 꿈꾸는 만큼 연예인에 대한 기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기사를 본다는 사람 중에 우주선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장훈은 주선의 팬이었다. 그는 주선과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네, 안녕하세요.”
주선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정말 우주선씨에요?”
“네. 제가 우주선 맞습니다.”
“오! 오!”
장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좋아서 숨이 가빠졌다. 어지러웠다. 그는 침대 위로 다시 쓰러졌다.
“조심하세요. 아직 기력이 회복되지 않으셨어요.”
우재의 말을 들으면서도 장훈은 주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SA7229기 생존자라구요?”
장훈의 사정을 전부 들은 서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재와 주선의 표정도 서희와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정부와 군이 어떤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선생님을 죽이려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불쌍한 표정의 장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한 번, 들어보세요.”
우재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자 장훈은 품에서 소중한 보물을 꺼내듯이 펜을 꺼내들었다.
“이게 뭡니까?”
“녹음기요.”
녹음된 내용을 다 들은 일행은 장훈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런데 여당총재와 민정수석이 무엇 때문에 아저씨를 죽이려고 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주선이 질문하듯 말했다.
“아마도 SA7229기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거겠지.”
우재가 주선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이제 어떡하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뱉은 서희의 말이 전화벨 소리에 묻혔다.
“따르르릉!”
병실전화였다. 벨소리만으로도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의 떨림이 전해졌다.
“여보세요.”
주선이 전화를 받았다.
“알았어요!”
전화를 끊은 그녀의 표정이 불안해보였다.
“큰일 났어!”
“무슨 일이야?”
“아래 경찰이 와 있대.”
“경찰?”
“응, 지금 막 이쪽으로 출발했대.”
주선과 우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훈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못 들어오게 막을 수는 없는 거야?”
서희가 물었다.
“안 돼. 영장까지 가지고 왔대.”
주선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재는 고민에 빠졌다. 경찰을 상대로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장훈을 넘겨줄 수도 없었다. 군과 정부가 한 편이라면 경찰도 그들과 한 편일 게 뻔했다.
“어떡해요, 선생님!”
장훈의 울먹임과 함께 엘리베이터 멈추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5명, 10초면 올 거야.”
벽을 바라보는 주선의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우재야!”
서희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우재는 대답이 없었다.
“5초!”
주선의 목소리가 커졌다.
“백장훈……?”
호기롭게 병실 문을 연 김경사는 시작한 말을 끝내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병실은 텅 비어 있었다.
“여기 맞아?”
“맞습니다.”
김경사의 신경질적인 질문에 박경장이 재빨리 대답했다. 김경사는 대답이 늦는 걸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없어?”
“모르겠습니다.”
박경장은 이번에도 지체 없이 대답했다.
“모르면 다야? 빨리 찾아!”
빠른 대답만으로는 그의 화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다만 화를 더 돋우지 않을 뿐이었다. 김경사의 일갈에 박경장과 그의 부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경사의 초조한 눈빛이 부하들의 뒤를 좇았다. 위에서 직접 내려온 명령이었다. 이번 일만 잘 해결하면 경위진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실패하면?’
김경사는 머리를 흔들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미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반드시 찾아내!”
분노에 찬 김경사의 목소리가 VIP층 전체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