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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공간지배자
작가 : 박군
작품등록일 : 2017.11.6

특별한 능력을 지닌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의 성장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2부>_16화
작성일 : 17-11-13 12:25     조회 : 32     추천 : 0     분량 : 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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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걸을까?”

  “그래.”

  식사를 마친 우재와 주선은 밖으로 나왔다. 두 번째 만남이었다. 지난 밤 주차장에서 만난 그들은 짧은 인사만 겨우 나눌 수 있었다. 우재는 응급으로 들어온 환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퇴근하던 그는 호출을 받고 다시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날 밤, 우재는 주선에게 전화를 걸었고, 주선은 우재에게 쉬는 날을 물어봤다. 그 날이 오늘이었다.

  “걷는 거 괜찮지?”

  “그럼, 나 걷는 거 좋아하잖아. 걷는 걸 싫어하는 건 너 아니었어?”

  주선이 추억이 젖은 얼굴을 하며 우재에게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이럴 때라도 광합성 좀 해놔야지.”

  우재는 고개를 들어 얼굴에 햇빛을 가득 담았다. 햇빛을 받아 고스란히 들어난 그의 옆모습이 주선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 우재를 봤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와 다르게 피부도 푸석푸석해지고 덜 깎인 수염도 군데군데 눈에 띠였다. 하지만 주선의 눈에 우재는 10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오늘 무슨 일 있나?”

  광화문에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사람이 많아서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게. 조금 이상하긴 하네.”

  주선도 우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광화문이 가까워질수록 좁은 인도 위에서 사람들을 피해 걷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주선은 앞서 걷는 우재의 등을 보며 걸었다. 사람이 많은 탓에 둘이 나란히 걷는 건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였다.

  광화문까지 걷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은 주선이었다. 그녀가 유학을 떠나기 전, 우재와 주선은 대학로에서 광화문까지 자주 걸어 다녔다. 청계천 데이트도 많이 했다. 그 길에서 손도 잡고, 수줍은 미소도 나누었다. 서로의 입술도 그 길 위에서 처음 느꼈다. 그때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런 그녀의 바람이 전혀 이뤄질 것 같지 않았다.

  길의 끝에 먼저 닿은 우재가 걸음을 멈췄다. 주선도 우재의 뒤에 멈춰 섰다. 사람들에 가려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주선은 능력을 이용하면서까지 앞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만은 평범한 사람처럼 그의 옆에 있고 싶었다.

  “그냥 돌아갈까?”

 주선의 말을 우재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주선은 우재의 등을 살짝 건드렸다.

  “그만 돌아가자.”

  우재가 뒤를 돌아봤다.

  “잠깐만.”

  “왜?”

  주선의 물음에 우재는 대답대신 주선이 앞으로 나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주선의 생각을 우재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주선은 그 공간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정부는 진실을 규명하라!”

  “더 이상의 불법시위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물러나십시오.”

  멀리서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렸던 스피커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주선의 눈에 대규모 경찰 병력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뉴스나 기사로만 접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하지만 뉴스나 기사와는 달리 현장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적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주선은 우재의 팔을 끌어안았다.

 

  장훈은 연신 팔을 주물러댔다. 여름이라지만 새벽공기는 차가웠다. 노숙이 처음인 그는 아직 거리의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팔이 저리고 여기저기가 쑤셔왔다. 이러다간 조만간 입이 돌아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휴.”

  장훈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뱄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는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자기가 죽은 줄 알고 있을 게 뻔했다. 얼마나 슬퍼하고 계실까. 식사는 잘 하고 있을까. 어디 아프진 않으실까. 이런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간 아들이라고 부끄러워하며 구박만 하던 엄마였다. 그래도 엄마가 가장 보고 싶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발길은 다른 사람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떠밀려 가는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에는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갑자기 주위가 한산해졌다. 장훈은 고개를 들었다.

  “대통령은 사과하라!”

  “해산하십시오.”

  장훈은 시위대와 경찰이 팽팽한 기싸움을 하고 있는 한복판에 서 있었다.

  “선생님, 물러나십시오.”

  장훈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찰이 자신을 보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피커를 쥐고 있는 경찰과 눈이 마주쳤다. 경찰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았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꼬르륵.’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장훈은 자신의 배를 쳐다보았다. 위가 꼬이는 느낌과 함께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장훈은 이틀 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두두두’

  배를 끌어안고 있는 그의 머리 위에서 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땅을 울렸다. 고개를 든 장훈의 머리 위로 방송국 헬리콥터가 떠 있었다. 카메라는 그를 향해 있었다.

  산소가 뇌로 공급되지 않는 것 같았다.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우리는 SA7229의 진실을 원한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그의 눈에 익숙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시위대는 자신이 탔던 그 비행기에 대한 진실을 원하고 있었다. 장훈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그 비행기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밝히고 싶었다.

 

  “의원님?”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진상은 오비서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인상은 여전히 찌푸린 채였다. 그는 시위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그는 방금 이 문제를 빨라 해결해 달라는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일이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대통령이 직접 해경해체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언론에서 그 문제를 다루지 못하게 통제도 제대로 했다. 심지어 그동안 아껴뒀던 연예인 성매매 사건도 터뜨렸다. 그런데도 SA7229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의원님, 그 생존자 같습니다.”

  비서의 말에 진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서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TV중계화면이었다. 화면에는 경찰병력과 시위대 사이에 홀로 서 있는 남자를 비추고 있었다. 마침 카메라가 그의 모습을 가까이 잡았다. 백장훈이었다. 며칠 동안 면도는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한 지저분한 얼굴이었지만 그가 분명했다.

  “저놈, 저기서 뭐하는 거야?”

  “시위대 선봉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안 돼! 어서 막아!”

  “경찰총장한테 연락할까요?”

  “그래! 어서 연결해!”

  경찰총장은 진상의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받았다.

  “충성!”

  군인도 경찰도 아닌 진상에게 그들은 항상 같은 구호로 인사를 대신했다.

  “지금 광화문에 나가있는 책임자가 누구야?”

  진상은 인사도 없이 용건부터 말했다. 지금 그는 한시가 급했다.

 

  “저건 완전히 조준사격인데?”

  사람들에게 밀려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던 우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엄마처럼 주선을 잡을 꼭 잡고 있었다. 우재의 말을 들은 주선이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시위대와 경찰병력의 가운데서 한 사내가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고 있었다. 그는 이미 쓰러진 상태였다.

  “저 사람, 아무래도 이상한데?”

  우재가 다시 혼잣말을 했다.

  “주선아, 나 잠깐 다녀올게.”

  “어디?”

  “저 사람, 의식이 없는 것 같아.”

  우재가 물대포를 맞고 있는 사람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어떻게 하려고?”

  “모른 척 할 순 없잖아. 그래도 명색이 의산데.”

  “우재야.”

  주선은 가지 말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불길했다.

  “걱정하지 마.”

  우재는 과장된 미소를 보이며 주선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주선도 더 이상 그를 붙잡지 못했다. 우재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쓰러진 사람을 향해 나아갔다.

  “선생님, 나오지 마십시오. 경고했습니다.”

  경찰이 우재에게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재는 상관하지 않았다. 주선은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재의 뒷모습을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등이 산처럼 커보였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들어가세요!”

  스피커의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우재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쓰러진 사내를 조준하고 있던 물대포가 방향을 틀었다.

  “뭐야 저거?”

  경찰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물대포를 맞으면 최소한 2, 3미터는 뒤로 밀려나거나 쓰러져야 정상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뒤로 날아가야 했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시위대도 마찬가지였다.

  우재는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으면서 계속 쓰러진 사내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물대포는 그에게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것 같은 같았다. 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은 물대포를 맞기 전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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