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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공간지배자
작가 : 박군
작품등록일 : 2017.11.6

특별한 능력을 지닌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의 성장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2부>_15화
작성일 : 17-11-13 12:23     조회 : 29     추천 : 0     분량 : 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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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 오세요.”

  배를 문지르던 서희는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밝은 목소리와 달리 얼굴은 찡그린 채였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서희는 반사경으로 술을 고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홍할배’였다. ‘홍할배’는 얼굴이 붉은 그에게 서희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는 이 시간만 되면 가끔 술에 취해서 나타나는 단골 중 하나였다. 지금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게 술을 잔뜩 마시고 들른 것 같았다.

  서희는 다시 한 번 배에 손을 댔다. 아무래도 아까 주선과 먹은 철판볶음밥이 잘못 된 것 같았다. 역시 빈 속을 매운 음식으로 채우는 게 아니었다. 먹으면서도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에게는 오랜만에 눈앞에 차려진 기름진 음식을 마다할 재간이 없었다. 빈 속에 매운 음식과 오랜만에 들어온 기름진 음식의 조합이 탈이 나기 딱 좋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기는 했으나 막상 현실로 마주하니 감당하기 힘들었다. 급기야 배에서 요란한 소리까지 나기 시작했다. 서희는 초조한 눈빛으로 몸을 흔들며 술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 것 같은 홍할배를 바라보았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디 아픈가?”

  공간 안에 숨어 서희를 보던 태욱이 혼잣말을 했다. 그는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을 오늘도 참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서희의 모습에 태욱은 그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태욱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여름감기가 더 무섭다는 말이 떠올랐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닫혀 있던 공간을 열고 사라졌다.

  스무 번째 생일 날, 태욱의 능력에 변화가 생겼다. 그는 닫혀 있는 공간을 열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지금까지 막혀 있다고 생각한 그 공간들이 실은 막혀 있던 게 아니었다. 닫혀 있던 문을 태욱이 열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진화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안녕히 가세요.”

  진열된 술들과 한참을 대화하는 것 같던 홍할배가 드디어 나갔다. 그는 오늘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취한 채 들어와서 한참동안 술병들을 진지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그냥 나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서희는 배를 움켜쥐고 인상을 썼다. 다리가 저절로 꼬이기 시작했다. 집에 갈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던 그녀의 의지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공간에 다시 나타난 태욱의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서희를 감시하고 있는 사내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은 SA그룹 소속이 분명했다. 태욱이 서희를 떠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들은 아직 서희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태욱이 서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들은 다시 태욱을 잡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서희를 인질로 잡을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태욱은 고개를 흔들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시 고개를 든 태욱의 눈에 비틀거리며 편의점을 나서는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태욱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할아버지, 잠깐만요.”

  태욱은 갈지자로 걸어가고 있는 할아버지를 불렀다. 그의 느릿한 걸음덕분에 태욱은 꽤 오랫동안 할아버지를 지켜봐야 했다. 할아버지가 서희를 감시하고 있는 사내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린 태욱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당하는 느낌이었다.

  “나?”

  할아버지가 태욱의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붉은 얼굴에 초점이 흔들렸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술에 취한 모습으로 가게를 나서는 할아버지를 본 태욱은 얼마 전 봤던 기사를 떠올렸다. 감기로 힘들어하던 편의점 알바생에게 술에 취한 아저씨가 감기약을 건넸다는 훈훈한 내용이었다. 태욱은 자신이 사온 감기약을 할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서희에게 전해 줄 작정이었다.

 

  서희는 편의점 문을 잠가 놓은 열쇠를 풀었다.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지금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화장실은 편의점 알바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혼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문을 잠가야 했다. 그나마 그것도 손님이 있으면 가지도 못했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는 무작정 참을 수밖에 없었다.

  “휴!”

  문을 열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선 서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윽!”

  계산대로 향하던 그녀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긴장된 얼굴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실룩이기 시작했다. 배에는 손이 올려져 있었다. 2차 신호였다.

  “홍할배!”

  급하게 편의점 문을 열려던 그녀의 앞에 홍할배가 나타났다. 홍할배가 다시 돌아온 건 처음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속으로만 부르던 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녀는 급하게 자신의 입을 막았다. 다행히 상대는 취객이었다. 그는 여전히 초점이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흑! 왜 또, 읍, 오셨어요?”

  서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 번 일을 시작한 그녀의 대장은 멈출 줄 몰랐다. 그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저기 어떤 젊은이가……”

  서희는 홍할배의 느릿하고 어물거리는 말을 다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흡, 죄송해요!”

  서희는 떨리는 손으로 재빠르게 편의점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급하게 그러나 아주 조심스럽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봐, 어디가?”

  홍할배는 서희를 따라 나서려고 편의점 문을 밀었다. 양문의 손잡이를 둘러싼 쇠사슬이 서로 부딪히며 출렁거렸다.

  졸지에 편의점에 갇힌 홍할배는 벌어진 문 틈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서희를 향해 소리쳤다.

  “이거 가져가야지!”

  편의점 문 밖으로 삐죽 빠져나온 약봉지가 춤을 추듯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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