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은 벌써 화장실을 세 번째 다녀왔다. 초소의 문을 두드릴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환대해 줄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부대에 가자마자 수색대장이 직접 자신의 차로 사단장에게 데려갈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긴장되지는 않았다. 물론 사단장이라는 사람도 대단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군인이었을 때 얘기였다. 예비군에게는 사단장이나 군단장이나 옆집 아저씨나 다 똑같았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얘기가 달랐다. 장훈은 국회의원을 기다라며 사단장과 단 둘이 있는 이 시간이 숨이 막혔다. 어색해서 죽는다면 딱 이런 상황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단장도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인지 연신 줄담배를 피워댔다. 연기 때문에 기침 이 났다. 화장실이라도 가야 했다. 방에 딸린 화장실이어도 분리된 공간이었다. 그 곳에서는 숨 쉬기가 조금 더 나았다.
‘아, 펜!’
갑자기 생각났다. 안 그래도 장훈은 스마트폰을 북한어부들에게 뺏긴 걸 아쉬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국회의원이 만나면 분명히 보상 얘기를 할 것이다. 그런 건 녹음해 놔야 했다. 그런데 장비가 없었다. 부탁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여기까지 정신없이 오는 통에 가족한테도 전화 한 통 하지 못한 그였다. 사단장에게 부탁을 해봐도 도무지 들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차피 조금만 참으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가 펜이 생각났다. 지금 그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펜은 녹음기능이 있는 펜이었다. 남들이 과하다고 평가하던 그의 철저한 준비성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딸깍.’
장훈은 조심스럽게 펜을 작동시켰다. 녹음이 되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남들에게 비웃음을 당한 만큼의 거금을 주고 산 보람이 있었다.
“의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부관의 목소리에 사단장이 요란스럽게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에 있던 장훈은 녹음기능을 작동시킨 펜을 서둘러 주머니에 꽂았다.
“충성!”
고장군의 목소리였다. 장훈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문을 열었다. 그가 알기로 김의원은 군 출신이 아닌 검찰총장 출신이었다. 물론 여당의 총수 그는 대통령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돌 만큼 실세 중의 실세이긴 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장군이 군 선배도 아닌 사람에게 경례를 하는 것은 병장으로 제대한 그에게도 이상해 보였다.
“선생님이 생존자이십니까?”
문을 열자마자 장훈은 진상과 가까이서 얼굴을 맞댔다. 진상의 뒤로 똥 씹은 표정의 고장군이 보였다. 경례가 씹힌 모양이었다. 어쩐지 오버한다 싶었다. 김의원은 일행이 한 명 더 있었다. 낯이 익은데 누군지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네, 제가 생존잡니다.”
“어떻게 거기서 살아오셨습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근처에 어선이 있어서…….”
“어선이요?”
진상이 장훈의 말을 잘랐다. 목소리가 아까와는 다르게 날카롭게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거야?”
진상이 함께 온 일행에게 다그치듯이 말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진상과 함께 온 일행이 장훈을 쏘아보았다. 장훈은 자신이 뭔가 실수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다 밝혀질 일이었다.
“북한 어선이었습니다.”
“북한이요?”
“네.”
“그럼, 여기는 어떻게 내려왔습니까?”
“걸어서 왔습니다.”
“걸어서요?”
“네. 제가 예전에 여기 GOP부대에서 근무해서 이곳 지리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부들이 순순히 보내주던가요?”
진상이 장훈의 말을 끊었다.
“네, 뭐, 순순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화가 진행될수록 장훈은 이상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환영해주는 게 아니라 취조 받는 느낌이었다.
“혹시 그 어부들에게 무슨 부탁 같은 거 받지 않으셨나요?”
“네?”
진상과 함께 온 일행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려던 장훈은 무의식중에 그와 눈빛을 마주쳤다. 그리고 곧 입을 닫아버렸다. 날카로운 그 눈빛이 그의 기억을 되살렸다. 이제야 그가 누군지 생각이 났다.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부탁 같은 거 안 받으셨습니까?”
민정수석이 장훈을 몰아세웠다. 장훈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솟았다. 그의 머릿속에 ‘빨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장훈은 자신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펜을 생각했다. 저들도 녹음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고 불길했다. 이들이 여기 온 이유가 의심되었다. 장훈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기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저, 전화 좀 할 수 있겠습니까?”
“전화 하실 수 있는 시간은 따로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민정수석이 막아섰다. 장훈의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어, 이 사람 왜 이래?”
민정수석이 먼저 소리를 쳤다.
“뭐야 이거?”
민정수석을 따라 진상도 소파에서 일어났다.
“군의관 불러! 빨리!”
고장군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장훈을 향하고 있었다. 흰자위를 드러낸 정훈은 입에 거품을 문 채, 사지를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장훈은 입국심사카드의 직업란을 적을 때마다 아주 잠깐씩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 잠깐의 고민 끝에 그가 적는 직업은 businessman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대부분의 일이 회사 업무로 출장을 다녀오는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직업란을 적을 때마다 펜을 머뭇거리는 이유는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actor, 그것이 직업란에 그가 진짜 적고 싶은 단어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는 배우를 꿈꿨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를 배우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게 그를 내몰았다. 그래도 그는 그 꿈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만년 과장이라는 놀림에도 늘 칼퇴를 고집한 이유도 그 꿈 때문이었다. 그는 저녁마다 연극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도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 기분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불쌍해 보이는 얼굴의 장점을 살려서 아주 작은 단역이라도 꾸준히 작품에 출연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가장 자신 있는 연기가 바로 ‘거품 물고 발작하기’였다. 장훈은 다른 건 몰라도 이 연기만큼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감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