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을 해체하겠습니다.”
해외순방 중이던 대통령은 비행기 사고 소식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긴급담화를 통해 SA7229기 유가족들을 위로하면서 깜짝 발표를 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통령의 결정에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언론들까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공중분해 될 운명에 놓인 해경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어머, 웬일이니?”
그리고 여기, 멘붕에 빠진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서희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 사장이었다. 뉴스를 보던 그녀는 급하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남편이었다.
“뉴스 봤어? 어? 뭐라고?”
소리가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왜 이렇게 시끄러워!”
해영의 앙칼진 목소리에 카페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
보다 못한 서희가 해영에게 눈치를 주었다. 상황을 파악한 해영은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바깥으로 나갔다. 서희는 그런 해영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남편 자랑을 할 때마다 재수 없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안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서희는 괜히 깨끗한 조리대 위를 힘주어 닦았다.
“카페콘레체 한 잔 주세요.”
“네?”
나가는 해영과 엇갈려 들어온 손님이 메뉴에 없는 주문을 했다.
“카페콘레체요.”
“아, 카페라떼요.”
혀를 너무 굴려서 못 알아들을 뻔했다. 그녀는 모자에 선글라스, 그리고 마스크까지 하고 있었다. 서희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찰 뻔 했다. 하여튼 요즘 연예인병 걸린 애들이 너무 많다.
“서희야!”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서희의 눈이 커졌다. 방금까지 재수 없다고 생각하던 손님이 선글라스를 내리고 서희와 눈을 마주쳤다.
“주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와, 언제 왔어?”
서희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오랜만에 지어보는 밝고 순수한 미소였다.
“방금, 놀라는 거 보니까 나 오는 거 진짜 몰랐나 보네.”
서희의 말에 주선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나 미래 안 보인지 꽤 됐어.”
“정말?”
주선의 놀란 눈을 보며 서희는 괜찮다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끝나?”
주선은 일부러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서희는 밖에서 전화를 붙잡고 있는 사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한 세 시간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서희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소중한 친구였다. 변회장 사건 이후로 많이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SNS나 이메일을 통해 연락은 계속 주고받았다. 그녀는 서희가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알았어. 나도 볼 일이 있으니까 이따가 다시 올게.”
“정말 그래도 돼?”
서희도 주선의 소식을 모르지 않았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자들과 파파라치들이 주선의 일상을 아주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헛걸음시킨 게 미안했다.
“그럼, 그래도 되지. 이따 봐!”
주선은 손을 흔들며 그대로 뒤돌아 나갔다.
“뭐야, 주문 안했어?”
그녀와 다시 엇갈려 들어온 해영이 그녀를 째려보며 서희에게 말했다.
“네.”
“흥, 아주 웃겨. 요즘 애들은 지들이 다 연예인인 줄 안다니까.”
“그러게요.”
서희는 해영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것이 지금 서희가 해영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