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진상은 인상을 썼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방해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러뒀건만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오비서가 SA그룹과 관계만 없었다면 벌써 잘라버렸을 것이다.
“잠깐만. 우리 오비서가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말이야.”
진상은 화를 감추고 미소를 보였다. 그는 지금 동료의원들과 내기 골프 중이었다.
“뭐야?”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이번에는 제대로 화를 낼 작정이었다.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오비서가 전화기를 내밀었다.
“여보세요.”
“의원님, 저 고장군입니다.”
“고장군? 고장군이 어쩐 일이시오?”
고장군은 전역을 앞두고 정계진출을 위해서 요즘 여기저기 줄을 대고 다니는 친구였다. 진상도 다른 의원의 소개로 그를 만났었다. 얼굴에 욕심이 보이는 게 쓸데가 있을 것 같아 슬쩍 다리를 내어주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 일도 없이 전화를 했을 리 없었다.
“꼭 아셔야 할 일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진상은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오비서와 눈이 마주쳤다. 화를 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인가요?”
“전화로는 좀 곤란합니다.”
만나자는 얘기에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경험상 이렇게 시작한 얘기 중에 정말 중요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이건 안전한 거니까 그냥 말씀 하시지요.”
“저, 그게….”
상대가 뜸을 들였다. 만나자는 제안이 무산된 게 서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상에게는 그런 것까지 어루만져줄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할 얘기 없으면 이만 끊습니다.”
“그 비행기 사고 말입니다.”
고장군의 다급한 얼굴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비행기?”
고장군이 제대로 된 미끼를 던졌다. 사고 직후, SA7229기 유가족들이 시위에 나섰다. 그들은 어떤 보상도 거부했다. 승객과 승무원까지 모두 166명을 태운 비행기가 통째로 사라졌는데 구조는커녕 원인규명조차 못하는 정부의 무능함을 탓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언론과 단체들이 생겨났다. 경찰과 검찰을 이용해 막긴 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평화적인 시위까지 옛날처럼 무력으로 진압할 수는 없었다.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진상은 ‘해경해체’라는 유례없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의 무능이 아닌, 해경의 무능으로 몰아가려는 작전이었다. 반발은 좀 있겠지만 그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상은 해외순방을 빌미로 골프여행 중이던 대통령을 급하게 불러들였다.
“말하시오.”
“생존자가 나타났습니다.”
“뭐요?”
진상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그를 기다리며 얘기를 나누던 다른 의원들의 시선도 그에게 쏠렸다.
“의원님.”
오비서가 눈치를 주었다. 진상은 동료 의원들에게 웃어 보이며 괜찮다는 의미로 손짓을 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내가 갈 때까지 붙잡아 두시오. 그리고 이 사실이 밖으로 새나가면 절대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오비서, 준비해.”
진상은 전화를 끊자마자 오비서에게 떠날 준비를 시켰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다른 사람이 알기 전에 생존자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려야 했다.
“이걸로 됐어.”
전화를 끊은 고장군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비행기 구조를 막은 사람이 김진상 의원이라는 소문이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았다. 이유는 상관없었다. 이번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지난번에 무산된 정계진출을 다시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름에 번들거리는 얼굴이 더 반짝이는 것 같았다.
“수색대장이 직접 그 생존자 데리고 들어오라고 해.”
부관에게 지시를 내린 그의 거친 숨을 따라 불뚝 튀어나온 배가 바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