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간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대로야. 우리는 이대로 돌아간다.”
“지금 눈앞에서 비행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요!”
“나도 알고 있어.”
“함장님!”
124정 함장은 대답 대신 입을 굳게 다물었다. 비행기가 서해상에 추락했다는 소식에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배부터 출항시킨 그였다. 근처에서 조업을 하던 어선들의 도움으로 추락한 비행기를 빨리 발견할 수 있었다. 구조 준비를 서둘렀다. 북한 해역이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만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조를 시작한다는 보고 뒤에 예상하지 못한 상부의 대답이 돌아왔다.
“구조를 불허한다.”
함장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다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구조를 불허한다.”
상부에서 상황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일단 구조부터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함장은 교신을 끊었다. 그와 동시에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우선배였다.
“선배님!”
그는 마치 전화하는 상대가 앞에 있는 것처럼 허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전화를 받쳐들었다.
“우리 후배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함장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솟았다. 이번이 마지막 진급기회였다. 이번에도 미끄러지면 당장 내년에 옷을 벗어야 했다. 아직 대학에도 들어가지 않은 자식이 둘이나 있는 그에게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런 그의 숨통을 쥐고 있는 인물이 바로 우선배였다.
“지금 서해에 나가 계시지요?”
“네.”
지금의 위치는 직속상관에게만 보고했다. 그것도 불과 몇 분전이었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우선배는 질문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행기도 보고 있고요?”
“네.”
“잘 가라앉고 있나요?”
“네?”
함장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다 가라앉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우선배는 지금 비행기가 그대로 가라앉기를 바라고 있었다.
“제 말뜻 아시겠지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악마와 거래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혹이 늘 그렇듯 유혹당하는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힘들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후배님만 믿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악마의 손을 잡았다.
“아무리 북한 해역이라도 민간인 구조는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박경위는 눈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비행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행기가 추락한 지점은 북한해역이었다. 하지만 경계에서 겨우 1~2km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거리였다. 외교 분쟁은 나중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함장이 보이는 태도를 그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돌아간다.”
“함장님!”
“명령이다.”
함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듯 눈을 감아버렸다.
“여기요! 여기!”
소리치며 손을 흔드는 장훈을 향해 배가 한 척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었다. 잘 날아가고 있는 줄 알았던 비행기가 갑자기 바다에 곤두박질쳤다. 위험을 경고하는 방송은커녕 안전벨트 표시등도 들어오지 않았다. 승무원들도 몰랐던 것 같았다. 바다에 부딪히는 순간 그들도 승객들과 같이 나뒹굴었다. 오직 장훈 혼자만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안전에 대한 강박증이 있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비상구 손잡이를 찾았다. 항상 비상구 옆 좌석을 고집한 보람이 있었다. 머리가 울리고 시선이 흩어져서 내 한 몸 챙기기도 버거웠다. 혼자 힘으로 사람들을 구하는 것보다 나가서 구조를 요청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비상구를 열고 나온 그는 손목에 차고 있던 구명튜브를 작동시켰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비행기나 배를 탈 때마다 항상 착용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걸 챙길 때마다 그를 비웃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떤 구박도 좋았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여름인데도 바닷물은 얼음장 같았다. 차가운 바닷물이 피부에 닿자 비로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향해 다가오는 배는 속도가 많이 느렸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비행기 선체는 전부 잠기고 물 밖으로 꼬리만 내밀고 있었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장훈의 앞에 줄이 하나 던져졌다.
장훈의 귀에 자신을 건져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떨어지는 충격에 고막이 다친 것 같았다. 비릿한 생선 냄새가 장훈의 코를 찔렀다. 장훈은 그제야 자신이 올라탄 배를 둘러보았다. 어선이었다. 아니, 어선보다는 통통배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작고 허름한 배였다.
누군가가 그의 눈앞에 대접을 내밀었다. 물이었다.
“이것부터 날래 마시라우.”
“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히 한국말인데 한국말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기를 바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 설마?”
그는 뱃머리 끝으로 기어갔다.
“안 돼.”
그는 힘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장훈의 눈앞에는 그가 군복무 시절에 철책 너머로 지겹도록 지켜봤던 북한 땅이 펼쳐져 있었다. 장훈을 실은 배는 북한을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