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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공간지배자
작가 : 박군
작품등록일 : 2017.11.6

특별한 능력을 지닌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의 성장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2부>_2화
작성일 : 17-11-09 11:58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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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인천공항에 오늘 오후 한 시에 도착 예정이었던 SA항공 7229편 비행기가 서해에 추락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 한 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SA항공 7229편 비행기가 서해에 추락했습니다. 승객들의 상황에 대한 소식은 들어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건물에 걸려 있는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우던 모델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비장한 표정의 아나운서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는 긴장된 목소리로 거리의 사람들에게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서희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그녀는 뉴스속보가 나오는 대형 스크린을 힐끗 본 게 전부였다. 서희는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잰걸음으로 빠르게 걷고 있었다. 청순해 보이는 화장기 없는 얼굴도 굳어 있었다.

  “여보세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던 서희가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서희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 사장인 구해영이었다.

  “다 왔어요.”

  “알았어. 빨리 와.”

  전화를 끊고 시간을 확인했다.

  “뭐야, 아직 시간 안 됐잖아.”

  해영은 서희의 노동력을 알토랑 같이 써먹었다. 면접 날 사장이 자신의 아르바이트 이력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을 때 눈치 챘어야 했다. 그녀는 아르바이트의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테이블을 정리하던 서희는 나가는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물론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야, 너 그거 들었어?”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 앞에 선 서희에게 해영이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해영과 대화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무슨 얘기요?”

  서희는 눈을 반짝였다. 점점 늘어가는 연기에 스스로 감탄할 지경이었다. 눈물연기는 졸업한지 이미 오래였다. 요즘은 눈빛연기에 매진하고 있었다.

  “비행기 추락한 거.”

  “아, 그거요.”

  서희는 카페에 오면서 들었던 뉴스 속보를 떠올렸다.

  “서해에 추락했다면서요.”

  이야기를 적당히 마무리하고 싶은 서희는 일부러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 반응이면 해영도 흥미를 잃을 것이다.

  “그 다음은 못 들었어?”

  예상이 빗나갔다. 해영는 비행기가 추락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거였다. 그리고 서희는 그 이야기를 몰랐다.

  “못 들었는데요.”

  걸려들었다. 이제 꼼짝없이 해영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

  “구조를 안 한 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날씨가 나쁘다나 뭐라나, 어쨌든 해경에서 구조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했어.”

  “정말요?”

  서희는 시간을 확인했다. 12시였다. 서희가 속보를 접했던 시간은 10시 20분쯤이었다. 비행기가 서해에 추락한 걸 확인한지 두 시간도 채 안 돼서 구조포기라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비행에게 탔던 사람들은요?”

  “모르지.”

  “뭐요?”

  해영의 무신경한 대답에 서희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을 했다.

  “우리 남편이 그러는데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나봐.”

  다행히 해영은 서희가 흥분한 이유를 다르게 해석한 것 같았다. 서희는 이제야 해영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았다. 그녀는 틈만 나면 남편이 해양경찰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간부라는 걸 자랑했다.

  “띠링.”

  “어서 오세요.”

  손님이 들어오면서 대화가 끊겼다. 손님이 슬슬 많아질 시간이었다. 서희는 설거지를 서둘러 끝냈다. 그녀는 쉴 틈도 없이 손님들이 주문한 음료들을 숙달된 솜씨로 척척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주문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서해에 추락한 비행기 소식은 서희의 머릿속에서 구석으로 치워졌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내일은 일찍 와.”

  “네.”

  서희는 쓴웃음을 감추며 돌아섰다. ‘내일은 일찍 와’라니. 자신이 오늘 늦게 온 것처럼 말하는 해영의 말에 발끈하려던 걸 겨우 참았다. 그녀는 마음을 토닥였다. 이깟 일로 흥분하면 안되었다. 서희는 해영이 최저시급을 주면서 엄청난 특혜를 베푸는 것처럼 굴 때마다 올라오는 분노를 꾸역꾸역 삼켜냈다. 그것도 알바생이 가져야 할 미덕 중 하나라는 걸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준비시간과 정리시간이라는 핑계로 아르바이트 시간 앞뒤로 30분 씩, 한 시간의 무료봉사는 그들에겐 당연한 권리였다. 그래도 참아야했다. 카페알바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고기집이나 한정식집에 비하면 카페는 양반이었다. 진상들을 상대해야 하는 호프집 알바를 다시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머니, 저에요.”

  “어서 와.”

  현관문을 열어준 길상의 어머니는 곧바로 주방으로 사라지셨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10년이 지났지만 길상의 어머니는 아직도 힘들어하셨다. 그건 서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가끔 길상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왔어?”

  길상이의 방문을 열자 우재가 그녀가 반겨주었다. 그의 뒤로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어떻게 왔네. 못 올 줄 알았는데.”

  “바빠도 와야지.”

  햇빛이 눈에 익자 그림자 진 우재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조각 같은 얼굴은 여전했다. 약간 충혈된 눈과 지친 표정이 얼마 안 되는 휴식 시간을 쪼개서 왔다는 말을 대신 전해주고 있었다.

  우재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십분 활용했다. 그는 중력을 아주 세밀하게 조정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결과, 우재는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모든 수술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어느 정도의 피는 일부러 흘려주었다. 게다가 그는 중력을 이용해서 손을 대지 않고도 물건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 능력도 수술실에서는 꽤 유용한 모양이었다.

  실력을 인정받은 우재는 일 년 전에 이미 국내최고의 의대인 명문의대 신경외과교수로 임명되었다. 최연소라는 타이틀과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인정받는 실력, 그리고 출중한 외모까지 가진 그에게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TV에서도 출연요청이 많은 것 같았지만 대부분 거절하는 모양이었다.

  “너는 요즘 어때?”

  “잘 지내.”

  서희는 입꼬리에 힘을 주었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연기도 28년 지기 친구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변회장이 공간으로 사라진 후, 우신그룹에서 장학금과 생활비를 대주었다. 그 일 년 동안 서희는 고3 수험생으로서 정말 충실하게 공부만 했다. 공부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문득문득 할머니와 길상이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둑이 터지는 것처럼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마다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서 위로해 주던 태욱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모습을 감췄다.

  어쨌든 서희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명문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이름이 알려진 학교였다. 게다가 그녀가 원했던 문헌정보학과였다. 서희가 졸업한 미래고등학교에서는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그 학교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서희는 책이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하지만 대학교 입학을 끝으로 ‘해피엔딩’이라는 자막은 영화 속 얘기일 뿐이었다. 진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서희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학자금대출도 최대치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휴학을 밥 먹듯이 했다. 그 덕에 서희는 아직도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이러다간 해외 연수에 군대까지 다녀온 남자동기들보다도 늦게 졸업할 판이었다. 그녀는 졸업까지 한 학기 남겨놓고 또 다시 휴학계를 제출했다.

  “밥 먹게 나와.”

  길상의 어머니 목소리에 우재와 서희는 동시에 움직였다.

  “아버님은요?”

  식탁의자에 앉으면서 우재가 물었다.

  “늦으신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서희도 그 이유를 알았다. 길상의 아버지는 지금 길상이를 묻어둔 곳에 계실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

  서희와 우재가 동시에 숟가락을 들었다. 미역국이 맛있었다. 오늘은 길상이의 생일이었다. 길상이의 죽음에 대해서 서희는 길상의 부모님께 설명드릴 자신이 없었다. 우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부터도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설득은 조실장이 맡아줬다. 조실장이 어떻게 설명했는지 자세히는 몰랐다. 어쨌든 길상의 부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훼손된 시신을 길상이라고 믿었다. 길상의 장례를 치르던 그 모든 순간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게 끝나 있었다.

  그 다음해부터 서희와 우재는 길상의 생일마다 그의 집에서 만났다. 만날 때마다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더 아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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