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눈앞에 날벌레 한 마리가 날아다닌다고 치자.
별 건 아니지만 신경은 쓰이지. 그냥 두면 어느새 열 마리, 스무 마리로 금방 늘어나 버리니까. 그런데 말이야. 사실, 날벌레가 스무 마리가 된다고 해서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해. 설령 백 마리라고 해도 말이야. 날벌레는 날벌레일 뿐이니까. 그냥 지저분하고 계속 신경만 쓰일 뿐이지.
중요한 건 내가 신경 쓰는 걸 정말 싫어한다는 거야. 게다가 난 지저분한 것도 못 참거든. 그래서 나는 그 날벌레 한 마리를 그냥 죽일 거야. 어차피 힘도 별로 안 들거든. 잠깐 집중해서 손바닥으로 한 번, 탁! 그뿐이지.
그러면 끝이야. 그러면 싫은 걸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거든.
프롤로그
“고맙습니다.”
출근버스에서 내리던 현수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새벽인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넓은 공항 로비를 채우고 있었다. 여름방학 전인 지금은 성수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이용객은 매일 늘어나는 추세였다. 현수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와요!”
현수는 일부러 활기차게 인사했다. 매일 아침마다 보는 보안요원도 밝게 웃어주었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3교대 근무가 힘들 텐데도 그는 지금껏 한 번도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어서 와.”
“늦어서 죄송해요.”
“괜찮아, 겨우 5분이데 뭘.”
말은 그렇게 해도 그 5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을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다행히 전타임이 김선배라서 다행이었다. 요즘 유독 까칠한 전선배였으면 지금쯤 호된 꾸지람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일하는 곳은 관제실이었다. 중학생 때 진로교육으로 공항에 견학을 왔었다. 그때부터 그는 항공관제사의 꿈을 키웠다. 사방이 탁 트인 높은 공간에서 활주로를 바라보며 비행기들의 이착륙을 돕는 일이 멋져 보였다. 물론 꿈꾸던 미래와 현실은 많이 달랐다. 일단 그가 일하는 곳은 커다란 창문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는 어두컴컴하고 모니터와 컴퓨터로 가득 차 있는 관제실에서 하루의 반 이상을 보냈다.
“별 일 없으셨죠?”
“그럼, 별 일 없어야지. 여기, 오늘 항공 스케줄.”
현수가 서류를 받아들자 그는 곧바로 가방을 들고 문으로 향했다.
“저는 이만 퇴근합니다.”
김선배가 문을 나서기 전에 목소리를 높여 인사했다.
“그래, 수고했어.”
김실장이 먼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관제실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뛰어난 실력과 넉넉한 인품으로 관제실 식구들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다른 관제사들은 대부분 시선을 모니터에 둔 채,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조심히 가세요.”
김선배에게 인사를 마친 현수도 자리에 앉았다. 그는 헤드폰을 착용하며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NK736, 고도 18,000으로 하강하세요.”
그는 능숙하게 비행기의 착륙을 유도했다.
“SA7229, 6번 활주로에 착륙을 허가한다.”
착륙이 예정된 비행기에 교신을 보낸 현수는 배를 문질렀다. 간식으로 먹은 샌드위치가 더부룩했다.
“SA7229, 6번 활주로에 착륙을 허가한다.”
현수는 다시 교신을 보냈다. 물이라도 마셔볼까 싶어 생수병을 찾았다. 생수병에 물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공스케줄에 따르면 앞으로 30분 정도는 한가했다. 도착 시차를 관리해야 할 바쁜 타임은 한 시간 뒤에나 시작될 것이다. 그는 일어난 김에 화장실도 다녀올까 생각했다.
“아, 맞다!”
생수병에 정수기 물을 담으면서 허전함을 느낀 현수는 금방 그 이유를 깨달았다. 방금 전 교신에 대한 응답을 듣지 못했다.
“SA7229, 6번 활주로에 착륙을 허가한다.”
급하게 자리에 앉은 현수는 다시 교신을 보냈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SA7229, 응답하라. 여기는 인천공항이다.”
불안했다. 물을 마시는 것도 잊어버렸다.
“현수씨, 무슨 일 있어?”
옆자리에 있던 홍선배였다. 관제실 근무만 10년차인 베테랑이었다. 신참인 현수에게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주는 고마운 선배였다. 언제부턴가 현수는 그런 홍선배를 몰래 좋아하고 있었다. 며칠 전, 그녀는 여름 맞이 준비라면서 긴 생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타났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남자친구하고 헤어진 모양이었다. 현수는 단발머리를 한 홍선배가 더 좋았다.
“교신을 보냈는데 응답이 없네요.”
“모니터엔 있고?”
“네, 여기.”
현수는 모니터에 있는 여러 개의 점 중에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시 해봐.”
“네.”
현수는 목을 가다듬었다.
“SA7229, 응답하라.”
대답이 없었다.
“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킨 현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그래?”
“사라졌어요.”
“사라지다니?”
“여기요.”
현수가 다시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짚었다. 아까 가리켰던 그 지점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그곳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무슨 일이야?”
김실장이 어느새 현수의 뒤에 와 있었다.
“비행기가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평소와 다른 김실장의 분위기에 관제실의 모든 시선이 현수에게 집중됐다.
“모니터나 중계기 문제는 아니고?”
“아닙니다.”
“다른 비행기는?”
“같은 섹터 안에 다른 비행기들은 이상 없습니다.”
김실장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생각할 때마다 나오는 그의 버릇 중 하나였다.
“없어진 비행기가 뭐야?”
“SA7229입니다.”
“성훈씨, 멀티에서는 보여?”
현수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실장이 멀티를 담당하고 있는 성훈씨를 불렀다.
“멀티에서도 안보입니다.”
긴장된 공기가 관제실 안을 가득 메웠다.
“명현씨, ATM시스템 좀 확인해줘요. 수진씨는 SSR 확인해주고.”
김실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둘은 이미 행동에 들어갔다. 긴장된 분위기가 관제실 안의 공기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일단, 6번 활주로는 계속 열어놓고, 다른 비행기들은 조금 멀리 우회해서 착륙시켜요.”
김실장은 관제실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현수씨는 긴급으로 계속 교신을 시도해줘요.”
“알겠습니다.”
현수는 긴장된 표정으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SA7229, 응답하라.”
“실장님, ATM에서도 잡히지 않는답니다.”
명현씨였다.
“ATM에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김실장은 3년 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현수씨.”
옆자리에서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홍선배가 현수를 불렀다. 현수와 함께 김실장도 홍선배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선배.”
“혹시, 구조요청 있었어요?”
“네?”
현수는 기억을 더듬었다. 구조요청은 없었다. 교신이 끊기기 전 어떤 구조요청도 없었다. 그냥 갑자기 사라졌다.
“없었어요.”
현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기억의 기억을 천천히 더듬었다. 분명히 구조요청은 없었다.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거나 졸지도 않았다. 분명히 모든 순간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구조요청도 없이 그냥 사라졌단 말이야?”
김실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 일 없이 잘 운행하던 비행기가 갑자기 통째로 사라졌다. 그가 관제실에서 근무한 20년 간 이런 일이 없지는 않았다. 갑자기 교신이 끊긴 적도 있었고, 모니터에서 사라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특정지역을 벗어나면 끊겼던 교신은 금방 다시 연결됐다. 모니터에서 사라진 비행기도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나타났다.
딱 한 번, 김실장이 근무하는 동안 실제로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그 비행기는 교신이 끊기기 전에 구조요청을 했다. 모니터에서 사라진 건 그 다음이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김실장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처럼 비행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그럼, 사고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