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에 눈이 부실만큼 좋은 날이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무 사이를 빠져나갔다. 공사가 한창이었다. 변회장의 저택으로 사용되던 건물이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섬 전체를 싼 값에 사들인 새 주인은 다시 그 건물을 호텔로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나란히 서서 공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가족들은 좋은 매물을 싼 가격에 샀다는 큰 만족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빠, 진짜 이거 다 우리거야?”
어린 아들은 아빠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다 우리 거지.”
아빠가 아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아이는 아빠의 두꺼운 팔에 마음껏 의지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응!”
다람쥐 같은 얼굴을 한 아이는 눈을 반짝였다.
“아빠, 공사는 언제 끝나요?”
옆에 얌전히 서 있던 딸이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 같은 남자아이보다 한두 살 더 많아 보였다. 목소리가 또렷하고 눈빛이 맑았다.
“글쎄, 조경까지 하면 한 3개월은 더 걸릴 것 같은데, 왜?”
거친 외모와는 다르게 아빠는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친구들 초대하고 싶어서요.”
“알았어. 그럼 아빠가 공사 끝나면 우리 준희 친구들부터 싹 초대할게.”
“약속했어요. 아빠.”
“그럼.”
“아빠, 나는?”
이번에는 아빠와 누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들이 조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직도 아빠의 목에 매달린 채였다.
“얘들아, 그만 하고 저기 가서 놀고 있어.”
엄마가 곤란해 하는 아빠의 표정을 읽었다.
“그래야 이따가 집에 가는 길에 맛있는 거 먹고 들어가지.”
“난 고기!”
남자아이가 미끼를 덥석 물었다.
“그래, 고기 사줄 테니까 저기 가서 누나랑 얌전히 놀고 있어.”
“와! 고기! 고기! 고기!”
남자 아이는 고기 구호를 외치며 아빠에게서 떨어져 내려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준희야, 준호 좀 잘 봐!”
“알았어요.”
딸이 의젓하게 대답하고 준호가 달려간 쪽으로 걸어갔다.
“대신 집에 가면 도장 찍어줘요.”
“알았어.”
준희는 착한 일을 할 때마다 도장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로 일주일에 열 개 채우는 게 목표였다. 준희의 부모님은 그런 기발한 과제를 내주신 담임선생님도, 그리고 그 숙제를 열심히 하는 준희도 무척 고마웠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확인한 부부는 본격적으로 공사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엄마는 작업반장을 찾았고, 아빠는 호텔 주변을 돌며 조경을 구상했다.
“야,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왜?”
“위험하잖아.”
“뭐가 위험해!”
“누나 말 들어!”
준희가 손을 허리에 짚고 목소리를 높였다. 준호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준희는 준호가 호텔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챙겼다. 준호는 숲을 탐험하고 싶었지만 아직 누나에게 대들만한 배짱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준호는 호텔 주변을 뛰어다니며 누나와 장난을 쳤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수상한 그림자가 있었다. 그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데다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사내를 발견한 준호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
깜짝 놀란 사내는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 바람에 모자가 벗겨지고 마스크도 떨어졌다. 어설픈 동작으로 모자를 주워 쓰고 마스크를 착용하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마스크를 포기하고 고개를 들었다.
고용주였다. 그는 한참 전부터 다른 데 정신이 팔려서 준호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웬 돌이, 흠흠.”
용주는 말끔한 길바닥을 발로 차며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었다. 준호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여전히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준호야, 이리 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준희의 경계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용주를 보고 있던 준호가 누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야.”
용주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 분이 너희 아버지시니?”
용주는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가리켰다. 아빠는 아직까지 조경을 구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준호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준호야, 이리 오라니까.”
준희가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경계를 푼 눈치는 아니었다.
용주가 코를 씰룩거렸다. 준희에게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곧 준희도 준호만큼 용주와 가까워졌다.
“흐으으음.”
용주는 코를 깊게 들이마셨다. 준희는 그런 용주를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의 머릿속엔 ‘변태’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준희는 동생의 팔을 잡아당겼다.
“맞아! 역시 같은 냄새야!”
준희가 동생의 팔을 잡아 끌고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용주는 눈을 떴다. 그는 한 손으로 안경을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 이번에는 확실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용주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용주는 태욱과 같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그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찾아냈다. 용주는 이 소녀에게서 그와 같은 냄새를 맡았다. 용주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이 섬과 호텔을 거의 공짜로 넘겼다.
“당신 뭐야?”
굳이 대답을 바라는 질문은 아니었다. 목소리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용주가 고개를 돌렸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여자아이 뒤로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였다. 그와 눈이 마주친 용주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질 뻔했다. 그의 손에는 각목이 들려 있었다.
“잠깐만요!”
용주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용주와 눈이 마주친 그는 말없이 각목을 두 손으로 잡으며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아이들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자가 눈빛과 표정으로 드러났다. 용주는 대화를 포기하고 주차해 둔 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도 용주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다급한 나머지 용주는 차 문도 제대로 못 열었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시동을 걸었다. 각목이 보닛 위를 때렸다. 용주는 빠른 속도로 후진을 했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용주는 초라한 외마디만 남겨둔 채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