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끈한 바람이 불었다. 우재와 주선은 진지한 표정으로 종이등을 하늘에 놓아주었다. 그들이 서 있는 다리 밑으로 바나나 잎으로 만든 연꽃모양의 쪽배들이 무리를 이루며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며 떠가는 종이등의 향연과 강물을 따라 끝없이 흘러가는 촛불을 밝힌 쪽배들의 행진이 마치 데칼코마니 같았다.
이 배경과 어울리는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 속에 이질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두 사람이 있었다. 우재와 주선이었다. 그들의 몰골은 거지나 다름없었다. 얼굴에 흐르는 땟국물과 너덜너덜해진 옷들은 수려한 우재의 외모를 완전히 가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딱 붙어있는 주선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실장 아저씨가 나한테 복수하는 게 틀림없어.”
여기까지 오는 내내 주선이 중얼거린 말이었다.
“돌아가면 가만 안 둘 거야.”
이 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주선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우재는 동의한다는 의미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재와 주선이 있는 곳은 태국이었다. 지금 이곳은 로이 끄라통 축제가 한창이었다. 우재와 주선은 이곳까지 오는데 꼬박 삼 일이 걸렸다.
“저한테 추적을 피하기 위한 최적의 루트가 있습니다.”
조실장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우재와 주선은 조실장이 그저 고맙고 든든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조실장의 얼굴을 잠깐 스치고 지나간 사악한 미소를 봤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한 인천항에서 자신들이 탈 배를 확인했을 때라도 눈치 챘어야 했다.
우재와 주선이 탄 배는 낮은 파도에도 뒤집힐 듯이 출렁이는 작은 고깃배였다. 그들은 그 뱃머리를 붙잡고 속에 든 것을 모두 바다에게 모두 내어주었다. 그때부터 우재와 주선의 뒤늦은 후회가 시작되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도착했다는 소리에 배에서 기듯이 내린 주선과 우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렴풋이 중국에 도착했다는 말만 겨우 알아들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주선과 우재는 그들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탔다. 탔다는 표현보다 실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차는 비포장도로로만 달렸다. 주선과 태욱은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배에 들은 것이 없어서 헛구역질만 했다. 차가 멈춘 곳은 미얀마 국경이었다. 그리고 미얀마에서 태국까지 그들은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 실려 있어야 했다.
그 삼일의 시간 동안 우재와 주선은 검은 양복들에게 잡혀 고문당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깨어 있는 시간도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그 힘겨운 시간들을 우재와 주선은 오직 서로에게만 의지해 버텨냈고, 서로가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
“배고프다.”
어두운 하늘에 반짝이며 떠가는 수많은 종이등을 바라보며 넋을 놓은 듯 주선이 중얼거렸다.
우재는 말없이 마른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