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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공간지배자
작가 : 박군
작품등록일 : 2017.11.6

특별한 능력을 지닌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의 성장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27화
작성일 : 17-11-08 10:28     조회 : 26     추천 : 0     분량 : 2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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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싱그러운 바람이 서희의 머리칼을 간지럽혔다. 날리는 머리칼이 옆에 있던 태욱의 얼굴에 닿았다. 태욱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석양에 오렌지 빛으로 물든 서희의 얼굴이 비쳤다. 그녀는 프로방스 방투산 끝자락에 서서 루브롱 꿀롱 계곡을 눈에 담고 있었다.

  태욱과 서희는 지금 프랑스의 시골마을, 루시용에 있었다.

 

  “아무래도 찢어지는 게 좋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 조실장이 그들을 모아놓고 한 말이었다.

  “그들은 여러분들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 정도의 수준이면 당연히 우리 쪽 정보도 웬만큼 들어갔을 겁니다.”

  조실장의 목소리는 한 층 더 진지해졌다.

  “그래서 저는 그룹의 자산을 이용하지 않고 여러분을 숨길 생각입니다.”

  일리 있는 결론이었다.

  “그러려면 인원이 적을수록 좋습니다. 저쪽에서도 남자 둘, 여자 둘이 함께 다니는 그룹을 찾고 있을 테고요.”

  그렇다고 여자 둘만 다니게 하기에는 불안하다는 게 조실장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태욱과 서희, 그리고 우재와 주선이 한 팀이 되어 따로 숨어 있기로 했다. 팀을 나누는 데는 주선의 주장이 가장 많이 반영되었다.

  조실장이 자신만 아는 곳을 소개해 줬지만 태욱은 정중히 그 제안을 거절했다. 대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서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몇 번의 실험 결과 태욱은 서희 뿐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공간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우재와 주선의 도피를 돕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채 있기로 합의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도 조실장의 생각이었다.

 

  “여기, 참 좋다.”

  서희가 태욱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태욱은 서희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다행이네.”

  “고마워.”

  서희의 미소에 눈이 부셨다. 방금 전 서희가 빛나보였던 게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뭐가?”

  태욱은 서희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서희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냥 다.”

  “다?”

  “응. 이따가 먹을 생선과 바게트도.”

  “어떻게……, 아! 맞다.”

  태욱은 서희가 미래를 본다는 사실을 뒤늦게 생각해냈다.

 

  태욱과 서희는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방이 두 개 딸린 조그마한 집을 빌린 그들은 이곳에서 삼 일째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휴가를 함께 보내는 연인처럼 보이는 게 사람들의 관심을 덜 끌 거라는 조실장의 조언대로 그들은 서툴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연인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들은 일어나자마자 근처 가게에서 장 본 음식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팔짱을 낀 채 산책을 했다. 점심에는 식당에서 프로방스 풍으로 양념한 양고기를 사먹거나, 생선요리를 사 먹었다. 저녁으로는 다시 낮에 먹지 않은 생선이나 고기를 먹었다. 바게트도 그들이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였다. 디저트도 빼놓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돈을 현금으로 지불했다. 태욱과 서희는 조실장의 지시대로 카드 사용이나 전화 같은 추적이 될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들을 수상하게 보던 마을 사람들도 그들에게 금방 흥미를 잃었다.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그들의 문화가 새삼 고마웠다.

 

  서희는 태욱의 앞에 앉아서 바게트를 열심히 오물거리고 있었다. 저녁으로 생선요리를 먹은 그들은 간식으로 바게뜨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서희는 따뜻하고 고소한 이곳의 바게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녀는 첫 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바게뜨를 하루에 한 개씩 해치웠다. 그녀의 불룩한 볼을 지켜보던 태욱은 그녀가 다람쥐 같다고 생각했다. 서희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태욱은 생각나는 아무 말이나 했다.

  “내일은 고르드에 갈까?”

  “고르드?”

  서희가 태욱의 말에 서희가 오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아까 봤잖아. 계곡 너머에 있던 마을.”

  태욱의 목소리에서 다정함이 느껴졌다. 그는 석양이 비추던 서희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 거기가 고르드야?”

  서희의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신나했다.

  “응, 중세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걸로 꽤 유명하거든.”

  “완전 좋아!”

  서희는 두 눈을 반짝였고, 태욱은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날, 서희와 태욱은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났다.

  “여기, 물!”

  서희의 목소리가 들 떠 있었다. 태욱은 서희가 내민 컵을 받아 들었다. 서희와 손끝이 닿으면서 찌릿함을 느꼈지만 태연한 척 했다. 물은 미지근했다.

 

  “자, 음양탕이야.”

  루시용에 숙소를 잡자마자 샤워부터 한 태욱에게 서희는 컵을 내밀었다. ‘음양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컵에 담겨져 있던 것은 그냥 물이었다.

  “음양탕?”

  “그래. 뜨거운 물에 찬 물을 섞은 거야.”

  태욱은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태욱의 엄마도 항상 태욱에게 미지근한 물을 만들어 주셨었다.

  ‘뜨거운 물 먼저, 그 위에 찬물이야. 알았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태욱은 갑자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아빠도 잘 지내시는지 궁금했다. 별안간 조실장의 얼굴이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가리며 나타났다.

  “아, 그리고 태욱군과 우재군의 부모님께는 제가 따로 연락을 드릴 테니, 부모님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연락해서는 안 됩니다.”

  조실장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뭐해? 어서 마셔.”

  서희의 말에 태욱은 정신이 들었다. 태욱의 눈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희의 얼굴이 비쳤다. 완벽한 세상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와, 대단하다.”

  고르드의 성벽을 따라 걷는 내내 서희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성 아래 펼쳐진 라벤더 밭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우리 진짜 여행하는 것 같다. 그치?”

  행복한 목소리였다.

  “그래.”

  “우재와 주선인 괜찮을까?”

  갑자기 서희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우재와 주선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괜찮을 거야.”

  태욱은 진심으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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