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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공간지배자
작가 : 박군
작품등록일 : 2017.11.6

특별한 능력을 지닌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의 성장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21화
작성일 : 17-11-07 11:08     조회 : 30     추천 : 0     분량 : 6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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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서희는 할머니의 빈소를 함께 지켜주고 있는 우재와 길상이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상복 바깥으로 드러난 그녀의 피부가 더 하얗게 보였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인데 핏기까지 없어져서 투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뭘, 당연한 걸 가지고.”

  우재가 서희의 어깨를 다독였다. 길상은 말이 없었다.

  길상이는 밤새 잠을 못 잔 사람처럼 초췌한 모습이었다. 내내 연락이 되지 않던 길상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건 어제였다. 그런데 그가 빈소로 들어오기도 전에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이 조사할 게 있다며 길상이를 데려갔다. 그 바람에 서희와 우재는 길상이에게 질문은커녕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 전 다시 나타난 길상이에게 궁금한 것들을 확인하기에는 서희도 우재도 많이 지쳐 있었다. 특히 서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파리했다. 게다가 조사를 마치고 나온 길상이도 평소와는 다르게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어서 섣불리 다가서기 힘들었다.

  “우리가 있을 테니까 넌 들어가서 좀 쉬어.”

  우재가 빈소 한 켠에 마련된 가족방으로 서희를 밀어냈다. 서희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우재의 눈에는 서희가 위태로워 보였다.

  “잠깐만, 한 번만 더 둘러보고.”

  어차피 더 올 사람도 없었다. 많지 않은 손님에 삼일 상을 다 치르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식당에는 주선과 조실장님, 그리고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있는 태욱이 전부였다. 자리를 채워주던 친척들은 모두 돌아갔다. 그동안 왕래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오늘 더 올 사람은 없는 건가?”

  말이 없던 길상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럴 거야.”

  서희를 대신해 우재가 대답했다. 우재는 길상이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서희가 가족방에 쉬러 들어가면 길상과 따로 얘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서희는 길상과 우재의 곁을 지나 주선과 조실장이 앉아 있는 식탁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쪽은.”

  우재의 목소리가 서희의 발목을 잡았다.

  “그쪽은 내가 갈게.”

  조실장과 주선이 있는 테이블로 향하던 우재는 서희와 눈이 마주치자 태욱이 있는 테이블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우재는 서희가 태욱과 함께 할머니를 발견했다는 얘기를 듣고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냥 두기로 했다. 어쨌든 지금 태욱은 서희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인 것 같았다. 서희는 우재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고마워.”

  서희가 태욱 옆에 쓰러지듯 앉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응.”

  태욱은 허깨비 같은 표정의 서희가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서희를 위해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피곤할 텐데 그만 가도 괜찮아.”

  “경찰에서는 뭐래?”

  태욱은 서희의 배려가 괜히 서운했다.

  “조사 끝나면 알려준대.”

  서희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은 금방 쓰러질 사람 같았다.

  “너도 좀 쉬어야겠다.”

  “그래.”

  태욱은 가족방 앞까지 서희를 부축했다.

 

  “고맙습니다.”

  서희와 태욱이 있는 식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우재가 조실장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는 아가씨 때문에 있는 사람입니다. 인사는 아가씨에게만 하시면 됩니다.”

  조실장의 말에 우재는 주선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

  “응.”

  주선의 얼굴이 괜히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우재군?”

  “네?”

  일어서려던 우재를 조실장이 붙잡았다.

  “저 주길상이라는 친구말입니다.”

  “길상이를 어떻게 아세요?”

  조실장은 아차 싶었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게 괜히 전국 일등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릅니다. 아무튼 저 친구한테 무슨 얘기 못 들었나요?”

  보통, 사람이 납치를 당했다가 풀려났다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길상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간혹 협박이나 보복이 두려워서 신고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치고 길상이라는 학생의 현재 모습은 지나치게 안정적이었다. 불안해한다거나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경우라도 최소한 가장 믿을 만한 누군가에게는 이 사실을 털어놓았어야 정상이다. 우재라면 길상이 말했을 수도 있다. 조실장은 우재가 길상이에게 그 사건에 대해 들었다고 해서 자기에게 말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실장은 그저 우재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만 알면 되었다.

  “어떤 얘기요?”

  우재는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닙니다.”

  조실장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길상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조실장과 마주 앉은 주선은 우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서희를 억지로 가족방에 밀어 넣은 태욱은 잠깐 찬바람이라도 쐴 생각에 장례식장을 나섰다. 건물을 벗어나려던 그는 주차장에 줄지어 나타난 검은 세단들의 거친 주차에 시선을 빼앗겼다. 타이어의 날카로운 비명이 어두운 하늘을 여러 갈래로 찢었다. 차가 멈추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사내들의 모습에 태욱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서희야!”

  가족방에 들어온 서희는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길상이가 자신이 길상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태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상체를 일으키려다 휘청였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식은땀 때문에 이마에 어지럽게 붙어있던 머리칼을 떼어내기에도 힘들었다.

  “너 뭐야?”

  가족방으로 들어가려는 태욱을 길상이 막아섰다.

  “넌 뭐야?”

  험악한 기운이 돌았다.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무슨 일이야?”

  서희가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쓰러지려는 몸을 문틀에 기대고 서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

  “놈들이야!”

  태욱은 서희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뭐라고?”

  머리가 울리는 통에 서희는 태욱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시끄러운 발소리와 함께 나타난 검은 무리가 순식간에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다. 모두 단정한 검은 양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문상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저씨!”

  주선의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푸닥거리가 시작되었다.

  일곱 명이 한계였다. 아무리 조실장이라 해도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우재도 생각보다 잘 버텼지만 제압당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재에 이어 조실장까지 제압당하고서도 빈소 쪽이 정리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더 걸렸다. 빈소 안에 쓰러져 있는 태욱의 주위에는 열 명이 넘는 사내들이 쓰러진 채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조실장, 우주선, 기우재, 최태욱, 박서희, 그리고 주길상까지 차례로 한 곳에 모아졌다. 주선은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었고, 조실장과 우재, 그리고 태욱은 다른 의미에서 눈을 뜨기 힘들었다. 그들은 의식을 완전히 잃은 채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들의 몸 전체에서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드러났다.

  길상만은 멀쩡했다. 길상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요하거나 긴장하고 있는 표정도 아니었다.

  길상 옆에 자리한 서희는 앉아는 있지만 정신은 다른 데 가 있는 사람 같았다. 허공을 응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멍하게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분명한 건 많이 아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이들 중 가장 정상으로 보이는 사람은 우주선 한 명 뿐이었다.

 

  “고작 여고생 한 명 잡는데 뭐 이렇게 오래 걸려?”

  그들을 둘러싼 검은 무리의 한 가운데가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인상을 잔뜩 쓴 용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나머지는 뭐야?”

  서희 일행을 둘러보던 용주는 끝에 꿇어 앉아 있는 길상에게 시선을 멈췄다. 길상이와 눈이 마주친 그는 한쪽 눈을 꼭 감았다. 길상은 반응하지 않았다.

  “친구들 같습니다.”

  용주의 질문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중 우두머리가 대답하며 앞으로 나섰다. “친구들?”

  “네.”

  “그럼 고등학생?”

  “저쪽만 빼고.”

  용주의 질문에 대답을 하던 사내가 조실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정도는 나도 보면 알아!”

  용주는 사내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는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참지 못했다.

  “그래서 저 아저씨는 누군데?”

  “운전기사 같습니다.”

  “운전기사? 그런데 우리 애들은 왜 저렇게 많이 쓰러져 있어?”

  “저, 그게, 저 녀석들이 저항을 심하게 해서…….”

  “저 녀석들?”

  “네.”

  “그럼 운전기사 한 명하고 고등학생 두 명한테 스무 명이 넘게 당했다는 거야?”

  “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니들이 업계 최고라며?”

  “그렇습니다.”

  “업계 최곤데, 운전기사 한 명하고 고등학생 두 명 상대하는데 스무 명이 넘게 필요하다고?”

  용주는 비아냥거리며 안경을 올려 썼다.

  “그게…….”

  사내는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평범한 운전기사인 줄 알았던 조실장을 얕본 건 실수였다. 그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 출신이 분명했다. 그의 움직임은 현역 못지않았다.

  한 때 납치대상이었던 우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에게 가까이 가는 놈마다 맥없이 쓰러졌다. 뒤에서 기습하지 않았다면 제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빈소 앞에 있던 남학생은 놀라울 뿐이었다. 특수부대와 용병을 거치면서 수많은 전투를 겪었지만 지금까지 그와 같은 움직임을 본 적은 없었다. 군더더기가 없는 동작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격투보다 예술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더 감상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물량공세 작전으로 겨우 제압했다. 그것도 그가 서희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혼자 돌파하려고 했다면 그는 이미 이곳을 빠져나가고 없었을 것이다.

  예상보다 피해가 컸지만 만약을 생각해서 가용한 인원 전부를 동원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됐어, 됐고. 저 둘만 끌고 와!”

  이미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늦었다. 용주는 계획대로 길상과 서희만 데려갈 것을 지시했다.

  “잠깐!”

  돌아서던 용주가 갑자기 코를 씰룩였다.

  “냄새가 조금 다른데?”

  용주는 계속 코를 씰룩거리며 서희를 지나쳐 쓰러져 있는 태욱에게로 다가갔다.

  “흐으으음,”

  용주는 태욱의 얼굴에 가까이 코를 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곧 눈이 커졌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스러운 표정을 한 용주의 시선이 이번에는 태욱 옆에 쓰러져있던 우재에게로 향했다.

  “흐으으음.”

  이번에는 우재의 얼굴에 가까이 대고 코까지 먹어가면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 이상하다?”

  용주는 인상까지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곧 주선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설마’는 용주와 눈을 마주친 주선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정말 소름이 끼쳐서 도망가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변태가 틀림없었다. 용주는 그런 주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스멀스멀 주선의 얼굴에 코를 들이댔다.

  “흐으으음.”

  두 눈을 꼭 감고 최대한 고개를 뒤로 빼는 주선과는 반대로 용주의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동그래졌다.

  “이것들 뭐야?”

  용주는 고개를 돌려 쓰러져 있는 조실장에게 다가갔다.

  “킁킁.”

  용주의 고개가 흔들렸다.

  “운전기사는 아닌데.”

  용주는 다시 한 번 주선의 냄새를 맡았다. 아까보다 더 깊고 길게 맡았다. 그리고 우재와 태욱의 얼굴 앞에서도 같은 시간과 깊이로 코를 들이마셨다.

  “얘네, 얘네, 얘네.”

  용주는 너무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길상을 보며 말했다.

  “얘네, 전부 냄새가 나는데요?”

 

  정적이 흘렀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은 길상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주선만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용주와 길상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휴.”

  길상이 한숨으로 분노를 참아내며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그만…….”

  용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됐다. 어차피 얘는 의식이 없는 것 같으니까.”

  길상이 서희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주선은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됐어. 그런데 전부 냄새가 난다고?”

  “네. 저 운전기사만 빼고 이 학생들한테서 전부 냄새가 납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정말 확실하지?”

  “정말 확실합니다.”

  잠시 용주를 쳐다보던 길상이 돌아섰다. 주선과 눈이 마주쳤다. 주선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전부 데려와.”

  “전부 말입니까?”

  “그래, 전부!”

  “저, 운전기사는 아닌데요?”

  “걘 빼고!”

 

  잠시 후, 장례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검은 무리가 썰물 빠지듯이 모두 빠져나갔다. 텅 빈 장례식장 가운데, 쓰러진 조실장의 그림자만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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