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저 왔어요.”
길상의 모습을 한 변회장은 익숙한 동작으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신체를 빼앗은 후 원래 신체의 주인이 갖고 있던 최근의 기억과 감정들은 변회장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은 귀찮고 빨리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뿐이었지만 지켜보고자하는 능력자와의 관계를 지속하기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할머니!”
인기척이 없었다.
“할머니!”
변회장은 할머니가 쓰시는 방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
이번에는 서희의 방문을 열었다. 서희의 침대에 누군가 누워있었다.
“서희?”
변회장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서희를 볼 수 있게 됐다는 기쁨에 이불을 들춰내는 손까지 떨렸다.
“서희가 누구야?”
“할머니?”
서희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은 할머니였다.
“누구세요? 엄마아빠는요?”
“할머니!”
“우리 엄마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제 방에는, 아니 우리 집에는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저 길상이에요. 기억 안 나세요?”
“길상이가 누구에요?”
“서희 친구잖아요. 정말 기억 안 나세요?”
“몰라요, 서희는 또 누구에요?”
“할머니 손녀요. 박서희. 정말 기억 안 나세요?”
“서희? 내 손녀?”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변회장은 서희의 방을 둘러보았다. 서희가 돌아온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래선 답이 없겠군.”
변회장은 혼잣말을 하고 주방으로 나갔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할머니가 주방까지 따라왔다.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한 변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더듬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길상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얼굴에 변회장의 얼굴이 겹쳐졌다.
“내가 손녀가 있어?”
할머니는 아직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손녀가 있다고?”
할머니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변회장은 다시 서희 방으로 들어갔다. 어떻게든 서희가 갈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할머니는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녀가 갈만한 데가 있나?”
서희의 방을 엉망으로 만든 뒤 변회장은 다시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한 이상 길상의 흉내를 낼 필요가 없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이 봐!”
변회장은 여전히 화장실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를 노려보았다.
“손녀 어디 있는지 아냐고!”
변회장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묻어나왔다. 할머니가 변회장의 소리에 놀라 몸을 움찔했다. 변회장은 그 작은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너, 누구야?”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당신 손녀 어딨어?”
“넌 길상이가 아니로구나.”
“내가 길상이가 맞건, 아니건……?”
변회장의 눈이 커졌다.
“길상이를 알아?”
“너 누구야?”
변회장은 할머니의 눈을 자세히 봤다. 눈빛이 또렷했다. 표정도 아까와는 달라져있었다.
“정신이, 돌아왔군!”
변회장은 제정신이 돌아온 할머니가 반가웠다.
“돌아왔어! 응? 하하하!”
길상의 웃음소리에 할머니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 그럼 이제 알겠네. 서희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