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따라가세요.”
조실장은 차 안에서 주선과 우재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지시를 내렸다.
‘우재 군이 여기 있는데 남학생을 납치 했다고?’
조실장은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길상이라는 친구가 우재군 대신 할머니에게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길상군을?”
조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을 혼잣말로 내뱉었다. 평소 혼잣말을 하지 않는 신중한 성격의 그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만큼 그는 지금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조사를 해도 공부를 잘하는 것 외에는 평범한 남학생을 최고 수준의 프로들이 미행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프로들이 정작 납치를 할 때는 다른 인물을 납치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오늘 납치조가 우재의 얼굴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면?”
조실장은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가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 나온 결론을 다시 되뇌어 보았다.
“아니지, 아니야. 이건 아마추어들도 안하는 실수잖아.”
조실장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우재와 인사를 마친 주선이 차로 돌아왔다. 조실장은 생각을 멈추고 다시 평소의 모습을 찾았다. 차에 오른 주선의 입은 귀에 걸려 있었다.
“아가씨, 너무 티 납니다.”
“티 나요?”
“네. 납니다.”
조실장은 백미러로 주선을 보며 빙그레 웃어주었다. 길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일 만나기로 했어요.”
주선은 손으로 붉어진 볼을 감싸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잔뜩 부풀어있는 주선과 다르게 조실장은 담담하게 대답한 후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주선은 조실장의 반응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조실장은 길상을 납치한 일행이 도착한 곳의 위치를 보고 받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경찰에 신고하자니 자신들이 노출되는 것이 걱정되었고, 신고를 하지 않자니 길상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저택을 감시하고 있는 팀의 특이한 움직임은 없다는 보고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는 사무실 안을 한참동안 서성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생명이 우선이지.”
조실장은 마침내 결심한 듯 중얼거렸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이 사건을 맡길만한 경찰 쪽 인맥을 찾았다.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길상을 납치한 조직을 감시하는 팀이었다. 조실장은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은 조실장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냥 나왔다고요?”
길상이 멀쩡한 모습으로 그들의 차를 타고 섬을 빠져나왔다는 보고였다. 보고하는 그들도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그리고 보고를 듣는 조실장도 혼란스러웠다. 납치를 잘못 했다고 사과하고 그냥 보내줬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애초에 그런 설명이 말이 되지 않는 것 아닌가? 어떤 멍청한 놈들이 납치를 잘못 한 것도 모자라서, 잘못 납치했다고 납치한 대상을 그냥 풀어준단 말인가.
김실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그에게는 정말 드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