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왔네.”
“응.”
몇 번 나오다 말 줄 알았던 태욱이 의외로 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태욱의 성실함에 그에게 학원을 소개를 시켜준 진아도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태욱은 조금씩 공부가 재밌어졌다. 진아의 소개로 오게 된 학원은 아주 기초부터 가르쳐주는 곳이라 태욱도 수업을 따라가는데 무리가 없었다. 어쨌든 진아 덕분에 태욱은 오랜만에 공부하는 재미를 조금씩 맛보고 있었다.
“우리, 놀러갈까?”
진아는 며칠 전부터 학원을 재끼자며 태욱을 꼬시고 있었다.
“노래방 가자!”
처음에도 진아는 자존심을 세우느라 따로 데이트 신청 같은 건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관심한 태욱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요즘에는 대놓고 들이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태욱은 진아에게 정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말 공부라는 걸 하고 있었다.
태욱이 학원을 빠지지 않는 데에는 공부가 재미있어진 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는 학원에서부터 집까지 돌아가는 길이 좋았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 섞여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길을 걷는 게 즐거웠다.
봄기운을 머금은 밤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쌀쌀했지만 상쾌한 공기 덕분에 머리가 맑아졌다. 태욱은 원래 학원에서 지하철역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런데 오늘은 버스정류장을 그냥 지나쳤다. 봄을 타는지 그냥 조금 더 걷고 싶었다. 걷는 길 곳곳에 그에게만 보이는 공간과 통로가 눈에 들어왔지만 못 본 척 지나쳤다. 통로의 끝을 확인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상했다.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찾아 스마트폰에 연결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재생하고 고개를 숙인 채 지하철역을 향해서 걸었다. 지하철을 타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목적지에 도착한 태욱은 쏟아지듯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피해 마지막으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는 지상에서 내려오는 신선한 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계단에 발을 디뎠다. 집까지 걸어갈 생각에 설레는 기분까지 들었다. 봄을 타는 게 분명했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정각. 딱 떨어지는 숫자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집에 가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고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쿵!’
여자였다. 그녀는 계단에 올라오자마자 태욱을 향해 갑자기 날아왔다. 얼굴을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팔로 감싸 안았다. 그녀의 머리에서 나는 향기가 코끝에 남았다. 이유도 없이 그립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이었지만 몸이 허공에 뜬 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