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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공간지배자
작가 : 박군
작품등록일 : 2017.11.6

특별한 능력을 지닌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의 성장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11화
작성일 : 17-11-07 00:11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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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용주는 편의점이 잘 보이는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바나나맛 우유에 꽂힌 빨대를 입에 문 그는 우재와 길상의 모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았다.

  우재와 길상이 편의점을 나서자 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주는 맞은편 인도에서 그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그들을 따라갔다.

  우재와 길상은 버스정류장에서 멈춰 섰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용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그는 그대로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감췄다.

 

  용주가 지나간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은색 SUV 한 대가 천천히 멈춰 섰다.

  “오, 아저씨! 역시 달라.”

  “네?”

  “정말 전혀 눈치 못 채잖아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제가 뛰어난 게 아니라, 눈에 잘 띄는 외제차로 미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난 겁니다.”

  “어쨌든요. 완전 신나!”

  뒷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들떠있는 주선을 조실장은 잠깐 동안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목을 가다듬었다.

  “오늘 서희양 할머니 저녁식사 당번이 누구죠?”

  “우리 우재요!”

  “우리…요?”

  “네! 우. 리. 우. 재. 요!”

  조실장의 질문에 주선은 일부러 또박또박 대꾸했다. 그녀는 조실장을 째려보고 있었다.

  “흠흠, 오늘쯤이면 행동할 때가 됐는데.”

  더 이상 주선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조실장은 서둘러 주제를 바꿨다.

  “무슨 행동이요?”

  “그런 게 있습니다.”

  조실장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주선은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우재를 바라보며 그저 즐거운 표정이었다.

  며칠 동안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조실장은 확실히 수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는 전문가들이었다. 그것도 규모가 제법 큰 조직이었다. 그 정도의 전문가 집단을 움직인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들이 미행하고 있는 ‘기우재’라는 학생은 아무리 뒤져봐도 공부를 잘한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갑자기 최근 유행하고 있는 걸그룹의 발랄한 노랫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전화 좀 받겠습니다.”

  주선의 뻥 진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실장은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제 예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통화를 끝낸 조실장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무슨 예상이요?”

  조실장의 예상이 맞았다. 그는 조금 전 그는 서희네 집 근처에 잠복해 있던 팀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서희네 집 앞에 어제까지 보지 못한 승합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그들의 행동을 미루어 봤을 때, 그들은 ‘기우재’라는 학생을 조용히 납치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 기우재가 항상 혼자인 시간이 언제인지 알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우재가 혼자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항상 혼자인 시간은 이틀의 한 번, 단 10분 정도가 전부였다. 길상과 헤어지고 서희네 집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길상과 우재는 하루씩 번갈아가며 아르바이트하는 서희를 대신해 할머니의 저녁을 챙겨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우재 차례였다. 조실장은 자신이라도 그 시간을 노릴 거라고 생각했다.

  우재와 길상이 탄 버스가 출발했다.

  “아저씨 가요!”

  주선이 어깨를 두드렸다.

  “네.”

  조실장은 운전을 하며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무력충돌은 피해야 했다. 그들이 누군지 알기 전에 이쪽이 가진 패를 먼저 꺼내 보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무슨 예상이 맞아요?”

  “오늘 우재군을 납치할 것 같다는 예상이요.”

  “뭐라고요?”

  주선이 귀에 대고 소리치는 바람에 조실장은 운전대를 놓칠 뻔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주선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럼 어떡해요?”

  주선은 차가 잠시 흔들린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우재의 위험을 알리는 빨간불로 가득 차 있었다.

  “글쎄요. 어떻게 할까요?”

  주선이 난리를 피우는 사이 버스가 우재와 길상이 내리는 정류장에 섰다. 그 뒤를 따라 조실장이 운전하는 SUV도 조금 떨어진 곳에 멈췄다.

  “아가씨, 지금밖에 없습니다.”

  이곳에 오는 동안 조실장은 한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그것도 겨우 생각해 낸 것이었다. 뒤에서 난리를 피우는 주선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뭐가 지금밖에 없어요?”

  “그들이 감시하지 않는 곳은 이 버스정류장 뿐입니다.”

  “그래서요?”

  “여기서 우재군을 빼돌리지 않으면 기회가 없습니다.”

  “빼돌려요?”

  “지금 나가셔야 합니다.”

  버스에서 내린 우재와 길상이 정류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주선은 결연한 눈빛을 하고 차에서 내렸다.

  “우재야!”

  주선은 우재를 어떻게든 구해야한다는 생각에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재를 불렀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 아끼고 또 아끼던 순간이었다. 우연한 만남을 상상하며 밤을 지새우던 지난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억울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주선?”

  주선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우재는 주선을 바로 알아보았다.

  “우와, 우재 너 드디어 여친 생겼냐? 응?”

  길상의 호들갑 떠는 소리가 주선에게는 다른 세상의 소리처럼 느껴졌다.

  “네가 여기 웬일이야?”

  우재의 표정은 차가웠다. 주선은 자기도 모르게 얼어버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재 친구 길상이라고 합니다.”

  길상이 우재 앞을 막아서며 인사를 했다. 주선은 여전히 얼어있었다.

  “저기…….”

  “별일 아니면 내일 보자. 난 갈 데가 있어서….”

  주선의 말을 기다리던 우재가 돌아섰다. 우재의 차가운 목소리가 주선의 귀를 파고 들었다.

  “잠깐만!”

  주선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없는 용기를 애써 쥐어짜냈다.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 아, 나 때문이구나. 내가 눈치가 없었네. 하하, 그럼 말씀 나누세요. 불청객은 먼저 갑니다.”

  길상은 둘 사이에 서서 인사를 하며 물러서다가 우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할머니한테는 형님이 대신 가줄테니까 너는 데이트나 잘 해라.”

  “데이트 아니야.”

  “아니기는! 너, 여자 울리는 거 아니다. 이 형님이 너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길상은 우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과장된 표정으로 연기하는 길상의 노력 덕분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주선의 어깨도 조금 편안해졌다.

  “할머님께는 내가 갈게.”

  “됐어. 어차피 할머니하고 할 얘기도 있거든.”

  길상은 웃으며 약지를 들어보였다. 반지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럼, 내일 보자!”

  길상은 인사와 동시에 등을 보이며 뛰어갔다. 한동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우재가 주선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목소리는 아까보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둘 사이에 얇게 흐르던 침묵의 물줄기가 점점 두꺼운 장벽처럼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주선은 두 눈을 꼭 감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좋아해!”

  말을 한 주선 자신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 말이 튀어나올 줄 몰랐다.

  “뭐?”

  우재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도.”

  이번에 침묵을 먼저 깬 건 우재였다.

  “뭐?”

  주선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도, 너 괜찮아.”

  주선은 지금 자신의 귀에 들리는 우재의 목소리가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 뭐라고 했어?”

  “나도 너, 괜. 찮. 다. 고.”

  우재의 말이 끝나고서도 주선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말…이야?”

  주선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귀엽다고 생각했어.”

  주선은 발개진 볼을 손으로 감쌌다.

  “언제?”

  “처음 봤을 때부터. 그리고 가끔씩 혼자 얼굴이 빨개질 때마다.”

  몸까지 베베 꼬고 있는 주선에 비해 우재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주선의 얼굴은 더 발갛게 달아올랐다. 사실 우재가 말하는 혼자 얼굴이 빨개질 때는 주선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몸을 투시했을 때였다. 그 생각을 하니 주선은 우재를 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난 네가 날 볼 때마다 너무 무서운 표정을 지어서…….”

  “그건, 긴장해서 그런 거야.”

  주선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우재가 급하게 변명을 했다.

  “그게 긴장한 표정이라고?”

  “그래.”

  주선의 표정이 점점 편안해졌다. 그동안 여자들의 접근을 막아왔던 우재의 얼음 같이 차갑던 표정이 긴장한 것이었다니. 그 표정 때문에 기껏 용기를 냈다가도 눈물을 머금고 그를 포기했던 수많은 경쟁자들이 이 사실을 그녀보다 먼저 알았다면 어땠을까. 주선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조실장은 차 안에서 그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요즘 가장 핫하다는 걸그룹의 싱그러운 노래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여보세요.”

  “실장님!”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가 다급했다.

  “말씀하세요.”

  그리고 곧 조실장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저들이 남학생을 납치했습니다.”

  조실장의 시선 끝에는 여전히 주선과 우재가 어색하게 마주서 있었다.

  “누구를 납치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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