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는 아까부터 불안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띠링!’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우재였다.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지 볼이 불룩하게 나와 있었다.
“왔어?”
서희가 유난히 반갑게 맞아주었다.
“길상은?”
“아직.”
우재는 평소처럼 계산대 쪽으로 향하다가 서희와 눈이 마주쳤다. 서희의 눈빛을 읽은 우재가 멈칫했다. 서희의 턱이 다른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재는 서희의 턱 끝이 향한 곳으로 말없이 눈을 돌렸다. 급하게 고개를 숙이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재는 진열대를 돌아 남자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반짝이는 구두였다. 그가 입고 있는 비싸 보이는 정장처럼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몸에 걸쳐 있는 것 중에서 그에게 어울리는 건 뿔테 안경뿐이었다.
우재는 상대에게 무례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만큼만 살핀 후 다시 서희에게 다가갔다.
“뭐야?”
남자의 눈치를 보며 우재가 속삭였다.
“나중에.”
서희 역시 우재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남자가 계산대 쪽으로 다가왔다. 우재는 서희가 그 남자를 주시하고 있던 이유를 당장 듣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기로 했다.
“여기요.”
바나나맛 우유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남자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우재는 서희의 일이 방해되지 않을 만큼 떨어진 곳에서 남자를 향한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고 있었다.
“흐음.”
남자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했다. 며칠 굶은 사람이 고기 굽는 냄새에 이끌리는 것처럼 두 눈을 감은 채 콧구멍을 넓혀가며 점점 우재를 향해 다가갔다. 제 정신처럼 보이지 않았다.
“흠흠.”
우재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툭!’
당황한 우재가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떨어뜨렸다. 그 소리에 남자는 정신을 차린 듯 눈을 뜨고 소리의 원인을 확인했다.
“사탕 냄새였나?”
남자는 손가락 끝으로 안경을 올려 쓰며 우재와 사탕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저사람 뭐야?”
남자가 사라진 곳을 한참을 쳐다보고 있던 우재가 서희를 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말이.”
서희도 우재와 눈을 맞추며 맞장구를 쳤다.
우재와 서희가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사이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태욱이었다. 서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너 뭐냐?”
우재는 서희가 지금 들어온 남학생으로 인해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뭐가?”
서희가 발그레하게 붉어진 볼에 괜스레 바람을 불어넣으며 애써 태연하게 대꾸했다. 우재는 도시락 코너에 있는 태욱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태욱은 여전히 도시락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길상이도 아냐?”
“뭘?”
“설마 너도 모르냐?”
“그러니까, 뭘?”
“아니다.”
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 기다렸어?”
길상은 오늘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우재는 오늘따라 그런 길상이 측은해 보였다.
“오늘은 좀 늦었네.”
서희가 우재의 눈치를 보며 평소보다 반갑게 길상을 반겼다.
“정말 기다린 거야? 나, 지금 감동했어. 이거 봐, 눈물도 났어.”
길상은 서희에게 갑자기 얼굴을 들이댔다.
“적당히 해라. 이래서 내가 너한테 빈틈을 안 주는 거야.”
서희는 손가락 끝으로 길상의 이마를 밀어냈다.
“4천원이죠?”
어느새 태욱이 계산대 앞에 섰다. 서희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네. 흐흠.”
긴장했는지 서희도 목소리가 잠겼다. 태욱은 말없이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만 원 받았습니다.”
잠긴 목을 가다듬어서인지 서희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게 느껴졌다. 서희가 거슬러준 돈을 태욱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태욱은 도시락을 챙기고 돌아섰다. 서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섰다. 서희는 빨갛게 달아오른 태욱의 귀를 놓치지 않았다. 귀여웠다. 서희는 시선은 편의점 문을 밀고 나가는 태욱의 뒷모습에 꽂혀 있었다.
우재는 서희의 눈치를 살폈다. 아쉬워하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다행히 길상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삼각관계인건가.’
우재는 속으로 한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오는 한숨도 속으로 삼켰다.
“오늘은 내 차례지?”
아무것도 모른 채 주인과 놀고 싶은 강아지처럼 서희 주변만 뱅뱅 돌던 길상이 우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둘 다.”
서희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가자.”
우재가 길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왜? 너나 가.”
우재는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는 길상의 목을 감싸며 강제로 끌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