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교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을 보고 있었다. 눈에 너무 힘을 준 탓에 눈밑 애교살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안경을 수시로 고쳐 쓰며 한참을 집중하고 있을 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부재중 8통화’ 라는 글자 밑으로 발신자를 확인한 용주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
짜증 가득한 변회장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그의 귀를 찔렀다. 용주는 자신을 대하는 변회장의 태도가 점점 까칠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용주는 지금까지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임무는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떻게 돼가고 있어?”
“지금 감시를…….”
“언제까지 감시만 할 거야?”
확실히 요즘 변회장의 짜증이 늘었다.
“곧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용주는 애써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변회장과 통화를 마친 용주는 한참을 더 기다렸다. 교문을 빠져나오는 아이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의 얼굴에 점점 초조한 기색이 점점 짙어졌다. 그때 교문에 모습을 드러낸 한 학생이 용주의 눈에 들어왔다. 기우재였다. 안경을 고쳐 쓰는 용주의 눈이 반짝였다.
교문을 벗어난 우재는 사탕을 까서 입에 물었다. 그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용주는 우재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우재의 뒤를 밟았다. 잠시 후, 우재는 버스 정류장에서 멈춰 섰다. 그 모습을 확인한 용주는 그대로 걸어가다가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감췄다.
용주가 사라진 뒤에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여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선이었다. 그녀는 용주가 사라진 모퉁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주선은 형형한 기운을 눈으로 내뿜으며 통통한 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있었다. 그녀는 우재가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차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아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저씨, 한 번 만요. 네? 제발요!”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최고급 세단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주선은 지금 자신이 낼 수 있는 코맹맹이 소리의 최고치를 시전하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아시면 정말 곤란해집니다.”
“모르시게 할게요. 정말이에요.”
“그래도 안 됩니다.”
“제발요. 네? 아저씨이.”
단호한 표정과 달리 조실장의 목소리에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언뜻 말라보이지만 필요한 근육들을 깔끔한 정장 안에 감추고 있는 그는 지금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선은 조실장이 자신의 말을 들어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이이!”
주선의 코맹맹이 소리가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눈꺼풀을 과장되게 깜빡이며 어깨도 지나치다고 느껴질 만큼 과격하게 흔들고 있었다.
조실장은 안경을 벗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다시는 그런 거 하지 마십시오.”
“네!”
조실장의 의도와는 다르게 주선의 대답은 밝고 씩씩했다.
차가 천천히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