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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공간지배자
작가 : 박군
작품등록일 : 2017.11.6

특별한 능력을 지닌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의 성장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5화
작성일 : 17-11-06 22:28     조회 : 22     추천 : 0     분량 : 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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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을 나온 용주는 안경을 손끝으로 올리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편의점 안을 확인했다.

  음흉한 눈빛을 흘리는 그의 시선 끝에 서희가 있었다. 계산대 안에 있던 서희의 모습이 누군가에 의해 가려졌다. 편의점 문을 나서며 부딪친 남학생이었다. 갑자기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용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안경을 손끝으로 올렸다.

  “분명히 냄새가 난 것 같은데.”

  혼잣말을 하며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댔다.

  “아닌가?”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용주는 그것까지 확인할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그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강한 냄새가.

 

  “찾았습니다.”

  VIP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용주가 큰소리를 냈다. 비를 그대로 맞고 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지금 잔뜩 흥분해 있었다.

  용주의 과장된 움직임에 빗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변회장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와 눈이 마주친 용주는 급하게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섰다. 변회장은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목에도 깁스를 하고 있는 탓에 옆에 서 있는 용주를 바로 보지 못하고 흘겨보고 있었다.

  변회장은 일주일 전쯤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변회장과 용주는 신호가 거의 끝나가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용주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변회장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변회장을 밀치며 변회장 대신 차에 치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변회장에게 돌진하던 차는 그를 밀치고 쓰러진 용주 바로 앞에서 가까스로 멈추었다. 그리고 용주에게 밀쳐져서 갑자기 반대편 차선으로 튀어나간 변회장은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트럭에 치이고 말았다.

  변회장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짜증을 간신히 참았다. 용주는 변회장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넸다. 깁스를 하지 않은 변회장의 오른손에 들린 스마트폰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서희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능력자가 확실합니다.”

  용주는 정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정말이지?”

  “정말입니다.”

  변회장은 용주를 보는 눈에 힘을 주었다.

  “이번에는 정말 틀림없는 거야?”

  “믿어주십시오.”

  변회장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은 채 용주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은 이게 다야?”

  심령사진까지는 아니었지만 초점이 맞는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빗물까지 함께 찍힌 사진들이 대부분이어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변회장은 언제부턴가 용주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 편이 그의 정신건강에도 좋았다.

  “동영상도 있습니다.”

  용주의 표정에 자신감이 드러났다. 변회장은 괜히 불안해졌다.

  “틀어 봐.”

  용주는 변회장에게서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몇 번의 터치로 영상을 재생시킨 그는 다시 스마트폰을 변회장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그가 내민 스마트폰은 변회장의 손에 닿지 않았다. 빗물과 땀에 젖어 있는 손이 화근이었다. 용주의 손에서 미끄러진 폰은 그대로 변회장의 얼굴에 떨어졌다.

  “고용주!”

  변회장이 스마트폰에 부딪힌 코를 부여잡고 신음을 했다. 변회장은 용주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서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왠지 자신이 하인이나 부하직원이 되는 것 같다는 이유였다. 그런 그가 용주를 풀네임으로 불렀다. 그것은 지금 그의 짜증이 극에 달했음을 의미했다. “저, 잠깐 밖에 좀.”

  용주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회장님?”

  용주는 조심스럽게 변회장을 불렀다. 그는 한참을 병실문에 붙어서 변회장의 심기를 살폈다. 복도를 지나다니던 간호사와 다른 환자들이 그를 이상한 눈으로 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변회장은 대답이 없었다.

  “들어가겠습니다.”

  용주가 조심스럽게 병실문을 열었다. 변회장은 침대에 앉은 채 용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영상은 다 본 모양이었다. 다행히 아까의 짜증은 사그라진 것 같았다. 용주는 코 한쪽을 휴지로 틀어막은 변회장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이 여자애는 일단 잡아둬. 그리고 그건 이놈으로 하지.”

  변회장은 스마트폰을 용주에게 건넸다. 스마트폰 속 화면에는 기우재의 모습이 확대되어 있었다.

  “준비해 놓겠습니다.”

  고개를 들던 용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변회장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휴지로 막지 않은 쪽이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고용주!”

  용주가 병실 문을 나서자마자 분노에 찬 변회장의 용트림이 복도까지 울렸다. 그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용주가 변회장을 만난 건 5년 전이었다. 그는 공무원 시험에 네 번째 떨어지고 고시원 총무를 하며 겨우 숙식을 해결하고 있던 공시생이었다. 더벅머리에 뿔테 안경을 끼고 유행지난 청바지와 색이 바랜 검은 잠바를 교복처럼 걸치고 다녔다. 그는 항상 그 모습으로 고시원에 있었다. 돈이 궁했던 그였지만 아르바이트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는 신념만은 지켰다. 그래도 가끔 친구들이 소개해 주는 일당이 센 단기 알바는 거절하지 않았다. 일은 힘들어도 비교적 짧은 시간에 고소득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용주에게는 신념도 지키고 용돈도 벌 수 있는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변회장을 만난 곳도 친구 대신 아르바이트 하러 간 호텔에서였다.

  용주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믿고 있었다.

 

  호텔 화장실에서 나오던 용주는 한 남자와 부딪힐 뻔 했다. 용주는 고개도 들지 않고 비켜서며 공손히 목례를 했다. 그런데 그에게서 나는 냄새에 용주는 그만 정신을 놔버렸다. 제정신이 돌아왔을 땐 이미 그의 뒤통수에 코를 묻고 킁킁 대는 중이었다. 이제껏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다. 삼겹살 굽는 냄새 같기도 했고 비릿한 굴 향 같기도 했다. 지금까지 맡아본 흐릿한 향과는 차원이 달랐다. 보다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냄새였다.

  ‘이 사람은 특별하다.’

  용주는 운명을 느꼈다.

 

  “너, 뭐야?”

  “어? 병신…,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호텔의 VVIP 고객인 변회장이었다. 눈빛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그는 항상 거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또,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탓에 진짜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고급 수트를 입고 값비싼 수제구두만 고집하며, 국내에 세 대밖에 없다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기에 돈이 많다는 사실만 짐작할 뿐이었다. 지배인도 그를 ‘변회장님’이라고 부를 뿐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를 운영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굳이 알려하지도 않았다.

  변회장에게는 단지 이름 때문에 생긴, 그가 가진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 있었다. 변회장의 이름은 ‘신형’으로 호텔 직원들 사이에서는 ‘변 신형’ 회장이 아닌 ‘병신 형’이라는 애칭으로 통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변회장에게 아직 혼미한 정신을 부여잡지 못한 용주가 실수를 한 것이다.

  “방금 뭐 한 거지?”

  “아니, 저 냄새가,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용주는 자신의 뺨을 스스로 때리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손님에게 냄새라니, 그것도 호텔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스위트룸 장기투숙객에게. 만약 이 사실이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지배인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엔 그냥 잘리는 걸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변회장은 갑자기 표정을 바꿔 용주의 멱살을 잡고 화장실로 끌고 들어갔다. 그는 화장실 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에 용주를 구석으로 밀었다.

  “능력잔가?”

  용주는 변회장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눈빛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못할 뿐이었다.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아닌가?”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냄새가 납니다.”

  용주는 그때 왜 그 말이 튀어나왔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 말 한 마디가 지금의 용주를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냄새? 후각능력인가?”

  변회장은 용주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용주의 눈빛은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군.”

  그가 멱살을 놓아주자 다리가 풀린 용주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스위트룸, 열 시.”

  그는 단 두 마디만 남기고 돌아섰다.

  그렇게 변회장과 고용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공무원 시험에서 두 번째 떨어진 용주는 친구의 소개로 신약개발 임상실험에 참여했다. 그런 좋은 아르바이트를 소개시켜 준 친구가 너무 고마워서 그는 아르바이트 비를 받자마자 밥까지 사주었다. 그때부터였다. 용주는 다른 사람들이 맡지 못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처음 냄새를 맡게 되었을 때 용주는 그 사람이 특별한 향수 같은 걸 몸에 뿌린 줄 알았다. 문제는 그런 냄새를 맡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셔서 사람들이 변태로 오해한다는데 있었다. 용주도 자신의 그런 태도를 고쳐보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그런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더 움츠리고 자신을 숨겼다.

  그런데 변회장을 만나고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다. 그전까지 그는 자신이 가진 이 능력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니, 능력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그저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장애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이 냄새들이 무얼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변회장은 그런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은인이었고,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구세주였다.

 

  용주는 능력자들이 내뿜는 기운을 냄새로 맡았다.

  일반인들은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국가대표선수 같이 남들보다 특별히 뛰어난 사람들도 희미한 냄새만 풍길 뿐이었다. 능력자들에게서는 보통사람들과 다른, 아주 강한 냄새가 났다. 주로 향수나 사탕에서 나는 과일 향 같은 달콤한 냄새였다. 물론 변회장의 경우처럼 그것들과는 아주 다른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용주의 능력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냄새를 통해 능력자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어떤 능력인지는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용주의 능력을 알게 된 변회장은 그를 곁에 두었다. 그리고 용주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하염없이 걷고 있다가 갑자기 도착한 구조대에 의해 하늘로 올려진 기분이었다. 그는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류층의 삶을 누리게 되었다.

  용주는 변회장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용주가 하는 모든 일이 모두 그의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용주는 실수가 잦았다. 그리고 변회장은 그런 그를 점점 믿지 못하고 있었다. 용주는 그런 변회장을 이해하면서도 서운했다.

  용주의 실수는 첫 임무부터 시작되었다. 변회장은 용주에게 아무 능력자나 찾아오라는 임무를 내렸다. 변회장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는 미친 듯이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한 남성을 찾아냈다. 변회장은 용주의 말만 믿고 그 남자를 납치했다.

  “네 능력은 뭐냐?”

  “네?”

  겁에 질린 채 묶여 있는 남자는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능력이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그냥 말하세요.”

  남자의 뒤에 서 있던 용주가 변회장을 거들었다.

  “능력이요?”

  남자는 고개를 돌려 용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그냥은 안 되겠지?”

  변회장은 가죽장갑을 꺼냈다.

  “자.”

  변회장은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용주에게 장갑을 내밀었다. 변회장은 용주에게 이번 일을 전부 맡겨볼 생각이었다.

  “뭐해?”

  의자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용주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변회장은 고개를 돌려 용주를 보았다. 용주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뭐야?”

  “저, 그게…….”

  “빨리 말해!”

  “그 냄새가…….”

  “냄새가 뭐?”

  “약해졌습니다.”

  용주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약해졌다니?”

  변회장이 용주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똑바로 말해!”

  “아까는 분명히 포도향이 짙게 났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 묶여 있던 사내가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거 헤어 젤 냄샌데요.”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 일이 있은 뒤로도 용주의 실수는 다양하고 꾸준하게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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