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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공간지배자
작가 : 박군
작품등록일 : 2017.11.6

특별한 능력을 지닌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의 성장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1화
작성일 : 17-11-06 22:26     조회 : 78     추천 : 0     분량 : 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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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은 아직 어두웠다. 현관문 밖 승강기 움직이는 소리가 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집은 형체만 분간할 수 있는 정도의 빛만 허락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열린 방문 사이로 보이는 침대도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갑자기 거실 한가운데 빛이 생겨났다. 텅 빈 것 같던 집안이 빛으로 가득 찼다. 그와 거의 동시에 울린 알람 소리가 가라앉아 있던 공기를 가르며 파장을 일으켰다. 소파테이블 위에 있던 스마트폰이었다. 소파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태욱은 보지도 않고 익숙하게 팔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곧 알람소리가 지워졌다.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렇게나 뻗어 있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팔을 뒤로 뻗어 양어깨를 최대한 뒤로 접으며 온몸으로 기지개를 켰다. 소매 밑으로 불거져 나온 핏줄과 잔잔하게 올라온 근육들이 희미한 빛을 받아 짙은 그림자를 그리고 있었다. 길게 이어지는 하품소리가 끝나고 나서야 태욱은 소파에서 다리를 내리고 바로 앉았다. 허리를 펴고,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때마다 울리는 관절들의 신음 소리가 집 안 전체를 채웠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마른세수를 했다.

  “학교는 가야지.”

  태욱이 목을 스트레칭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래, 인간적으로 학교는 가자.”

  여전히 혼잣말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 진한 눈썹 아래 하나였던 가늘고 긴 선이 두 개로 갈라졌다. 손으로 눈을 비벼 눈곱을 떼어냈다. 소파에서 겨우 몸을 뗀 태욱은 거실등을 켜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는 문도 닫지 않고 변기에 앉았다. 소변을 앉아서 보는 습관은 엄마가 본 어떤 기사 덕분에 생겼다. 서서 소변을 볼 경우 오줌방울이 멀리까지 튄다는 기사였다. 물을 내린 태욱은 손을 씻었다. 이 습관 역시 엄마 덕이다.

 

  주방으로 나온 그는 물을 마셨다. 목젖이 공이 튕기는 것처럼 활기차게 오르내렸다. 찬물은 몸에 안 좋다며 물을 달라고 할 때마다 뜨거운 물을 섞어주던 엄마가 생각났다. 하지만 물을 마실 때마다 새로 물을 끓이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것만큼은 습관처럼 되지 않았다.

  식탁 위에 식빵 두 장이 남아있는 게 보였다. 마침 냉장고에는 잼도 있었다. 태욱은 커피를 내리고 식빵에 잼을 발라 다시 소파로 갔다.

  TV를 켜고 뉴스가 나오는 방송에서 채널을 멈췄다. 태욱은 소파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손목시계를 찼다. 늘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지만 손목시계가 없으면 왠지 허전했다. 뉴스는 별 게 없었다. 늘 똑같은 정치 얘기에 비슷비슷한 사건사고가 전부였다. 탑배우 커플의 결혼 소식이 채널을 돌리려던 그의 손을 멈췄다. 요즘 그는 액션영화보다 로맨틱코미디영화를 더 좋아했다. 그리고 일부러 찾아 볼 정도로 남녀의 썸을 다루는 예능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사이 거실조명이 무색하게 커튼 사이로 들어온 한 줄의 빛만으로도 집 안이 환해져 있었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태욱은 익숙한 동작으로 교복을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단추를 채우지 않은 셔츠 사이로 보이는 쇄골이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태욱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만 걸친 채 베란다로 향했다. 다시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베란다에는 새 것 같은 운동화 한 켤레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베란다에는 태욱도 운동화도 사라지고 없었다.

 

  어렸을 때, 숨바꼭질을 하면 친구들은 태욱을 찾지 못했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곳에 있어도 친구들은 그가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했다. 놀이가 끝나고 자신이 숨었던 장소를 친구들에게 보여주려 해도 그들은 그곳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자신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어린 그가 친구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논리적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친구들은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를 놀이에 끼워주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화가 난 태욱도 그들과 놀지 않았다. 그렇게 태욱은 한참을 혼자 놀며 지냈다.

  어린 태욱에게 외로움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얼마 안가서 태욱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속상한 마음을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의 부모도 그가 숨은 장소를 보지 못했다. 그제야 어린 태욱은 자신만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태욱은 친구들과 다시 함께 놀기 시작했다. 그때쯤엔 태욱도 자신만 볼 수 있는 장소와 그렇지 않은 장소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놀 때는 결코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굳이 자신이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느꼈던 외로웠던 기억은 태욱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여전히 두려움으로 남아있었다.

 

  통로를 발견한 건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날은 새로 전학 온 친구네 집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놀러갔다가 혼자 돌아오는 길이었다. 늘 다니던 길이 아니어서 모두 낯설었다. 그 길에도 그에게만 보이는 그런 공간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러던 중 무심히 지나치기 어려운 특이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게 마치 터널 같았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태욱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 통로 속으로 성큼 들어갔다. 통로는 생각보다 짧았지만 반대편으로 나갈 수 있었다.

 

  통로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물소리로 가득했다. 많은 양의 물이 굉장히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내는 소리였다. 태욱은 그 웅장한 소리에 이미 압도되어 있었다. 통로의 끝에 다다를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나중에는 자신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통로의 반대편으로 나온 태욱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작 열 걸음 정도 걸었을 뿐인데 그가 나온 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는 폭포 안쪽에 있었다.

  그곳이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다. 처음에는 그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처음 보는 광경에 겁이 덜컥 났다. 무엇보다 자신이 지나온 통로가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는 통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 뒤에는 자주 그곳을 찾았다. 다행히 통로의 끝이 관광객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멀지 않았다. 태욱은 자연스럽게 관광객 사이에 끼어들었다.

 

  태욱에게 통로는 신세계였다. 막혀있는 공간에서는 숨어있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공간도 외면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통로를 발견하는 일은 그에게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때쯤에 본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의 영향으로 태욱은 이 모험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렇게 그는 통로를 통해 세계 곳곳을 신나게 누볐다.

 

  나이아가라를 웬만큼 다녀온 뒤에 새로 발견한 통로는 이집트로 이어졌다. 그곳도 좋았다. 태욱은 사막에서 피라미드에 기대고 앉아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렇게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 뒤로도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체코, 덴마크 등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조깅을 하겠다고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서핑을 배우고 싶어서 무작정 호주의 본다이 비치에 간 적도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마을에서 그 곳에 사는 사람인양 서성이기도 하고,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로 잡지에 소개된 유럽의 빈티지 마켓을 찾아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또, 관광지로 소개된 공원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유럽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인도, 중국, 일본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심지어 브라질의 정글과 칠레에 있는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도 다녀왔다. 아프리카 대륙도 구석구석 다녀보고, 추워서 발자국만 찍고 나왔지만 남극도 다녀왔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어도 대충 100개국은 넘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곳으로 통로가 이어지는 바람에 위험한 순간들도 많았다. 한 번은 전쟁 중인 곳으로 나오는 바람에 진짜로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터키의 어느 시골마을인 줄 알고 별 생각 없이 성큼 밖으로 발을 내딛었는데 나와 보니 이라크였다. 게다가 하필 그가 발을 디딘 곳이 바로 미사일 투하지점이었다. 그때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었더라면 아마 그는 실종자로 신고 된 채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통로를 이용한 태욱의 여행에는 한 가지 제한사항이 있었다. 돈이었다. 환전은커녕 용돈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에 그는 돈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입장료가 필요한 곳에 들어가거나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사먹는 호화로운 여행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의 여행은 자연스럽게 유적지나 박물관 관람 같이 돈이 필요한 곳보다는 돈이 전혀 들지 않는 산책 위주의 여행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여행스타일이 그에게 더 잘 맞았다는 사실이었다.

 

  여행 말고도 통로 덕을 본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집 근처에서 학교 앞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한 것이다. 그 덕분에 태욱은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항상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며 자주 시간을 확인하는 습관도 여행을 다니면서 생긴 좋은 점 중에 하나였다.

 

  중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런 식으로 여행을 하다 보니 태욱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밤을 새워가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느라 부족한 잠을 수업시간에 보충하는 생활을 3년이나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살이 빠지고 잠은 자도 자도 부족했다. 깨어 있어도 깨어있는 것 같지가 않았고 심지어 걷다가도 잠이 들어 넘어지거나 부딪히기도 했다.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학교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부모와의 관계가 점점 틀어진다는 문제도 있었다.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공부도 곧잘 하던 아들이 갑자기 변했으니 부모도 속이 탔다. 그럼에도 태욱은 통로를 이용한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부모님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독서실을 핑계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한 번 떨어져서 올라가지 않는 성적 때문에 부모도 더 이상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반복되는 그의 거짓말에 일부러 속아주기도 힘들었다. 그와 그의 부모는 사이가 점점 더 나빠졌다. 태욱은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면 부모가 잠들기를 기다려 몰래 빠져나오기도 했다. 아버지가 몇 번 그를 미행하기도 했지만 골목만 돌아서면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번번이 그의 종적을 놓쳤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그쳐도 아들은 부모가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태욱의 부모는 그가 학교에서 잠자는 것 외에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에 고마워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태욱의 가정에는 가까스로 불안한 평화가 찾아왔다.

 

  부모와 관계가 서먹해진 태욱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받아주는 학교를 찾아내는 것도 힘들었다. 태욱은 그때 담임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입학한 고등학교는 집에서 통학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고 마땅한 교통편도 없었다. 태욱의 자취를 결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모가 모두 연봉이 괜찮은 편에 속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엄마는 끝내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의견이 모아진 남편과 아들의 연합작전에 결국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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