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미로 1

　거리에서 하모니카 연주 중인 범학, 곁에는 기타가 놓여있다.

　lee oskar - my road, 지나가다 멈춰서서 범학의 연주를 듣고 있는

　사람들, 연주가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는 사람들,

　환호에 대한 답례로 이번에는 기타 연주로 한곡 더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범학 damien rice - the blowers daughter

　맑은 하늘에 기타 선율이 흘러가고 간간이 흩날리는 단풍과 은행잎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는 가을날 오후다 준결 바쁘게 걷다가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멈춰선다.

　“여보세요 네 주말에 들릴께요 네에”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

　준결, 보면서 중얼거린다. “이거 이거 또, 누나의 건망증을 어쩌면 좋냐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닌데...알겠습니다 달려갑니다” 카톡을 보낸다.

　준결 주차된 차에 탄다. 바쁘게 출발하는 준결의 차, 원무과 앞 의자에 앉아서 준결을 기다리고 있는 서하는 준결의 엠피쓰리를 들으면서 흥얼거리고 있다.

　나이 지긋한 의사와 범학이 진료실에서 나온다.

　“자네 아버지한테 들었네 휴학중이라구?” “네” “아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자네도 얼른 고시 준비해야되는데” 범학 말이 없다.

　“고시 준비하려고 휴학중인거 맞지? 준비하려면 바쁘겠구만”

　“네에” 얼버무린다.

　주사실에서 나오는 범학 어머니 “어머니 끝나셨어요?”

　“끝났다 감사합니다” “제수씨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던데 얼른 쾌차하셔야죠 별다른 이상은 없으니까, 약처방만 받으시면 될거에요” “진원장 늘 고마워요” “어머니 모시고 잘 들어가시게” 간호사 다가와서 몇마디 건넨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진료실로 들어간다. 범학 인사를 꾸벅 한다. “차에서 기다리마” “네” 범학모 나간다 준결 들어온다. 범학 서하의 옆 의자에 앉는다 “서하 누나”

　서하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왔어?” “으이구 덜렁이” 준결, 원무과 앞으로 가서 계산한다. 범학 준결 옆에 서서 계산한다. 준결 범학을 흘긋 본다.

　범학 무표정한 얼굴로 마주본다.

　준결 서하에게 다가와서 “가자 누나” “어...” 일어난다.

　범학 전화가 걸려온다. “여보세요 네 지금 나갑니다”

　꾸물대는 준결과 서하와 달리 바쁘게 걸어나가는 범학의 얼굴이 피곤해보인다.

　주차된 차 앞에서 준결, “약 잘 챙겼어?” “어..여기...” 약봉지를 들어보인다. 서하와 준결을 스쳐지나가는 범학의 차, 운전석에 앉아있는 범학, 옆자리의 범학모, 서하와 잠깐 눈이 마주치는 범학, 서하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어디서 본 사람인데...” 준결 서하를 툭 치면서 “뭐해? 어서 타”

　“아까 지나간 사람 있잖아 어디서 본 것 같지않아?”

　“아까 원무과에서 계산할 때 봤잖아”

　“아니 그런거 말구 전에 어디서 본 사람인데” “전에? 글쎄..”

　“어디서 봤었지?” “잘 모르겠어 어서 가자 누나” “어” 차에 탄다.

　준결 시동을 건다. “이번주 주말에 집에 가봐야 돼”

　“집에?” “어, 형이 들어왔나봐” “형? 아주 들어오신거야?”

　“모르겠어 가보면 알겠지 아주 온건지, 잠깐 다니러 온건지,

　주말은 거기 있을거야” “그래”

　준결 갑자기 생각난 듯 “아, 맞다 우리 주말에 거기 가기로 했잖아”

　“어디? 아, 희망원 콘서트” “어떡하지? 누나? 나는 못 갈 것 같은데”

　“나 혼자 다녀올게” “혼자 갔다올 수 있겠어?”

　“야아 내가 어린애냐”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아서 걱정을 안 할 수가 있나 덜렁대다가 뭐 또 안 챙겨가는거 아니야” “염려붙들어매세요 하준결씨”

　“그때 6시였지?” “어, 아, 생각났다 그 사람 콘서트 포스터에서 본 사람이야” “아..생각이 날듯하네” “좋은 일 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러네, 출판사 들러야되지?” “어, 그전에 꽃집에 잠깐 들르자” “꽃집? 왜?” “오랜만에 출판사에 꽃 사가려구” “그래, 꽃집부터 갈게” “출판사 가다보면 꽃집 있잖아 거기로 가자” “알았어” 출발한다.

　범학 말없이 운전 중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아니라, 운전기사 같다.

　“주말에 시간 비워둬 곽판사 가족들이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다”

　“주말에요? 주말은 과 동기들과 선약이 있어요”

　“휴학중인 학생이 선약은 무슨, 6시니까 늦지않게 와라”

　“어머니, 제가 꼭 참석해야될 자리는 아니잖아요 두분만 다녀오셔도”

　“아들은 너 하나뿐인데, 너를 안 데려가면, 누굴 데려가” “누나도 있잖아요” “안돼 주말에 선보기로 해서 거기 가야해” “어머니 누나 사귀는 사람 있어요” “사귀는 사람이 무슨 대수라구, 결혼은 집안끼리 하는거다” “어머니 지금 21세기에요”

　“21세기가 뭐, 21세기라고 신분이 없어졌냐? 어느 시대에나 신분은 있단다

　너도 잘 들어 어디서 어줍잖은 연애하고 다니지마 그럴 시간 있으면 어서 고시 합격할 생각이나 해라” “어..머..니...제 인생이잖아요 부모님이 아닌, 제 인생이라구요” “그래 니 인생이야 니 인생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살아본 내가 시행착오 겪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거 아니야”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 인생이 과연..제대로 된 인생일까요?” “범학아 너 오늘따라 왜 그러냐? 주말 선약 때문에 그러니?” “암튼, 주말에는 안됩니다”

　“녀석 고집하고는..알았다 아버지한테 이번만 그리 얘기하마

　대신 일요일에는 집에 들러라 아버지가 보고 싶어하셔” “네 어머니”

　어머니와의 대화가 불편한 범학은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낮 시간대라서 흘러간 옛날 가요,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것 좀 끌래 너무 시끄럽다 점잖지못하게, 원, 이런 노래는”

　혀를 끌끌 찬다 어머니에게 노래란 클래식 그 외의 모든 음악은 소음일뿐이다.

　얼른 라디오를 끄는 범학, 범학모 이런 저런 얘기를 하지만, 듣지 않는 범학, 잔뜩 날이 서있다.

　화기애애한 준결과 서하의 차안,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흐르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두 사람이다.

　“노래 좋다 언제 이런 노래를?” “어제 누나 일할 때, 받아놨었지, 우리 언제 바다나 보러갈까” “바다? 좋지 ” “기차타고 바다보러 가자” “좋아 가을바다...생각만 해도 정말 좋아” “가자 오늘 출판사에 소설 넘기면 슬슬 마무리 되니까, 다음 주에 갈까” “그래 가자”

　출판사에 가져갈 꽃을 사러 꽃집에 들렀다. 자주 보던 꽃집 주인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알바생만 가게를 지키고 있다.

　“무슨 꽃 살까?” 향긋한 꽃향기에 기분 좋아진 서하가 준결에게 물어본다. “장미?” 서하, 고개를 가로젓는다. “장미는 넘 흔해” “허어 여자들은 장미 다 좋아하는거 아냐? 누나 여자 아니지?” “히히 잼없어” “잼없었어?” “웅” 이꽃 저꽃 보면서

　“소국 살까?” “그럴래? 난 화분은 어때?” “괜찮네 화분이랑 소국 둘다 사자”

　알바생에게 “난화분은 이걸로 주시구요 소국 한다발 주세요” “네”

　준결 장미꽃을 본다. 주황색 장미 한송이를 고른다. 서하에게 건넨다.

　“왠 장미꽃이야?” “장미꽃 색깔따라 꽃말이 다 다른거 알고 있어?”

　“그래?” “주황색 장미 꽃말이 뭔 줄 알아?”

　서하 당황하면서 “몰라” “찾아봐 주황색 장미 꽃말을”

　알바생 씨익 웃으면서 “꼭 찾아보세요”

　서하 장미향을 맡아본다. “향기좋다” ‘준결이는 분홍 장미 한송이가 좋을까? 빨강 장미 한송이가 좋을까 하준결 네 고백에 대한 답은 이거야’ 분홍색 장미 한송이를 고른다. “준결아 이거 너해 너랑 딱 어울려”

　“무슨 소리 남자가 무슨 장미꽃이야” “걍 받아” 분홍색 장미 한송이를 휙 던지듯 건네준다. 준결 얼떨결에 받는다. “어허 줄려면 좋게 주세요 누나” ‘누나 내 매력을 이제 알아보겠어? 역시 안목이 탁월하시군’ 혼잣말처럼 “으흐 닭 될것같다” 서하 살짝 붉어진 얼굴로 먼 산을 본다. 준결도 덩달아 얼굴을 붉힌다.

　소국 한다발을 안아들고, 먼저 들어온 서하, 직원에게 건네준다.

　“왠 꽃이에요?” “책 잘 뽑아달라는 아부성 꽃이에요” “에헤 그런거라면, 저희가 부탁드려야죠” “오랜만에 들러서 민망해서 겸사 겸사” 준결이 들어와서 난 화분을 테이블에 놓는다. “이것도”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계시면 좋을텐데...오늘 약속 있다고 나가셨어요” “사장님 선약이 있으셨구나” “네, 새 책 때문에 누굴 좀 만나러 가셨어요” “새 책 드디어” “네” “어떤 책이에요?”

　“봉사하는 삶, 이런 책인데요 수녀님이 쓰실거에요” “수녀님이요?” “네, 희망원이라구 얼마전에 방송에 나왔던” 준결 되묻는다.

　“희망원이요? 이거 참...” “왜 그러세요?” “우리 주말에 거기서 하는 콘서트 보러갈거라서” “잘 됐네요 그때 같이 가요 가서 아이들도 보고, 수녀님도 뵙고 와요”

　“그럴까요? 잘 됐다 같이 가요” “잘 됐다 누나” “그러게”

　원고를 꺼내서 놓는다 “여기” 직원 원고를 읽어본다 “요즘 작가님 소설이 왠지 달달해졌어요” “네? 추리 소설이 달달할 리가?” “뭐랄까? 음 그냥 그런 느낌이에요” “읽어봤는데..뭐 별로 달달한 느낌은 없었는데” 의아해하는 준결이다.

　“작가님 요새 연애하세요?” 서하 펄쩍 뛰면서 “네에? 연애라니요? 연애세포가 단종된지 오래된 저한테” “요고 요고 펄쩍 뛰시니까 더 이상한데,

　준결씨 우리 작가님 요새 연애하죠? 누구에요?” 준결 당황하면서 “모..모르겠는데...누..나..연애해? 같이 있는 나도 모르는 연애를 언제 했대?”

　“연애는 무슨, 그런거 없어요 걍 가을이라 가을타서 그런가봐요”

　“그런가요? 요즘 문체가 달달해지신게 연애하는 느낌이었는데, 아닌가?

　암튼, 달달해진게 좋습니다 추리 소설 십대 독자층을 좀 확 끌어올 수 있겠는데요” “그래요? 잘 됐네요”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네? 아닙니다 네에” 서하 당황해서 빨개진 얼굴을 식히려고 손부채질을 한다. 준결 신문을 접어서 서하에게 건네준다. 서하 받아서 먼산을 보면서 부채질한다.

　“좀 덥죠 가을이라도 아직 많이 더워요 에어컨 틀어드릴까요?”

　“아니..괜찮아요...많이 덥지는 않아요” “원고 계속 볼께요” “그러세요” “정미씨 여기 커피 세잔만 갖다줘” “네” 모니터 앞에서 열일중이던 직원 일어난다

　희망원 강당에서 아이들 범학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서 노래하고 있다. “다시 해보자” 하모니카를 분다. 아이들 다시 노래한다. 원장 수녀님 들어와서 범학을 부른다. “범학씨 잠깐 나 좀 봐요” 범학, 연주를 멈추고 “애들아 너희들끼리 연습하고 있어” 원장 수녀와 나란히 나가는 범학, 원장실로 향한다.

　단촐한 원장실 안, “범학씨 거기 앉아요” 쇼파에 앉는 범학, “무슨 일입니까?”

　“범학씨 여기서 같이 지낸지 얼마나 됐어요?” “6개월 됐습니다”

　“아이들 콘서트 마치면 범학씨도 이제 학교로 돌아가야지”

　“수녀님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범학씨 법대 수석 합격생인거 알아요

　그만큼 집에서 거는 기대도 클텐데...여기서 계속 있으면 안되죠”

　“수녀님 조금만 더 있으면 안되겠습니까?”

　“범학씨 아버님께서 전화하셨어요 당장 데려가겠다고 하시는걸

　이번 콘서트까지만 있게 해주십사하고 간청했답니다

　범학씨 부모님의 기대 뿌리치지 말아요 기대 져버리지말고, 범학씨 해야할 공부를 하세요 봉사는 지금 아니라도, 범학씨가 맘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어요

　지금은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할 때에요”

　“수녀님 저는 법대가 적성에 맞질 않습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원래는”

　“적성에 맞지않는 공부라도, 해두면 나중에 다 도움이 되잖아요

　범학씨가 부모님 같은 사람이 됐을 때,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도울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구요” “수녀님” “범학씨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요 학교로 돌아가요” “수녀님” “그렇게 알고 있을께요 이번 콘서트 끝나면 학교로 돌아가는거에요 나가봐요 참, 이번 주말에 범학씨 부모님도 오신다더군요” “저희 부모님께서요?”

　“네, 아이들 보러 오신답니다 다른 분들도 몇분 모시고 오신다고 하셨어요” “혹시 거기에는” “범학씨 그런게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을 보러 오시는거에요” “알겠습니다 수녀님” “나가봐요 범학씨”

　긴 복도를 터벅 터벅 걷고 있는 범학, 생각에 잠겨있다.

　뒤에서 등을 툭 친다. 돌아보면, 우영이다.

　“뭐해? 범학아 연습 안해?” “해야지” “무슨 일 있는거야? 얼굴이 왜 그래?” “우영아 나, 이번 콘서트 끝나면 돌아간다” “집으로?” 얼굴을 찌뿌리다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잘 됐네 수석 입학생이 여기서 썩고 있으면 안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