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이덴티티 6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팔짱을 낀 연인들,

　사람들로 넘쳐나는 대학로 소극장 앞에서 준결을 기다리고 있는 서하,

　다정하게 속삭이며 꺄르르 웃어대는 연인들의 모습에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 입장하기 시작하고, 서하 자꾸 시계를 본다.

　준결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온다. “왜 이제 와?” “미안 누나 깜빡 잠이 들었어” “으이구 그래도 일어나서 나온게 기특하네” “기특하지?” “어떻게 일어난거야?” “그게 말해도 안 믿을거야” “우선 말해봐 믿을지, 안 믿을지는 내가 판단할게”

　“시계가..태엽 시계가 깨워줬어” “뭐어? 장난하냐? 우렁각시라도 돼? 깨워주게?”

　“그래서 안 믿을거라 했잖아” “차근 차근 말해봐”

　“작업 끝내고 앉아있는데 졸린거야 시간을 보니까 두 시간 가량 남아서 잠깐 졸아야지 했거든 근데, 푹 자버린거야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번쩍 하는거야 후레쉬로 비춘것처럼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는거야” “그래서?”

　“깜짝 놀라서 깨어났지 일어나보니까, 시계가....태엽시계가 반짝이고 있는거야 꽤 오랫동안 반짝이다가 멈췄어 그렇게 오래 반짝인거는 처음이라서 신기하드라” “그랬어? 정말 신기하다 태엽 시계 가져왔어?” “어...여기 있지” 점퍼 주머니를 가리키면서 “시간 다 됐지? 들어갈까” “어...그러자..”

　서하와 준결 안으로 들어간다. 다섯시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틈에 앉아서 서하와 준결도 공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극 제목이 이니그마?” “수수께끼...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

　연극이 시작된다 누군가 보내온 편지를 단서로 실종된 연인을 찾는 내용의 연극이다. 주인공은 연인을 찾기위해서 고군분투하지만 관객들이 공감하기에는 주인공의 연기가 밍숭 맹숭해서 이내 지루해진다.

　생각보다 지루한 연극에 하품을 하는 서하, 갑자기 소극장 안이 어두워진다.

　“무슨 일이지?” “글쎄..” 어둠속에서 준결의 목소리만 들린다.

　핸드폰을 꺼내보려고 서하의 가방을 더듬는 준결 “야아..어딜 만져”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서하의 목소리 어둠속에서 들려온다.

　“미안 누나..안보여서..” “어둠을 틈타서 요때다~기습한거야?”

　“누나 핸드폰 찾아야 되니까 나 웃기지마”

　더듬 더듬 핸드폰을 찾는데, 관객 쪽의 불이 환하게 켜진다.

　오늘 공연의 주인공인 연극 배우가 관람석 앞에서 인사한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무대의 조명에 이상이 생겨서 일곱시 공연은 더 진행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오신 관객분들께는 원하는 시간의 다른 공연표를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조명 손보면,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아서, 9시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면서, 아홉시에 더 좋은 공연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군거리면서 일어나는 관객들 틈에서 서하와 준결도 일어난다.

　“연극 내일 다시 볼까?” “나왔는데 그냥 오늘 보고 가자”

　“그럴래? 이따 아홉시꺼 보면 되겠다” “그러자 아홉시 될 때까지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자” “뭐가 맛있으려나? 나가보자 누나” “그래..”

　소극장 바깥으로 나가는 두 사람, 서하와 준결 서로를 마주보며, ‘생각보다 지루했어’ 눈빛 만으로 뜻이 통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다 피식 웃어버린다.

　소극장 부근을 한참 걷다가 인도 요리를 먹어보기로 의기투합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손님들이 드문 드문 앉아있는 음식점 안, 오늘의 추천 요리를 주문하고 특이한 인테리어로 시선을 끄는 가게 안을 둘러본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한 입 먼저 먹어보는 준결, “어때?” “먹을만한데” “좋아할 줄 알았어 많이 먹어” 먹느라 잠시 말이 없어진 준결에게 서하가 말을 건다. “아까 연극말이야 여자 넘 안됐지?” “뭐가?”

　“용의자 1, 남편한테 살해당하는 여자, 너무 무섭지않아?

　그런 남편을 남편이라고 같이 살아왔다는게” “연극인데 뭘..”

　“뉴스봐봐 연극에서만 있는건 아니야, 서로를 죽일 정도로 증오하면서 같이 사는건 어떤 이유일까?” “글쎄..애증?”

　“애증보다는 습관?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라, 해왔던거, 익숙한걸 놓기 힘들다잖아 결혼도 그런 것 같아”

　“익숙한걸 놓기 힘들다 결혼만 그런건 아닌것같다”

　“그럼 뭐가 또 그래?”

　“우리도 너무 익숙해지고 있잖아 누나는 나 없으면, 어떨것같아?”

　“어..어? 어떨것같냐니?” 준결, 망설이면서 “나..는 많이 허..할것같은데, 허전할것같은데..” 괜히 서하 보기가, 쑥스러워서 한 입 크게 떠서 먹는다.

　서하 왠지 묘한 분위기에 어색해진다.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더 어색해지는 두 사람, 어색한 분위기에서 이어지는 식사, 준결 먹다가 사례가 들린다.

　서하 얼른 냅킨과, 물잔을 같이 건넨다. 계속 기침을 하는 준결,

　서하 살며시 일어나서 준결의 옆자리로 가서 토닥 토닥 등을 두드려준다.

　준결 등을 두드려주는 서하의 팔을 가볍게 잡는다.

　이런 행동들이 굉장히 익숙하고, 자연스러워보인다.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어색함이 사라진다

　서하 조명에 반사되어 눈빛이 촉촉하다. “누나..는..어떨 것 같아?”

　준결 평소와는 다르게 장난스럽지않은 진지한 표정이다.

　서하도 망설이다가 “나는..앓던 이가 빠진것같을거야”

　준결 실망한 표정으로 “뭐야?” “그..근데..그 앓던 이가 사랑니야”

　준결 다시 깊숙한 눈빛이 된다. “사랑니?” 서하 준결을 마주보지않는다. “빼기전까지는 빼면 아플텐데 겁먹고, 빼고 나면 아물때까지 더 아파오는....사..랑..니..같을거야” “누..나...”

　서하와 준결 서로를 마주본다. 미묘한 분위기...준결 나도 모르게 서하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입술이 닿을만큼 가까이 다가갔을 때, 갑자기 정신이 드는 준결 화들짝 놀라면서 황급히 떨어진다.

　당황스러운 준결..서하도 당황스러워하면서 얼른 제 자리로 가서 앉는다.

　“어서 먹자..연극 시간 다 되가” “어..그래”

　‘요놈은 왜 갑자기 달리기를 하는거야’ 살짝 가슴을 부여잡는 준결이다.

　‘위험했어 너, 단서하...하준결....빼고 난후가 더 두려워지는 위험한 녀석이야’ 서하는 아직까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가볍게 두드린다.

　서로를 한번 흘깃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먹는 척 하는 서하와 준결..다시 침묵이 흐르지만, 아까와는 달리 어색하지 않고

　두근 두근 설레이는 두 사람이다.

　식사를 마친후, 서둘러 소극장으로 향하는 서하와 준결,

　두 사람이 앉자마자, 아홉시 공연이 시작된다.

　무대 배경은 연극 무대 뒤, 세트다.

　꽃병을 내려놓은채 서로를 보고 있는 종희와 미애, 하린,

　세 사람의 앞에 서있는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

　“되돌릴 수 있는 순간이 여러분께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러분은?” “주철씨가 다치기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하린이다.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가 하린을 본다. “하린씨는 주철씨가 밉지않아요?”

　“미워요...밉지만...다쳐서 누워있는게 더 미워요” 남자, 미애에게 “미애씨는요?”

　“나..나는...상관없이 그냥 있을래요 주철씨는 이미 지나가버린 사람인걸요 이미 나한테는 관심 밖이에요”

　남자는 종희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종희씨는 어떻게 할거에요?” 종희 당돌하다 “나..나는 모르겠어요 주철 오빠 누워있는것도 사고였으니까요 사고 전으로 간다고 하여도 사고가 안 일어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미애는 종희를 노려보면서 “종희야” 미애를 쏘아본다 “언니도 좀 솔직해져봐 주철 오빠 밉지않아? 솔직히 미워죽겠잖아 그러면서 뭘...아닌척 하고 있어?”

　“종희야 그래도 이건..”남자가 종희를 본다.

　“종희씨 보헤미안 랩소디란 노래 알죠?” “네 근데 그건 왜?”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도 알아요?” “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보면요 노래의 화자는 후회를 하고 있어요 왜 후회했을까요?” “글쎄요” “후회하다가 원망하고...그러다 체념해요 왜 체념하는 줄 알아요?”

　“그..글쎄요” “그건 기회가 다시 기회가 없기때문이에요 종희씨에게 기회를 줄께요 종희씨에게 후회를 만회할 기회가 생겼어요

　종희씨는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어요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두 다 종희씨에게 달려있어요

　종희씨 시간은 다시 무대 위의 시간으로 돌아왔어요 자 어서 가봐요"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 종희를 무대 밖으로 내보낸다. 남자는 하린과 미애를 본다. “하린씨와 종희씨만 데려오려다, 미애씨도 같이 데려왔네요

　미애씨 지나가버린건 털어버려요 미애씨도 몰랐잖아요 하린씨한테 미안한거 털어버려요 하린씨는 이미 털어버렸을텐데요 그렇죠 하린씨?”

　“네 그래 미애야 나 너 안 미워해 그러니까 너도 나 이제 그만 편하게 대해줘” “하..하린아” 하린의 손을 붙잡는다.

　“하린아..돌아가면..우리 정말 잘 지내자” “그래...그러자..나..이제 주철씨랑 헤어질거야 결심했어”

　미애, 하린의 손을 다독거리면서 “잘 했다 잘 생각했어”

　남자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숲을 허밍으로 부른다. “노르웨이 숲이네요?”

　미애가 먼저 알아듣는다.

　“이 노래 들으면 왠지 서글퍼요 이제 모두 다 과거다 뭐 이런 노래 같아서”

　하린, 쓸쓸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다.

　“과거다 흘려보내라 과거의 흔적은 사라지게 두라..그냥 이 노래 들으면, 왠지 이런 느낌 들지 않아요?” 남자가 하린에게 말한다 “슬퍼요 노래가...” 하린,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다 미애가 하린의 손을 잡는다

　“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슬프게도, 기쁘게도 들려요

　이 노래가 슬프게 들린다면, 하린씨 마음이 지금 슬퍼서 그럴거에요”

　“이 노래가 서글픈것도 제 마음이 서글퍼서 그렇겠죠?” 하린의 쓸쓸한 표정이 흘려보내야할 지난 날을 담고 있는듯하다.

　“네...지나버린 모든 것은 서글프다 남아있지 않아서 서글프고,

　남겨둘 수 없어서 서글프고...이 노래 들으면...슬픔이란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바다 끝 언저리에서 간신히 밧줄 붙잡고 빠져나오는 기분이에요

　이 노래는 슬픔에 빠져도 결국에는 빠져나오게 된다는, 제 나름대로는 희망적인 노래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슬픔에 빠져도 결국에는 빠져나오게 된다 맞는 말이에요”

　“두 사람에게 또 한곡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어요 영화 인셉션의 음악

　“time" 이에요 시간은 앞을 보면서 흘러야해요 자꾸 뒤돌아보면,

　시간은 고여있게 돼요 고여있는 시간은 침잠하고,

　침잠한체로 고여있는 시간은 썩게 마련이에요 시간을 썩어가게 만들지 말아요”

　하린과 미애 두 사람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가 무대 바깥을 본다

　“시간이 다되어가는데, 종희씨가 왜 안 내려오지?”

　무대 바깥에서 비명소리 들려온다 하린과 미애 덜썩 주저앉는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종희가 무대에 나온다 “종희씨...”

　“나..나는 용서할 수 없었어요 주철 오빠 용서할 수 없었다구요

　나는 주철 오빠 믿었어요 하린 언니 정리하고 나만 바라봐준다는 주철 오빠를 믿었어요 그런데..주철 오빠는..나를 바람..잠깐 스치는 바람 정도로 대했어요

　나는 주철 오빠를 용서 할 수 없어요 절대로 용서안해요”

　남자는 힘이 빠져서는 종희를 본다.

　하린과 미애 역시나 남자와 같은 표정으로 종희를 쳐다본다 .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관객들 귀를 기울인다.

　“시절을 돌리려하지마 시절 인연은 때로 그냥 흘려보내야해

　지나가버린건 지나가버린체 두는 것도 좋아

　되돌려서도 해결되지 않는건, 다시 되돌릴 필요가 없어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둬 이미 시절이 지나가버린거야”

　하린, 울먹이는 종희를 안아준다.

　미애는 종희를 안쓰럽게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