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홉시 그들의 시간 3
티격태격 장난을 치면서 작업실로 돌아온 두 사람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보내고, 어느새 저녁, 서하가 해준 저녁 밥을 배불리 먹은 준결은 작업실 의자에 길게 누워서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든다.
벽에 있는 시계가 어느덧 8시 55분을 가리킨다.
잠들어있는 준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책상에 앉아서 태엽 시계를 만지작 거리는 서하, 생각에 잠겨있다. 혼자 떠들고 있던 티비에서 아홉시를 알린다.
갑자기 서하의 손 안에 있던 태엽 시계의 태엽이 스르르 풀린다. 깜짝 놀라서 태엽을 한번 돌리는 서하, 다시 풀리지않는 태엽, 오작동이였구나 안심하면서 벽에 있는 시계를 무심코 보다가 소스라치게 더 놀란다. 벽에 있는 시계가 다시 8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잘못봤나 하는 마음에 눈을 비비며 다시 보지만, 시계는 8시 55분 그대로다. 가늘게 코까지 골면서 여전히 잘 자고 있는 준결을 보면서 부르르 떠는 서하 멍하니 서있다가 다시 티비에서 아홉시를 알리는 소리를 듣는다. 으악~소리를 지르면서 준결을 깨우는 서하, 준결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깨어난다. 준결의 팔을 잡고 다다다다 뛰어나가는 서하, 작업실 바깥 복도 벽에 기대어서 가뿐 숨을 몰아쉰다. “뭐라구?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준결아” “그래? 어디 한번 보자 들어가자 누나 왜 바깥으로 나온거야” “으아~나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어 너 혼자 들어가봐” “밖에 혼자 있는건 안 무서워?” 불꺼진 캄캄한 오피스텔 복도다. “그래 그럼” 준결 들어가려 한다 “으아..” 준결의 팔에 매달리면서 “같이 들어가자”
작업실 안 책상 위의 태엽 시계를 미심쩍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준결의 뒤에 서하는 떨면서 서있다. 준결 태엽 시계를 만지작거린다. 아무 이상없는 태엽 시계, 태엽 시계를 들어보면서 서하를 본다. “괜찮은데? 누나 꿈꾼거 아냐? 아까 나 잘 때 심심했었어? 심심해서 장난치는거면 성공인데 누나..연기력 괜..찮..타..” 준결 장난스럽게 말한다 서하, 여전히 부르르 떨면서 “아니야 장난아니야 진짜 움직였다니까 시계가..태엽이..저절로..풀려서..움직였어..그러더니 시간이 5분전으로 돌아가있었어” 미심쩍은 표정으로 보는 준결에게 “정말 이라니까 정말 이야”
서하의 진지한 표정이 장난은 아닌 것 같아서 덩달아 진지한 얼굴로 “이상하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냥 보통 시계인데 누나 아까 아홉시랬지? 아홉시였다구 했지?” “어 아홉시였어 정확하게 기억해 티비에서 아홉시를 알립니다 그 소리를 들었거든” “아홉시라 내일 아침에 다시 봐야되나? 아홉시 되면 알겠지 내일 한번 보자 누나” 말을 마치고, 가방을 들고 문쪽으로 걸어가는 준결에게 다급하게 소리치는 서하, “주...준결아 너 가려구?” “그럼 가야지 어제도 외박했는데 엄마 걱정하시겠다” “나..나도 가면 안돼?” “누나두? 누나..우리 집에 벌써 인사가려구? 그건 넘 빠른데” 여전히 유들 유들 느물거린다. “야아..이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냐? 너는? 나 넘 무섭다구 여기서 못 자겠어” “내일까지 넘겨야할 원고도 있잖아 출판사에서 전화올텐데 소설 내일까지 해주기로 한거 아니야?”
“아 맞다 소설, 아직 덜 썼는데 아 그것도 해야되구, 주..준결아 같이 있어주면 안돼?” 준결, 무서워하는 서하를 보면서 “에이 할 수 없지 좀 빠르지만 누나를 위해서 내 한몸을 푸하하하” 농담을 한다. 서하 무서워하면서도 준결을 밉지않은 표정으로 흘겨본다. “엄마한테 전화해야겠다” 준결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한다. “너 어디가? 안 간다면서?” “하, 거 참, 가서 먹을 것 좀 사오려구 밤새려면 출출하잖아” 서하, 떨면서 “같이가”
준결, 서하 먼저 나가게 한 후에 불을 끄고 나간다. 문을 닫는 소리 들려온다. 캄캄한 방 안에 태엽 시계가 유난히 반짝인다.
다음날 아침 책상 위에 태엽 시계를 올려놓고 숨을 죽인채로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서하와 준결, 벽에 걸린 시계가 정각 아홉시를 가리킨다. 시계를 노려보는 두 사람, 아무 움직임이 없는 태엽시계, 어느새 시간은 아홉시를 지나있고, 아무 움직임이 없는 태엽시계를 눈에 힘 딱 주고 노려보다 눈이 아파오는 준결, 눈에 힘을 푼다. “보다가 눈만 아프네 이거, 누나 고만 봐 안되나봐” “아닌데 정말 어제는 움직였는데 아홉시 맞는데” “정말 누나가 꿈꾼거 아니지? 아니면 나 놀려주려고 장난하는거야?” “농담하지마 나 심각하다고” “이상하네 아홉시인데 멀쩡하잖아” 시계를 가만히 노려보던 준결, 갑자기 무릎을 탁 친다.
“혹시 아침 아홉시가 아닌가? 그럼?” “저녁 아홉시? 이따 밤에 다시 볼까? 그럼?” 서하 고개를 끄덕인다. “원고나 넘겨야겠다 누나 원고 줘” 서하, USB를 내밀면서 “여기" "어” 준결 컴퓨터를 켜고 서하 태엽시계를 한참 보다가 커피를 타러 일어난다. 찻잔이 부딪치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들려온다. 태엽 시계 환하게 반짝인다. 마감을 맞추느라 바쁘게 작업하다가 원고를 넘기고 한숨 돌린다.
저녁 아홉시 십분전, 두 사람은 사람들이 많은 번화한 거리에 서있다. 준결 손에는 태엽 시계를 들고 있다. 전광판에서 어느덧 아홉시를 알려준다.
준결의 손에서 갑자기 스르르 움직이는 태엽 시계, 준결 으아~소리를 지르면서 태엽 시계를 떨어뜨린다. 다행히 망가지지 않은 태엽 시계의 태엽이 저절로 돌아간다.
걷다가 그 자세 그대로 멈춰있는 사람들, 정지된 거리의 풍경, 서하 떨면서 준결을 본다. 준결 역시나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하를 본다. 떨어져있는 태엽 시계를 주워드는 준결, 무심코 태엽을 돌려본다. 두 번 돌린다. 정지된 거리 다시 움직인다. 걸어가는 사람들 전광판을 보는 두 사람, 시간은 8시 50분이다 놀라면서 서로를 보는 두 사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다. 태엽 시계, 준결의 손에서 반짝인다.
영문을 모르는 두 사람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겸 한잔 하러 홍대 부근 클럽에 들렀다. 오늘은 “time” 인디 밴드의 공연이 있는 날이다.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기다리는 두 사람, 한참 앉아서 시끄러운 클럽 음악을 듣고 있다. “타임의 ‘나른한 봄날 오후’를 청해듣겠습니다” 소개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곧 이어 여자 둘 남자 넷으로 구성된 밴드 아담한 무대에 오르고 공연을 시작한다. 전주가 지나가고 노래를 부르려하다가 갑자기 멈추는 리드 보컬 효화 멜로디는 계속 연주되고,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연주를 멈추는 밴드 수군거리는 관객들, 당황하는 밴드 사람들 모여서 소곤거리며 뭐라 얘기한 후 다시 공연을 시작한다. 다시 전주가 흐르고 효화 노래하기 시작하다가 다시 갑자기 멈춘다. 다시 수군거리는 사람들, 밴드의 리더 민형이 마이크를 잡는다. “죄송합니다 오늘 공연은 사정상 못하겠습니다 공연 보러 오신 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계속 죄송하다면서 꾸벅 인사를 한다. 무대를 내려가는 밴드 사람들, 수군거리는 관객들 다시 흐르는 음악에 관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묻혀진다. 서하와 준결의 테이블 옆으로 지나쳐가는 밴드 사람들, 서하와 준결 의아한 표정으로 밴드를 본다.
밤거리 클럽 바깥에 서서, 울고 있는 효화, 달래는 인경, 중연, 신준, 한숨을 내쉰다민형 담배를 꺼내서 피워물고 심각한 표정으로 성식을 본다. “안되잖아 인경아 너는 할 수 있겠어?” 인경 고개를 가로 젓는다. “거봐 안된다니까, 신준아 너는 하겠어?” “아니” “중연아 너는?” “나도 못해” “다 못하겠다면 내가 할게” 효화 울음을 멈추면서 민형을 본다. “네가? 네가 한다구? 네가 제일 그렇잖아” “그럼 어쩔거야? 잡아놓은 공연은” “그러게 말렸잖아 아직은 무리라구 우리 모두 아직은 안된다구 네 고집으로 무리하게 추진해서 이게 뭐냐?” “내 고집이라구? 공연 안하면, 어떻게 할거야? 종혁이 어떻게 할거냐구” “종혁이, 그 녀석 안됐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민형, 벌컥 화를 내면서 성식을 노려본다. “뭐라구? 너 이 자식아 다시 말해봐”
“어쩔 수 없다구”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민형의 주먹이 날아온다. 나가떨어지는 성식, 놀라면서 보는 인경과 효화 “다시 말해봐 다시 말해보라구 자식아” 씩씩대는 민형의 팔을 잡는 중연과 신준, 밖으로 나오던 서하와 준결, 멀리서 그 광경을 보다가 멤버들에게 다가온다. “무슨 일이신지?” “가세요 우리끼리 사소한 다툼이에요 어서 가세요” “아까 공연하시려던 분들, 왜요? 무슨 일이신데요?” “거참, 지나가시라니까 말 많으시네요”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 몰라서” “그래요 여기서 이러지말고 어디가서 차분하게 얘기해요” 민형 서하와 준결을 본다. ‘슬픈 눈빛이네’ 서하의 눈에 비치는 민형은 슬퍼보인다. ‘본적 있는 눈빛인데..이 눈빛..어디서 봤더라?’ 준결은 처음 본 민형의 눈빛에서 익숙함을 느끼는 자신이 낯설다. 성식 인경의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난다. 효화 눈물이 고여있는 눈으로 민형을 본다.
밴드 사람들을 설득해서 근처 포장마차로 데려온 서하와 준결, 소주와 안주를 주문하고 포장마차 테이블을 붙여서 앉는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안주와 소주가 나온다. 소주와 계란 말이, 오뎅, 꼼장어, 푸짐한 안주에 입이 쩌억 벌어지는 멤버들, 술을 못 마시는 효화는 콜라를 마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소주를 먹는다. “무슨 일이에요? 여러분들” 민형, 머뭇거리면서 효화를 본다. “얘기해” 민형, 결심한 듯 말한다. “우리 지금 노래를 못해요 모두 노래를 할 수 없어요” “네? 무슨?” “우리 모두 노래만 하려고 하면, 목소리가 안 나와요 노래가 안돼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목소리가 안 나오다니요? 지금은 나오잖아요?” “사고가 있었어요 한달 전쯤에 사고가 있었는데, 그 사고로 친구 녀석이 많이 다쳤어요 그 사고 이후로 우리 모두 노래하려하면, 목소리가 안 나와요” 자신의 가슴을 탁 치면서 “여기가 턱~막히면서 노래가 안돼요” “친구의 사고로 심리적인 충격을 받아서 일시적으로 그런 걸거에요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거에요 맘을 편하게 가져요” 위로하려는듯 다독이는 준결, “아니요 그런게 아니란말입니다 맘을 편하게 라니, 당신들이 뭘 안다고 쉽게 그런 소리를 해” 성식, 답답해한다.
“성식아” “맘을 편하게 가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목소리, 우리는 목소리를 잃었어요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야할 이유를 잃었다구요 노래하는 사람에게 노래가 안 나오는건 살아가야할 이유를 잃은 것과 똑같아요” 민형의 슬픈 목소리에 효화 흐느낀다. 인경, 효화를 다독이면서 “우리 모두 극복하려고 노력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벌써 한달이 지났어요 이러다 두달 되고, 석달 되고, 그러다 계속 목소리를 잃어서 노래를 못하게 되는거 아닌가 두려워요”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포장마차 바깥, 벚꽃 나무에 꽃잎이 떨어져서 바람에 포장마차 부근의 꽃잎이 흩날린다.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서하 “총을 맞았어요 종혁이가 총을 맞았어요” “총..이라구요? 어떻게?” 울고 있는 효화를 대신해서 얘기하는 인경, “사고였어요 우연하게 일어난 사고요” “그게 우연하게 일어난 사고야?” 성식, 소리친다 “그럼? 뭐야?” 효화, 되묻는다 “그게 다 저넘 때문이라구” 성식, 민형을 가리킨다 “성식아 그건 민형이 때문이 아니야” 중연이 민형의 편을 들지만, 성식은 아랑곳하지않는다.
“너희들 모두다 진실을 외면하고 있어 왜 민형이 때문이 아니야 너희들 모두다 알고 있잖아 저 녀석 때문인거, 저 녀석 때문에 우리 목소리가 그렇게 되고, 우리..종혁이도...그렇게” “그만해 민형이 때문이 아니라구” 중연, 소리친다 “그만 좀 기만해 이제 그만 좀 인정하라구 인정하면 니네들 양심에 스크래치날까봐서 그러냐?” 성식은 여전히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답답해지는 중연, “이 자식아 말이 넘 심하다 그래 모두 우리들 때문이다 그래 모두 우리 탓이라구 민형이 저 녀석 탓이 아니라” “그래 우리 모두 책임이었어 민형이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인경,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서 나는 빼줄래 나까지 끼워넣지 마라” 성식, 여전히 생떼를 쓰듯 반복한다 인경, 날카롭다 “뭐라구? 너? 따져보면 니 책임이 제일 큰거 아냐? 그래서 더 민형이한테 떠넘기려하는거 아냐? 너?” 예리한 인경, 성식을 노려본다.
“그만해 인경아 성식이 말대로 내 탓이야” 성식, 눈을 부라리면서 “그래 말 잘 했다 너 모두 니 탓인거 너도 아는구나 그런 녀석이 오늘 공연을 잡아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냐?” “미안하다...종혁이..병원비 때문에 공연은 꼭 잡아야했다” “니 탓이니까 니가 해결해야지 왜 거기에 우리까지 끌어들여?” “알았다 내가 해결할게 모두 다 내가” “꼭 그래라 너” “그..그만해..제발...그만해...모두...성식이 너두 너희들 모두” 효화, 눈물이 가득 고여있는 눈으로 민형을 보면서 “민형이 탓도 아니야 모두다 나 때문이었어 나 때문이라구” “효..화야...” 민형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어디선가 사냥 총 소리 들리고 쓰러지는 사람의 소리,
다급한 발자국 소리 들려오고, 쓰러져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민형,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있는 종혁, 종혁의 곁에서 겁에 질린채 떨고 있는 효화,
뒤를 이어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들,
신준, 중연, 인경, 쓰러져있는 종혁을 보며 소리를 지르면서 멈춰선다.
모두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는듯 한동안 말이 없다.
포장마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눈물 흘리는 효화,
“모두 다 나때문이었어 종혁이 저렇게 된 것도 목소리를 잃은 너희들도
모두 다 나때문이었어” 정적을 깨뜨린다.
“그런 말 하지마 너 때문이 아니야 우리 모두 때문이지”
인경, 효화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