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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루나틱
작가 : 0kim
작품등록일 : 2017.7.4

주인공의 그림자로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인생만 10년! 눈치 없는 주인공 옆에서 소꿉친구의 짝사랑을 바라본 기간 또한 10년! 수다스럽지만 불만 많고, 유쾌하지만 겁 많은 그림자와 세상 비관적인 주인공, 호기심 많은 여자 소꿉친구와 함께하는 판타지 세계 모험물.

 
면회
작성일 : 17-07-08 17:27     조회 : 335     추천 : 0     분량 : 7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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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어째서 거절인 거죠?”

 현우는 사나운 기세로 따져 물었다.

 브루아나는 현우가 뭄하프의 회전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가 다가올 동안 저 단순무식한 리 쉐도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계속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설명을 하던 간에 면회가 거절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분명 가시 돋은 말이 튀어나올게 뻔했다. 그래서 브루아나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을 떠올려 활짝 웃는 얼굴로 안내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우는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순간, 브루아나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걸 보세요. 읽을 수가 없잖아요!”

 브루아나는 현우의 가슴팍에 면회신청서를 거칠게 들이밀었다. 현우는 두고 보자는 식으로 그녀를 쏘아보면서 안주머니를 뒤져 번안경을 꺼내 썼다. 옆에 있던 마토와 리온은 현우의 양 어깨 너머로 각각 얼굴을 내밀어서 신청서를 보았다.

 

 이름 : 표현우

 종족 : 쉐도어

 나이 : 20살

 면회 사유 : 보고 싶어서 면회를 신청합니다.

 

 어제 현우가 휘갈겨 썼던 글자들이 종이 위에 적혀 있었다. 심각한 악필이어서 직접 글을 쓴 장본인도 두세 번 확인해야만 알아볼 수 있었다.

 “뭐가 읽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아니, 그래요. 악필인 건 인정합니다. 저 원래 글씨 잘 못 써요. 그래도 아예 못 읽는 정도는 아니잖아요?”

 마토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현우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그때, 리온이 갑자기 탄식을 뱉으며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글씨가 개판이라 알아보지 못해서 신청하신 면회가 거절된 게 아니에요. 신청서 작성을 여기 언어로 작성하셨어야죠. 이 언어를 제가 어떻게 읽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런 알아먹지도 못하는 문자로 적어놓으면 제가 어떻게 읽느냐고요.”

 브루아나가 강경한 어조로 말하자 현우의 사납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신청서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쳐다보았다. 삐뚤빼뚤하긴 해도 분명 한글로 적혀 있었다.

 “여기 한글로 제대로 적혀 있는데 왜 못 읽는…….”

 “그러니까 당신이 살던 나라에서 쓰던 언어로 작성하면 어떡하느냐고요! 여기 나라 언어로 작성해야지!”

 브루아나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몇몇 쉐도어들이 책망하는 눈길을 던졌고, 경비원들은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그들은 장작 크기의 커다란 몽둥이를 손바닥에 탁탁 내려치면서 한 번 더 소란을 피우기를 기다렸다.

 리온은 상황이 더 커지기 전에 나서야겠다고 판단해 현우가 쓰고 있는 안경을 확 벗겼다.

 “뭐하는 거예요?”

 “네 이름, 표현우라고 적힌 글자 바로 옆에 뭐라고 적혀 있어?”

 “네?”

 “네가 적은 네 이름 바로 옆에 뭐라고 적혀져 있냐고.”

 리온이 다짜고짜 말했다. 그러자 브루아나는 그것 참 멍청한 놈을 이해시킬 좋은 방법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브루아나의 시선을 의식하며 면회 신청서를 슬쩍 바라보았다. ‘표현우’라고 적힌 글자 옆에는 실루엔노틀 언어로 적혀 있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읽어요?”

 “왜 못 읽어?”

 “실루엔노틀 언어로 되어 있잖아요.”

 “그래. 실루엔노틀 언어로 적혀 있어서 네가 못 읽겠지. 그럼 반대로 이곳에다가 너희 나라 언어를 적어 놓으면 실루엔노틀에 있는 이종족들이 어떻게 읽겠어?”

 현우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고, 마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자 안내소 주변은 조용해졌다. 경비원들은 손바닥에 탁탁 내려치던 몽둥이를 다시 허리춤에 끼어 넣었다.

 “어제 네가 번역이 되는 안경을 쓰고 신청서를 작성해서 몰랐던 거야. 너희 나라 언어로 자동으로 번역이 돼서 보이니까 넌 그냥 너희 나라 언어로 적은 거라고.”

 리온은 몹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안경을 쓰면 실루엔노틀 언어가 자동으로 되는 것 맞는데 그렇다고 네가 쓴 문장이 이곳 언어로 바뀌는 건 아니니까……. 제길, 어제 신청서 작성하는 걸 내가 옆에서 도와줬어야 했는데.”

 현우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화가 나 있는 상태여서 이를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얼굴을 찌푸리니 루나틱 상태를 8번 시도해서 생긴 얼굴의 멍이 욱신거렸다. 그러자 더욱 짜증이 났다.

 “그럼 이거 번역 안경이 쓸모가 없네요.”

 “왜 쓸모가 없어? 대학교에서 수업 안 들을 거야?”

 “수업은 듣죠. 그런데 그, 시험! 그래, 시험 같은 것을 볼 때 어떻게 해요?”

 “시험? 시험이 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리온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이 안경을 쓰면 시험지를 읽을 순 있겠죠. 그런데 답을 어떻게 써요? 전 실루엔노틀 언어를 모르잖아요.”

 “대학교에서는 너희 나라 문자로 글을 써도 돼.”

 “네? 왜요? 왜 거기는 되고 여기는 안 된다는 거예요?”

 “거기선 이것과 비슷한 기능이 있는 번안경을 써서 채점을 하니까.”

 현우는 말문이 막혔다. 점점 자신이 잘못한 것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이제 브루아나는 그를 경멸어린 표정을 지으며 비웃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도 번안경을 쓰고 읽으면 되잖아요?”

 마토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는 경비병들에게 혼날까봐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말했고, 말도 길게 하지 않았다. 현우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두 눈을 크게 뜬 채 마토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네! 여기서 그 번역 안경을 끼고 보면 되잖아!”

 현우는 의기양양한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브루아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살다 살다 이런 멍청한 놈은 처음 보겠다는 듯이 얼굴을 구기더니, 현우의 손에 들려 있는 면회 신청서를 낚아채며 서랍을 확 열어젖혔다. 그리고 안경 케이스 안에 담겨 있던 번안경을 꺼냈다.

 “이름 표현우, 종족 쉐도어, 나이 스무 살, 면회 사유 보고 싶어서 면회를 신청합니다.”

 그녀는 안경을 끼고서 면회 신청서를 소리 내어 읽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현우가 거들먹거리며 웃었다.

 “그것 봐요! 안경을 쓰니까 잘 읽네요. 이제 아무 문제없는 거죠?”

 현우가 리온을 바라보며 브루아나가 들고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그러나 리온은 다시 이마를 짚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브루아나가 종이를 내렸다. 현우는 자신이 이겼으니 빨리 면회를 시켜달라는 의미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여태까지 안내소에서 근무하면서 수천 번은 더 지었을 미소를 싱긋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브루아나가 웃는 얼굴로 양손을 집게처럼 만들더니 신청서의 한가운데를 잡고서 반으로 찢었다. 현우가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신청서를 찢었다. 반으로 찢어진 종이를 하나로 포개서 다시 반으로 찢고, 그것을 다시 하나로 포개서 또 반으로 찢는 것을 반복했다.

 종이를 발기발기 찢는 야릇한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금세 종이는 처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났다.

 “그걸 왜 찢어요?”

 “여긴 뭄하프에요.”

 브루아나는 종잇조각 뭉텅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서 작성한 서류는 못해도 고위 간부 열 명과 장관급 한 분 이상은 본다는 이야기죠. 그 많은 분들이 일일이 번역 안경을 끼고 서류를 읽으면서 결재를 할까요?”

 안내소 책상을 두 팔로 짚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브루아나가 나직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곳에서 작성하는 모든 서류는 반드시 실루엔노틀 언어로 작성해야 합니다. 이건 누구에게라도 예외가 없어요. 아시겠어요?”

 그녀는 말끝을 힘주어 말하며 이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끝내고 싶은 속내를 내비쳤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소리에요? 면회는 해야겠고, 그런데 전 이 세계 언어를 아예 모르는데.”

 “배우고 오시든지, 아니면…….”

 브루아나가 리온을 흘깃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이곳 실루엔노틀 이종족들 중 한 분이 대리인으로 작성해주셔야 해요. 대신 그럴 경우엔 면회할 때 대리인 분이 같이 오셔야 되고요.”

 현우는 간절한 눈빛으로 리온을 바라보았다. 리온은 갑작스런 전개에 조금 당황했지만 별말 없이 새로운 신청서를 달라고 말했다. 그가 서둘러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브루아나가 당부했다.

 “그리고 면회 사유를 단순히 보고 싶어서 라고 적으시면 안 돼요.”

 “그럼 뭐라고 적어요?”

 현우가 기가 찬 얼굴로 물었다. 보고 싶어서 면회를 한다, 이것보다 더 정확하고 간단명료한 표현이 있을까?

 “아무튼 좀 더 성의 있게 적으세요. 결재하는 분들이 납득할 수 있게끔 어느 정도 성의가 보이면서 논리적이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처럼 결재가 취소될 수도 있어요.”

 한마디로 보여주기 식으로 적으라는 말이었다. 현우는 그런 방식이 몹시 마음에 안 들었지만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위치가 철저히 을이라는 걸 느꼈다.

 현우가 귓속말을 하자, 리온은 흠칫 놀라며 그렇게 적어도 되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현우가 어서 적으라고 눈짓을 하자 그는 브루아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곧이곧대로 면회 사유를 적었다.

 “자, 여기요. 됐죠? 빨리 면회 시켜주세요.”

 현우는 리온이 다 작성한 신청서를 내밀었다.

 - 친구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 무려 이틀이나 되었기 때문에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자 면회를 신청합니다.

 브루아나는 자꾸 능글맞게 비꼬는 현우의 말투나 문장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면회 사유를 이런 식으로 작성한 것을 처음 봐서 이대로 신청을 하면 결재가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싱긋 웃었다.

 “네, 이 정도면 됐어요. 일단 결재를 올려 볼게요. 그럼, 면회하러 오세요, 내일.”

 “네?”

 “기억력이 매우 안 좋으시네요. 말씀드렸잖아요? 면회는 하루 전날에 신청하는 게 원칙이라고.”

 브루아나가 능글맞게 웃었다. 현우는 못 마땅한 눈길로 그녀를 노려보고는 씩씩거리며 로비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리온은 브루아나에게 면회 신청서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젠장!”

 뭄하프를 빠져나온 현우가 소리를 질렀다. 경비원의 기에 눌려 잠시 말하지 못했던 마토는 한 10년 동안 침묵했던 사람처럼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대부분 경비병들이 얼마나 무서운가에 대한 이야기와 주영에 대한 걱정이었다.

 “괜찮아?”

 리온이 현우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말했다.

 “너무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현우는 분을 풀려고 악을 질렀다. 뭄하프 앞길을 걸어가던 몇몇 이종족들이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지금 주영이가 구치소에 갇혔는데, 그 상황을 알 수도 없고 얼굴도 볼 수 없다니요? 걔는 잘못이 없어요. 리온도 알고 있잖아요. 걔는 그냥 호기심이 많고……. 그냥 저를 따라 실루엔노틀로 왔을 뿐이에요. 그런데 구치소라뇨? 아무리 사람이라고…….”

 “잠깐.”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주던 리온이 갑자기 정색하며 현우의 말을 끊었다. 리온은 검지를 입술에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탁 트인 장소에서 말하지 마. 어디서 누가 보고 듣고 있을지 몰라. 이 내용이 소문으로 퍼지면 그 친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워져. 알지?”

 현우의 눈썹과 입술이 분노로 씰룩거렸다.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올랐다. 마토도 짐짓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에 대해…….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현우는 기운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아침에도 장관회의에 참석했는데…….”

 리온이 잠시 입을 다물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상황이 좀 복잡해. 아직은 진보건 보수건, 모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진 않은 상황이지만. 그런데 문제는 주영의 사형을 주장하는 한 장관이 있는데.”

 “그 캐 뭐시기 장관이요?”

 “그래, 캐브리포 장관. 보수 세력의 대표지. 문제는 그가 주영의 일을 정치에 끌어드리려고 하고 있다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현우는 정치라는 단어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사실 주영이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어. 단지 이 일을 이용해 보수 세력을 하나로 모으고, 힘을 키우려는 속셈이지. 최근 들어 개혁을 추진하는 진보 세력이 커져서 보수 세력의 입지가 좁아졌으니까……. 그래서 캐브리포 장관은 ‘이번 일을 가벼이 여기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실루엔노틀로 넘어올 지도 모른다, 종족의 비밀을 유지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거다.’라는 식으로 말해서 겁을 주고 있어. 일종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판결을 유도하고, 보수 세력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 위함이지. 심지어 그는 법무부 출신이어서 더 골치 아파.”

 모든 말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현우는 암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치라는 게 끼어들어서 깨끗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법무부 출신을 넬레 장관하고 내가 이길 수 없어. 그래서 따로 법률적 자문을 구할 거야. 이 사건을 절대 정치로 끌어들이지 못하도록 하겠어.”

 리온이 눈을 부릅뜨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췄다. 그래도 현우의 기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리온은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상체를 숙이며 작게 속삭였다.

 “나의 유일한 스승이 한 분 계시는데, 실루엔노틀에서 내로라하는 법률전문가야. 꽤 유명하지. 그 분의 도움을 받는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어. 나만 믿어.”

 현우가 여전히 못 미더운 눈길을 던졌다. 리온은 자신을 한 번 믿어보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현우의 등을 떠밀면서 걸음을 옮겼다.

 주위는 어느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광장에 있는 상인들은 분주하게 야시장을 열 준비를 했고, 젊은 쉐도어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신기하게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현우의 옆에 나란히 걸어가는 마토의 몸을 밟거나 부딪치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림자를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던 것이다.

 “다행이 오늘은 후안들이 잠잠하나보군.”

 리온이 농담을 던졌다. 현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거꾸로 뒤집힌 바다에서 파도가 포말을 일으키며 백사장에 부딪쳐 사라지고 있었다. 리온의 말대로 바다는 잠잠했고, 고래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후안의 숨비를 3일 연속으로 맞지 않았으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좋은 일은 다른 무엇도 아닌 주영의 구치소 석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우는 시선을 내려 광장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그림자 도시와 하늘 바다의 가운데 즈음, 허공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은 그림자 도시로 내리지 않고 변덕의 숲을 향해 내리는 중이었다. 그림자 도시를 밟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현우의 눈에는 마치 눈이 옆으로 흐르는 듯했다.

 “리온. 저건 도대체 왜 저래요? 어라?”

 허공에서 옆으로 흐르는 눈을 가리키던 현우는 또 다시 깜짝 놀랐다. 뭄하프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물들었던 변덕의 숲이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있는 것이었다. 단풍잎은 전부 떨어졌고, 나뭇가지에 눈송이들이 달라붙으면서 포근해 보이는 하얀색 숲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순간, 현우의 머릿속에 며칠 전 녹음 짙은 숲이 하루아침에 단풍으로 물든 숲으로 변한 기억이 떠올랐다.

 “뭐야! 아까까지만 해도 단풍잎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마토도 놀라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외쳤다.

 “아……. 내가 아직 설명을 안 해줬나? 저 숲은 변덕의 숲이라고 불리는데 하루마다 계절이 바뀌어.”

 현우와 마토가 눈살을 잔뜩 찡그리며 리온을 쳐다보았다. 눈이 옆으로 내리는 것도 황당한데, 하루마다 계절이 바뀌는 숲이라니.

 “사계절이 날마다 뀌는 거야. 심지어 바뀌는 시간대도 매일 달라. 어느 날은 정오에 바뀔 때도 있고 지금처럼 저녁 시간대에 바뀌는 경우도 있고, 하여튼 제대로 된 기준이 없어. 제멋대로지. 그래서 이종족들 간에는 싸가지라고도 불리지.”

 현우는 멀거니 겨울 숲을 바라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그림자 도시는 전혀 춥지 않았다.

 “진짜 이곳은 뭐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현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리온은 그가 변덕의 숲을 두고 말하는지, 주영의 면회를 두고 말하는지 긴가민가했다. 어쩌면 두 개를 동시에 가리키는 듯했다.

 “저곳에 이넬 종족이 살고 있지 않아요?”

 마토가 물었다.

 “그치.”

 리온이 마주 걸어오는 쉐도어들을 피해가며 대답했다.

 “되게 힘들겠어요. 매일 계절이 바뀌면……. 옷도 누더기 같은 옷만 입고 있던데.”

 “아니, 이넬 종족들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아. 태생적으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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