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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루나틱
작가 : 0kim
작품등록일 : 2017.7.4

주인공의 그림자로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인생만 10년! 눈치 없는 주인공 옆에서 소꿉친구의 짝사랑을 바라본 기간 또한 10년! 수다스럽지만 불만 많고, 유쾌하지만 겁 많은 그림자와 세상 비관적인 주인공, 호기심 많은 여자 소꿉친구와 함께하는 판타지 세계 모험물.

 
면회
작성일 : 17-07-06 21:45     조회 : 350     추천 : 0     분량 : 8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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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뭐야? 무슨 일이야?”

 레이린은 후안의 숨비를 처음 봤는지 황당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래처럼 생긴 해양 생물이 막 물거품을 만들면서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리온이 궁금해 하는 레이린과 벤트릭을 위해 후안의 숨비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신기해하던 벤트릭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현우와 마토를 보고 폭소했다.

 “큭, 큭큭. 형, 괜찮아?”

 현우는 여전히 옷을 쥐어짜면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레이린이 안쓰러워하면서도 웃음을 참느라고 애썼다. 하지만 리온은 웃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리온이 봐도 재수가 더럽게 없죠?”

 현우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아니, 그…….”

 그는 말할지 말지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실루엔노틀에는 그런 속설이 있거든. 고래 소나기를 3일 연속으로 맞으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는…….”

 

 * * *

 

 “이번엔 다른 아가씨네!”

 “꺄아아악!!”

 “우와아악!!”

 머그 벅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말하자 레이린과 벤트릭은 화들짝 놀랐다. 평소 조용했던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포악한 괴성이었다.

 센디버트 너디의 손님들은 이번에도 포복절도하며 웃었다.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웃는 쉐도어, 테이블을 쾅쾅 내려찍으며 웃다가 우타족의 나뭇가지에 뺨을 후려 맞은 골덴, 관절을 부러뜨릴 기세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듄. 그들의 웃는 모습은 가지각색이었고, 품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레이린, 벤트릭과 같은 테이블에 앉은 현우와 마토, 리온은 웃는 대열에 편승해 숨 죽여 웃었다. 그러곤 레이린과 벤트릭의 표정과 반응을 구경했다.

 앉은 채로 뒷걸음질 치던 레이린은 주변에 잡히는 온갖 것들을 머그 벅에게 집어 던졌다. 머그 벅은 여유롭게 나뭇가지들을 이용해 날아오는 잡다한 물건들을 일일이 잡아냈다. 그의 나뭇가지에는 어느새 젓가락이며, 숟가락이며 맥주잔 따위가 들려 있었다.

 벤트릭은 놀란 나머지 그만 울음을 터뜨렸고, 벤트미히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기절해버렸다. 레이뮌즈는 놀랍게도 비명도 지르지 않고 딱히 놀라지도 않는 듯 보였다. 그저 불쾌하다는 듯이 머그 벅을 노려보았다.

 웃음소리가 차츰 줄어들었고, 곳곳에서 저번보다 약하다는 말이 들려왔다. 전례를 모르는 레이린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숨을 가쁘게 내쉬며 어리둥절해했고, 마토는 눈을 깊게 감은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린과 벤트릭은 현우와 주영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당했다. 리온이 그들을 단골 술집으로 데려갔다. 예정에 없는 리 쉐도어들이었지만 홀에 있던 이종족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방법이 조금 달랐다. 주문을 받는 도중이 아닌,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나서 머그 벅이 눈을 뜬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음부터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현우는 생각했다. 머그 벅이 레이린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들을 집어 던지는 것을 여유롭게 잡아내면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나, 나무가 말을…….”

 레이린이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숨을 헐떡거렸다. 머그 벅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들 그림자도 말하지 않은가?”

 머그 벅의 한쪽 눈썹이 크게 들썩거렸다. 레이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살짝 얼굴을 붉혔다.

 곧이어 그녀는 신기한 생명체에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쏟아냈다. 머그 벅의 인상이 워낙 온화한 할아버지 같아서 미워할 수 없었다. 질문의 내용도, 패턴도 어제 현우와 주영이 했던 것들과 비슷했지만 그는 친절하게 일일이 대답해주었다.

 웃으며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던 현우는 조금씩 표정이 굳어졌다. 레이린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구치소에 있는 주영이 떠올랐다.

 “한표, 자네 능력자인데? 어떻게 된 게 데려오는 여자가 매번 달라지나!”

 머그 벅은 현우의 표정을 살피더니 일부로 분위기를 띄우려고 호들갑을 떨었다. 레이린이 놀란 눈길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머그 벅을 쏘아보고는 리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 대 때려도 돼요?”

 “옛끼! 넌 노인 공경이라는 말도 모르냐? 껄껄!”

 현우의 막말에도 머그 벅은 화를 내지 않았다.

 “제발 싸움은 자제해줘.”

 리온은 자못 애처로운 목소리로 부탁했다. 순간, 현우는 리온이 수그리고 들어오자 진짜로 자신이 머그 벅을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후…….”

 현우는 리온의 부탁이니 참는다는 듯이 머그 벅을 힐끔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리온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네 입원비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거든.”

 그 때, 현우는 누군가가 어깨를 짚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마토가 현우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현우가 불쾌한 얼굴로 손을 거칠게 뿌리쳤지만 마토의 웃음은 멈출 줄 몰랐다.

 현우는 열이 바짝 올라 오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싸우면 네가 무조건 져. 먹이 저래 보여도 꽤 강하거든.”

 “진짜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마토는 너무 웃어서 흘린 눈물을 스윽 닦았다.

 “그가 나이를 밑동으로 먹은 게 아냐……. 적어도 여기 홀에 있는 우타족 중에서는 가장 강할걸? 아니, 어쩌면 여기에 있는 이종족들이 모두 덤벼도 이기지 못할 지도 모르겠군.”

 이번에는 현우도 놀라서 의아한 눈길로 머그 벅을 바라보았다. 머그 벅은 한 쪽 눈을 찡긋했다.

 “그나저나 리온. 요즘 많이 궁하나?”

 머그 벅의 시선이 리온에게 향했다.

 “하……. 네.”

 “저번 환영 복구 때문에?”

 “맞아요. 빌어먹을 하울릿 놈들이 생각 이상으로 깽판을 쳐놨더라고요.”

 리온은 목이 타서 맥주로 입가심하고 말을 이었다. 머그 벅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사절단 임무를 나갔던 멤버들끼리 나눠서 냈는데요. 이번엔 그 친구들이 사정이 있어서 돈이 없다고 하거든요. 별 수 있나요, 일단은 제가 다 냈죠.”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길래, 그러나?”

 머그 벅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는 레이린과 벤트릭처럼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었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 하소연하고, 그로인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게끔 유도하는 것이었다.

 “오므로는 얼마 전에 새로 차를 뽑아서 돈이 없거든요. 이번 임무로 박살이 나긴 했지만…….”

 마토는 청계천에 처박혀 있는 걸레짝이 된 승합차를 나라 잃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오므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킥킥거렸다.

 “모라이엠은 머리카락이 여전히 팔리지 않아서 돈이 없다고 했고……. 데비히츠는 이사를 가서 없고.”

 “모두 별 수 없는 사정이구만. 그중 모라이엠의 사정이 해결되기 가장 어려운 것 같군.”

 “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머그 벅은 리온이 그 이유를 모르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틀 전에 뭄하프와 이넬 종족 간의 3차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 못 들었나?”

 리온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틀 전이면 그가 사절단 임무로 리생계에 나가있던 날짜였다.

 “앞으로는 거래하기가 더 어려워질 걸세. 암암리에 거래되었던 것도 뭄하프 측에서 강력히 단속한다고 하고, 판매가 잠정 중단될 수도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네. 아마 이제껏 제제했던 것들의 범위가 더욱 넓어질 걸세.”

 “아!”

 리온은 불현듯 어떤 사실을 이해했는지 무릎을 탁 쳤다.

 “그래서 뼈지팡이 판매 범위를 바꾼 거군요? 어쩐지……. 오늘 뼈지팡이를 사러 갔는데 이미 사절단으로 행동하는 쉐도어에겐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그런 거 없었는데. 또 리 쉐도어의 경우 대학교 1학년 1학기까지 이수한 학생들에게만 판매한다고 하던데…….”

 “아마 더 확대될 지도 모르지. 이렇게 보면 참 이넬 종족의 머리카락이 실루에노틀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네.”

 머그 벅과 리온은 한껏 진지해진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우와 마토는 자신들이 대화에 도저히 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맥주를 마셨고, 레이린은 울고 있는 벤트릭을 달래면서 그들의 대화를 힐끗힐끗 귀담아 들었다.

 “이넬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중요해요?”

 마토가 오징어 다리를 쭉 찢어 먹으며 물었다. 리온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제일 많이 쓰는 곳은 뼈지팡이야. 뼈지팡이를 만드려면 이넬의 머리카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든.”

 마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학교 교수님들이 사용하는 뼈지팡이에 머리카락이 붙어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뼈지팡이는 듄 종족의 뼈로 만들어. 대게 종아리뼈를 이용하지.

 현우와 마토, 레이린은 거의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훌쩍거리던 벤트릭도 리온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울음을 뚝 그쳤다.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채고 리온이 웃으며 말했다.

 “아, 걱정하지 마. 그들은 만 하루가 지나면 뼈가 다시 자라나니까”

 벤트릭은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데 이 듄 종족의 뼈에는 강력한 어둠의 마나의 힘이 깃든 동시에 독소가 있어서 듄 종족이 아닌 다른 이종족들이 만질 수가 없어. 그래서 이넬의 머리카락이 필요한 거야. 이넬의 머리카락에는 신성한 힘이 있어서 듄 종족의 뼈에 있는 독소를 흡수해주거든. 그래서 이넬의 머리카락하고 듄 종족의 뼈를 가마솥에 넣고 한 달 가량 푹 끓이면, 이종족들이 만질 수 있는 뼈지팡이가 완성 돼.”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듄 종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흥미로운 표정으로 리온을 쳐다보았다. 리온은 그들을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레이린이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현우와 마토는 레이린의 반응을 보고서 반사적으로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둘은 실제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종족들끼리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더 안 좋아지겠어…….”

 리온은 몹시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현우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리온 자네, 요즘 어지간히 바빴나 보군. 평소에는 그림자도시 정세에 빠삭하더니.”

 머그 벅은 나뭇가지를 이용해 맥주잔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주영이 문제로 정신이 없었어요.”

 “푸흡!”

 여유로운 표정으로 맥주를 마시던 머그 벅이 갑자기 기침을 했다.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 머금고 있던 맥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켁, 켁! 쿨럭! 커험! 맞아, 주영이! 주리는 어떻게 됐나?”

 눈썰미 없는 머그 벅이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이 눈썹을 들썩거렸다. 현우는 만약 주영이가 풀려났으면 같이 오지 않았겠냐는 의미를 담은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수감되었어요. 기간은 최대 100일로 잡았고요.”

 리온이 닭고기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100일?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이종족들은 죄를 지어봤자 뭄하프 구치소는 최대 7일간 수감할 수 있지 않은가?”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계산해야 100일이라는 기간이 나오는 거지?”

 머그 벅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현우는 자신이 화가 난 대목과 똑같은 곳에서 화를 내는 머그 벅을 보고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저도……. 후, 사실 잘 모르겠어요. 도대체 그 장관들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그건 분명 잘못된 것 같네. 아무리 사람이 실루엔노틀로 넘어왔다고 해도, 또 이종족들이 사람을 무서워한다고 해도 그렇지! 법이 무슨 조미료인가? 입맛대로 바꾸게? 이 사회를 지탱하는 잣대란 말일세! 어디서 감히 사람이라고 차별을 두고 100일 같은 말도 안 되는…….”

 머그 벅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는 자신이 뱉은 말에 몹시 놀라했다. 현우와 리온, 마토도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시선을 돌려 레이린과 벤트릭의 눈치를 살폈다.

 벤트릭은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레이린은 포크를 든 채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사람…….”

 레이린이 의구심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렸다. 차가운 분위기에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사람이……. 왜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레이린이 물었다. 그들은 그제야 서로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무 일도 아닐세.”

 머그 벅이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레이린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보기완 다르게 끈질긴 구석이 있었다.

 “주영이라는 사람이 사람이면 안 되는 거예요?”

 현우가 질책하듯이 머그 벅을 노려보았고, 머그 벅은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지막 구세주인 리온마저 머뭇거리자 마토가 나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하죠?”

 모두의 시선이 마토에게 집중되었다.

 “이미 늦었잖아요. 그냥 말해요. 아는 사람이 두 명 더 늘었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을…….”

 “쉐도어에게 비밀을 말해선 안 된다.”

 리온은 명언을 말하는 듯한 어조로 마토의 말을 가로막았다.

 “쉐도어는 한 명이지만 그림자까지 포함하면 두 명이 되어서 다른 이종족들에 비해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엄청나. 그래서 그림자 도시에서는 해가 뜰 때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달이 질 때쯤에는 도시에 있는 이종족들 모두가 알고 있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리온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리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토가 입을 뗐다.

 “레이뮌즈, 너 지금 머그 벅이 한 말을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이종족들에게 말할 거야?”

 그들은 마토의 의중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레이뮌즈는 마토를 노려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지금 한 말도, 앞으로 할 말도 관심 없다.”

 마토가 싱긋 웃었다.

 “벤트릭, 너는…….”

 벤트릭은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컵을 들어 올리며 정신없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마토는 일행을 돌아보며 저거면 대답이 되지 않았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벤트미히는 마토의 물음에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였다. 곧장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우물쭈물 거렸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듯이.

 “오, 벤트미히…….”

 마토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농담이에요. 다른 이에겐 말하지 않을 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나저나 얼마나 대단한 비밀이기에 그렇죠?”

 벤트미히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리온은 꽤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은 이제 자연스럽게 마지막 차례인 레이린을 향했다.

 “전 몸은 가벼워도 입은 무거워요.”

 마토는 레이린의 대답이 매우 마음에 들어서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이번엔 모두가 리온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들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코로 깊게 숨을 내쉬더니 마지못한 얼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레이뮌즈는 정말로 관심이 없는지 테이블 아래로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센디버트 너디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빈자리가 나면 기다렸던 손님들로 바로바로 채워졌다. 종업원들은 커다란 소반 위에 맥주잔과 접시들을 잔뜩 올려놓고 종횡무진 홀을 누볐다.

 오로지 레이린만이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레이뮌즈는 여전히 테이블 아래에서 미동도 안했고, 벤트릭과 벤트미히는 ‘과연 맥주잔에다가 주스를 담아서 먹는 게 문제일까?’라는 주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원래 사람이 실루엔노틀로 넘어오면 안 되는데……. 주영이라는 그 친구는 하울릿들에게 쫓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함께 넘어오게 된 거군요?”

 “그렇긴 한데, 그 단어는 좀 자제해주겠어?”

 리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레이린은 어깨를 흠칫거리며 목을 잔뜩 수그렸다. 그리고 손을 입에 갖다 대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 오늘은 술집에 이넬들이 없긴 하지만……. 앞으로 말 좀 조심해줘.”

 리온은 홀을 주의 깊게 둘러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그는 이럴 줄 알았다며 힐난하는 눈길로 마토를 노려보았다. 마토는 어이가 없어서 인상을 찡그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어서 기껏 행주로 닦아줬더니, 적반하장으로 젖은 행주를 얼굴에 던지는 셈이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칙칙할 때는 맥주를 마시면서…….”

 머그 벅은 건배를 할 요량으로 맥주잔을 들어 올리다가 잔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말을 멈췄다. 다시 주문을 하려고 종업원을 찾았지만 모두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그때 바로 옆 테이블에서 소반 위에 올려 있는 오향주를 하나씩 건네주고 있는 여직원이 머그 벅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뭇가지를 채찍처럼 날려 맥주잔을 낚아챘다. 집어던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친 동작이었는데 놀랍게도 맥주는 한 방울도 넘치지 않았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으리라.

 “이럴 때는 술 마신 다음 발 닦고 자는 게 최고라네. 자, 어서 들게.”

 머그 벅은 마치 자신이 주문한 맥주가 나온 것처럼 능청을 떨었다. 리온은 못 당하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어 올렸고, 나머지 일행들도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벤트릭은 끝내 벤트미히의 의지를 꺾지 못해 주스컵을 들었다.

 “주리의 무죄를 위하여 건배함세!”

 유리잔 부딪치는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마토는 맥주를 마시면서 힐끔 옆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인원수대로 맥주를 가져왔는데 하나가 모자라 몹시 당황해하는 여종업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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