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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루나틱
작가 : 0kim
작품등록일 : 2017.7.4

주인공의 그림자로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인생만 10년! 눈치 없는 주인공 옆에서 소꿉친구의 짝사랑을 바라본 기간 또한 10년! 수다스럽지만 불만 많고, 유쾌하지만 겁 많은 그림자와 세상 비관적인 주인공, 호기심 많은 여자 소꿉친구와 함께하는 판타지 세계 모험물.

 
바올리언스 대학교
작성일 : 17-07-06 21:40     조회 : 383     추천 : 0     분량 : 7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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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잘못 선택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즈음, 계단이 끝나고 복도가 나타났다. 벽에 사선이 네 개가 그어져 있는 나무패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4층은 맞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하지?”

 현우는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계단 좌우로 길게 복도가 나 있고, 각 방마다 이름이 적힌 나무패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지만 어느 곳이 이론 강의실인지 몰랐다. 안내소 직원이 말해준 기초 이론 강의실이라는 걸 번이어 덕분에 들을 수는 있어도 글씨가 실루엔노틀 언어로 쓰여 있어 읽을 수는 없었다.

 “안경!”

 마토가 다급히 외쳤다.

 “뭐?”

 “리온이 준 번안경을 써!”

 현우는 재빨리 품속에서 안경케이스를 꺼내 안경을 썼다.

 “어디야? 어디로 가야 돼? 어느 방이야?”

 “…….”

 현우는 바로 앞에 있는 강의실의 나무패를 바라보고 더욱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어느 방이냐고!”

 “젠장, 모르겠어.”

 “모른다고? 왜 몰라! 안경으로 번역이 안 돼?

 “아니, 번역은 되는데…….”

 현우는 말끝을 흐리며 안경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글씨를 읽으려고 애썼다. 이제는 초점이 맞아 시야가 맑아졌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젠장, 영어야!”

 “뭐?”

 “번역이 영어로 된다고!”

 마토는 현우가 쓰고 있는 안경을 빼앗아서 쓴 뒤 팻말을 바라보았다. 실루엔노틀 언어가 쓰인 나무 팻말 옆의 허공에 파란색 글씨가 둥둥 떠다녔다.

 Basic Theory Classroom

 “이게……. 무슨 뜻이야?”

 현우는 그걸 자신이 어떻게 아느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들은 잠깐 고민하더니 지나가는 남자를 붙잡고 기초 이론 강의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남자는 매우 당황한 얼굴로 앞에 있는 강의실을 가리켰다. 현우와 마토의 고개가 거의 동시에 돌아갔다. 방금 전에 안경을 쓰고 Basic Theory Classroom라고 읽은 강의실이 바로 기초 이론 강의실이었다.

 “고마워요!”

 현우는 허겁지겁 고개를 숙이고 문을 벌컥 열었다.

 

 * * *

 

 강의실에 있던 십여 명의 쉐도어들이 일제히 현우를 쳐다보았다. 자리에 앉아 있는 쉐도어도, 교탁 앞에 서 있는 교수로 보이는 쉐도어도 모두 생김새가 사람처럼 생겨서 현우는 지금 자신이 리생계에 있다고 착각했다. 그들의 그림자가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진정 그렇게 믿었을지도 몰랐다.

 “자넨 뭔가?”

 교탁에 서 있던 교수가 말했다. 그는 매부리코에 안경을 슬쩍 걸쳤고,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와 멍한 표정을 보고 마토는 그가 비범한 괴짜이거나 멍청한 천재,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현우는 잠시 학생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다양한 국적의 쉐도어들이 2인용 책상에 각각 한 명씩 앉아 있었다. 그들의 그림자까지 앉히려면 그렇게 한명씩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국적만큼이나 나이도 천차만별이었다. 어린 소년에서부터 레게 머리를 하고 눈빛이 사나운 흑인 남자,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의 여자, 교탁에 서 있는 교수를 친구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할머니.

 외국인 울렁증이 있는 현우는 머리가 혼란스러워 교수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치킨집에서 일할 때도 외국인 유학생 베기니와 친해지는데 꽤 애를 먹었다. 베기니가 한국어를 했으니 친해졌지, 그게 아니었다면 함께 일하는 동안 말도 못 붙였을 것이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교수가 화를 내려고 할 때, 마토가 넉살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실루엔노틀은 처음이라 길을 좀 헤맸어요, 하하하! 특히 여기 앞에 있는 이상하게 생긴 계단 때문에 애를 먹었죠. 그 빌어먹을 계단만 아니었어도 지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 계단이 아니었어도 자네들은 지각을 했을 걸세. 이미 수업이 시작한지 10분도 더 지났으니. 그리고…….”

 교수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빌어먹을 계단은 내가 만들었네만.”

 “…….”

 분위기가 주체할 수 없이 싸늘해졌다. 능글맞게 웃던 마토의 웃음소리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는 아주 작게 웃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비범한 괴짜였네, 젠장’이라고 중얼거렸다.

 “다음부턴 조심하게. 난 세상에서 지각을 가장 싫어하니.”

 현우는 찬희가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교수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나서야 그는 서둘러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옆에서 구릿빛 피부의 여자가 눈인사를 건네자 현우는 당황해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이 귀여웠는지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새하얀 이가 매력적인 여자였다.

 교수는 헛기침을 해서 학생들을 집중시켰다.

 “이것으로 이번 기수 전부 왔군. 정원이 11명…….”

 그는 얇은 책 하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으로 인사하지. 난 세버 데너드 교수라고 하네. 자네들처럼 실루엔노틀로 넘어온 리 쉐도어들에게 그림자에 대한 기초 이론을 가르치고 있지.”

 젊은 친구들이 박수를 쳐야할지 눈치를 봤지만 강의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세버 데너드 교수와 동년배로 보이는 할머니는 홀홀 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구릿빛 피부의 여자는 눈빛을 반짝였고, 레게머리를 한 흑인 남자는 껄렁껄렁한 자세로 교수를 쳐다보았다.

 세버 데너드 교수는 이런 반응이 익숙했는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이미 사절단을 통해서 들었겠지만, 이곳은 바올리언스 대학교라네. 자네들은 앞으로 이곳에서 쉐도어에게 필요한 이론과 그림자 능력, 그리고 환영술에 대해서 배우게 될 걸세.”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서 침묵은 더욱 짙어졌다. 데너드 교수는 교탁 위에 있던 얇은 책을 덮었다.

 “오늘은 첫날이니 따로 진도는 나가지 않겠네. 대신 자네들이 왜 실루엔노틀로 넘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시간을 갖도록 하지.”

 빤질빤질하게 생긴 갈색머리 남자와 그의 옆에 앉아 있던 그림자가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 종족인 쉐도어는 머나먼 고대부터 존재해온 종족이라네.”

 데너드 교수는 앞으로 느릿느릿 걸어오며 운을 뗐다.

 “우리 쉐도어들은 사람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사람은 아니라네.”

 학생들은 모두 데너드 교수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데너드 교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덧붙여 말했다.

 “겉모습으로는 사람과 똑같이 생겨서 구분할 수가 없지. 그럼 어떻게 구별을 하느냐……. 이것부터 확실히 말해줘야겠군. 우리와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라네.”

 데너드 교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정적에 휩싸인 가운데, 데너드 교수의 그림자가 바닥에서 떼어져 천천히 일어났다. 그림자는 교수의 옆에 나란히 서서 말했다.

 “그림자의 정신이 깨어 있느냐 아니냐.”

 강의실은 어색한 침묵에 빠졌다. 데너드 교수의 그림자는 꽤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학생들 중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그림자는 입술을 달싹이더니 데너드 교수의 귀에다 대고 작게 소곤거렸다. 강의실이 워낙 조용했던 터라 학생들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내가 이 짓 두 번 다시 안 한다고 했지?”

 “…….”

 데너드 교수는 그림자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옅은 미소를 지은 채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간 자네는 분위기를 너무 탄다니까. 쳇, 난 이제부터 명상에 들어갈 테니까……. 다시는 강의할 때 부르지 말게.”

 그 말을 끝으로 그림자는 뒤로 드러누웠고, 그의 몸은 부드럽게 바닥에 스며들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학생들이 두 눈을 끔벅거리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데너드 교수는 주먹을 말아 쥐어 입에 대고 헛기침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쉐도어와 사람의 차이는 방금 내 그림자가 말한 대로……. 그림자의 정신이 깨어 있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전부일세. 그래서 우리는 리생계에서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데 문제가 없었지. 그런데 어느 날 천적이 나타났다네. 그 천적의 이름은…….”

 데너드 교수는 이번에도 뜸을 들였다. 순간 마토는 그가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에 뜸을 들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동시에 교수의 입에서 나올 천적의 이름을 알 것 같아서 불안이 슬금슬금 엄습했다.

 “하울릿.”

 현우는 불과 며칠 전 서울에서 하울릿들에게 습격당했던 때가 기억나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특히 흑표범의 붉은색 눈동자가 바로 눈앞에서 번뜩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울릿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들과 이미 하울릿에게 습격을 당해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학생들.

 마토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바로 옆 책상에 앉아 있는 구릿빛 피부의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중에는 이미 하울릿에게 습격을 받은 쉐도어가 있을 거고, 습격을 받지 않은 쉐도어도 있을 테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하울릿은 흑표범인간이라네. 평소에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쉐도어를 공격할 때는 흑표범으로 변하지. 이 하울릿들이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는 아직도 밝혀진 게 없네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네. 문제는 녀석들이 우리 쉐도어의 그림자를……. 잡아먹는다는 것이지.”

 “잡아먹는다고요?”

 구릿빛 피부의 여자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 옆에 앉아 있던 그림자도 몸을 흠칫했다.

 “그래. 그들은 오로지 쉐도어의 그림자만 잡아먹으면서 산다네.”

 뜻밖의 말에 학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현우는 리온에게서 이미 들은 내용이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 레게머리를 한 흑인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림자에서 무슨 맛이 난다고 먹지? 고기라도 되나?”

 흑인 남자는 일부러 질겅질겅 껌 씹는 소리를 크게 내면서 빈정거렸다. 강의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데너드 교수는 그의 태도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아 눈살을 찌푸렸다.

 “난 하울릿이 아니라서……. 그림자에게서 무슨 맛이 나는지는 모르겠군.”

 “바닥에 붙어 있는 그림자는 무슨 수로 먹는데요?”

 “쉐도어의 다리에 붙어 있는 그림자를 뜯어내서 먹는다네. 그보다 껌 좀 뱉어주겠나? 소리가 심히 거슬리는군.”

 “이미 씹었잖아요. 다음부터 안 씹을게요.”

 레게머리 남자는 능글맞게 히죽히죽 웃었다. 그는 보란 듯이 입을 크게 벌려 짝짝 소리를 내면서 껌을 씹어댔다. 데너드 교수는 한차례 한숨을 내쉬더니 소매에서 가느다랗고 기다란 막대기를 꺼냈다. 현우는 처음에 그것이 나뭇가지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리온이 사용하던 뼈지팡이였다.

 데너드 교수는 레게머리 남자를 향해 뼈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입에 있던 껌이 튀어나오더니 쏜살같이 날아가 벽에 꽂혔다.

 “쉐도어에겐 다음도, 내일도 없네. 명심하게. 또 한 가지……. 한 번만 더 내 수업 시간에 껌을 씹었다간 저 벽에 껌이 아닌 자네 몸이 들어가 있을 걸세.”

 레게머리 남자는 만만해 보이던 교수가 손도 쓰지 않고 씹고 있던 껌을 날려버린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는 더 이상 시비를 걸지도,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는 모습이 교수가 말한 무시무시한 경고를 상상하고 있는 듯했다.

 은연중에 데너드 교수를 무시했던 다른 학생들이 태도를 슬쩍 바꾸었다. 마토도 귀를 후비던 동작을 멈추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데너드 교수는 엄한 표정으로 레게머리 남자를 한 번 흘겨본 뒤 설명을 이어갔다.

 “이 하울릿들은 쉐도어에게 있어 그야말로 천적이네. 그림자를 먹다니…….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지. 그러나 하울릿들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쉐도어의 그림자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지.”

 “냄새요? 그림자에게도 냄새가 있나요?”

 금발머리 소년이 티 없이 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부잣집 집안에서 곱게 자란 티가 나는 소년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고급스러워 보이면서 깔끔했고 피부는 우유를 묻힌 것처럼 새하얬다.

 “사람에겐 체취가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쉐도어의 그림자도 하나의 생명체이니 체취가 있다네. 물론 너무 희미해서 우리들은 맡을 수는 없지만.”

 데너드 교수의 표정은 더없이 온화했다. 호기심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물어보는 금발머리 소년의 태도가 매우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하울릿들은 뛰어난 후각을 가져서 사람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네. 또한 나중에 진도를 나가면서 말하겠지만 녀석들은 후각뿐만 아니라 본능이 엄청나게 뛰어나서 쉐도어가 부리는 환영을 금세 간파한다네. 그야말로 쉐도어의 천적이지.”

 현우는 본능이 뛰어나서 환영을 간파한다는 말에 얼마 전 치킨 집에서 하울릿들이 리온의 환영을 간파하고 자신과 주영을 덮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울릿의 등장으로 쉐도어들은 종족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워질 정도로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네. 그렇다고 하울릿을 직접 상대하기엔 우리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지. 어떻게 싸워볼 수 있는 방법조차 없어. 그렇게 종족의 멸종을 그저 두 손 들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데너드 교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위대한 네 명의 쉐도어가 나타났네.”

 데너드 교수는 말을 멈추고 자신이 내뱉은 말의 여운을 깊게 음미했다. 잠시 후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은 하울릿들과 직접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도, 리생계에서는 녀석들로부터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네. 전자는 쉐도어의 전투력이 약하니, 후자는 하울릿들의 후각이 뛰어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그런데 그들은 하울릿들을 멸망시킬 방법을 알아냈다네.”

 현우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울릿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도 아닌, 하울릿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니? 하울릿에게 한 번이라도 쫓겨본 쉐도어에게는 귀가 솔깃해지는 말이었고, 통쾌한 말이었다. 현우도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데너드 교수는 약을 올리기라도 하듯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하울릿들을 멸망시키는 방법은……. 쉐도어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일세.”

 마토는 교수의 말이 말 같지 않다고 생각해 피식 웃었다. 몇몇 학생들도 마토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지만 교수는 아랑곳 않고 조목조목 말을 이었다.

 “위대한 네 명의 쉐도어는 환영술을 이용해 이곳 실루엔노틀을 창조했다네. 하울릿들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환영의 공간이지. 그 다음, 그들은 리생계에 생존해 있는 모든 쉐도어를 실루엔노틀로 데려왔고, 그래서 쉐도어는 리생계에서 완벽히 사라졌다네. 그러자 예상대로 하울릿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어. 쉐도어의 그림자를 먹지 못하니 굶어 죽는 수밖에.”

 학생들은 대부분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데 자네들도 아시다시피 하울릿들은 멸망하지 않고 버젓이 살아있다네. 전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

 “무슨 문제가 발생한 거예요?”

 금발머리 소년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물었다. 소년은 데너드 교수가 하는 말을 전래동화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쉐도어의 나이가 열 살이 되어야만 그림자의 정신이 깨어나고, 스무 살이 되면 그림자가 완성된다네. 이때부터 그림자에서 체취가 나기 때문에 하울릿이 추격할 수 있네. 즉, 열 살이 되기 전 까지 쉐도어는 자신이 쉐도어인지도 모르고,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하울릿들에게 발각될 일이 없는 거네. 이것은 쉐도어 종족의 특성이자 불변의 법칙이지.”

 금발머리 소년은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학생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소년이 귀여워 잠자코 있었다. 오로지 레게머리 남자만 지금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소년을 흘겨보았다.

 잠시 후, 금발머리 소년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데너드 교수는 안경을 슬쩍 아래로 내리고,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어떻게 좀 이해가 되나?”

 “네, 조금요.”

 데너드 교수는 소년이 기특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쉽게 말하면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쉐도어들만 데려오고, 열 살 이하의 쉐도어들은 데려오지 않았네. 데려오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림자의 정신이 깨어있지 않으면 겉모습만 가지고 사람인지 쉐도어인지 구분할 수가 없으니. 위대한 네 명의 쉐도어는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았지만 리생계로 가서 그들을 구하지 않았네……. 숫자가 얼마 안 돼서 금방 멸종할 거고, 그러면 자연스레 하울릿들도 멸종할거라고 생각한 거지. 하지만…….”

 “간과했군요. 인간의 번식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구릿빛 피부의 여자는 교수가 말을 질질 끌지 못하도록 재빨리 말했다.

 “그렇다네. 그 어렸던 쉐도어들이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기 시작하가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걸세. 그에 따라 멸망해가던 하울릿들의 숫자도 덩달아 늘어났지. 그게 바로 지금 리생계의 상황이고……. 여러분들은 당시 데려오지 못했단 쉐도어들의 후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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