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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루나틱
작가 : 0kim
작품등록일 : 2017.7.4

주인공의 그림자로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인생만 10년! 눈치 없는 주인공 옆에서 소꿉친구의 짝사랑을 바라본 기간 또한 10년! 수다스럽지만 불만 많고, 유쾌하지만 겁 많은 그림자와 세상 비관적인 주인공, 호기심 많은 여자 소꿉친구와 함께하는 판타지 세계 모험물.

 
실루엔노틀
작성일 : 17-07-04 20:30     조회 : 349     추천 : 0     분량 : 7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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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응?”

 현우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누구요?”

 “너.”

 “저요?”

 “그래, 너.”

 “제가 대학교에 가야 한다고요?”

 “그래, 네가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거다.”

 리온은 부연설명 없이 현우가 물어보는 문장 형태 그대로 대답했다. 현우는 취기를 떨쳐내려고 눈을 감고 고개를 마구 흔들다가 눈을 번쩍 떴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리온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무슨 대학교를 다녀요, 제가?”

 “바올리언스 대학교다.”

 “아니, 아니.”

 현우는 리온이 일부러 대화를 질질 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슬슬 짜증이 났다.

 “대학교 이름 말고요. 그게 무슨 대학교인데요? 아니, 제가 왜 대학교를 가요?”

 “리생계에서 실루엔노틀로 넘어온 쉐도어들은…….”

 오므로는 리온을 대신해서 설명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현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에 낀 음식물을 빼내려고 돌주먹을 입에 우겨넣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후련한 얼굴로 돌주먹을 빼내며 말했다.

 “의무적으로 대학교를 다녀야 해.”

 “왜?”

 “거기서 그림자 능력을 배워야 하니까.”

 오므로는 대학교 다니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안심시켰지만, 현우는 대학교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계속 안절부절못했다. 그 반응이 하도 이상해서 리온이 물었다.

 “왜 그래? 대학교에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제가 공부를 못해요.”

 현우가 힘들게 사실을 고백한 그때, 마토가 현우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덧붙였다.

 “이 친구 머리가 많이 나쁘거든요. 리생계에서도 대학교 몇 군데 지원해봤는데 전부 떨어졌어요. 하하하!!”

 “난 또 뭐라고. 걱정 마. 거긴 지원만 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어.”

 현우와 마토는 눈길을 교환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시간이 늦어서 홀에는 이종족들이 거의 없었다. 리온은 숨을 깊게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은 꽤 바쁠 거야.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

 “그런데 저희는 어디서 자요?”

 현우는 리온을 따라 일어나다가 몸이 잘 통제되지 않는 걸 느껴 당황했다. 오향주라는 술이 생각보다 도수가 높았는지 시간이 갈수록 술기운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데비히츠는 모라이엠을 깨웠지만, 그녀는 잠에 취해서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소녀를 직접 등에 업었다.

 모라이엠은 엄마에게 업히는 아이처럼 눈을 감은 채 데비히츠의 목에 손을 휘감았다. 오므로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여기 술집 2층에 방이 있어. 오늘은 거기서 자. 숙박비는 내가 계산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알겠어요.”

 “미안하다. 내 집이나 이 친구들 집에서 재워주고 싶지만……. 거긴 사람이 잘 만한 곳들이 아니거든. 차라리 여기 방에서 자는 게 좋을 거야.”

 현우는 사람이 잘 만한 곳들이 아니라는 말에 괴상하게 생긴 집을 상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므로가 손을 들어서 큰 목소리로 벌크를 불렀다.

 “왜? 술을 더 마시려고?”

 “어? 더 마셔도 돼?”

 “주문은 돼. 대신 몸뚱이는 쫓겨나겠지.”

 벌크의 대답에 오므로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럼 술은 됐고. 이 친구들 좀 방으로 안내해줘.”

 벌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우를 바라보며 고갯짓했다.

 “날 따라오렴.”

 이종족들과 짧게 인사한 후, 현우는 주영을 부축하며 벌크를 따라갔다. 마토는 현우를 도와주기는커녕 오므로와 머그 벅에게 손을 흔들어 시끄럽게 작별 인사를 했다. 텅 빈 홀에 그들의 목소리만 쩌렁쩌렁 울렸다.

 현우와 주영은 비틀거리며 주인장을 따라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좁다란 복도를 지나 둘은 각각 다른 방을 안내 받았다. 방에는 침대와 나무로 된 가구들이 비슷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주영을 방에 던져두고 현우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 * *

 

 다음날 아침,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따사로운 햇살이 현우의 눈썹을 부드럽게 흔들어 깨웠다. 현우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흠칫했다. 처음 보는 괴상한 모양의 장식품과 가구들, 그리고 바닥이 푹신해서 깜짝 놀랐다.

 현우는 자신이 침대에서 잤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침대에서 자는 건 열 살 이후로 처음이었다. 일어났을 때 어깨와 등이 결리지 않자 괜히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했다.

 방은 바닥부터 벽까지 전부 나무로 되어 있어서 안온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집과 다른 고급스러운 방에 현우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봤다. 그 때 등 뒤에서 긴 하품을 하느라 발음이 어눌한 목소리가 들렸다.

 “흐아암... 일어났냐?”

 마토는 기지개를 켜고 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밤새 뭉쳤던 근육을 풀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아예 침대에서 벗어나 현우의 다리에 붙어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몸을 옆으로 기울이고 허리를 굽혀 땅을 짚는 등 동작이 요란했다.

 현우는 아직 잠이 덜 깨어서 멍한 눈길로 마토를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마토는 질린 표정으로 현우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기억력 짧기가 너의 키와 비슷하구나. 바로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현우는 시선을 위로 올리고 어제 일어났던 일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생각나질 않았다.

 “아.”

 문득 방금 전에 마토가 키가 짧다는 말이 떠올라 현우는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그의 몸을 사뿐히 즈려밟았다.

 “아아아악!!”

 마토는 일부러 바락바락 비명을 질렀다. 아침부터 비음 섞인 비명소리가 두개골에 쩌렁쩌렁 울리자 현우는 짜증이 치솟아 마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마토는 그대로 현우의 입을 깨물었고, 현우는 그의 고개를 밀어서 떨쳐냈다.

 “큭, 무슨 식인 그림자냐.”

 “그것도 괜찮군. 난 너만 먹는다.”

 마토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별 해괴한 동작을 취했다. 특히 치아도 없으면서 치아를 번뜩이는 맹수처럼 입을 반쯤 벌리고 캬악 하고 소리를 내는 부분이 현우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네가 무슨 하울릿이야?”

 “그건 기억하네.”

 “그럼 기억 못하겠어? 내 인생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상황이었는데.”

 “그러면서 어제 일은 기억 안나? 어제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하루였는데.”

 “다이나믹은 무슨.”

 현우는 습관대로 창가로 향했다. 창문 옆의 행거에는 겨울용 외투들이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밤새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물자국이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문을 활짝 열었다.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났다. 그 중 정면에 검회색으로 물든 도시와 하늘에 떠 있는 바다를 보고 나서야 현우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여긴 그림자 도시……. 그, 그 뭐였더라?”

 “실루엔노틀이지”

 “그래, 맞아! 실루엔노틀!”

 현우는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대로 창가에 턱을 괴고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보고 또 봐도 적응되지 않는 세계였다. 하늘 바다는 에메랄드빛 파도가 백사장에 드나들면서 하얀 거품을 만들어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다의 바닥이 보였는데 곳곳에 흰색 덩어리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하늘에 있어서 꼭 구름처럼 보였다.

 왼쪽에는 깎아 지르는 듯한 협곡의 절경이, 오른쪽에는 화려하게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물든 가을 단풍이 보였다.

 마토가 배고프다고 노래를 부르는 탓에 현우는 금방 방을 나섰다. 기나긴 복도를 따라 낡은 계단을 내려갔다. 홀에는 손님이 없었고 주인장 벌크만이 머그 벅의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이, 친구. 잘 잤나?”

 머그 벅은 반갑게 나뭇가지를 흔들어 인사했다. 분명 어제 같이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나무가 말하는 모습이 실루엔노틀의 풍경만큼이나 적응되지 않았다.

 현우가 쭈뼛쭈뼛 테이블로 다가가자 머그 벅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속은 좀 괜찮나?”

 “네.”

 “하하, 오향주의 장점이 바로 그거야. 맛이 좋은데 심지어 숙취도 없지! 흠이 없는 게 또 다른 장점이랄까”

 벌크는 머그 벅이 오향주를 칭찬하자 멋쩍은 듯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그의 손도 머리도 돌로 되어 있어서 꼭 돌끼리 마주 대고 드르륵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굳이 단점이 있다면……. 일어나지 않으면 취한지도 모른다는 거죠. 워낙 술이 맛있으니까요.”

 현우가 자리에 앉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머그 벅은 나뭇가지를 내려 눈썹 위쪽을 탁 쳤다. 마치 사람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딱 때리는 모양과 비슷했다.

 “이런, 자네 말이 맞네! 그걸 까먹고 있었군. 왜냐하면 난... 오향주를 마시고 이 자리에서 일어나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일세. 껄껄껄!”

 머그 벅이 점잔을 빼고 시원시원하게 웃었다. 현우도 하루 종일 똑같은 자리에 있는 그의 모습이 상상 되어서 빙그레 웃었다.

 “아침으로 뭐 먹을래?”

 벌크의 말에 갑자기 허기가 느껴진 현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말씀은 고맙지만, 지금 돈이…….”

 “토스트요! 계란 후라이는 완숙으로 바싹 익히고, 아랫면에는 야채 마요네즈를, 위쪽에는 땅콩버터를 듬뿍 바른 거로요! 물론 중간에 치즈를 계란 후라이 위에 올려주시는 센스 아시죠?”

 마토가 조목조목 말하며 주문했다. 그의 속사포 같은 말솜씨에 머그 벅은 껄껄 웃었고, 벌크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 그래. 자네는 어떤 메뉴로 주문하겠나?”

 “저 죄송한데, 저희가 돈이 없어요.”

 자신이 상상한 대로 아침을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생글생글 웃던 마토의 표정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바뀌었다.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게. 어제 리온이 미리 계산했으니까.”

 지옥에 떨어진 듯한 마토의 표정은 단숨에 천국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자 머그 벅이 마음에 든다면서 또 다시 껄껄 웃었다.

 “음…….”

 현우는 이번에 어떤 메뉴를 시켜야할지 몰라 망설였다. 벌크는 싱긋 웃으며 ‘쉐도어들이 흔히 먹는 아침 식사 A세트’로 가져다주겠다고 말하고는 주방에 들어갔다.

 “머그 벅, 어제 그 친구들 어디로 갔어요?”

 마토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은 사절단 임무를 끝냈으니 각자 집으로 돌아갔네. 아마 오늘은 현우를 도우러 리온만 올 걸세. 번안경을 산다거나, 대학교 신청을 한다거나……. 참, 앞으로는 먹이라고 부르게. 내 별명일세.”

 “꽤 재미있는 별명이네요.”

 “그런가? 다들 이름이 부르기 어렵다고 하면서 그렇게 부르더군.”

 마토는 별 희한한 별명 다 보겠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나도 이젠 별명 지어주는 재미에 푹 빠졌다네. 워낙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없는데, 별명 지어주는 건 퍽 재미있더군.”

 “오……. 근데 별명 짓는 거 센스 없으면 좀 어려운데.”

 “그런가? 그런데 여태까지 많은 이종족들에게 별명을 지어줬지만 대부분 마음에 들어 했네. 나보고 센스가 좋다고 말하더군. 내가 봐도 나이에 비해서 센스는 좋은 것 같네.”

 “와, 그럼 저도 별명 하나 지어주시겠어요?”

 “흠……. 토마토?”

 “하하. 어디 가서 센스 좋다고 함부로 말하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르신.”

 마토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우는 리생계에서 현우가 똑같이 토마토라고 불렀던 기억이 떠올라 배를 잡고 웃었다. 갑자기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시간에 자신이 깨어있는 것도. 어제만 해도 서울에 있었는데 지금 전혀 모르는 세계에 와서 이상한 나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도.

 마토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대화를 돌렸다.

 “먹,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가?”

 “그……. 사절단 임무 있잖아요. 그거 하면 돈 받아요?”

 그는 기억을 더듬어 어제 데비히츠와 오므로의 대화를 떠올렸다.

 “사절단 임무를 한 번 완수할 때마다 뭄하프로부터 수당을 받는 걸로 알고 있네. 금액적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듣기론 임무의 위험도에 따라 다르다고 하더구나.”

 “그럼 그건 뭐예요? 환영 복구?”

 “왜? 리온이 환영복구를 할 거라고 말하던가?”

 마토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머그 벅은 마치 수염이 있는 것처럼 나뭇가지로 입술 아랫부분을 쓰다듬었다. 그러곤 리온과 그 일행의 지갑 사정이 딱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저런, 하울릿들과 꽤 격하게 싸웠나보군?”

 “어? 어떻게 아셨어요?”

 “환영복구라는 게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머그 벅은 호흡을 한 번 고르고서 말을 이었다.

 “환영복구란 말 그대로 미리 설치해놓은 환영을 복구한다는 것을 뜻하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현우는 머그 벅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대답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버릇처럼 나오는 행동이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때 싸움이 일어날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머그 벅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도 않고 온화한 얼굴로 설명해주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광범위한 공간을 환영과 맞바꾸는 작업이지. 왜 사절단 임무를 하다보면 리생계의 건물이 부서지거나 무슨 일이 발생할 수 있지 않은가?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실루엔노틀의 존재 유무가 금세 인간들에게 탄로가 날 수도 있네. 그래서 사절단 임무를 나가기 전에 혹시 모를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현실과 똑같은 모습의 환영을 만들어놓는 거라네. 일종의 보험인 셈이지. 리생계의 진짜 공간을 빼놓고 환영으로 그것과 거의 흡사한 공간을 만들어 대체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걸세.”

 머그 벅은 지친 기색 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환영 공간이니 진짜 공간과 바꾸면 되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환영술을 풀어버리면 되는 것이라네. 어떤가, 이해가 가는가?”

 현우와 마토는 무거운 숨을 뱉으며 머리를 굴려봤다. 하지만 머그 벅의 말을 전부 이해하기에는 그들의 이해력이 따라가질 못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현우는 갑자기 다른 생각이 떠올라 손뼉을 쳤다.

 “아! 주영이는? 얘 어디 갔어?”

 “허이구, 빨리도 생각해낸다.”

 마토가 한껏 비아냥거렸다. 머그 벅은 둘이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 친구는 어제 너랑 같이 2층으로 올라갔는데, 못 봤나?”

 “에? 방에 없던데요?”

 “왜 내가 너랑 같은 방에서 잘 거라고 생각해?”

 멀리서 주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힘들게 걸음을 떼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현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숙취 때문에 얼굴이 조금 피곤해 보였는데, 표정과 달리 옷차림은 단정하고 말끔했다.

 주영은 새침한 표정으로 현우를 노려보다가 머그 벅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 잤어요, 머그 벅?”

 “껄껄! 나이를 하도 많이 먹었더니 이젠 밤에 잠도 잘 안 오더군. 어제는 100년 전 즐거웠던 일을 떠올리다가 간신히 잠들었네. 자네도 잘 잤나?”

 “잘 자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사실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그런데 머그 벅, 도대체 몇 살이에요?”

 “흐음, 글쎄”

 현우는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 자신의 나이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그 이유가 있었다.

 “천 살 이후로는 귀찮아서 안 셌더니 잘 모르겠구나. 껄껄껄!

 “천 살…….”

 현우는 입을 쩍 벌리고 중얼거렸다. 천 년이라는 세월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마토는 그런 것 까지는 따지지도 않고 그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었다.

 “도대체 천 년이면 어느 정도 세월이야?”

 “음…….”

 주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현우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해주려는 듯 꽤 오랫동안 고민한 뒤에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년도가 1948년이야. 그땐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건국이 1400년도 즈음이고. 그때는……. 활 쏘고 말 타는 시기였어. 상상이 돼? 그런데 1천 년 전이면 그보다 무려 400년가량을 더 거슬러 올라가는 거니까…….”

 “흐음…….”

 현우가 앓는 소리를 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주영은 현우가 이해했는지 그의 표정을 읽으려고 애를 썼으나 그는 알 듯 모를 듯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토는 주영의 설명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어려워. 먹, 천 년 이면 어느 정도 세월이에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네.”

 머그 벅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무엇을 봐도 놀라지 않고, 무엇을 먹어도 지겨워지는 세월.”

 먹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토는 단번에 이해가 되어서 낄낄거렸다. 현우와 주영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봐 친구! 자네도 아침 먹을 거야?”

 주방에 있던 벌크가 주영의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아, 네! 저…….”

 “저랑 똑같은 걸로 주세요!”

 현우가 재빨리 소리쳤다. 벌크는 돌로 된 이빨을 훤히 드러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영이 두 눈을 끔벅이며 현우를 바라보았다.

 “너 뭐 시켰는데?”

 “쉐도어들이 흔히 먹는 아침 식사 A 세트.”

 주영은 메뉴 이름이 웃기다면서 킥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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