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그제야 현우는 거리에 돌아다니는 쉐도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들은 하나같이 사람처럼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아...?”
“아까 못 들었어? 여긴 그림자 도시잖아. 내가 이렇게 일어나서 걸어가는 게 이곳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이거지.”
현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아귀에 힘을 빼기 무섭게 마토가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옷매무새를 다듬는 시늉을 했다.
마토는 난생처음 홀가분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현우의 행동을 따라하는 그림자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됐고, 정체를 들킬까봐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림자가 말하고 움직이는 것, 이곳에선 상식이었다.
“대화를 계속 해볼까요? 저 바다는 왜 떨어지지 않는 거죠?”
마토는 중요한 사항을 두고 논의를 나누는 학자를 흉내 냈다. 그러나 리온은 뻔뻔한 행동을 맞장구 쳐줄 만큼 능청스럽지 않았다. 그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해서 대화의 흐름을 끊고 말했다.
“크흠! 아까 말했다시피 이 세계에는 여섯 개의 땅이 주사위처럼 붙어있는데, 그 여섯 개의 땅은 모두 각기 다른 중력이 작용하고 있어. 그래서 하늘에 있는 바닷물이 떨어지지 않는 거야.”
조금이라도 이해한 주영은 깊은 감명을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현우와 마토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온이 난처한 표정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리를 긁적였다.
“참고로 저기 왼쪽에 보이는 저 곳이 내 고향이야. 땅의 이름은 굼뜬 협곡. 골덴들이 살고 있지.”
그때 앞서 걷던 오므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골덴들이 저곳에 산다고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주영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높낮이가 다른 기괴한 협곡들과 그 사이로 흐르는 강, 곳곳에 타원형 모양의 봉우리가 불규칙적으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도저히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황량한 땅이었다.
“저 협곡 안에 무수히 많은 동굴들이 있거든. 골덴들은 그 동굴 안에서 살아.”
“동굴이요?”
“그래, 그리고 그 많은 동굴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어때, 신기하지?”
주영은 구불구불하게 연결되어 있는 동굴을 상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므로는 주영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싱글벙글 웃었다.
“동굴들은 어디로 들어가도 나올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어.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도 있다? 굼뜬 협곡은 모로가도 나올 수 있다.”
주영이 감탄을 내뱉으며 신기해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오므로의 기분은 그러나 마토가 툭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무슨 개미굴 같네.”
“뭐, 개미굴?”
오므로는 고개를 홱 돌려 마토를 노려보았다.
“감히 숭고한 골덴 종족을 바닥에 기어 다니는 한낱 개미 따위와 비교해?”
“여기서 보니까 개미처럼 생겼는데, 뭘.”
“뭐가 개미 같다는 거야?”
“저기 봐봐”
오므로는 호박색 눈을 부릅뜨고서 마토가 가리키고 있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실루엔노틀에서 바라본 굼뜬 협곡은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 깎아 지르는 협곡의 틈 사이에서 골덴 몇 마리가 튀어나왔다.
골덴의 몸은 하나의 돌덩어리가 아닌 여러 개의 돌덩어리들이 붙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몸에는 작은 이음새가 있었다. 따라서 멀리서 보면 그들의 배는 단단한 마디가 그어져 있는 개미처럼 보였다. 몸뚱이가 작아서 꼬물거리는 모습도 마토가 말한 비유의 타당성에 한몫 더했다.
“풉.”
골덴한테 개미라니. 주영은 자신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가 오므로가 째려보자 황급히 헛기침을 했다. 그는 툴툴대며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쳇, 너희들이 뭘 알겠어? 저 안에는 그 유명한 빛의 광장도 있고, 어? 빛의 광장도 있고……. 에, 또…….”
“와, 멋질 것 같아요!”
주영은 기회가 된다면 골덴의 고향을 꼭 방문하고 싶다고, 빛의 광장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설명을 해달라고 하는 등 모든 관심을 쏟아냈다. 자신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오므로의 기분이 조금씩 풀렸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본 데비히츠는 주영의 화려한 말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음, 그런데 왜 땅 이름이 굼뜬 협곡이에요?”
오므로는 바로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대답했다.
“바로 굼뜬 골덴이 있기 때문이지.”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행을 포함한 광장에 있던 모든 이종족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휘청거렸다. 근처 건물들이 미세하게 떨릴 정도로 작은 진동이었지만 땅을 딛고 서있는 그들에겐 크게 느껴졌다.
굼뜬 협곡의 맞은편에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숲에서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새들의 불만 섞인 지저귐 때문에 주변은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에 사는 이종족들은 침착하게 기다렸고,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온 마토는 상황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런, 지진이야! 다들 엎드려서 머리를 보호해! 여진이 있을 수 있으니까 지진이 끝나면 당장 넓은 공원으로 달려가!”
그는 몸을 던져 바닥에 철퍼덕 엎드리더니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소리쳤다. 주위에 있던 이종족들이 이상한 눈길을 보냈고, 현우는 리온에게 혹시 실루엔노틀에는 하울릿이 없는지 물었다.
“지진은 무슨……. 잠깐 기지개를 켠 거야.”
오므로는 별난 놈 다 보겠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기지개요?”
뜻밖의 단어가 튀어나와서 주영이 놀라 물었다.
“그래. 기지개.”
“혹시 다른 뜻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여기서는 지진을 기지개라고 부르는지…….”
“아니, 왜 기지개 있잖아. 기지개 몰라? 이거 이렇게 하는 거.”
오므로는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켜는 시늉을 하려고 했지만, 벙어리장갑 같은 손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제가 알고 있는 그 기지개요?”
“그래.”
“이 지진이……. 기지개를 킨 거라고요?”
“그렇다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그런 게 있어. 되게 굼뜬 녀석이 있거든.”
오므로는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이런 식으로 놀리는 걸 굉장히 즐거워하는 듯했다. 궁금한 걸 못 참는 주영은 일행을 쳐다봤지만 데비히츠와 리온도 킥킥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모라이엠은 굼뜬 협곡을 힐끗 쳐다보면서 주영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음?”
바닥에 엎드려 있던 마토는 주영과 오므로의 대화를 듣고서 고개를 슬쩍 들었다. 광장의 이종족들이 킥킥거리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어……. 흠……. 그럼 저……. 땅은 모라이엠이 살고 있는 숲이겠군?”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더니 그림자 도시의 오른쪽에 붙어 있는 숲을 가리켰다.
“어……. 흠……. 그……. 루너를 닮아서 그런지 눈치가 좋은데?”
오므로는 마토의 당황해하는 말투를 흉내 내면서 놀렸다.
한차례 기지개 사건이 끝나고 그들은 다시 걸어갔다. 현우는 혹시 이 세계에 사는 이종족들은 모두 자신의 고향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는지 궁금해서 모라이엠을 바라보았다. 소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고, 그래서 그는 이종족들 중 골덴 종족만 별나다고 생각했다.
현우는 정면에 보이는,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땅을 가리켜 말했다.
“그럼 저 앞에 있는 칙칙한 땅은 누구…….”
“나머지 질문은 조금 있다가 하도록 하지. 뭄하프에 도착했으니.”
리온은 현우의 말을 단호하게 자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앞서 걸어가던 데비히츠와 오므로는 건물의 문 앞에 멈춰서 먼저 지나가라는 듯 양옆으로 길을 비켜주었다. 흰색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그 건물은 그림자 도시를 밝히는 전등처럼 빛났다. 주위 건물들보다 높아서 아마 멀리 있어도 보일 듯했다.
건물을 구경하던 현우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데비히츠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왜, 왜요?”
데비히치는 뼈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는 몸을 휙 돌려 뭄하프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왜 저래?”
현우는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고, 마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골덴 종족 말고도 고향에 자부심이 있는 종족이 또 있다고 머릿속에 입력했다.
“고생이 많아, 친구.”
오므로는 돌주먹으로 마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고서 걸음을 돌렸다.
* * *
건물에 들어가자 현우는 기분 나쁜 이질감이 느껴져 얼굴을 찡그렸다.
시야에 닿은 모든 것이 새하얀 순백이었다. 벽지부터 시작해서 바닥, 기둥, 천장, 심지어 로비와 안내소 책상 까지도 새하얬다. 그곳에 색이 있는 것이라곤 불빛에 의해서 생겨난 이종족과 기둥, 사물의 그림자뿐이었다.
다른 이종족은 보이지 않았고, 주위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도서실에서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잔뜩 깔려 있었다.
덕분에 데비히츠의 뼈다귀 발이 걸을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오므로의 돌덩어리 발이 걸을 때마다 쿵쿵쿵거리는 소리, 모라이엠이 걸을 때마다 나는 사그락거리는 소리는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건물주가 흰색을 많이 좋아하나보네.”
“아니면 겨울에 태어났거나.”
현우와 마토가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그들은 로비에 있는 안내소에 다가갔다. 듄 한 명이 책상에 두 다리를 올리고 의자에 한껏 기댄 채 큐브를 맞추고 있었다.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뼈가 빠르게 움직였고, 드르륵하고 큐브 맞추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그 듄은 몸의 비율이 엉망이었다. 상체가 너무 커서 다리가 무척 짧아 보였고, 뼈에도 광택이 없어서 낡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뼈대만큼은 크고 굵은 게 매우 단단해 보였다. 데비히츠와 크게 다른 점은 로브를 입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오므로”
리온이 안내소에 앉아 있는 듄을 보더니 고개를 살짝 틀고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내 기억력이 잘못 되었나?”
“글쎄……. 나도 나이를 먹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해.”
리온과 오므로는 듄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듄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여전히 큐브를 맞추면서 말했다.
“데비히츠에게 물어보면 정확하잖아. 그녀가 까먹을 리 없으니까.”
리온과 오므로는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뒤쪽에 서 있는 데비히츠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리온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내소에 앉아 있는 듄을 바라보았다.
“분명……. 우리가 출발했을 때도 당직이었잖아, 스키네. 그런데 왜 네가 또 당직이야?”
스키네라고 불린 듄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 그러게 말이다. 당직을 서 본적이 있어야 퐁당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알 텐데, 캐브리포 장관이 당직을 서 봤을 리가 없지.”
스키네는 금세 큐브를 다 맞추고는 눈앞에 대고 이모저모를 살폈다. 그리고 책상 위에 큐브를 올려놓고 리온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 골수까지 우려먹으려나봐. 이미 썩을 대로 썩어서 썩은 국물 밖에 안 나올 텐데 말이야.”
“그러게 내가 옛날부터 말했지. 캐브리포 장관 얼굴 마주보고 딱 한 마디만 하라고.”
“뭐라고?”
리온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스키네가 품속에서 재빨리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정신 차려, 이 자식아!”
“...아주 좋은 말이야. 이걸 그대로 건네줘도 돼?”
스키네는 씩 웃더니 만년필 옆에 작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난데없이 리온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정신차려, 이 자식아!”
목소리나 말투가 방금 전에 리온이 말한 것과 똑같았다. 스키네는 낄낄거리면서 만년필의 버튼을 계속 눌렀다.
“정신 차려, 이 자식아!”
“정신 차려, 이 자식아!”
“정신 차려, 이 자식아!”
“그걸 직접 말하라고, 이 친구야.”
리온이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한 번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네 목소리 좀 빌려야겠다, 낄낄.”
스키네가 큰 목소리로 웃었다. 조용한 로비에 웃음소리와 턱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가득 울렸다.
“큭, 큭큭. 그래, 이 친구들이 이번에 데리고 온 쉐도어들이야?”
리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키네는 웃느라 흘려버린 눈물을 손가락뼈로 스윽 훔치고는 뼈지팡이를 책에 갖다 댔다. 책상 위에 있던 커다란 책장이 사르륵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넘겨졌다. 주영이 신기해서 입을 오므리고 책을 구경하자 스키네가 그녀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이틀이나 걸리다니, 꽤 까다로운 친구들인 가봐?”
“도중에 하울릿들에게 습격을 받았거든.”
리온은 잠깐 쉬었다가 덧붙이듯이 말했다.
“여섯 번이나.”
“진짜? 와, 운이 좋은 친구들이네.”
주영은 데비히츠와 같은 듄 종족인데도 스키네의 미소가 징그럽게 느껴져서 인상을 찌푸렸다. 꼭 변태 같은 아저씨의 음흉한 미소 같았다.
“운은 좋은데 재수는 없는 거 같아.”
마토가 말을 툭 내뱉었다. 깜짝 놀란 현우가 마토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덤덤히 말을 이었다.
“실루엔노틀에 오자마자 물벼락을 맞았거든.”
“뭐, 진짜로?”
스키네는 다시 숨이 넘어갈 듯이 웃기 시작했다. 마토가 정확한 이름을 몰라서 오므로는 후안의 숨비에 맞았다고 설명했다. 그 와중에도 책은 사르르륵 소리를 내면서 넘겨지고 있었다.
스키네는 싱긋 웃더니 갑자기 주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그림자는 되게 수줍음이 많나봐, 말이 없네?”
그는 바닥에 붙어 있는 주영의 그림자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자는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제 그림자는 말하지 않는데요?”
“뭐?”
“말하지 않는다고요. 움직이지도 않고요.”
주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도전적인 어투로 말했다. 스키네의 얼굴에서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표정으로 사절단 일행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자, 스키네는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방법을 택했다.
“설마 너……. 사람이니?”
“당연하죠.”
처음에는 스키네가 비꼬는 줄 알고 주영이 발끈해서 대답했다. 잔인한 일을 했을 때 흔히들 말하는 ‘네가 사람이야?’라는 뜻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하지만 스키네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람이 맞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때마침 마구 넘겨지던 책장이 딱 멈추었다. 스키네는 자세를 고쳐 앉고서 심각한 표정으로 펼쳐진 페이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살아있는 마지막 쉐도어. 올해로 스무 살이 되어서 하울릿들의 타깃이 될 예정임. 속히 구출이 필요함. 이름, 표현우…….”
스키네가 마지막 단어를 읽고 나서 현우를 바라보았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여 자신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스키네의 시선이 현우 옆에 서 있는 리온에게로 옮겨졌다.
“그럼 얘는 뭐야? 진짜 사람이야?”
“...그래.”
“사람을 실루엔노틀로 데리고 왔다고?”
“네가 모르는 사정이 있어.”
“무슨 사정?”
“그건 말 못해.”
리온은 딱 잘라서 말했다. 스키네의 얼굴이 험악하게 바뀌면서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수다스러운 성격의 오므로마저 입을 꾹 다물었다.
“제가 부탁했어요.”
현우가 무거운 침묵을 깨트렸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일에 끼어드는 걸 몹시 싫어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적어도 자신과 친구의 목숨을 구해준 리온은 남이 아니었다.
“실루엔노틀에 이 친구가 같이 가지 않으면, 저도 가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뭐? 오지 않아?”
스키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입가에 무시무시한 미소를 띠고 웃던 그는 갑자기 정색했다. 그러곤 안내소 책상을 쾅 내려찍으며 현우에게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깜짝 놀란 마토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