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기억은 선명했다. 조금 전까지 테이블에 앉아 주영과 대화를 나누었고, 통유리창이 박살났고, 하울릿들이 널뛰며 다가오는 모습은 분명하게 기억났다.
그런데 갑자기 치킨집 앞에 서 있었다. 혹시 꿈을 꾼 것인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것 이외에는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안 들어가고 뭐해?”
마토가 추위에 덜덜 떨면서 짜증을 냈다. 현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서 주위를 살폈다. 몇몇 사람들이 조금 전 비명을 질렀던 자신을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더니 금세 흥미를 잃고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는 의문을 품은 채 문고리를 잡아 당겨 치킨집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온기와 치킨 냄새가 훅 끼쳤다. 카페에 들어왔다고 착각할 정도로 분위기가 조용했다. 마치 새해 첫날은 집에서 보내야한다는 무언의 약속이라도 있는 듯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방금 전에도 본 것 같다고 현우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끝없는 혼란이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현우는 그대로 홀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여러 테이블중에서도 한 테이블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여자 혼자서 치킨을 시켜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테이블이었다. 카운터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그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현우가 카운터에 있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툭 내뱉었다. 대답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들이 대답하지 않으리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벽에 걸려 있는 전자시계를 쳐다보았다. 저녁 7시 58분, 지각을 하진 않았다.
“요즘은 치킨집이 데이트 장소로 좋나봐?”
노골적으로 빈정거리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자 현우는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다. 뻣뻣하게 굳어진 목을 억지로 움직여 뒤를 돌아봤다. 덩치가 큰 경국이 실실 웃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국이 따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현우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혼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주영의 옆얼굴이 보였다. 그녀도 현우처럼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현우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과 달랐다. 기억대로라면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턱을 괸 채 맥주를 마시고 있어야 했다.
“무슨…….”
현우가 중얼거렸다.
“그거 지금 연기라고 하기엔 엄청 어색한 거 알아?”
경국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표정과 말투, 목소리가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아서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히죽히죽 웃던 경국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현우의 머릿속에 가정이 하나 떠올랐다. 혹시 방금 전 상황과 똑같이 재현되는 건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진짜로 지금 알았어요.”
“아~ 그럼 네 여자친구가 서프라이즈로 찾아왔나 보네.”
“…….”
“내가 군대를 전역한지 얼마 안 돼서 몰랐네. 요즘은 치킨집이 데이트하기 좋은 곳이라는 걸. 물론 넌 아직 군대를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군대는 정말이지 사호와 단절된 그런 곳이거든……. 그러니 내가 최신 트렌드를 잘 모를 수밖에.”
경국은 현우의 기억 속에 있는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했다. 빈정거리는 표정도, 그를 질색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반응도 똑같았다. 마치 연극 대본처럼 대사와 행동을 정해놓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았다.
그때 찬희가 주방에서 나왔다.
“어허, 내가 현우 연애에 태클 걸지 말랬지?”
그의 뒤로 베기니가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며 따라 나왔다. 베기니는 현우의 얼굴을 보더니 밝게 웃으며 손짓으로 인사했다.
히죽거리며 웃던 경국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안심하는 표정으로 찬희를 바라보았다.
“20년 솔로인 현우가, 응? 이제 좀 연애를 해보겠다는데 뭔 초를 쳐?”
찬희는 친근하게 현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찬희 형, 그래도 치킨집에 일하러 왔지 연애하러 온 건 아니잖아요?”
“손님이 쥐뿔도 없어서 너도 쉬고 있으면서 무슨. 차라리 연애라도 하는 게 낫지, 안 그래?”
“그건…….”
“군대 전역한 이야기 들먹일 시간에 차라리 연애를 해.”
정곡을 찔렀는지 경국은 대꾸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너희도 현우가 치킨집에서 데이트하는 걸 눈치 주거나 트집 잡기만 해봐. 이건 내 영업 방침이야, 알겠어? 너희들도 근무시간에 데이트하고 싶으면 애인 만들어서 데리고 와. 가게만 바쁘지 않으면 연애할 수 있도록 시간 빼주고 테이블 더해줄 테니까.”
찬희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주욱 둘러보며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바닥에서 ‘와, 진짜 멋있는데!’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서 현우는 담뱃불을 끄듯이 바닥을 발로 비볐다.
이번에는 정확히 마토의 몸에 발이 닿았다. 마토는 보지도 않고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알았는지 당황해하며 현우의 다리를 마구 때렸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이 다시 돌아온다면, 이런 말 하지도 않았어. 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서 조언이 아주 사골처럼 진국일 거다. 왜냐하면 내가 일한답시고 20대에 연애를 못 해봤…….”
찬희는 말을 하다말고 슬픔이 울컥 치밀어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현우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자, 난 괜찮으니까…….”
“어서 여자친구에게 가보라고요?”
찬희는 자신이 할 말을 현우가 선수 쳐서 말하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깨에 올려져 있는 찬희의 팔을 떼어놓고 잠시 고민하던 현우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해 보기로 했다.
“여자친구 아니라니까요.”
“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여자친구도 아닌데 네가 일하는 곳에 왜 자꾸 찾아와?”
“쟤가 좀 이상하거든요.”
말이 끝나자마자 현우는 찬희의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곧바로 말했다.
“혹은 나한테 마음이 있거나?”
“혹은 너한테 마음이 있거나.”
깜짝 놀란 찬희가 몸을 움찔거렸다. 어떻게 자신이 할 말을 알고 있냐는 의문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현우는 그 물음을 해결해주지 않고서 주영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진짜로 주영이가 너한테 마음 있는 거 아냐?”
마토가 넌지시 물어봤지만 그는 못 들은 척 했다. 테이블에 다가갈수록 걸음이 빨라졌다. 마침내 주영의 맞은편에 의자에 앉은 현우가 수상쩍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영도 얼떨한 표정을 짓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이 방금 전 이와 똑같은 상황, 현우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을 때 ‘어머!’라고 감탄사를 뱉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되풀이하기에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꺼림칙하게 느껴져서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
현우는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주영의 말투와 목소리를 흉내 내어 말했다. 주영과 마토의 시선이 현우에게 모였는데, 표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속마음을 읽혔다고 생각해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의 주영과 마치 변태를 쳐다보는 것처럼 불쾌한 표정의 마토.
잠시 뒤에 마토는 심각한 얼굴로 주영에게 말했다.
“미안, 이 친구가 주기적으로 미치는데 오늘이 그 날인가 봐.”
“오늘 그 날 아냐.”
현우는 주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중얼거렸다. 마토는 짐짓 깜짝 놀라는 척 연기를 하고선, 고개를 갸웃거리며 양손을 쫙 펼치고 하나씩 접어가며 날짜를 계산했다.
현우와 주영은 불안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어떻게 내가 할 말을 알고 있는 거야?”
“너도 네가 할 말을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내가 말했을 때 놀란 거잖아?”
“그, 그치”
“뭔가 이상해. 아니, 이상한 수준이 아니라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야.”
“설마 우리……. 과거로 돌아온 건가?”
“과거?”
“방금 전에 일어났던 ‘과거’가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거 아냐?”
현우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그녀의 추측을 깡그리 무시할 순 없었다. 치킨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카운터에서 아르바이트생들과 나누던 대화, 주영이 하려고 하는 말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다. 끝난 영상을 다시 재생 버튼을 눌러 재생시킨 것 같았다.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어.”
현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과거가 반복되는 이 상황을 우리만 알고 있는 것 같아.”
주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홀에 있는 사람들은 태평하게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카운터에 있는 사장과 아르바이트생들도 한가하게 쉬고 있었다. 조금 전 유리창이 깨지며 맹수들이 들이닥친 상황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두 사람은 이미 지나간 장면이, 겪었던 상황이 눈앞에 고스란히 재현되자 혼란스러웠다.
“심지어 이 녀석도 몰라.”
마토는 양손에 양념을 잔뜩 묻히며 치킨을 먹다가 무슨 일이냐는 듯 눈썹을 들썩였다.
“이거 뭔가…….”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도 한껏 낮추어 말하던 현우는 말문이 턱 막혔다. 카운터에 있어야 할 찬희가 맥주 가득 담긴 잔을 양손에 들고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기억에 없던 장면이었다.
“어떻게 속은 괜찮아?”
찬희는 테이블 위에 맥주잔을 내려놓고 주영의 맞은편에 앉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걱정한다는 사람이 거품 넘칠 것처럼 가득 담긴 맥주를 건네는 모습에 마토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주영도 이 상황이 기억에 없는 장면이라는 걸 알아서 의아한 눈길로 찬희를 쳐다보았다.
“응? 왜? 눈곱 꼈어? 세수 제대로 했는데…….”
“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아니면 내가 너무 잘 생겨서? 하하하!”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찬희의 손짓에는 허세가 가득했다. 표정관리가 안 되던 주영은 상대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억지웃음을 지었다.
현우는 찬희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폈다. 생김새와 목소리는 똑같았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무엇보다 그는 평소에 같은 남자들의 허세 짙은 행동을 질색했었다.
기억과 다른 장면이 있는 건가?
현우는 목을 길게 뻗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머릿속에 기억하는 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은 틀린그림찾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홀의 손님이 워낙 적어서 금방 차이점을 알아챘다.
구석에 있는 한 테이블에 못 보던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사시사철 야외에서 지내야 만들어질 것 같은 새까만 피부를 가진 그들은 고양이과 동물처럼 인중 부분이 모아진 얼굴이었다. 그들 중 한 남자가 현우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어색한 시선의 회피가 몹시 수상쩍었다.
“너무 그렇게 유심히 보지 마.”
찬희는 여전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현우의 두 눈이 크게 떠졌고, 주영은 입이 딱 벌어졌다. 얼굴은 찬희인데 목소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계속 밥 먹는 척하면서 들어. 놈들을 너무 유심히 보지 말고 허둥대지도 말고.”
음역대가 달랐다. 찬희보다 훨씬 더 무겁고 진중한 목소리였다.
“당신 누구야?”
현우는 불안 가득한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리자 처음 하울릿을 만났을 때처럼 섬뜩한 공포가 느껴졌다.
“쉿! 조용히 해!”
그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주영을 바라보는 척하면서 그녀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남자들을 살폈다.
“이런, 녀석들이 의심하기 시작했어!”
그의 시선이 안절부절못하게 움직이더니 주영에게 향했다.
“주영이라고 했나? 치킨을 먹어. 지금 당장”
“네?”
“제발, 좀! 물어보지 말고 앞에 있는 치킨을 먹으라고, 당장!”
찬희는 입술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말했다. 태연한 표정에 반해 목소리에는 초조한 기색이 가득한 것이 복화술을 하는 것 같았다. 바로 옆에 있는 현우와 마토도 그가 진짜로 말을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가 계속 재촉하자 주영은 한차례 현우의 눈치를 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숙여 치킨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찬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해. 누가 보더라도 치킨에 환장해서 얼굴 파묻고 먹는 여자처럼 보일 거야.”
주영은 입에 치킨을 한가득 집어넣다가 사례가 걸려 쿨럭 거렸다.
“자, 현우. 넌 나랑 건배를 해. 알았어, 이번엔 무슨 일인지 다 설명해줄 테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말고 일단 건배해! 들키면 죽는 거야. 알겠어? 빨리!”
현우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찬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것을 보자 건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잔이 깨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당신 누구야?”
현우는 맥주잔에 입술만 갖다 대고 내려놓았다. 찬희는 맥주를 마시면서 지금 맥주 마시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캬~ 역시 맥주는 이거지. 갓 뽑은 생맥주! 탄산이 살아 있어. 이거 무슨 맥주더라?”
찬희가 일부러 큰 소리를 소란을 피운 다음,
“바로 어제 만났는데 목소리도 기억 못하는 건가? 데비히츠가 보면 벌레취급 할지도 모르겠군.”
치킨을 먹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멀리서 본다면 그저 음식을 씹고 있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현우는 데비히츠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라면 평생을 살면서 가장 다이나믹한 하루였다. 이상한 맹수들에게 죽을 뻔하고 이종족들을 만나고.
이종족들?
그의 머릿속에 어제 만난 이종족들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이름은 몰랐다. 돌덩어리의 천진난만한 남자 목소리, 해골의 굵은 여자 목소리, 연녹색 피부의 소녀는……. 목소리를 낸 적이 없어서 몰랐다. 그리고…….
“설마, 몸이 시커먼 남자?”
찬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날 그렇게 기억하는 구나? 금발머리 남자나 혹은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현우는 찬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만 모든 신경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무엇인가를 경계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얼굴에 안도하는 빛이 떠올랐다.
“당신이 그 남자라고?”
“넌 기억력이 진짜 안 좋구나? 네 그림자 이름이라도 말하면 믿겠나? 안 그래, 토마토?”
현우와 주영은 당황한 눈길로 찬희가 바라보고 있는 한 그림자에게 향했다. 그때까지 일반 사람들의 그림자처럼 계속 가만히 있던 마토가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몸을 움직였다.
“이 자식이 남의 이름을 멋대로 채소로 만들어버리네.”
“토마토……. 아냐?”
“마토다, 이 자식아.”
찬희는 자신의 기억이 틀렸다는 것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 뒤늦게 정체를 들켰다는 것에 놀란 마토는 이왕 들킨 거 계속 말하기로 했다.
“젠장, 이 남자 어젯밤 우리 구해줬던 그 남자 맞나본데? 이름이……. 리온이라고 했던가.”
현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나타났던 이종족들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 자신과 똑같은 쉐도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났다.
“그림자가 주인보다 낫군. 흔치 않은 경우인데.”
마토는 어떻게 비교 자체가 되겠냐는 듯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당신이 리온이라고 쳐. 그런데 어째서 찬희 형의 몸에서 당신 목소리가 나오는 거지?”
현우는 흥분해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제발 조용히 좀 하지 않겠어? 아무리 하울릿들이 멍청하다 해도 이 정도로 티를 내면 눈치 채거든?”
“하울릿!”
현우와 마토가 동시에 외쳤다. 찬희가 찢어죽일 듯한 눈빛으로 쏘아보자 그제야 심각한 상황이라고 깨달은 둘은 상체를 잔뜩 수그렸다. 오히려 그 반응이 훨씬 더 수상쩍게 보인다는 것도 모른 채.
마토는 하울릿이라는 단어 하나에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등줄기가 오싹해졌고, 두려움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죽어도 상관없으니 집에서 나가라고 했던 현우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흐부리? 그그무르야?”
주영의 발음은 입에 가득 들어 있는 음식물 때문에 어눌했다. 음식물이 사방으로 튀어서 현우와 마토, 찬희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영은 아랑곳 않고 바쁘게 움직이던 턱을 딱 멈추고는 눈동자만 데룩데룩 굴렸다. 곧이어 입안에 있던 음식물들을 겨우 삼키고 말했다.
“하울릿이 뭐예요? 당신은 누구죠? 어떻게 현우의 그림자 정체를 알고 있는 거예요?”
찬희는 주영과 그녀 어깨 너머에 있는 까무잡잡한 남자들을 살피더니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팔을 들어 주영을 가리켰다.
“미치겠군. 어제 몇 십 분에 걸쳐 이종족들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 이 여자에게 다시 해야 하는 건가? 왜, 그냥 하울릿들에게 가서 죽여 달라고 가서 말하지 그래?”
“도대체 하울릿이 뭔데요?”
주영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녀는 궁금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당장 알아내야만 했다.
찬희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려고 할 때, 현우가 그의 멱살을 잡으며 눈을 부릅떴다.
“딴 건 설명 안 해도 돼. 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는지, 그것만 말해.”
찬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널 구하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