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했다는 여운이 길게 남았다. 카운터에서는 찬희와 아르바이트생들이 웃으며 서로 덕담을 나누었다. 카운트다운 소리를 듣고 주방에서 뛰쳐나온 베기니도 잠시 그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흥이 오른 손님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귀에 맴돌았다.
“이제 슬슬 일하러 가야겠다.”
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주영이 재빨리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저기, 현우야…….”
깜짝 놀란 현우는 멀뚱멀뚱 그녀를 쳐다보았다. 주영은 말할 듯 말 듯 입술을 달싹였다. 둘 사이에 끼어 ㄱ그들을 번갈아 쳐다보던 마토는 무엇인가를 눈치 채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일방적이긴 하지만 애틋한 기류가.
“왜?”
잠시 머뭇거리던 주영은 갑자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술 좀 가져다줄래?”
“뭐?”
현우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마토는 혼자 깊은 분노를 느껴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술 좀 가져다 달라고.”
“학생이 무슨 술이야?”
“이제 우린 성인이잖아.”
주영은 웃으며 고갯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벽에 붙어 있는 전자시계의 년도에는 정확히 2017년도가 나타나 있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현우는 몹시 당황했다. 새해가 되었으니 법적으로는 술을 사거나 마시는데 문제가 없었다. 단지 학교에서 항상 범생이처럼 굴던 친구의 입에서 술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것이 어색했다.
“너 술도 마시냐?”
현우는 앉아 있는 주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토, 넌 내가 술 마시는 양아치로 보여?”
“음…….”
마토는 고개를 삐딱하게 틀고 덧붙여 말했다.
“양아치인 건 모르겠지만, 방금 전의 네 행동을 보아하니 겁쟁이는 확실하고 바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
안타깝다는 듯 탄식하는 마토와 자조적인 웃음을 띤 주영. 오로지 현우만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뭐, 수능도 끝났겠다. 한 번 마셔보려는 거야. 기분전환 겸.”
“...뭐로 가져다줄까?”
“소주로 아무거나. 오늘 취하고 싶어.”
“허세는.”
현우는 느릿한 걸음으로 음료쇼케이스에 다가갔다. 그러곤 익숙한 동작으로 차가운 소주를 챙겨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찬희가 재빨리 다가왔다.
“술 마시려고?”
현우는 뻔히 술을 들고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작년에도 영업이 끝나면 종종 찬희와 같이 술을 마시곤 했다. 어른이랑 마시는 술은 괜찮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나이만 먹으면 누구나 다 되는 어른을 마치 대단한 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만큼 술이 고팠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찬희는 짐짓 정중한 태도로 주영에게 요청했다. 이 한 마디로 그와 그녀의 관계가 ‘친구가 일하는 치킨집의 친근한 오빠와 동생’에서 ‘치킨집 사장과 손님’으로 바뀌었다.
주영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기쁜 마음으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찬희는 한참동안 신분증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척했다.
“아니, 제대로 확인하는 것 같지도 않는데 무슨…….”
현우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찬희는 주영에게 신분증을 돌려주며 검지를 까닥였다.
“이제 막 성인이 되면 신분증 검사에 희열을 느끼는 법이야. 우리나라에서는 성인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술을 당당하게 먹을 때니까.”
“너 진짜 그러냐?”
현우가 빈정거리는 투로 묻자 주영은 지갑을 주머니에 도로 넣으면서 싱긋 웃었다.
“현우 너도 막상 하면 희열 느낄걸?”
“전 애가 아니라서 이런 거에 희열을 안 느껴요”
현우는 딱 잘라 말하며 지갑을 통째로 넘겨주었다.
“아휴, 성격이 완전 애늙은이라니까.”
“이런 거 일일이 검사하는 게 애늙은이죠. 며칠 전에도 같이 반주했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그건 영업 끝나고 우리끼리 몰래 마신 거니까 괜찮잖아, 짜샤. 넌 지금 손님 신분으로 네 여자친구랑 같이 마시는데, 여기서 신분증이 없으면 원칙상으로는 술을 못 마시…….”
찬희의 너털웃음 소리가 뚝 끊겼다. 그의 눈에 의문이 떠오르면서 지갑을 확인하는 손동작이 빨라졌다. 껄렁껄렁한 자세로 있던 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찬희는 냉랭하게 웃어보였다.
* * *
“신분증 검사를 하면 희열을 느낄 것 같아, 안 느낄 것 같아?”
“느낄 것 같아요! 아니, 느껴져요!”
찬희가 가게 밖으로 쫓아내려하자 현우는 안간힘을 쓰며 가게 문을 붙잡고 버텼다. 따뜻한 실내에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겨울바람이 더 쌀쌀하게 느껴졌다. 옷 틈 사이로 파고드는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불쾌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마토는 찬희 앞이라서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조용히 몸을 덜덜 떨었다.
“그치?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애기면 신분증 검사 하나에 신나고 흥분되고, 막 그렇지?”
“…….”
“그래, 안 그래?”
“그래!”
“그래? 그래는 반말이고. 어디서 어른한테!”
찬희는 더욱 힘을 주어서 현우를 밀어냈고, 마토는 정체를 들키는 한이 있더라도 찬희의 정강이를 주먹으로 후려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 근처에 앉아 있던 손님들 중 몇몇은 재미난 구경이라며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했고, 몇몇은 추위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평소에도 자주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 진짜 미쳤나봐, 이 형.”
“원래 자영업은 사장 마음대로란다.”
“제기랄, 신고할 거야! 여기 문 닫게 만들어버릴…….”
“그래, 신고해 봐. 그럼 나도 널 근무 태만으로 신고할 거니까. 증거는 CCTV에 차고 넘치거든. 그럼 넌 바로 쫓겨날 거고, 당장 아르바이트를 다시 구해야 하고, 무엇보다 너희 누나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넌…….”
* * *
“너무 많이 마시진 마라.”
찬희는 테이블 위에 소주잔을 올려놓고는 몸을 돌렸다. 주영은 턱이 빠진 사람처럼 입을 떡 벌리고서 멀어져가는 치킨집 사장의 뒷모습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괜찮아?”
“어, 응. 괜찮아. 후…….”
현우가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그의 뺨과 코는 추위 때문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금 몸 상태로는 현우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한 마토는 아예 테이블 아래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몸을 덜덜 떨면서 소리죽여 재채기를 했다.
주영은 카운터에 서 있는 찬희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대, 대단하더라. 너희 사장님.”
“대단은 무슨. 그냥 제멋대로인 놈이야. 다른 말로 하면 재수 없는 놈이지.”
현우는 치킨집 사장에 대한 뒷담을 하며 능숙한 동작으로 소주 뚜껑을 깠다. 천천히 주영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는데, 홀 중앙에 앉아 있던 단체 손님들이 우수수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우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테이블 위는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온갖 닭뼈와 휴지, 술병,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기가 가득했다. 좁은 통로에는 빠져나가는 손님들과 대기 손님들을 앉히기 위해 테이블을 닦으러 급히 달려드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마구 뒤엉켜다.
분주하게 테이블을 닦고 있는 경국과 현우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사장이 일하고 있는 것이 안 보이냐는 듯 고갯짓으로 찬희를 가리켰다.
“잠깐만 일하고 올게”
테이블 아래에서 ‘젠장’하고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우가 일어나서 테이블을 벗어나자 자포자기한 마토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그림자 연기하는 것도 잊고 바닥에 쓰러진 채 질질 끌려갔다.
주영은 혼자서 킥킥거리며 웃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혼자 앉기에는 테이블이 너무나 컸다. 맞은편 빈자리에는 어느새 공허함이 자리 잡았다.
주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뭐야? 네가 왜 와?”
찬희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처럼 당황했다. 현우는 질문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일하러 왔는데 사장이 왜 왔냐고 묻다니?
“일하러 왔죠.”
“무슨 일?”
“테이블 닦는 거요.”
“하이고, 평소에 열심히 하지도 않던 놈이 갑자기 무슨. 네가 지금 할 일은…….”
찬희는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으며 현우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덧붙였다.
“연애야.”
그가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주영을 가리켜다. 그녀는 아무런 생각 없이 현우를 바라보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설픈 동작으로 술을 따르다가 잔을 쓰러드리고, 휴지를 북북 뽑아서 허둥지둥 테이블을 닦다가 이번에는 병을 쓰러뜨렸다. 그녀는 입술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겨우 테이블을 다 닦은 주영은 슬쩍 현우의 눈치를 보더니 잔에 담긴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찬희는 탄식하면서 혀를 찼다.
“여자 혼자 술 마시게 두는 거 아냐. 빨리 가봐”
“하지만 일을…….”
현우는 말끝을 흐리면서 경국을 흘깃 쳐다봤다. 상황을 금세 눈치 챈 찬희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너 대신에 하면 되니까, 어서 가봐.”
찬희는 현우의 등살을 떠밀었다. 그는 잠깐 찬희와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걸음을 돌렸다.
“경국, 내가 쟤네들 방해하지 말랬지.”
찬희는 현우가 테이블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로 주위가 시끄러웠는데도 그의 목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형, 안 그래도 연말이어서 바쁜데 혼자 여자친구랑 희희낙락 하는 게 말이 되요? 그것도 자신이 일하는 치킨가게에서? 아니, 그럴 거면 하루 쉬고 다른 술집에 가서 마시던가. 왜 여기 와서 난리를 치는 거야, 짜증나게.”
“그게 그렇게 아니꼬우면 너도 여자친구 데리고 와서 근무시간에 연애해.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경국은 사나운 눈길로 찬희와 현우가 앉은 테이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잠시 후, 여자친구를 데려올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묵묵히 테이블 위를 치우기 시작했다.
찬희는 그의 어깨를 한 번 토닥여주고는 팔짱을 끼고 한 테이블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 * *
주영은 입 안 가득 머금은 술을 뱉을지 삼킬지 고민하던 도중, 현우가 다가오자 놀라서 삼켜버렸다.
“크…….”
“어때? 마실만해?”
“이딴 걸 왜 마시는 거야? 그냥 알코올 덩어리를? 아니면 공업용이 잘못 나온 건가?”
그녀가 손등으로 입가의 물기를 스윽 닦으며 소주병을 들고서 이리저리 확인했다. 현우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누가 술을 그렇게 가득 따라서 마시냐? 적당히 따라, 적당히. 그리고 물 자주 마시고 안주 먹고.”
주영은 입안에 물을 머금고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애쓰면서 술병을 들었다.
“자, 따라줄게.”
현우는 피식 웃으며 잔을 들어올렸다. 주영은 술을 넘치지 않게 따르려고 조심히 술을 따랐다. 반대로 현우도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둘이 건배하려는 순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치킨을 쉴 새 없이 집어먹던 마토가 손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아먹으며 끼어들었다.
“어허, 내가 빠지면 섭섭하지!”
“누가?”
“내가.”
셋은 잔을 들어올렸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너도”
잔 부딪치는 청명한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아주 조금, 주영의 잔에 담긴 술이 넘실거려 현우의 잔에 흘러들어갔다.
* * *
“뭐, 뭐야?”
주영이 정색하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발을 들어 올려 신발 바닥을 확인하더니 신발코로 바닥을 툭툭 걷어찼다. 현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참 동안 이상한 확인 작업을 하던 주영은 갑자기 천진난만하게 웃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땅이 움직이는 거자? 헤헤헤, 이상하네. 딸꾹!”
“젠장, 그러게 적당히 마시라니까”
가로등마저 꾸벅꾸벅 잠드는 새벽 시간. 겨울바람은 여전히 매서웠고, 차가운 바람이 볼을 파고들었다. 추위와 어둠이 만들어낸 거리는 짙은 침묵이 가라앉아 있어 음산하게 보였다.
현우는 주영의 한쪽 팔을 어깨에 걸쳐 부축하면서 걸어갔다. 그녀가 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모든 체중을 실고 있는 탓에 죽을 맛이었다.
“어? 현우야 너 왜 그렇게 이상하게 걷는 거야?”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너거든?”
“아냐. 내가 이상한 게 아냐……. 딸꾹! 너도 이상한 게 아니고……. 으음, 그래.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다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세상이 이상한 거야! 딸꾹! 으, 핑핑 돈다. 세상이.”
현우도 제법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부축하려다 보니 그들은 심하게 비틀거렸다.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나 차도를 걷기 일쑤였고, 발을 잘못 디뎌 차디찬 바닥에 넘어졌다. 그럴 때마다 마토가 소리를 빽 질렀다.
“으악! 이것들이 왜이래! 똑바로 걸어, 이것들아!”
“어, 마토 아냐?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 그런데 언제 왔어?”
주영은 느닷없이 쭈그리고 앉아 아스팔트바닥에 붙어 있는 마토의 몸을 반가움 가득한 손길로 툭툭 때리기 시작했다.
“그림자인데 뭘 언제와? 아까부터 있었……. 아야, 아파! 그만 때려 좀!”
”너 몸이 왜 이렇게 차가워?”
바로 귀에다 대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마토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주영은 자신이 할 말만 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얼굴 가득 띠운 그녀가 맨손으로 바닥을 쓰다듬었다.
“내 몸이 차가운 게 아니라, 바닥이 차가운 거야.”
“아니, 참나. 내가 지금 네 몸이랑 바닥도 구분 못하는 줄 알아? 지금 네 몸이 얼음장 같이 차갑다니까? 넌 자기 몸이 이렇게 되었는데 그것도 모르니? 추워서 감각이 어떻게 된 거 아냐?”
“지금 감각이 맛이 간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정신 차려, 제발!”
“안 되겠다, 이러다가 동상 걸리겠어. 일단 이거 입고…….”
주영은 급기야 자신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서 마토에게 덮어주었다. 그녀 딴에는 걱정되어서 한 행동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바닥에다가 코트를 벗어놓은 꼴이었다.
“읍! 읍!”
갑자기 숨이 턱 막힌 마토가 코트를 치우려고 아등바등해서 코트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불룩불룩 움직였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119에 전하해서 당장…….”
“뭘 전화를 해?”
현우는 단호하게 주영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스스로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머뭇하던 현우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코트를 들어 탁탁 털어서 주영의 어깨에 걸쳤다.
“푸흡! 파아! 숨 막혀서 죽을 뻔했네.”
“뭐, 죽어? 안 돼!”
가관이었다. 주영은 이제 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마토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몸은 종이에 붙어있던 스티커가 떼어지듯이 부드럽게 일으켜졌다.
“내가 병원에 데려다 줄게! 죽으면 안 돼, 흑흑……. 왜 안 따라 오는 거야? 빨리!”
“아악, 잡아 당기지마! 머리, 머리 빠져! 얘 진짜 다음부터 술 마시면 안 되겠네, 이거!”
“안 오고 뭐해? 나랑 놀자. 꺄하하……. 웁, 우욱. 잠깐만, 토할 것 같아…….”
“안 돼. 제발, 제발!”
마토의 간절한 부탁에도 주영은 쭈그려 앉은 채 속을 게워냈다. 뜨거운 점액 덩어리가 한 번, 두 번, 세 번, 바닥에 쏟아졌다. 그것은 차디찬 새벽 공기에 빠른 속도로 식어갔다.
현우는 고개를 돌린 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 와중에도 돕는답시고 주영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괜찮아?”
“으응, 괜찮……. 지 않아. 우웩!”
현우의 손길 덕분에 주영은 한결 속이 편해졌다. 반면 지옥에 들어가는 듯한 마토의 비명소리는 새벽 공기를 타고 한결같이 울려 퍼졌다.
딱 세 번째 소주를 깠을 때, 주영은 인사불성이 되었다. 아르바이트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집이 가깝다는 현우의 말에 찬희는 조기 퇴근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이상한 데로 새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상한 데는 무슨……. 자, 집에 빨리 가자.”
“뭐? 집에 가자고?”
“그럼 집에 안 갈 거야?”
“집에 가서 어쩌려고?”
주영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야릇하다고 생각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주황빛 가로등 아래여서 현우는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 눈물 때문에 번진 마스카라 때문에 귀신처럼 보였다. 게다가 추위 때문에 뺨과 코가 빨갛게 달아올라서 얼핏 보면 광대 같이 보이기도 했다.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기나 해.”
“응? 집에 가서 뭐 어쩌려고?”
주영은 고개를 들이 밀면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고, 현우는 그녀를 억지로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몇 번이나 휘청거리면서 넘어질 뻔했다. 잠시 후, 주영은 취기에 새근새근 잠들었다.
“이게 달밤에 웬 고생이야…….”
그 순간, 뒤쪽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현우가 흠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어두컴컴해서 뭔가가 보이질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쌔앵 불어와 닭살이 돋자 괜히 으스스했다.
현우는 발길을 돌려서 걷다가 또다시 섬뜩한 기운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마토가 중얼거렸다.
“뭐야, 왜 그래?”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아냐, 착각했나봐.”
다시 걸어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어두컴컴한 옆 골목길에서 거뭇한 실루엣이 튀어나왔다. 현우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