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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루나틱
작가 : 0kim
작품등록일 : 2017.7.4

주인공의 그림자로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인생만 10년! 눈치 없는 주인공 옆에서 소꿉친구의 짝사랑을 바라본 기간 또한 10년! 수다스럽지만 불만 많고, 유쾌하지만 겁 많은 그림자와 세상 비관적인 주인공, 호기심 많은 여자 소꿉친구와 함께하는 판타지 세계 모험물.

 
하울릿의 등장
작성일 : 17-07-04 20:16     조회 : 41     추천 : 0     분량 : 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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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치킨가게 사장 찬희는 세상에서 지각을 가장 싫어했다.

 그는 회사를 다닐 적에 잦은 지각으로 직장 상사에게 자주 욕을 먹었다. 정도가 심해지면서 인격모독을 당하는 지경이 되자 그는 이직을 결심했다. 하지만 지각은 고질병이었고 회사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생겨서 새로운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찬희는 회사 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아예 가게를 차렸다. 자신이 사장이 되면 지각을 해도 욕먹을 일이 없고, 더 높은 사람도 없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장이 도고 나서는 지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지각에 더 예민해져서 아르바이트생들이 조금만 지각을 해도 크게 화를 냈다.

 따라서 요즘처럼 손님이 많아 일손이 부족한 연말에 벌어진 현우의 지각은 찬희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너 이 자식…….”

 손님들의 시선이 거의 닿지 않는 치킨집의 오픈된 주방. 찬희가 굳은 표정으로 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우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며 두 눈을 흐리멍덩하게 떴다. 잔소리 할 거면 빨리 하고 끝내라는 식의 태도였다. 오히려 바닥에 붙어 있는 마토가 눈치를 봤다.

 “어떻게 될까?”

 “잘리지 않을까?”

 “에이, 설마 자르겠어?”

 “아무리 찬희 오빠가 성인군자여도 일주일 내내 지각했는데 가만히 있겠어?”

 “딱 보니까 오늘은 얄짤없어. 잘린다에 오늘 일급을 걸게.”

 “맞아. 그리고 어제 경고했잖아. 만약 오늘도 지각하면 새해에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봐야 할 거라고…….”

 카운터 근처에서 구경하던 아르바이트생들은 ‘과연 현우가 잘릴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처음에 설마 했던 여론은 찬희의 마지막 경고가 어제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한 아르바이트생 때문에 잘리는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그때 찬희가 험악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아르바이트생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그는 현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림자 마토가 몸을 움찔거렸고,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아르바이트생들도 마치 자신의 어깨에 손이 올려진 것처럼 흠칫했다.

 계속 시선을 피하던 현우는 처음으로 찬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 자식……. 저렇게 예쁜 여자친구를 데려오다니.”

 찬희는 부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우가 영문을 몰라 미간을 찌푸리자 그는 고갯짓으로 홀을 가리켰다. 멀리서 눈이 마주친 주영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방금 전, 가게 앞에서 내년에 보자며 웃는 얼굴로 헤어졌던 그녀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아, 저 친구는…….”

 “어허,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고맙구나, 이렇게 바쁜 날에 저렇게 예쁜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다니. 뭐랄까,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리는 느낌?”

 “아니, 여자친구가 아니…….”

 “어디서 만났어? 고등학교?”

 찬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현우의 손을 꼭 잡았다. 현우가 조금 불쾌하다는 듯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힘을 꽉 주었다.

 “그래, 사귄지 얼마 안 되었는데 연말에 데이트도 못하고 일하려니까 많이 힘들지? 그러니까 여자친구도 일하는 곳에 따라왔겠지. 형은 다 이해해. 마음 같아서는 단 둘이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 싶지만 지금은 좀 바쁘니까. 조금 있다가 한산해지면 그때 시간 빼줄게, 알았지?”

 “진짜요?”

 현우는 주영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기대되었다.

 “그래.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요?”

 “절대 저 친구를 웃게 만들어. 그녀가 웃지 않으면 죽는다.”

 “…….”

 협박 아닌 협박을 끝낸 다음에야 찬희는 손을 놓아주었고, 현우는 손목을 주무르면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치킨집은 연말답게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조금 텁텁한 공기와 닭 튀긴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맥주잔이 무겁게 부딪치는 소리와 사람 떠드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현우는 홀과 주방을 빠르게 오가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손님에게 주문을 받아 카운터에 전달하고, 튀겨진 치킨을 테이블로 가져다 날랐다. 겨울인데도 실내가 후덥지근해서 그는 아예 소매를 걷어 올렸다.

 주영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일이 너무 바빠서 그는 속사포처럼 말하고 있었다.

 “몇 분이세요? 네 명이요? 지금 자리 없어요. 몇 분 걸리냐고요? 다른 손님들이 언제 먹고 일어날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기다리겠다고요? 그냥 다른 곳 가세요. 오늘 같은 날은 1시간 넘게 기다리실 수도 있어요. 그럴 바에야 다른 음식점을 가는 게 낫죠. 뭐 음식이 치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잠시 만요! 지금 갈게요! 지금 안내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젠장, 잔 깨시면 어떡해요! 아, 저쪽에 자리가 났네요. 뭐로 시키실 거예요?”

 현우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배어있었다. 태도도 썩 예의바르다고 할 순 없지만 연말인 만큼 어느 정도 바쁠 것을 예상했는지 화를 내는 손님은 없었다.

 “3번 테이블에 5, 7번 메뉴 하나씩.”

 현우가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3번 테이블에 5, 7번 메뉴 하나씩……. 젠장, 손님 더럽게 많네! 한국 사람들, 치킨 진짜 너무 좋아해.”

 주방에서 닭을 튀기던 외국인 유학생 베기니는 주문이 끊임없이 들어오자 어눌한 한국어로 짜증을 냈다. 그는 용돈을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찾던 도중 시급이 높다는 이유로 이곳을 선택했다. 그러나 시급이 높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지금 쉬지도 못하고 네 시간 째 치킨만 튀기고 있다고…….”

 베기니가 현우를 보며 하소연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연말이라고 주방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모조리 도망간 것이다. 결국 베기니 혼자서 기름통 네 군데를 이용해 동시에 치킨을 튀기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그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었고, 수염 난 턱 아래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 뜨겁고 덥고 많이 힘들지? 이거 먹어가면서 해.”

 웬일로 현우는 바구니에 담긴 치킨 조각을 친절히 베기니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편식하는 어린아이처럼 울상이었다.

 “현우, 간식 치킨 이미 먹었어. 치킨 너무 질려……. 한국 사람들 무서워……. 매일 치킨만 먹어…….”

 베기니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찬희는 양심적인 사장으로 외국인과 한국인 아르바이트생 사이에서 차별을 두지 않았다. 시급을 적게 준다거나 시급을 늦게 주는 것도 없이 똑같이 주었다.

 또한 일하다가 배고프면 먹으라고 갖다 준, 일명 ‘간식 치킨’ 바구니도 베기니에게 주었다. 추위를 뚫고 배달을 나갔다 온 아르바이트생도, 홀에서 손님들을 상대하다가 지친 아르바이트생도 곳곳에 놓인 ‘간식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며, 끼니만큼은 거르면 안 된다는 게 찬희의 지론이었다.

 문제는 그 ‘간식 치킨’도 베기니가 튀긴다는 것이었다.

 현우는 한숨을 푹 내쉬는 베기니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준 뒤 치킨이 담긴 접시를 들고 주방을 가로질러 나갔다.

 그 순간, 아래쪽에서 거무스름한 손이 휙 올라와 치킨 한 조각을 가져갔다.

 “이건 새로운 메뉴인가? 음, 맛이 괜찮네. 그런데 메뉴가 갈릭 치킨인데 왜 마늘이 안 들어가는 거야?”

 시꺼먼 손의 정체는 마토였다. 그의 입에 들어갔던 치킨은 금세 살이 발라져 앙상한 뼈만 남았다. 그는 주방의 바닥 개수대에 입안에 머금고 있던 닭 뼈를 퉤 뱉었다.

 “그냥 후라이드 치킨에 갈릭 맛이 나는 소스를 뿌리는 거지.”

 “뭐라? 참나, 이건 완전 손님들을 봉으로 아는구만? 소스만 갈릭일거면 이름을 ‘치킨과 갈릭소스’라든가, ‘갈릭소스 묻은 치킨’라든가, ‘소스만 갈릭인 치킨’이라고 해야 되는 거 아냐?”

 “알겠으니까 작작 좀 먹어, 이 자식아.”

 “누가 내 첫 끼를 못 먹게 방해해서 배고픈 걸 어떡해? 난 좀 먹어야겠어.”

 현우는 접시를 머리 위로 들고서 손길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토는 코웃음을 치더니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뻗었다. 종잇장 같이 얇은 그림자의 몸이 허공에서 펄럭였다.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현우는 기겁하며 접시를 도로 내렸다. 다행히 주위에 다른 아르바이트생은 없고, 베기니는 치킨을 튀기느라 바빠서 그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잠깐 방심한 틈을 타 마토는 손님에게 나갈 치킨을 날름날름 집어먹었다. 현우는 주방 밖과 바닥을 번갈아 쳐다 본 다음, 마토를 밟을 작정으로 걸음을 마구 내딛으며 걸어갔다. 그의 입에서 뚝뚝 끊긴 헛숨이 튀어나왔다.

 “흡! 흡!”

 하지만 발길질은 정확하지 않았고, 마토는 여유 있게 주방을 나설 때까지 치킨을 두 조각이나 더 뺐어먹었다.

 홀에 들어서자 투명한 막이 사라진 것처럼 시끌벅적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마토는 아쉽다는 듯이 손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아먹고는 재빨리 바닥에 드러누웠다. 접시에 담겨져 있는 치킨의 양은 이제 누가 봐도 많이 모자라 보였다.

 “너무 줄었잖아.”

 현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끔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쯥, 쯥쯥. 걱정하지 마. 눈치 챌 리가 없어.”

 마토는 호언장담을 하면서 현우가 움직이는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현우가 팔을 움직이면 그도 팔을 움직였고, 발을 움직이면 발을 움직였다.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 ‘그림자 연기’를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서 많이 허둥댔지만 숱한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연기를 하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손님이 너처럼 바보냐? 이걸 모르게”

 “걱정하지 말라니까? 술과 흥에 취해있어서 절대 몰라. 알래야 알 수가 없지. 고럼, 고럼”

 현우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홀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마토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실제로 여태까지 걸리기는커녕 의심을 받은 적도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던 현우는 치킨을 주문한 테이블 앞에서 굳어버렸다. 혹시나 테이블을 잘못 알고 온 것은 아닌지 영수증 번호와 테이블에 붙어 있는 숫자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주문은 정확했다.

 테이블에는 하루에 한 끼는 반드시 치킨을 먹을 것 같이 생긴 뚱뚱한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치킨이 나타나자 의식을 치루는 것처럼 동시에 안경을 치켜 올렸다. 테이블 위에는 술이 아닌 콜라 두 병이 있었다. 병째로 마시고 있는지 잔도 없었다.

 “어때? 술에 취해있지? 절대 모르겠지? 그치, 이건 절대 눈치 챌래야 챌 수가 없지. 하루에 한 끼를 치킨으로 먹지 않는 이상, 어떻게 알겠어? 낄낄낄”

 바닥에 붙어 있어서 위쪽 상황을 알 리가 없는 마토가 거들먹거리면서 웃었다. 현우는 손님들에게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그림자가 있는 곳으로 짐작되는 곳을 지그시 밟았다. 그림자는 정체를 들킬까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다리를 마구 때렸다.

 “주, 주문하신 갈릭소스 묻은 치킨……. 아니, 갈릭 치킨 나왔습니다.”

 현우는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애쓰면서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흐음, 드디어…….”

 두 사람은 신을 영접하듯이 조심스럽게 접시를 받았다. 현우는 애써 미소를 지은 다음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등 뒤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식은땀이 절로 났다.

 “어째 이거 좀 적지 않아?”

 “마치 누군가가 몇 개 빼서 먹은 듯한 모양새야.”

 

 * * *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가게가 한산해졌다. 손님들이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자리가 모두 꽉 차서 더 이상 새로운 손님을 받을 수가 없던 것이다. 이제 대기하는 손님은 거의 없었고, 기존에 앉아 있던 손님들은 집에 갈 생각이 없었다.

 현우는 한산해진 틈을 타서 주영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갔다. 그녀는 치킨을 깨작깨작 먹고 있다가 현우가 다가오자 밝게 웃었다.

 “수고했어.”

 현우는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아서 마토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현우의 체중을 버텼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아?”

 “오늘은 연말이라 그런지 좀 심하네. 근데 혼자서 치킨 먹으면 맛있어?”

 “음, 아무래도 둘이서 먹는 게 맛있겠지?”

 “그러게 왜 왔어.”

 현우는 미안한 마음에 괜히 주영을 나무랐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찬희가 허락했다지만 아르바이트생 중 자신만 쉬고 있는 중이어서 적잖이 눈치가 보였다.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주영이 현우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왜 왔는데?”

 “왜 왔냐면…….”

 그녀는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손을 들어 올려 테이블 중앙에 올려놓았다. 그 동작은 너무 부드럽고 가벼워서 마치 허공에 떠다니는 깃털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현우는 이게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손과 그녀의 얼굴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주영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테이블 위를 쓸고 내려가듯이 손을 천천히 자신의 방향으로 끌고 왔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혹은 보는 이의 복장을 터뜨려버릴 듯이 그녀는 느릿하게 손을 놀렸다. 그에 따라 현우의 시선과 뒤에서 고개만 빼곰 내민 마토의 시선이 함께 따라갔다. 특히 마토는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손바닥이 테이블을 벗어났는데도 테이블과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는 듯 손가락은 끝까지 테이블 위를 쓸고 내려왔다. 끝내 주영의 손이 테이블을 완전히 벗어났다.

 “치킨 먹으러 왔지.”

 주영은 치킨을 포크로 찍어 임 속에 쏙 넣었다.

 “아오,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네! 그걸 그냥 말하면 되지, 그렇게 질질 끌면서 말해?”

 참을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마토가 불같이 화냈다. 당황한 현우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그래도 진정하질 않자 현우는 아예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

 그때 찬희가 독특한 모양의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버둥거리던 현우와 마토는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잡았다.

 “어때 먹을만해?”

 “네. 제가 먹어본 치킨 중 최고에요”

 주영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 찬희는 환하게 웃으며 테이블 위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기다란 나무 재질의 접시 위에는 화려한 색깔의 양념을 묻힌 순살 치킨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자, 우리 집의 스페셜 치킨이야. 모든 메뉴를 한 번에 먹을 수 있고, 특히 가운데에 있는 것은 우리 치킨집의 한정판이지만 특별히 내왔어.”

 “와아! 감사합니다!”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주영과 달리 현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찬희를 바라보았다. 그는 현우에게 눈을 한 번 찡긋하더니 걸음을 돌렸다.

 “뭘 이렇게 많이 시켰어? 게다가 이 스페셜 치킨은 되게 비싼데.”

 현우는 찬희가 카운터로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응? 나 안 시켰는데?”

 “뭐?”

 “이번에 수능 봤다고 하니까 그냥 주시던데? 고생했다면서.”

 “…….”

 현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평소 돈에 민감한 사람이 수능 봤다고 해서 공짜로 준다는 것이 의아했다.

 “뭐? 저 짠돌이가 이걸 다 공짜로 줬다고? 그럴 리는 절대 없는데. 이상하군. 뭐 나야 좋지만”

 마토는 주위 사람들 눈에 안 띄게 간결하고도 빠른 동작으로 치킨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우는 쉽게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혹시 그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내준 것일까? 아직도 주영이를 여자친구라고 생각해서, 여자친구 앞에서 기가 죽으면 안 되니까?

 현우는 피식 웃으며 찬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마침 잘 돌아봤다는 듯이 웃으며 이상한 손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주영이를 가리켰다가, 갑자기 웃는 표정을 짓고, 검지 두 개를 교차해 x를 만들더니, 오른손을 들어 돈을 내라는 시늉을 했다.

 그럼 그렇지.

 “야.”

 “응?”

 “한 번 웃어봐.”

 “...하? 갑자기 웃으라고?”

 “한 번만 웃어봐. 그래야……. 이 치킨이 공짜야.”

 주영이 웃긴 웃었지만 그건 어이가 없어서 웃는 미소였다. 현우가 슬쩍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찬희는 엄지를 굳세게 치켜들고 있었다.

 “뭐야? 왜 웃으라고 하는 건데? 그리고 웃는다고 치킨이 공짜라는 건 무슨 소리야? 그게 말이 돼?”

 “어느 유치한 양반 때문에 말이 되더라.”

 호기심 많은 주영이 끈질기게 물어볼 때였다. 손님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들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네! 이제 올해도 1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 종각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타종 소리를 듣기 위해서 모여 있는데요. 다사다난했던 병신년이 가고, 새로운 한해는 꼭 모두가 행복한 한 해를…….”

 치킨 집의 한쪽 벽면에 설치된 TV에서 제야의 종 타종행사를 생방송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대화는 사라졌다. 곧 카운트다운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쳤고, 각자 마음속으로 새해 소망을 빌었다.

 “5!”

 외국인 유학생은 내년에 고향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고

 “4!”

 치킨집 사장은 내년에 장가를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고

 “3!”

 갈색 단발머리 여자는 내년에 소꿉친구와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2!”

 한 그림자는 내년에는 제발 괴팍한 녀석에게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1!”

 마지막으로 한 청년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평생 엄마와 마주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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