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죽을꺼 같다고 심장이 찟겨서 죽고! 가슴이 터져서 미칠꺼 같아! 이런 난? 난 안보여?"
"일이 커지는게 싫어서.."
"나는 일 커지는거 좋아해. 그럼 나는 말리지 말았어야지!."
"호철이가 보고 있는데 자기 때문에 엄마가 싸운다고 생각하면 많이 슬퍼 할 거 같아서요."
"엄마도 자기 자식 앞에서 언성 높이는데 그걸 왜 니가 챙겨?"
"죄송합니다"
"매일 뭐가 그렇게 죄송하고 미안한데. 네가 싫어해서 아무 말 안했어. 매일 꼬장 피우는 불 여시한테도 내 꺼라고 건들지 말라고 수 백번 말하고 싶어도 처음으로 먼저 말 걸어 준 게 지켜보라고 안 그러면 안도와준다는 그 한마디 때문에 조용히 있었어. 그런데 이건 아니잖아!"
"..."
대답 없는 도연이를 뒤로 하고 수혁이는 거칠게 차를 뺐다.
"병원가게 타"
"사무실 가봐야 해요"
수혁이는 차안에서 나와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꺼내들고 팀장 재성이에게 전화를 하면서 도연이를 차안으로 밀어 넣었다.
"내일까지 빌렸어. 조용히 따라와"
"내일 일요일이에요."
"공연 없는 날 인거 알아. 한마디만 더하면 키스한다."
따박따박 대드는 도연이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그 입술만 클로즈업 되는 수혁이는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말이 튀어나와 조용해진 도연이보다 더 놀라고 있었다.
도연이에게 키스라는 말을 하자 그동안 안에서만 꿈틀대선 본능이 아지랑이 처럼 피어올랐다. 안고 싶다 안고 싶다 뽀뽀하고 싶다 뽀뽀하고 싶다. 키스하고 싶다. 키스하고 싶다. 너와 오늘 같이 있고 싶다.
네비게이션을 따라 운전을 하고 있지만 병원으로 가는내내 수혁이 머릿속에는 여태 중요한게 아니라며 묶어둔 본능을 입 밖으로 꺼내자 더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본능을 누르고 싶지가 않았다.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을 지켜봤고 이리 저리 치이고 무시당하는 모습이 싫었고 앞으로 언제까지 모르는척 있는것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듯 갑갑했다. 이젠 본능대고 머릿속에 있는 많은 생각들을 버리고 그저 마음이 시키는 데로 움직이고 싶어졌다.
곧장 가까운 병원으로 간 수혁이와 도연이는 이런걸로 병원에 온사람도 다있냐는 듯 쳐다보는 눈빛을 무시하고 연고를 챙겨 나오자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수혁이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도연이를 데리고 갔다.
비가 내리는 창 밖을 보며 잔잔하게 들리는 조용한 배경음에 도연이는 한폭의 그림처럼 앉아 가만히 즐기고 있었다 며
두사람 사이에는 아무말이 없었지만 어색함과 불편하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을 만큼 편안하고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아침같았다.
수혁이에게 도연이란 그런 존재였다. 한적한 시골에서 맞이하는 아침 같은 사람. 지저귀는 새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잔잔한 울림이 있는 사람. 아침 햇살이 침대에 부서지고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빛이 있는 사람. 도연이가 없던 지난 10년은 그저 밤만 존재한것처럼 수혁이의 전부는 도연이였다.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밥 먹었으면 우리 여행가자."
포크를 내려놓으며 인사를 하던 도연이는 수혁이 말에 얼어버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도연이에게 미안하지만 조용히 앉아서 밥을 먹는 내내 생각했던 수혁이였다.
여태껏 원하는데로 지켜만 보다가 미치는 경험을 했기에 그정도는 무시 할수 있었다. 앞에 있으면서 쳐다보는것만 해도 좋았다 물론 보지 못했던 지난시간과 비교하면 그것조차 꿈처럼 깨버릴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수혁이는 도연이를 사랑하는 한 남자였다.
지켜만 보기에는 너무 안고 싶었고 하루종일 품안에 가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도연이가 원하는데로 마음을 얻으려고 기다렸다. 민희가 무시하는 말을 해도 도연이가 원하니깐. 호철이 엄마라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도 도연이가 말리니깐 언제나 도연이 눈빛으로 움직였지만 더 이상 그렇게 지내기엔 미칠꺼 같던 수혁이는 이젠 자신 방식대로 도연이에게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마음을 무시하고 머리 간데로 행동하다가 아영이를 보낸적 있으면서도 이번에도 도연이가 원하는데로 움직여 주며 자신의 마음을 무시하고 있었다.
"나가자"
"화장실 먼저 다녀올께요."
도연이는 수혁이가 먼저 일어나기 전에 자리에서 벗어나 화장실로 향하던 도연이는 수혁이가 잠시 웨이터와 이야기 하는사이 비가 내리는 밖으로 나와 우산도 쓰지 않고 그저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보는건 좋아하지만 맞는걸 즐기지 않는데 그떄처럼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는 행복했는데 오늘은 슬펐다. 자꾸 피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다. 그런데도 이렇게 보고 싶어 자꾸 쳐다보게 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도연이에게 수혁이는 파란 장미였다.
**
강의가 끝날 무렵 창문 밖으로는 빗방울이 한 두방을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영이는 교수님의 목소리는 벌써 저 먼 곳에서 드리는 메아리처럼 신경 쓰지 않고 창밖을 보며 들떠 있었다. 왠지 비가내릴꺼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우울할 때 내리는 비는 내 눈물을 대신 흘리는거 같아 기분이 좋고 즐거울 때 내리는 비는 그 기분을 곱씹을 수 있는 시간과 음악을 만들어 줘서 좋았다.
그렇다고 맞는 걸 즐기는 건 아니었다. 그저 분위기에 취할 뿐 비를 맞는 건 누구보다 싫어했다.
너무 초라해진 자신을 발견 할수 있기에...
고등학교 이후로 부모님 없이 자매도 없이 혼자 지낸 아영이는 비가 내리면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 우두커니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거나 학교 안 사람들이 모두 먼저 가길 기다리거나 했기에 비를 맞는 건 싫어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도 체육복이나 필통은 안 가지고 와도 우산은 언제나 가방에 있을 만큼 아영이에게는 필수 물품이였다.
어느덧 강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유일하게 진아랑 다른 강의이기에 오늘은 혼자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검정색 접이식 우산이 하늘을 가렸다. 아영이는 우산을 항상 가방에 챙겨 놓고 오기 때문에 우산이 있었지만 일기예보에도 안 나온 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학창시절과 다르게 대부분이 비를 맞으며 뛰어가는 선택을 하고 있는 모습에 더욱 발걸음은 당당해졌다.
강의시간 내내 기다리던 생각했던 아영이는 설마 수혁이가 우산을 챙겨왔으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에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키패드를 누르며 문자를 보냈다.
[오빠 도서관이지? 비 내리는데 머하고 있어?]
[커피. 너는 아직 도서관도 안 오고 뭐하냐? ]
[비밀인데! 우산은 있어?]
[없는게 다행이지 안 그러면 지금 성민이손에 이끌러 집으로 갈 꺼 같다.]
[히히히 나는 오늘 못가]
[너도 농땡이냐?]
[너도? 또 누가 농땡이래 여하튼 나도 나름 바쁜 여자임. 낼봐용~]
아영이는 문자를 하면서 도서관 입구에 들어섰다. 우산봉지에 씌우고는 빠른 걸음으로 열람실 4층으로 향했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은 자리를 하고 있었다. 수혁이가 자주 앉은 자리로 가니 성민이가 책을 보다가 쳐다봤다. 성민이는 손가락으로 빈자리를 가르켰다. 성민이의 말을 알아들은 아영이는 고개를 흔들고는 성민이의 펜을 빌려 글씨를 써내려갔다.
[선배 약속있음. 이 우산 수혁 오빠 전해주세요. 그럼 공부 파이팅하세요.]
수혁이에게 들킬까봐 걱정된 아영이는 최대한 빨리 쪽지를 쓰고 가방 옆에 우산을 두고는 나갔다. 들어가기 전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고 있는데 아영이는 다른 사람처럼 비를 피하지도 않고 그 비들을 맞으며 웃으면서 걸어갔다.
혹시 쫓아 나올까 아영이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지만 미소는 빗물에 씻기지도 않고 있었다. 선탠이 깊게 들어간 4층 창문에서 비 맞고 가는 아영이의 모습을 보는 수혁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아영이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화장실로 향하는 도연이의 뒷모습을 보며 뒤따라 나가다가 카운터에 서서 계산을 하는 사이 싸한 바람이 몸을 애워 싼 느낌에 수혁이는 영수증과 건네는 카드를 낚아채다 시피 하고는 달려 나갔다.
멀리서 보이는 현관 밖으로 뛰쳐나가는 도연이의 모습에 설마가 사실이 된걸 알고 따라 달려 나갔지만 비가 내려서인지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어둠에 물든 하늘에서는 레스토랑에 들어오기 전과 다르게 내린다는 말이 고상할 정도로 한 치 앞도 분간 하지 못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뒤 따라 가던 수혁이는 갑자기 들어선 어둠에 익숙치 않아 헤맨 사이 더 멀어져 버린 도연이의 모습은 일정한 방향 따라 쏟아지는 빗줄기를 부서트리며 뛰어가고 있었고 가로등에 반짝이는 빗방울 따라 잠시 모습을 비추고 사라지는 일을 반복 하고 있었다.
노르스름한 가로등에 의지하며 작은 빗방울에 의지하며 쫓아 갔지만 호텔입구까지 밖에 없던 가로등이 끝나는 길과 함께 도연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볼수 없었다.
불안감이 온몸을 한기처럼 파고 들었다.
마지막 기억. 도연이를 봤던 마지막 날의 기억도 이렇게 비가 내렸던게 떠올라 이게 또 마지막일까봐 초조해진 수혁이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길의 마지막을 비추는 가로등의 다리를 주먹으로 쳤다.
손등에 따라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지만 수혁이는 10년 전 그때를 그리고 오늘을 후회 할 뿐 이였다. 후회라는 말이 낯설게 살아 왔것만 세상 두 번째 후회를 하는 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