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1-29 15:26
[응모]_세상은 이렇게 끝난다_학창물_이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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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이 내 기억 속에 각인된 이유는 이 사건이 세상에 미치는 크나큰 여파도 있었지만 이 사건이 나의 중대한 순간에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1999년 4월 나는 대학 신입생이었다. 자의와 타의가 뒤섞인 고통과 인내로 점철된 고3시절을 지나 꿈에 그리던 대학 캠퍼스의 낭만과 여유를 느끼기 시작할 무렵의 내게 이 사건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유난히 싱그럽게 느껴졌던 캠퍼스라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살인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그 대조적인 상황적 간극이 내게 무겁게 다가왔다.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한 2007년에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났다. 33명을 죽이고 29명을 다치게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승희는 자신의 공격을 설명하려고 성명서를 남겼다. 조승희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사람으로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에릭과 딜런을 언급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연구실 문 앞에 놓여진 신문 1면의 조승희의 사진과 사건에 대한 헤드라인을 보고 받은 강렬한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학원 총기난사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사건의 발생원인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커져갔다.
“도대체 왜?”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는 학교 안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콜롬바인 사건에 받은 충격으로 사건의 발생원인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해하던 나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사건 발생의 동기를 추리해나가는 것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건발생의 원인에 대해 궁금해하며 주인공의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추리를 따라간 끝에 마주하게 되는 그 반전이란… 스토리 전개방식과 테러 사건을 대하는 일반적인 시각과 믿음을 벗어난 주인공으로 인해 그 반전의 효과는 더 고조된다. ‘오펜하이머 타입’의 배신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작가가 인물을 구성해가는 방식도 신선했다. 작가는 ‘파인만’, ‘도킨스’ ‘오펜하이머’, ‘텔러’ 등 이과 고등학생이 존경하는 과학자와 존경하는 이유를 통해서 등장인물의 심리와 성격을 묘사하고 있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이야기, 더군다나 추리를 기반으로 한 서사에 집중되는 구조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이는 주인공의 추리에 대한 중요한 근거로서 작용하고 있다.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se)’
‘사덴’은 상처를 주는것, ‘프로이데’는 환희라는 뜻으로 ‘샤덴프로이데’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줌으로서 느끼는 환희를 의미한다. 우리 중 누구도 콜럼바인 사건의 범인처럼 또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의 ‘텔러’처럼 세상의 멸망을 꿈꾸거나 자살충동을 느끼는 등 부정적 파괴욕망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나의 행위로 인해 타인이 처하게 되는 고난적 상황을 기뻐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너무도 불안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상에 나라는 자기정체성이 느껴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깃든 상태에서 악은 발현될 수 있다.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공허하고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악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세계의 거대한 힘을 느끼게 되는 순간, 개인이 세계와 단절되고 사회와 유리되었을 때 악은 발현되는 것이다. 사회학자 마크 위르겐스마이어는 “테러리즘의 핵심적 특징은 폭력의 상연”이라고 주장했다.
“왜 학교였을까?”
‘사회생활의 예행연습’으로서 억압적이고 강요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에게 있어 학교는 세상의 전부다. 콜럼바인 사건의 범인 에릭은 사건을 일으키기 2년전부터 학교 총기사건을 준비하며, 학교수업의 과제를 그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총알이 장전된 권총을 학교에 가져가는 것은 계산기를 가져가는 것만틈이나 쉬운 일이다.”는 에릭의 작문과제에 대해서 영어교사는 “빈틈없고 논리적임. 잘했음”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에릭에게 학교라는 공간은 자신이 학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곳이자 자신 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타인들 즉, 로봇을 양성하는 공장이었다. 만약 ‘텔러’의 심리상태와 관심사에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아니 적어도 ‘텔러’의 예행연습에 주목하는 이가 있었다면, 입시 실적 위주로 돌아가는 학교라는 작은 세상의 법칙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재학기간 동안 한번도 찾을 일 없는 도서실, 인생에서 가장 쓸모 없는 시험으로 묘사되는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학생들의 부정행위와 범법행위에 외면하는 교사 등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학교’로 대표되는 정규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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